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지아장커와 제6세대 감독
1-1. 지아장커 영화의 시작과 초기작
2.《소무小武》- 지아장커 영화의 시작
3. 《플랫폼 站台》,《임소요 任逍遙》
3-1.《플랫폼 站台》
3-2. 《임소요 任逍遙》
4. 세계
5. 스틸라이프
Ⅲ. 결론
Ⅱ. 본론
1. 지아장커와 제6세대 감독
1-1. 지아장커 영화의 시작과 초기작
2.《소무小武》- 지아장커 영화의 시작
3. 《플랫폼 站台》,《임소요 任逍遙》
3-1.《플랫폼 站台》
3-2. 《임소요 任逍遙》
4. 세계
5. 스틸라이프
Ⅲ. 결론
본문내용
삽입된다. 임소요에서 ‘임소요’를, 플랫폼에서 ‘站台‘를, 스틸라이프에서 주인공 산밍의 벨소리로 '好人一生平安'를 삽입한 것이 제목과 관련해 주제의식을 강조한 예이다. 한편 대중가요, 홍콩 노래, 번안곡, 등려군의 노래의 삽입도 같은 맥락 하에서 주목해 몰만한 점이다. 스틸라이프에서는 꼬마 아이가 홍콩의 인기 듀엣 TWINS의 老鼠大米를 부르고 소무에서는 메이메이가 소무에게 왕페이의 天空을 불러 준다. 홍콩은 전형적인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세계 몇 대 미항으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도시이고 근대적 감각의 고층 건물 군이 감탄을 자아내게 하며 그 건물 군을 중심으로 잘 연결된 각종 대중교통수단이 돋보인다. 또한 홍콩은 첨단 자본주의 체제하의 자유 경쟁 사회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자본이 중시되는 사회일수록 인간 소외는 더욱 확대된다. 홍콩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국제 금융도시인 동시에 최첨단의 자본화된 도시이지만, 그 안에서 인간이 존재할 공간은 현저히 축소되거나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중국에서 등려군의 음악이 지니고 있는 함의 또한 비슷한 맥락이다. 등려군의 음악은 근대화의 상징이다. 중국에서는 한때 '낮은 등소평의 세상이고 밤은 등려군의 세상'(白天聽鄧大人的,晩上聽小鄧的)이란 말이 유행했었는데, 낮에는 등소평의 말씀을 따르고 밤에는 등려군의 노래를 듣는다는 의미이다. 1980년대 중국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대만 가수 등려군의 음악이 대륙으로 흘러들면서, 혁명가와 군가에 익숙해온 대륙 사람들은 사랑과 이별을 다룬 등려군의 노래에 큰 인상을 받게 되고, 등려군의 음악은 근대화의 물결, 중국의 변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매개로써 이른바 '샤오덩(小鄧)신드롬'을 일으키게 된다.
