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영시읽기의 기초> 정규 강의 제4강 (Poems on Death)에서 다룬 3개의 작품 (존 던, 토마스 그레이,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 각 1편씩)을 꼼꼼히 읽고,
(1) ‘죽음’이란 주제를 위 세 편의 작품이 각각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세 작품을 서로 비교 대조하세요. 이 때 각 작품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구절을 반드시 포함해서 서술하세요. (2~3페이지 분량)
① John Donne, “Death Be Not Proud"
② Thomas Gray, from "Elegy Written in a Country Churchyard"
③ Alfred Tennyson, “Crossing the Bar"
(2) 세 편의 시 분석을 토대로 ‘죽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서술하세요. 이 때 자신의 생각을 대표할 수 있는 키워드 세 개를 정해서 글 속에 포함하세요. 과제 마지막 줄에 키워드 3개를 반드시 명시하세요. 지나치게 일반화된 서술을 지양하고 자신만의 생각이 잘 반영된 것, 그리고 작품의 특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글일수록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1~2페이지 분량)
(3) 참고문헌
(1) ‘죽음’이란 주제를 위 세 편의 작품이 각각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세 작품을 서로 비교 대조하세요. 이 때 각 작품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구절을 반드시 포함해서 서술하세요. (2~3페이지 분량)
① John Donne, “Death Be Not Proud"
② Thomas Gray, from "Elegy Written in a Country Churchyard"
③ Alfred Tennyson, “Crossing the Bar"
(2) 세 편의 시 분석을 토대로 ‘죽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서술하세요. 이 때 자신의 생각을 대표할 수 있는 키워드 세 개를 정해서 글 속에 포함하세요. 과제 마지막 줄에 키워드 3개를 반드시 명시하세요. 지나치게 일반화된 서술을 지양하고 자신만의 생각이 잘 반영된 것, 그리고 작품의 특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글일수록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1~2페이지 분량)
(3) 참고문헌
본문내용
있음을 지적하며 죽음과의 싸움에서 자신의 승리를 주장한다. 반면 그레이와 테니슨은 죽음을 자연스런 현상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평온한 죽음을 기대한다. 이를 위해 시적 화자들은 종교적 절대자에 귀의하는데, 존 던의 시에서도 죽음과의 싸움에서의 승리는 하느님의 존재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세 작품 모두 종교를 통한 죽음의 극복과 수용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처럼 무신론자는 어떻게 죽음을 다루고 대하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나는 종교보다는 과학이 더 사실에 가까운 지식을 제공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 작품과는 달리 신에의 의지로 죽음을 극복할 수 없다. 특히 죽음을 의인화하여 죽음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리는 존 던의 입장은 불합리하여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의 표현대로 죽음 때문에 우리가 죽는 것이 아니라, 불의의 사고, 질병, 못된 권력자나 자살로 죽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속되게 말하면 정신승리 같은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생전 영국 언론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천국은 없다. 사후세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만들어 낸 동화일 뿐이다”라고 했다.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 뇌가 깜빡거림을 멈추면 그 이후엔 아무 것도 없다”며 “인간의 뇌는 부속품이 고장 나면 작동을 멈추는 컴퓨터다. 고장 난 컴퓨터를 위해 마련 된 천국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존 던의 시에서처럼 죽음이 두려워 피하는 대신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두려움이나 공포는 그 대상을 피할 때 극대화되지만 정면돌파하게 되면 공포의 정도는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물론 죽음은 인간이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지금까지 호모 사피엔스라고 불리는 인간 종이 1000억 명 이상 존재했다고 하는데, 그들 중에서 죽음과 싸워 이긴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심지어 부활했다고 하지만 예수 또한 죽음을 피하지는 못했다. 죽음을 정면돌파한 결과는 죽음은 이길 수 없는 대상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과 삶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살지 못한 사람이 죽음을 먼저 생각한다. 죽음에 앞서, 오늘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순간순간 후회없이 살아야 한다. 특히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면, 후회의 가능성은 훨씬 낮아질 것이다.
