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애니메이션의 정의와 종류
2. 애니메이션의 역사
3. 일본 애니메이션의 탄생
4. 재패메이션
5. 일본 애니메이셔느이 현황과 과제
6. 참고 문헌
2. 애니메이션의 역사
3. 일본 애니메이션의 탄생
4. 재패메이션
5. 일본 애니메이셔느이 현황과 과제
6. 참고 문헌
본문내용
발행하는 화가였으나 ‘개구쟁이 신화첩’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해외 애니메이션에 매료되어 닛카쓰에 애니메이션 연구를 하고 있었다. 무성영화의 자막이나 타이틀을 제작하는 한편 해외 애니메이션 필름을 분석해서 기법을 탐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중에 닛카쓰는 무코지마 촬영소 내에 만화부를 만들어 기타야마에게 아니메 제작을 의뢰하였다. 1916년에 기타야마는 콤마 촬영방법을 해명해서 종이에 배경과 캐릭터를 함께 그리는 방법으로 제작을 시작하였다.
완성된 작품은 ‘원숭이와 게의 전투’로 1917년 5월에 동경 아사쿠사 오페라좌에서 고우치 준이치의 작품보다 1개월 먼저 공개했다. 기타야마는 그 후에도 의욕적으로 착수하여 ‘꽃 피우는 할아버지’, ‘분부쿠 차솥’, ‘가치카치야마’,‘모모타르’ 등 많은 작품을 완성했다.
4. 재패메이션
4-1. 우주전함 야마토
1974년 10월에 요미우리 텔레비전 방송에서 방영이 시작된 ‘우주전함 야마토’는 일본 아니메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어린이 중심의 아니메에서 중고생과 대학생의 젊은이를 매혹시키는 아니메 장르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1970년에 후지텔레비젼에서 방영되었던 ‘내일의 죠’도 청년층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우주전함 야마토’는 아니메의 암흑시대에 서광을 비춘 작품으로서 기록된다.
이 작품이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신인류라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다. ‘내일의 죠’를 짖한 주요 팬은 1945-50년에 태어난 단괴의 세대, 즉 전공투 세대이지만 ‘우주전함 야마토’를 지지한 팬은 1955년 이후에 태어난 신인류들이다. 이 세대의 선두 집단이 야마토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4-2. 은하 철도 999
1979년 8월 아니메 영화를 공개하는 첫 날에 또 다시 철야 행렬이 생겼다. 마쓰모토 레이지가 기획, 원작 구성을 맡고 린타로가 감독한 ‘은하철도 999’였다. 이치카와 곤 감수, 이시모리 시로 각본, 고마쓰하라 가쓰오 작화감독, 도에이 동화의 사장이였던 이마다 도모노리가 제작, 총지휘였다. 1977년 ‘소년킹’에 연재되어 1978년 9월에 후지텔레비젼 방송에서 방영된 작품의 극장판이다.
‘은하철도 999’의 히트로 마쓰모토 레이지의 세계가 크게 주목받았다. 특히 메텔과 같은 요염한 여성 캐릭터는 남성 팬을 매료시켰다. 호시노 데쓰로와 메텔의 묘한 관계는 신선한 설정으로 남성우월 개념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관계를 제시하였다.
‘은하철도 999’는 주인공 데쓰로가 이제까지의 주인공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종래의 이러한 작품에서는 멋있고 선망의 대상이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호시노 데쓰로는 머더콘 같고, 전투 능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한심한 남자라고 할 수 있다.
4-3. 기동전사 건담
극장판 ‘은하철도 999’가 공개된 1979년에 ‘기동전사 건담’이 나고야 텔레비전을 중심 방송국으로 하는 텔레비전 아사히 방송에서 방영되었다. 1972년의 마징가 Z로 시작되는 대형 로봇 붐을 타고 인기를 끌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그러나 시청률은 예상만큼 오르지는 않았다. 스폰서가 발매한 로봇 장난감도 팔리지 않아 도중에 중단되었다. 게다가 로봇 붐은 일단락되어서 매너리즘에 빠졌다. 그러나 좋은 작품은 결국 살아남는다. ