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중국의 수당(隋唐)시대
2. 건축척도와 부재치수(建築尺度知構件尺度) :
(Size of the construction and dimensions of the structural members)
3. 재분제도(材分制度) : The module system based on "材 cai" and "分
영조법식(營造法式:Treatise on Architectural Methods)
4. 목가공기술(木加工技術) : Wood-processing techniques
2. 건축척도와 부재치수(建築尺度知構件尺度) :
(Size of the construction and dimensions of the structural members)
3. 재분제도(材分制度) : The module system based on "材 cai" and "分
영조법식(營造法式:Treatise on Architectural Methods)
4. 목가공기술(木加工技術) : Wood-processing techniques
본문내용
g) 지금의 개봉 (開封)
의 대상국사(大相國寺:Daxiangguo Temple)등이 있는데, 이 경우는 현재에까지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들이다. 오대(五代) 말기와 송(宋) 나라 초기 사이에 살았던 유호(喩皓:Yu Hao)라는 이름의 건축 기술자는 당(唐) 제국의 황제 예종(睿宗:RuiZong) 시대였던 A.D710 - A.D712년에 지어진 대상국사(大相國寺:Daxiangguo Temple)의 구조를 연구하기 위해 개봉(開封Kaifeng)을 여행하게 되는데, 그는 후에 “나는 건물의 모든 구조 부분들을 보았고, 그 구조들에 대해 이해하였지만 벽 모서리의 권첨(卷 (처마) : 의 명칭을 총괄해보면 14종이나 존재하고 있는데, 곧, 우(宇), 첨(), 적(), 미(楣), 옥수(屋 垂), 여(), 영(), 연면(聯), 담(), 아(), 무(), 만(), 첨비(), 유()가 있다. 중국에 는 일찍부터 사아(四阿)라는 네 면이 경사진 지붕이 유행했는데, 참각(角)을 받쳐주는 각량(角 梁)을 양마(陽馬)라 하였고, 또 궐각(闕角), 고릉() 및 양말(梁抹)이라고도 하였다.
) 하나만이 나를 혼란스럽게 하였다.”라고 했던 말이(진사도의 <후산총독>제3권 : 陳師道 <後山叢讀>三卷 : vol.3 of \"Hou Shan Cong Tan\" by Chenshidao 참조)를 통해 문헌으로 전해지고 있듯이 이는 당(唐)의 목조 구조들이 간단한 구조형식을 갖고 있었다는 이전에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잘 말해주고 있는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오대(五代)의 황하유역(黃河:Huanghe 流域)에서 빈번했던 전쟁들은 구조 기술의 중심을 점차 장강유역(長江:Changjiang 流域)으로 이동시켰고 중국 서쪽 지방의 정치적 안정은 곧 기술적 발전에 매우 긍정적인 상황을 제공해주게 되었다. 동시에 이때의 건축 기술 발전의 중심이 황하유역(黃河:Huanghe 流域)에서 당(唐) 남쪽 지방의 천강(天江) 지역 일대로 이동하였고, 또한 오(吳) 나라를 지나 촉(蜀) 나라의 사천(四川), 남한(南漢)의 광동(廣東) 지역으로 옮겨가게 되는데, 이 시기부터 금천강(今天江) 일대의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탑(塔)과 건물들에 대한 기술이 항주(杭州:Hangzhou)의 서호(西湖:West Lake) 지방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그 시기에 잘 알려진 건축 기술자였던 유호(喩皓:Yu Hao) 역시 바로 이 시기의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시기 건축에 있어 거장과도 같았던 그는 특히 목탑(木塔) 구조기술 분야에 뛰어났고 집필가로서 목조기술 관련 서적을 편찬하기도 하였으며, 구조적 기술 분야에 대한 그의 업적은 후대에도 오랫동안 그를 기억하게끔 하였는데, 송(宋)대에 이르러서는 그를 주(周) 제국 이래로 그 어떤 시대 기술자보다도 뛰어난 건축가로 묘사하기도 하였다.(구양수의 <귀전록> : 歐陽修<歸田綠> 참조) 이러한 그에 대한 모든 수식어들은 물론 유호(喩皓:Yu Hao)에 대한 건축가로서의 찬사일 뿐만 아니라 오대(五代)의 건축적 기술력 수준에 대한 높은 평가를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단지 소수의 오대(五代) 목조 구조물들만이 현재까지 전해지고는 있지만, 이들 외에도 진(晉) 나라 후기, 천복5년(天福:Tianfu五年;A.D.940)에 지어진 평순대운사대전(平順大雲寺大殿:the principal hall of the Dayun Temple at Pingshun), 북한(北漢)의 천회8년(天會:Tianhui八年), 그리고 송(宋) 나라 건덕2년(乾德:Qiande異年)에 건립된 복주화림사대전(福州華林寺大殿:the principal hall of the Hualin Temple at Fuzhou) 등은 규모에 있어 그리 크지는 않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에게 송(宋)과 당(唐) 시대 사이의 목조 구조기술 발전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는 지침으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다음은 당(唐)과 오대(五代)의 목조 구조물들을 통한 기록들을 바탕으로 몇 가지 간략한 기술적 분석들을 설명하고 있다.