후회없이 살았다면 자신의 삶에 만족했다는 의미다. 자기 삶에 만족했으니 죽음 또한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살지 않고 저렇게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에 느끼는 뒤늦은 후회를 간절히 피하고 싶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삶이기에 그 후회는 더욱 죽음을 두렵게 한다. 잘 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잘 죽는 것인데, 후회 속에서의 죽음은 결코 좋은 죽음은 아닌 것 같다.
이처럼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물론 여기서 잘 산다는 것이 물질적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 일상에서의 삶을 풍요롭게 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더 본질적인 의미라고 생각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인생에서 크고 작은 고민과 갈등은 있을 텐데,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해야할 일을 최대한 많이 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최대한 적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죽음을 유예시키는 데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좋은 죽음은 없다. 후회와 미련이 없는 죽음, 그리고 죽음의 과정에서의 고통이 최소화되는 죽음이, 가장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죽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스피스 활동을 비롯한 수많은 의료현장에서 막대한 공헌을 세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많은 환자들의 심리적 경과를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모델을 만들었다. 먼저 1단계는 ‘부인‘이다. 즉, “내가 이런 병에 걸릴 리가 없어. 오진이야”라고 부정한다. 2단계는 ’분노‘다. “왜 하필 내가 이런 병에 걸렸는가\'하며 분노를 드러낸다. 3단계는 ’거래‘다. ”왜 이런 병에 걸린 것인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논리적으로 분석하며 병을 치료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다. 4단계는 ’억울‘이다.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억울해 하며 포기하고 만다. 마지막 5단계는 ’수용‘이다. 자신의 병이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이처럼 대개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수동적이다. 끝까지 발버둥치지만 나약한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 상황을 마지막까지 거부하다 결국 받아들이고 죽음을 받게 된다. 4단계까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지만, 죽음을 수용하는 5단계에서는 비로소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시간들을 허투루 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당당하게 맞서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선택한 삶을 오롯이 살다가 간 용감한 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어느 순간 갑자기 하늘의 해가 기쁨을 만끽할 이유가 되고, 꽃들이 살아 숨 쉬는 듯하고, 산들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면 거의 종교체험이라도 한 듯 희열을 느낀다. 삶의 끝에서 이런 경험을 하고 떠날 수 있었으니, 이런 죽음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죽음이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종교적 절대자에 의지 여부와 상관 없이, 인간이 죽음에 직면하여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행동은 그레이와 테니슨의 시에서의 시적 화자에서처럼. 죽음을 사실로서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리하면 내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은 먼저 살아 숨쉬는 동안 후회없이 열심히 사는 것이고, 때가 되어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죽음에 맞서 회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고, 죽음이 내가 이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알게 될 때, 죽음을 담담하게 사실로서 수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대표할 수 있는 키워드 세 개 : 후회없이, 정면돌파, 수용
(3) 참고문헌
영시읽기의기초, 김문수, 이두진, 이철, 출판문화원, 2017.
https://m.blog.naver.com/honeyp44/220130653181
과제 스트레스 싹~ 학점 쑥!
