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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이의 마라톤을 주제로 삼아 사람들에게 자폐증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그 대안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스스로 ‘자’自 닫을 ‘폐’閉. 결국 세상에 대해 마음을 꼭 닫고 열지 못하는 병을 바로 자폐증이라고 한다. 영화 속에서 신경 정신과 의사가 초원이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커다란 개가 초원이를 쫓아오고 있어. 초원이는 슬플까? 화날까? 무서울까? 즐거울까?” 그 질문에 초원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이렇게 어떠한 감정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자폐증인 것이다. 결국 자폐증 환자는 위에 장애인 사례에서 보여준 여느 장애인들처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장애인으로서 느끼는 어떠한 설움도 표현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자폐증 환자들을 위해 ‘정신병자’라고 손가락질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격체로써 보듬어야 할 것이다. ‘말아톤‘이라는 영화가 단지 한편의 가족 영화적 성격에서 결말이 나버렸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지만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만이라도 자폐증의 현실과 슬픔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어떤 감정도 표현 할 수 없는 자폐증 환자들을 위한 최대한의 배려가 아닐까?
스스로 ‘자’自 닫을 ‘폐’閉. 결국 세상에 대해 마음을 꼭 닫고 열지 못하는 병을 바로 자폐증이라고 한다. 영화 속에서 신경 정신과 의사가 초원이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커다란 개가 초원이를 쫓아오고 있어. 초원이는 슬플까? 화날까? 무서울까? 즐거울까?” 그 질문에 초원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이렇게 어떠한 감정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자폐증인 것이다. 결국 자폐증 환자는 위에 장애인 사례에서 보여준 여느 장애인들처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장애인으로서 느끼는 어떠한 설움도 표현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자폐증 환자들을 위해 ‘정신병자’라고 손가락질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격체로써 보듬어야 할 것이다. ‘말아톤‘이라는 영화가 단지 한편의 가족 영화적 성격에서 결말이 나버렸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지만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만이라도 자폐증의 현실과 슬픔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어떤 감정도 표현 할 수 없는 자폐증 환자들을 위한 최대한의 배려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