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目次
Ⅰ. 들어가며
Ⅱ. 시대적 배경
1. 개항기(1876~1910)
2. 사바찐이 조선에 오게 된 배경
Ⅲ. 인천에서의 활동
Ⅳ. 서울에서의 활동
1. 관문각
2. 러시아 공사관
3. 덕수궁 내의 양관
4. 명동성당
5. 민간양옥
Ⅴ. 결론
Ⅰ. 들어가며
Ⅱ. 시대적 배경
1. 개항기(1876~1910)
2. 사바찐이 조선에 오게 된 배경
Ⅲ. 인천에서의 활동
Ⅳ. 서울에서의 활동
1. 관문각
2. 러시아 공사관
3. 덕수궁 내의 양관
4. 명동성당
5. 민간양옥
Ⅴ. 결론
본문내용
開港期 朝鮮에 세워진 러시아 건축물
-開港期 宮廷建築家 사바찐을 통해서-
目次
Ⅰ. 들어가며
Ⅱ. 시대적 배경
1. 개항기(1876~1910)
2. 사바찐이 조선에 오게 된 배경
Ⅲ. 인천에서의 활동
Ⅳ. 서울에서의 활동
1. 관문각
2. 러시아 공사관
3. 덕수궁 내의 양관
4. 명동성당
5. 민간양옥
Ⅴ. 결론
수 업 명 :
교 수 명 :
학 과 :
학 번 :
학 년 :
이 름 :
Ⅰ.들어가며
정동과 덕수궁 일대는 근대사의 풍경이 많이 남아 있는 지역으로 조선의 근대사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정동일대는 개항 초 양인촌(洋人村)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외국인 공관원, 선교사, 장사꾼들이 거주했다. 외국인들은 처음에 우리 한옥을 자신들의 용도로 맞춰 쓰기도하고 땅을 매입하여 그들 나라의 건축물을 지어나갔다. 그래서 덕수궁 주변으로 외국 공관, 학교, 교회, 병원, 호텔 클럽들이 세워졌다. 서울에서 최초로 활동한 서양인 건축가로서 의미가 큰 사바찐은 이런 개화기에 활동했던 러시아출신의 건축가이다. 그는 개항기 조선에 서양식 건축물, 기념물, 공원 등을 설계하고 건축하였는데 우리나라 서양건축물의 태동기에 지대한 공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에 관한 자료는 거의 없고 조각난 단편들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게 된 이유는 1800년대 말 한 때의 정치적 상황에도 기인하지만 러일전쟁의 패배, 일제식민시대 그리고 6.25동란 이후의 동서냉전의 시대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아 다소 생소 할 수 있는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조선에 건축된 서양식 건물들을 살펴보고 더불어 당시 러시아와 우리나라와의 관계도 살펴보고자 한다.
Ⅱ. 시대적 배경
1. 개항기(1876~1910)
한국건축사에서 ‘개화기’라 하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1910년 한일합방까지를 말한다. 김정신, 「개화기건축」, 2003한국건축역사학회 제1권 제5장, 발언, 2003. p.399.
이 시기는 분명 중세건축과는 다른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는 시기다.
특히 한국건축사에 있어서 ‘개화기 건축=서양건축의 유입’이라는 도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한국의 근대건축은 서양건축의 유입으로부터 비롯한다고 보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조선 정부는 쇄국정책을 강행했던 대원군이 실각하자 일본의 무력시위 하에 이루어진 1876년 2월 강화도조약에 따라 개항하였고 이어서 1882에 미국과 조·미 수호조약을 체결한 이후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러시아와도 조약을 체결했다. 1894년 동학군의 봉기로 조선에 진출한 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 독점적 세력을 구축하게 되었고, 이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면적인 제도 개편을 단행하였다. 일본에 의한 내정개혁이 이루어지는 동안 조선정부는 친러성향을 띠었으나,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와 맺었던 일체의 조약을 파기하는 한편, 본격적으로 정치·외교·군사상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1905년의 을사조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은 완전히 박탈당하고, 일본이 파견하는 통감(統監)에의해 지배당하게 되어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2. 사바찐이 조선에 오게 된 배경
사바찐 그의 이름은 이바나시이 이바노비치 세레진 사바찐(Afanasij Ivanobich Scredin Sabatin, 1860년 경?~?)이다. 그는 1860년경 스위스계로서 러시아에서 출생했다. 영어식은 사바틴 혹은 사파진이라 부르는데, 러시아식은 사바찐이다.