《플랫폼》에서 라디오를 들고 와서 디스코 파티를 벌이는 장면에서 삽입된 노래도, 역시 《플랫폼》에서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트럭 위에서 춤을 추는 장면에서 삽입된 노래도 번안곡이다. 번안곡 역시 위의 요소들과 같은 선상에서, 자본화와 근대화속의 부적응과 혼란을 드러내고 있으며 동시에 전등아래의 그림자와 같은 소외의 정서를 그리고 있다. 지아장커는 리얼리즘을 중시하는 감독으로, 실제로 장이모를 비롯한 제 5세대 감독들이 스스로 오리엔탈리즘적인 웅장한 영상미에 치중하고 있는 데 반해 지아장커는 탐미주의적 이미지에 몰두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현대 중국 사회와 서민들의 모습을 꾸밈없이 사실적으로 포착하고자 한다. 중국의 모습을 아름답고 자랑스럽게 그리기를 바라는 정부에 반해 계속 아름답지 않은 부분들을 폭로하는 지아장커의 작품세계는 이런 면에서 노신과도 상통하는 부분을 발견 할 수 있다. 한편 지아장커는 예술 영화감독으로 점차 인지도를 얻어가고 있으나, 국제 영화제를 의식한다는 비판적인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그가 비판하는 제5세대 감독 장이모와는 또 다른 색깔의 오리엔탈리즘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아장커는 장이모처럼 웅장한 중국, 서양인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동양적 색채를 그려내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영화제를 의식한다는 의견에 대해 극구 부인한다. 하지만 고의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그가 다루는 아름답지 못한 중국의 현실, 변화를 맞닥뜨린 평범하고 사실적인 개인의 모습은 서구인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또 다른 면의 모티프인 것이 사실이다. 최근 노벨문학상 수여의 경향도 그렇고, 아시아나 제 3세계에서 변화 속에 사라져가는 전근대적인 것들은 서구인에게 낯설게 다가가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장이모처럼 직접적이고 표면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을 이용하는 것도 동양인인 우리가 보기에는 다소 불편하지만, 원주민이나 소수민족, 기타 다양한 각도에서의 소수자와 약자들에 가까이 다가가 은근히 감정을 건드리는 것은 비판적인 시각에서 볼 때는 더욱 가증스러운 기만일 수도 있다. 이렇게 그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나, 이것은 한편 지아장커의 입지와 영향력의 변화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2006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았고 왕가위, 후샤오시엔 등 쟁쟁한 선배들에게서도 주목할 만한 감독으로 손꼽힘은 물론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의 지원을 받고, 우리나라에서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아낌없는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2006년 북경대에서 새 작품 스틸라이프에 대한 강연회를 가지기도 했는데, 강연회에서 싼샤댐 이주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흘려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 강연회는 지아장커에게 있어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 자리였다. 그의 첫 단편 《샤오산의 귀가》는 북경전영학원 학생 기숙사 618호 좁은 방에서 첫 상영되었던 바 있다. 영화가 끝난 후 사람들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영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괜찮았다 혹은 형편없었다는 반응도 없이, 그저 냉담하기만 했다. 같은 작품의 첫 외부 상영이 바로 북경대에서 있었다. 상영이 끝난 후 학생들은 찬반 양측으로 나뉘어 격렬하게 토론을 벌였다. 어떤 사람은 아주 좋아했고 어떤 사람은 아주 싫어했다. 첫 작품을 완성한 감독에게 있어 북경대에서의 그 상영은 반응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로부터 10년 후 자신의 다섯 번째 장편을 들고 북경대를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올해 들어 제6세대 감독들의 블록버스터 제작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그동안 소액의 제작비로 영화를 찍어온 제6세대 감독들이 과연 수백 억 원대의 블록버스터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혹은 참담한 흥행 기록을 내거나 아예 국내 관객과 만나보지도 못한 그들이 과연 어떻게 관객을 불러 모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의심은 영화제작자의 숙제이다. 경제적인 지원이 영화적 표현 영역을 확대해 준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제6세대만이 가진, 격변하는 중국사회의 현실에 거침없이 렌즈를 들이대는 용기가 사라질까 걱정이다. 중국정부가 원하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웅장한 영상미와 탐미주의적 이미지는 이미 중국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6세대는 알고 있을 것이다. 과거 노신이 그랬듯이 그는 자신의 감독관을 유지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진일보한 감독이 되리라 생각한다. 중국의 현실을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중국 영화의 ‘현재’이다.
