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신라시대(신라)의 유학
Ⅱ. 신라시대(신라)의 건축
1. 도성과 궁궐
2. 불사건축
1) 흥륜사
2) 황룡사
3) 분황사탑
4) 의성 탑리 오층 석탑
3. 살림집
4. 분묘건축
1) 돌무지 덧널무덤
2) 구덩식 돌널무덤
3) 굴식 돌방무덤
5. 기타 석구조물
1) 첨성대
2) 경주 석빙고
Ⅲ. 신라시대(신라)의 불교
Ⅳ. 신라시대(신라)의 불상
1. 철불
2. 미륵불
3. 보살상
4. 금동불
5. 마애불
Ⅴ. 신라시대(신라)의 골품제
참고문헌
Ⅱ. 신라시대(신라)의 건축
1. 도성과 궁궐
2. 불사건축
1) 흥륜사
2) 황룡사
3) 분황사탑
4) 의성 탑리 오층 석탑
3. 살림집
4. 분묘건축
1) 돌무지 덧널무덤
2) 구덩식 돌널무덤
3) 굴식 돌방무덤
5. 기타 석구조물
1) 첨성대
2) 경주 석빙고
Ⅲ. 신라시대(신라)의 불교
Ⅳ. 신라시대(신라)의 불상
1. 철불
2. 미륵불
3. 보살상
4. 금동불
5. 마애불
Ⅴ. 신라시대(신라)의 골품제
참고문헌
본문내용
조형적으로 구분되지 않은 것 같다.
따라서 초기의 보살상 모습에는 육계, 백호와 광배 등이 표현되어 여래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보살사상이 발전됨에 따라 보살상은 여래상과 구분되고 조형적으로도 특징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보살상의 종류로는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 미륵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일광보살, 월광보살 등이 있다.
4. 금동불
금동불상이라는 용어는 동제 불상 표면에 도금한 불상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이 밖에 동으로 제작하되 도금하지 않거나 순금으로 제작한 것이 있는데 이러한 불상은 각각 동불·금불이라고 부른다. 동제의 불상 표면에 도금하는 일은 불상리 장엄해 보이는 효과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교리적인 배경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곧 부처가 갖춘 32길상(吉相) 가운데에 전신이 미묘한 금색으로 빛나고 있다는 금색상 또는 부처의 몸에서는 사방으로 1장(丈)의 빛을 발하고 부처는 그 빛 속에 있다는 장광상 등에 근거를 둔다. 황금색이라는 생각은 곧 부처가 존귀한 존재라는 뜻과 그러한 존재를 장엄하게 하려는 두 가지 뜻이 함께 담겨 있다고 하겠다. 그 뜻을 좀더 구체적으로 경전 통하여 살펴보면 금색은 염부단의 금색이라고 한다. 염부단의 금색이라고 함은 대설산과 향취산 중간에 있는 무열뇌지에 염부수의 숲이 있고 이 숲 옆을 흐르는 내를 염부단천이라고 하는데 이 내에서 나는 사금을 말한다고 하였다. 색은 적황색이고 자염의 기운을 띠고 있다고 한다.
5. 마애불
절벽의 바위면이나 거대한 바위면에 선각이나 돋을새김 기법 등으로 어떤 주제나 내용을 형상으로 새긴 것을 마애 조각이라 한다. 마애 조각에는 여러 가지 조각이 있다. 선사시대의 암각이나 역사시대의 수많은 종류의 바위 조각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에 역사시대의 마애 조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애불이다. 바위면에 불상 이른바 불교상을 새긴 것을 마애불이라 하는데 절벽의 바위면이나 거대한 바위면에 새겼기 때문에 이동이 불가능한 조각이어서 흔히 부동산(不動産) 조각이라 말하고 있다. 이러한 마애불은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의의를 지닌다.
첫째, 선사시대 암벽조각의 전통이 잘 계승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선사시대 조각으로는 울주 천전리와 대곡리에 남아 있는 암벽 조각이 대표적인 걸작품인데 여기에 표현된 조각 전통이 연면히 이어지다가 마애불까지 어느 정도는 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마애불의 연원은 선사시대까지 올라가며 그러한 문화 기반에서 마애불 조각이 수용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둘째, 마애불은 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만들 때부터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동할 수 있는 조각과는 달리 확실하게 당해 지역의 조각 작품임이 명백하다는 사실이다. 금동불 같은 이동 가능한 작품들은 어떤 지역에서 아무리 많이 출토되었다 해도 모두 그 지역에서 조성된 작품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데 비해서 마애불은 그 지역 작품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삼국시대의 금동불이 많이 출토되지만 이들 작품이 출토된 지역의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경남 의령에서 출토된 연가 7년명 금동 불입상은 출토 지역으로 보면 가야 불상이지만 광배 뒤에 새긴 명분에 의하여 고구려 작품임이 밝혀졌던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또한 뚝섬 출토 금동 불좌상이 중국제인지 고구려나 백제에서 만든 것인지 논란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백제지역이었던 서산의 서산 마애불이나 태안의 태안 마애불 등은 신라나 고구려 작품이 아니라 백제 작품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애불은 조각의 유파 연구나 국적 연구에 가장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유파나 국적을 밝히는 것은 제작 연대를 밝히는 것 못지않게 불상 연구의 기본이 되며, 이것이 밝혀져야 불상에 얽힌 여러 문제가 풀릴 수 있다. 불상은 한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사회를 반영하는 불상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셋째, 마애불은 입체적인 원각상보다는 조각적인 면에서 약간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서산 마애불이나 예산 사방불처럼 높은 돋을새김의 고부조일 때는 조각적인 면에서도 손상이 없을뿐더러 얕은 돋을새김이거나 선각일 경우 조각이 용이해서 환조각일 경우 표현하기 어려운 불경의 설법 내용이거나 불전도 같은 설명적인 내용까지도 조각이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불화에서나 할 수 있는 내용도 조각으로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평면적인 그림에서 맛볼 수 없는 묘미까지 묘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애불은 불교 미술 가운데 조각적이면서도 회화적인 특징이 있는 독특한 부분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런 면에서 마애불의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Ⅴ. 신라시대(신라)의 골품제
신라에는 골품제라고 해서 총 8계급이 있다. 성골과 진골 6두품, 5두품, 4두품, 3두품, 2두품, 1두품이 있었는데 알려져 있는 것은 성골과 진골, 6두품 정도이다.
(1) 성골은 왕족의 혈통으로서 가장 높은 계급이며(왕족임)
(2) 진골은 부계나 모계 중 한 쪽이 왕족일 경우, 또는 정복된 왕족이 여기에 해당된다. (예를들면 김유신 집안은 가야의 왕족이었는데 신라에 합병이 되고는 진골이 된다.)
(3) 6두품은 두품 중 가장 높은 계급인데 신라 17관 등 중 제 6관 등까지의 승진 제한이 있었다.
(4) 일반 평민은 1-3두품에 해당하는데 평민들의 기록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성골은 그야말로 다른 종족, 다른 신분의 피를 허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왕족의 족내혼으로 이루어지며 다른 피가 약간 섞이면 진골, 그 이외의 왕족이 아닌 신분의 사람들은 원천적으로 편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왕족이 아닌 경우로서 가장 출세할 수 있는 등급은 6두품이었다.
참고문헌
◇ 김복순(2002), 한국 고대 불교사 연구, 민족사
◇ 박성봉 저, 고경식 역(1996), 일연,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 삼국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한국역사연구회
◇ 송석상·이강승(2003), 우리의 문화유산, 학연문화사
◇ 신복룡(2001), 한국사 새로보기, 풀빛
◇ 최병헌(2000), 불교 사상과 신앙, 서울대학교출판부
◇ 한국고대사학회 편, 한국고대사연구(1997), 서경문화사
따라서 초기의 보살상 모습에는 육계, 백호와 광배 등이 표현되어 여래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보살사상이 발전됨에 따라 보살상은 여래상과 구분되고 조형적으로도 특징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보살상의 종류로는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 미륵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일광보살, 월광보살 등이 있다.
4. 금동불
금동불상이라는 용어는 동제 불상 표면에 도금한 불상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이 밖에 동으로 제작하되 도금하지 않거나 순금으로 제작한 것이 있는데 이러한 불상은 각각 동불·금불이라고 부른다. 동제의 불상 표면에 도금하는 일은 불상리 장엄해 보이는 효과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교리적인 배경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곧 부처가 갖춘 32길상(吉相) 가운데에 전신이 미묘한 금색으로 빛나고 있다는 금색상 또는 부처의 몸에서는 사방으로 1장(丈)의 빛을 발하고 부처는 그 빛 속에 있다는 장광상 등에 근거를 둔다. 황금색이라는 생각은 곧 부처가 존귀한 존재라는 뜻과 그러한 존재를 장엄하게 하려는 두 가지 뜻이 함께 담겨 있다고 하겠다. 그 뜻을 좀더 구체적으로 경전 통하여 살펴보면 금색은 염부단의 금색이라고 한다. 염부단의 금색이라고 함은 대설산과 향취산 중간에 있는 무열뇌지에 염부수의 숲이 있고 이 숲 옆을 흐르는 내를 염부단천이라고 하는데 이 내에서 나는 사금을 말한다고 하였다. 색은 적황색이고 자염의 기운을 띠고 있다고 한다.
