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문학적 측면을 중심으로 살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생애
2.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유적지
3.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시조
4. 맺음말
5. 참고문헌 및 자료
2.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유적지
3.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시조
4. 맺음말
5. 참고문헌 및 자료
본문내용
가 강호에서 살아가기를 기약했던 바를 찾아보자고 하여 자신의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욱 확실하게 하였다.
이 작품은 사랑하던 임금이 죽자 험난한 벼슬길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하서 선생이 갈매기와 더불어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선생의 뜻을 그대로 담고 있는 시조라 할 수 있다.
위의 세 작품은 모두 『하서전집 속집』에 한역시와 함께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시의 내용도 다른 이들보다 하서 선생에게 더 잘 어울린다. 첫 수는 임형수의 죽음을 애도한 시인데, 임형수가 죽었을 때 12살이었던 정철이 지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둘째 수는 유배 시절에도 위국충정으로 가득 차 있던 송시열의 작품이라기보다 강호에서 유유자적한 하서 선생의 자연관에 더 잘 어울린다. 셋째 수도 소재적 측면에서 송강 정철의 시보다는 하서 선생의 한시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4. 맺음말
조선조 중엽 호남 북쪽에는 이항 남쪽에는 김인후, 영남에는 이황, 충청에는 조식, 서울에는 이이가 버티고 있었다는 역사서에서 보여지 듯 김인후 선생의 학덕은 크고 넓었다. 특히 하서 김인후 선생은 도학과 절의와 문장을 두루 갖춘 당대의 큰 선비였다. 그러나 기묘사화와 인종의 승하를 슬퍼하여 고향으로 낙향한 뒤에 벼슬살이를 단념한 채 은둔 생활을 하면서 학문과 문학에만 전념했다. 이러한 결과로 하서 선생은 다양한 성리학 관련 책을 저술하여 성리학의 대가로서 큰 업적을 남겼으며, 1600여 수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문학작품을 남겼다. 특히, 호남가단의 글벗들과 사귀는 중에 면앙정의 주인인 송순의 시가전통을 계승하여 성산가단의 정철에게 전수해 주었다는 점에서 당대의 문인으로서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당대의 위대한 학자이자 문인이었던 김인후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후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필암서원을 답사함으로써 하서 선생의 자취를 찾아 그의 정신을 느껴보고, 업적을 아로새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생애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그러한 문학 작품을 남기게 된 까닭을 조금이나마 유추해 볼 수 있었으며, 후대에 남겨진 시조 3수를 통해서는 선생이 가지고 있었던 자연관과 인생관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5. 참고문헌 및 자료
-『河西 金麟厚의 思想과 文學』. 하서기념회
-『河西 金麟厚의 思想과 文學 第 三 緝』. 재단법인 하서학술재단
-「김인후의 문예 의식과 그 시조 문학의 성격」. 2004 . 전재강
이 작품은 사랑하던 임금이 죽자 험난한 벼슬길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하서 선생이 갈매기와 더불어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선생의 뜻을 그대로 담고 있는 시조라 할 수 있다.
위의 세 작품은 모두 『하서전집 속집』에 한역시와 함께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시의 내용도 다른 이들보다 하서 선생에게 더 잘 어울린다. 첫 수는 임형수의 죽음을 애도한 시인데, 임형수가 죽었을 때 12살이었던 정철이 지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둘째 수는 유배 시절에도 위국충정으로 가득 차 있던 송시열의 작품이라기보다 강호에서 유유자적한 하서 선생의 자연관에 더 잘 어울린다. 셋째 수도 소재적 측면에서 송강 정철의 시보다는 하서 선생의 한시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4. 맺음말
조선조 중엽 호남 북쪽에는 이항 남쪽에는 김인후, 영남에는 이황, 충청에는 조식, 서울에는 이이가 버티고 있었다는 역사서에서 보여지 듯 김인후 선생의 학덕은 크고 넓었다. 특히 하서 김인후 선생은 도학과 절의와 문장을 두루 갖춘 당대의 큰 선비였다. 그러나 기묘사화와 인종의 승하를 슬퍼하여 고향으로 낙향한 뒤에 벼슬살이를 단념한 채 은둔 생활을 하면서 학문과 문학에만 전념했다. 이러한 결과로 하서 선생은 다양한 성리학 관련 책을 저술하여 성리학의 대가로서 큰 업적을 남겼으며, 1600여 수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문학작품을 남겼다. 특히, 호남가단의 글벗들과 사귀는 중에 면앙정의 주인인 송순의 시가전통을 계승하여 성산가단의 정철에게 전수해 주었다는 점에서 당대의 문인으로서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당대의 위대한 학자이자 문인이었던 김인후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후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필암서원을 답사함으로써 하서 선생의 자취를 찾아 그의 정신을 느껴보고, 업적을 아로새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생애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그러한 문학 작품을 남기게 된 까닭을 조금이나마 유추해 볼 수 있었으며, 후대에 남겨진 시조 3수를 통해서는 선생이 가지고 있었던 자연관과 인생관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5. 참고문헌 및 자료
-『河西 金麟厚의 思想과 文學』. 하서기념회
-『河西 金麟厚의 思想과 文學 第 三 緝』. 재단법인 하서학술재단
-「김인후의 문예 의식과 그 시조 문학의 성격」. 2004 . 전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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