《플랫폼》에서 라디오를 들고 와서 디스코 파티를 벌이는 장면에서 삽입된 노래도, 역시 《플랫폼》에서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트럭 위에서 춤을 추는 장면에서 삽입된 노래도 번안곡이다. 번안곡 역시 위의 요소들과 같은 선상에서, 자본화와 근대화속의 부적응과 혼란을 드러내고 있으며 동시에 전등아래의 그림자와 같은 소외의 정서를 그리고 있다. 지아장커는 리얼리즘을 중시하는 감독으로, 실제로 장이모를 비롯한 제 5세대 감독들이 스스로 오리엔탈리즘적인 웅장한 영상미에 치중하고 있는 데 반해 지아장커는 탐미주의적 이미지에 몰두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현대 중국 사회와 서민들의 모습을 꾸밈없이 사실적으로 포착하고자 한다. 중국의 모습을 아름답고 자랑스럽게 그리기를 바라는 정부에 반해 계속 아름답지 않은 부분들을 폭로하는 지아장커의 작품세계는 이런 면에서 노신과도 상통하는 부분을 발견 할 수 있다. 한편 지아장커는 예술 영화감독으로 점차 인지도를 얻어가고 있으나, 국제 영화제를 의식한다는 비판적인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그가 비판하는 제5세대 감독 장이모와는 또 다른 색깔의 오리엔탈리즘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아장커는 장이모처럼 웅장한 중국, 서양인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동양적 색채를 그려내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영화제를 의식한다는 의견에 대해 극구 부인한다. 하지만 고의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그가 다루는 아름답지 못한 중국의 현실, 변화를 맞닥뜨린 평범하고 사실적인 개인의 모습은 서구인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또 다른 면의 모티프인 것이 사실이다. 최근 노벨문학상 수여의 경향도 그렇고, 아시아나 제 3세계에서 변화 속에 사라져가는 전근대적인 것들은 서구인에게 낯설게 다가가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장이모처럼 직접적이고 표면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을 이용하는 것도 동양인인 우리가 보기에는 다소 불편하지만, 원주민이나 소수민족, 기타 다양한 각도에서의 소수자와 약자들에 가까이 다가가 은근히 감정을 건드리는 것은 비판적인 시각에서 볼 때는 더욱 가증스러운 기만일 수도 있다. 이렇게 그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나, 이것은 한편 지아장커의 입지와 영향력의 변화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2006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았고 왕가위, 후샤오시엔 등 쟁쟁한 선배들에게서도 주목할 만한 감독으로 손꼽힘은 물론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의 지원을 받고, 우리나라에서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아낌없는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2006년 북경대에서 새 작품 스틸라이프에 대한 강연회를 가지기도 했는데, 강연회에서 싼샤댐 이주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흘려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 강연회는 지아장커에게 있어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 자리였다. 그의 첫 단편 《샤오산의 귀가》는 북경전영학원 학생 기숙사 618호 좁은 방에서 첫 상영되었던 바 있다. 영화가 끝난 후 사람들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영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괜찮았다 혹은 형편없었다는 반응도 없이, 그저 냉담하기만 했다. 같은 작품의 첫 외부 상영이 바로 북경대에서 있었다. 상영이 끝난 후 학생들은 찬반 양측으로 나뉘어 격렬하게 토론을 벌였다. 어떤 사람은 아주 좋아했고 어떤 사람은 아주 싫어했다. 첫 작품을 완성한 감독에게 있어 북경대에서의 그 상영은 반응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로부터 10년 후 자신의 다섯 번째 장편을 들고 북경대를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올해 들어 제6세대 감독들의 블록버스터 제작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그동안 소액의 제작비로 영화를 찍어온 제6세대 감독들이 과연 수백 억 원대의 블록버스터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혹은 참담한 흥행 기록을 내거나 아예 국내 관객과 만나보지도 못한 그들이 과연 어떻게 관객을 불러 모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의심은 영화제작자의 숙제이다. 경제적인 지원이 영화적 표현 영역을 확대해 준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제6세대만이 가진, 격변하는 중국사회의 현실에 거침없이 렌즈를 들이대는 용기가 사라질까 걱정이다. 중국정부가 원하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웅장한 영상미와 탐미주의적 이미지는 이미 중국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6세대는 알고 있을 것이다. 과거 노신이 그랬듯이 그는 자신의 감독관을 유지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진일보한 감독이 되리라 생각한다. 중국의 현실을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중국 영화의 ‘현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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