5. 마애불
절벽의 바위면이나 거대한 바위면에 선각이나 돋을새김 기법 등으로 어떤 주제나 내용을 형상으로 새긴 것을 마애 조각이라 한다. 마애 조각에는 여러 가지 조각이 있다. 선사시대의 암각이나 역사시대의 수많은 종류의 바위 조각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에 역사시대의 마애 조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애불이다. 바위면에 불상 이른바 불교상을 새긴 것을 마애불이라 하는데 절벽의 바위면이나 거대한 바위면에 새겼기 때문에 이동이 불가능한 조각이어서 흔히 부동산(不動産) 조각이라 말하고 있다. 이러한 마애불은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의의를 지닌다.
첫째, 선사시대 암벽조각의 전통이 잘 계승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선사시대 조각으로는 울주 천전리와 대곡리에 남아 있는 암벽 조각이 대표적인 걸작품인데 여기에 표현된 조각 전통이 연면히 이어지다가 마애불까지 어느 정도는 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마애불의 연원은 선사시대까지 올라가며 그러한 문화 기반에서 마애불 조각이 수용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둘째, 마애불은 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만들 때부터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동할 수 있는 조각과는 달리 확실하게 당해 지역의 조각 작품임이 명백하다는 사실이다. 금동불 같은 이동 가능한 작품들은 어떤 지역에서 아무리 많이 출토되었다 해도 모두 그 지역에서 조성된 작품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데 비해서 마애불은 그 지역 작품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삼국시대의 금동불이 많이 출토되지만 이들 작품이 출토된 지역의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경남 의령에서 출토된 연가 7년명 금동 불입상은 출토 지역으로 보면 가야 불상이지만 광배 뒤에 새긴 명분에 의하여 고구려 작품임이 밝혀졌던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또한 뚝섬 출토 금동 불좌상이 중국제인지 고구려나 백제에서 만든 것인지 논란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백제지역이었던 서산의 서산 마애불이나 태안의 태안 마애불 등은 신라나 고구려 작품이 아니라 백제 작품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애불은 조각의 유파 연구나 국적 연구에 가장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유파나 국적을 밝히는 것은 제작 연대를 밝히는 것 못지않게 불상 연구의 기본이 되며, 이것이 밝혀져야 불상에 얽힌 여러 문제가 풀릴 수 있다. 불상은 한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사회를 반영하는 불상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셋째, 마애불은 입체적인 원각상보다는 조각적인 면에서 약간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서산 마애불이나 예산 사방불처럼 높은 돋을새김의 고부조일 때는 조각적인 면에서도 손상이 없을뿐더러 얕은 돋을새김이거나 선각일 경우 조각이 용이해서 환조각일 경우 표현하기 어려운 불경의 설법 내용이거나 불전도 같은 설명적인 내용까지도 조각이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불화에서나 할 수 있는 내용도 조각으로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평면적인 그림에서 맛볼 수 없는 묘미까지 묘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애불은 불교 미술 가운데 조각적이면서도 회화적인 특징이 있는 독특한 부분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런 면에서 마애불의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Ⅴ. 신라시대(신라)의 골품제
신라에는 골품제라고 해서 총 8계급이 있다. 성골과 진골 6두품, 5두품, 4두품, 3두품, 2두품, 1두품이 있었는데 알려져 있는 것은 성골과 진골, 6두품 정도이다.
(1) 성골은 왕족의 혈통으로서 가장 높은 계급이며(왕족임)
(2) 진골은 부계나 모계 중 한 쪽이 왕족일 경우, 또는 정복된 왕족이 여기에 해당된다. (예를들면 김유신 집안은 가야의 왕족이었는데 신라에 합병이 되고는 진골이 된다.)
(3) 6두품은 두품 중 가장 높은 계급인데 신라 17관 등 중 제 6관 등까지의 승진 제한이 있었다.
(4) 일반 평민은 1-3두품에 해당하는데 평민들의 기록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성골은 그야말로 다른 종족, 다른 신분의 피를 허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왕족의 족내혼으로 이루어지며 다른 피가 약간 섞이면 진골, 그 이외의 왕족이 아닌 신분의 사람들은 원천적으로 편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왕족이 아닌 경우로서 가장 출세할 수 있는 등급은 6두품이었다.
참고문헌
◇ 김복순(2002), 한국 고대 불교사 연구, 민족사
◇ 박성봉 저, 고경식 역(1996), 일연,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 삼국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한국역사연구회
◇ 송석상·이강승(2003), 우리의 문화유산, 학연문화사
◇ 신복룡(2001), 한국사 새로보기, 풀빛
◇ 최병헌(2000), 불교 사상과 신앙, 서울대학교출판부
◇ 한국고대사학회 편, 한국고대사연구(1997), 서경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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