의 직접적인 내한 동기는
-開港期 宮廷建築家 사바찐을 통해서-
目次
Ⅰ. 들어가며
Ⅱ. 시대적 배경
1. 개항기(1876~1910)
2. 사바찐이 조선에 오게 된 배경
Ⅲ. 인천에서의 활동
Ⅳ. 서울에서의 활동
1. 관문각
2. 러시아 공사관
3. 덕수궁 내의 양관
4. 명동성당
5. 민간양옥
Ⅴ. 결론
수 업 명 :
교 수 명 :
학 과 :
학 번 :
학 년 :
이 름 :
Ⅰ.들어가며
정동과 덕수궁 일대는 근대사의 풍경이 많이 남아 있는 지역으로 조선의 근대사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정동일대는 개항 초 양인촌(洋人村)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외국인 공관원, 선교사, 장사꾼들이 거주했다. 외국인들은 처음에 우리 한옥을 자신들의 용도로 맞춰 쓰기도하고 땅을 매입하여 그들 나라의 건축물을 지어나갔다. 그래서 덕수궁 주변으로 외국 공관, 학교, 교회, 병원, 호텔 클럽들이 세워졌다. 서울에서 최초로 활동한 서양인 건축가로서 의미가 큰 사바찐은 이런 개화기에 활동했던 러시아출신의 건축가이다. 그는 개항기 조선에 서양식 건축물, 기념물, 공원 등을 설계하고 건축하였는데 우리나라 서양건축물의 태동기에 지대한 공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에 관한 자료는 거의 없고 조각난 단편들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게 된 이유는 1800년대 말 한 때의 정치적 상황에도 기인하지만 러일전쟁의 패배, 일제식민시대 그리고 6.25동란 이후의 동서냉전의 시대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아 다소 생소 할 수 있는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조선에 건축된 서양식 건물들을 살펴보고 더불어 당시 러시아와 우리나라와의 관계도 살펴보고자 한다.
Ⅱ. 시대적 배경
1. 개항기(1876~1910)
한국건축사에서 ‘개화기’라 하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1910년 한일합방까지를 말한다. 김정신, 「개화기건축」, 2003한국건축역사학회 제1권 제5장, 발언, 2003. p.399.
이 시기는 분명 중세건축과는 다른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는 시기다.
특히 한국건축사에 있어서 ‘개화기 건축=서양건축의 유입’이라는 도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한국의 근대건축은 서양건축의 유입으로부터 비롯한다고 보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조선 정부는 쇄국정책을 강행했던 대원군이 실각하자 일본의 무력시위 하에 이루어진 1876년 2월 강화도조약에 따라 개항하였고 이어서 1882에 미국과 조·미 수호조약을 체결한 이후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러시아와도 조약을 체결했다. 1894년 동학군의 봉기로 조선에 진출한 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 독점적 세력을 구축하게 되었고, 이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면적인 제도 개편을 단행하였다. 일본에 의한 내정개혁이 이루어지는 동안 조선정부는 친러성향을 띠었으나,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와 맺었던 일체의 조약을 파기하는 한편, 본격적으로 정치·외교·군사상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1905년의 을사조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은 완전히 박탈당하고, 일본이 파견하는 통감(統監)에의해 지배당하게 되어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2. 사바찐이 조선에 오게 된 배경
사바찐 그의 이름은 이바나시이 이바노비치 세레진 사바찐(Afanasij Ivanobich Scredin Sabatin, 1860년 경?~?)이다. 그는 1860년경 스위스계로서 러시아에서 출생했다. 영어식은 사바틴 혹은 사파진이라 부르는데, 러시아식은 사바찐이다.
의 직접적인 내한 동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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