a) 건축척도와 부재치수(建築尺度知構件尺度) :
(Size of the construction and dimensions of the structural members)
인덕전(麟德殿:Linde Hall)과 대명궁(大明宮:Daming Palace)의 함원전(含元殿:Hanyuan Hall) 예를 다시 들자면, 이 두 구조물의 규모는 매우 거대하였고, 사실상 그 시대에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 구조물 규모의 한계에 이른 경우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규모가 큰 만큼 기둥의 간격(柱開間)은 단지 5m가 약간 넘는 정도의 치수였으며, 내부의 최대 전장(全長:span)은 4연(椽) 椽 : 1. 화가연(花架椽), 서까래; 지붕 경사에 따라 처마도리, 증도리 마룻대에 경사지게 걸쳐대어 지붕을 덮 거나 산자틀을 엮어 대는 경사부재
2. 첨연(椽), 서까래 처마; 처마도리와 중도리에 걸쳐 처마도리 바깥으로 길게 내민 서까래
3. 가연(架椽) 또는 보연(步椽) 량가(梁架)에서 도리와 도리의 수평거리
※량가(梁架) : 기둥이나 공포위에 얹어 내부 공간을 형성하는 부재들을 총칭하는 것으로 보, 도리,
대공 등을 기본 부재로 하여 구성된다.
이었다. 우리는 항상 지주(支柱)의 간격, 즉 칸(間:bay)을 통해 알게 되는 구조 부재들의 다양한 척도와 이러한 많은 부재들의 치수들을 계산해봄으로써 위의 두 가지 경우의 구조물들에서 쓰인 부재는 명(明) 시대의 다른 대전(大殿)들에서 쓰였던 부재보다도 그 크기가 작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와 같이 대규모의 구조물들이 작은 부재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사실들은 이 시기의 목결구 기술의 완성도 정도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당(唐) 시대를 통해 량(梁:beam), 주(柱:column;蜀主, 手:차수 솟을합장, 마루도리를 양측에서 받치고 있는 경사부재
), 두공(斗:공포) 공포 : 주두, 소로, 첨차 등의 부재를 짜 맞추어 처마의 하중을 받치게 한 것으로 장식의 역할도 겸함.
斗 : 위가 크고 아래가 작은 방형(方形)부재, <앙(昻) 부재의 위치와 모양> 4번 참조
: 구형(矩形)단면을 가지고 있으며, 양
의 대상국사(大相國寺:Daxiangguo Temple)등이 있는데, 이 경우는 현재에까지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들이다. 오대(五代) 말기와 송(宋) 나라 초기 사이에 살았던 유호(喩皓:Yu Hao)라는 이름의 건축 기술자는 당(唐) 제국의 황제 예종(睿宗:RuiZong) 시대였던 A.D710 - A.D712년에 지어진 대상국사(大相國寺:Daxiangguo Temple)의 구조를 연구하기 위해 개봉(開封Kaifeng)을 여행하게 되는데, 그는 후에 “나는 건물의 모든 구조 부분들을 보았고, 그 구조들에 대해 이해하였지만 벽 모서리의 권첨(卷 (처마) : 의 명칭을 총괄해보면 14종이나 존재하고 있는데, 곧, 우(宇), 첨(), 적(), 미(楣), 옥수(屋 垂), 여(), 영(), 연면(聯), 담(), 아(), 무(), 만(), 첨비(), 유()가 있다. 중국에 는 일찍부터 사아(四阿)라는 네 면이 경사진 지붕이 유행했는데, 참각(角)을 받쳐주는 각량(角 梁)을 양마(陽馬)라 하였고, 또 궐각(闕角), 고릉() 및 양말(梁抹)이라고도 하였다.