그렇다면 나처럼 무신론자는 어떻게 죽음을 다루고 대하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나는 종교보다는 과학이 더 사실에 가까운 지식을 제공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 작품과는 달리 신에의 의지로 죽음을 극복할 수 없다. 특히 죽음을 의인화하여 죽음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리는 존 던의 입장은 불합리하여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의 표현대로 죽음 때문에 우리가 죽는 것이 아니라, 불의의 사고, 질병, 못된 권력자나 자살로 죽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속되게 말하면 정신승리 같은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생전 영국 언론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천국은 없다. 사후세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만들어 낸 동화일 뿐이다”라고 했다.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 뇌가 깜빡거림을 멈추면 그 이후엔 아무 것도 없다”며 “인간의 뇌는 부속품이 고장 나면 작동을 멈추는 컴퓨터다. 고장 난 컴퓨터를 위해 마련 된 천국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존 던의 시에서처럼 죽음이 두려워 피하는 대신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두려움이나 공포는 그 대상을 피할 때 극대화되지만 정면돌파하게 되면 공포의 정도는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물론 죽음은 인간이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지금까지 호모 사피엔스라고 불리는 인간 종이 1000억 명 이상 존재했다고 하는데, 그들 중에서 죽음과 싸워 이긴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심지어 부활했다고 하지만 예수 또한 죽음을 피하지는 못했다. 죽음을 정면돌파한 결과는 죽음은 이길 수 없는 대상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과 삶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살지 못한 사람이 죽음을 먼저 생각한다. 죽음에 앞서, 오늘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순간순간 후회없이 살아야 한다. 특히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면, 후회의 가능성은 훨씬 낮아질 것이다.
후회없이 살았다면 자신의 삶에 만족했다는 의미다. 자기 삶에 만족했으니 죽음 또한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살지 않고 저렇게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에 느끼는 뒤늦은 후회를 간절히 피하고 싶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삶이기에 그 후회는 더욱 죽음을 두렵게 한다. 잘 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잘 죽는 것인데, 후회 속에서의 죽음은 결코 좋은 죽음은 아닌 것 같다.
이처럼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물론 여기서 잘 산다는 것이 물질적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 일상에서의 삶을 풍요롭게 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더 본질적인 의미라고 생각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인생에서 크고 작은 고민과 갈등은 있을 텐데,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해야할 일을 최대한 많이 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최대한 적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죽음을 유예시키는 데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좋은 죽음은 없다. 후회와 미련이 없는 죽음, 그리고 죽음의 과정에서의 고통이 최소화되는 죽음이, 가장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죽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스피스 활동을 비롯한 수많은 의료현장에서 막대한 공헌을 세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많은 환자들의 심리적 경과를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모델을 만들었다. 먼저 1단계는 ‘부인‘이다. 즉, “내가 이런 병에 걸릴 리가 없어. 오진이야”라고 부정한다. 2단계는 ’분노‘다. “왜 하필 내가 이런 병에 걸렸는가\'하며 분노를 드러낸다. 3단계는 ’거래‘다. ”왜 이런 병에 걸린 것인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논리적으로 분석하며 병을 치료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다. 4단계는 ’억울‘이다.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억울해 하며 포기하고 만다. 마지막 5단계는 ’수용‘이다. 자신의 병이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이처럼 대개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수동적이다. 끝까지 발버둥치지만 나약한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 상황을 마지막까지 거부하다 결국 받아들이고 죽음을 받게 된다. 4단계까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지만, 죽음을 수용하는 5단계에서는 비로소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시간들을 허투루 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당당하게 맞서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선택한 삶을 오롯이 살다가 간 용감한 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어느 순간 갑자기 하늘의 해가 기쁨을 만끽할 이유가 되고, 꽃들이 살아 숨 쉬는 듯하고, 산들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면 거의 종교체험이라도 한 듯 희열을 느낀다. 삶의 끝에서 이런 경험을 하고 떠날 수 있었으니, 이런 죽음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죽음이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종교적 절대자에 의지 여부와 상관 없이, 인간이 죽음에 직면하여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행동은 그레이와 테니슨의 시에서의 시적 화자에서처럼. 죽음을 사실로서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리하면 내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은 먼저 살아 숨쉬는 동안 후회없이 열심히 사는 것이고, 때가 되어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죽음에 맞서 회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고, 죽음이 내가 이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알게 될 때, 죽음을 담담하게 사실로서 수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대표할 수 있는 키워드 세 개 : 후회없이, 정면돌파, 수용
(3) 참고문헌
영시읽기의기초, 김문수, 이두진, 이철, 출판문화원, 2017.
https://m.blog.naver.com/honeyp44/220130653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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