) 하나만이 나를 혼란스럽게 하였다.”라고 했던 말이(진사도의 <후산총독>제3권 : 陳師道 <後山叢讀>三卷 : vol.3 of \"Hou Shan Cong Tan\" by Chenshidao 참조)를 통해 문헌으로 전해지고 있듯이 이는 당(唐)의 목조 구조들이 간단한 구조형식을 갖고 있었다는 이전에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잘 말해주고 있는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오대(五代)의 황하유역(黃河:Huanghe 流域)에서 빈번했던 전쟁들은 구조 기술의 중심을 점차 장강유역(長江:Changjiang 流域)으로 이동시켰고 중국 서쪽 지방의 정치적 안정은 곧 기술적 발전에 매우 긍정적인 상황을 제공해주게 되었다. 동시에 이때의 건축 기술 발전의 중심이 황하유역(黃河:Huanghe 流域)에서 당(唐) 남쪽 지방의 천강(天江) 지역 일대로 이동하였고, 또한 오(吳) 나라를 지나 촉(蜀) 나라의 사천(四川), 남한(南漢)의 광동(廣東) 지역으로 옮겨가게 되는데, 이 시기부터 금천강(今天江) 일대의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탑(塔)과 건물들에 대한 기술이 항주(杭州:Hangzhou)의 서호(西湖:West Lake) 지방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그 시기에 잘 알려진 건축 기술자였던 유호(喩皓:Yu Hao) 역시 바로 이 시기의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시기 건축에 있어 거장과도 같았던 그는 특히 목탑(木塔) 구조기술 분야에 뛰어났고 집필가로서 목조기술 관련 서적을 편찬하기도 하였으며, 구조적 기술 분야에 대한 그의 업적은 후대에도 오랫동안 그를 기억하게끔 하였는데, 송(宋)대에 이르러서는 그를 주(周) 제국 이래로 그 어떤 시대 기술자보다도 뛰어난 건축가로 묘사하기도 하였다.(구양수의 <귀전록> : 歐陽修<歸田綠> 참조) 이러한 그에 대한 모든 수식어들은 물론 유호(喩皓:Yu Hao)에 대한 건축가로서의 찬사일 뿐만 아니라 오대(五代)의 건축적 기술력 수준에 대한 높은 평가를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단지 소수의 오대(五代) 목조 구조물들만이 현재까지 전해지고는 있지만, 이들 외에도 진(晉) 나라 후기, 천복5년(天福:Tianfu五年;A.D.940)에 지어진 평순대운사대전(平順大雲寺大殿:the principal hall of the Dayun Temple at Pingshun), 북한(北漢)의 천회8년(天會:Tianhui八年), 그리고 송(宋) 나라 건덕2년(乾德:Qiande異年)에 건립된 복주화림사대전(福州華林寺大殿:the principal hall of the Hualin Temple at Fuzhou) 등은 규모에 있어 그리 크지는 않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에게 송(宋)과 당(唐) 시대 사이의 목조 구조기술 발전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는 지침으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다음은 당(唐)과 오대(五代)의 목조 구조물들을 통한 기록들을 바탕으로 몇 가지 간략한 기술적 분석들을 설명하고 있다.
a) 건축척도와 부재치수(建築尺度知構件尺度) :
(Size of the construction and dimensions of the structural members)
인덕전(麟德殿:Linde Hall)과 대명궁(大明宮:Daming Palace)의 함원전(含元殿:Hanyuan Hall) 예를 다시 들자면, 이 두 구조물의 규모는 매우 거대하였고, 사실상 그 시대에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 구조물 규모의 한계에 이른 경우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규모가 큰 만큼 기둥의 간격(柱開間)은 단지 5m가 약간 넘는 정도의 치수였으며, 내부의 최대 전장(全長:span)은 4연(椽) 椽 : 1. 화가연(花架椽), 서까래; 지붕 경사에 따라 처마도리, 증도리 마룻대에 경사지게 걸쳐대어 지붕을 덮 거나 산자틀을 엮어 대는 경사부재
2. 첨연(椽), 서까래 처마; 처마도리와 중도리에 걸쳐 처마도리 바깥으로 길게 내민 서까래
3. 가연(架椽) 또는 보연(步椽) 량가(梁架)에서 도리와 도리의 수평거리
※량가(梁架) : 기둥이나 공포위에 얹어 내부 공간을 형성하는 부재들을 총칭하는 것으로 보, 도리,
대공 등을 기본 부재로 하여 구성된다.
이었다. 우리는 항상 지주(支柱)의 간격, 즉 칸(間:bay)을 통해 알게 되는 구조 부재들의 다양한 척도와 이러한 많은 부재들의 치수들을 계산해봄으로써 위의 두 가지 경우의 구조물들에서 쓰인 부재는 명(明) 시대의 다른 대전(大殿)들에서 쓰였던 부재보다도 그 크기가 작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와 같이 대규모의 구조물들이 작은 부재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사실들은 이 시기의 목결구 기술의 완성도 정도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당(唐) 시대를 통해 량(梁:beam), 주(柱:column;蜀主, 手:차수 솟을합장, 마루도리를 양측에서 받치고 있는 경사부재
), 두공(斗:공포) 공포 : 주두, 소로, 첨차 등의 부재를 짜 맞추어 처마의 하중을 받치게 한 것으로 장식의 역할도 겸함.
斗 : 위가 크고 아래가 작은 방형(方形)부재, <앙(昻) 부재의 위치와 모양> 4번 참조
: 구형(矩形)단면을 가지고 있으며,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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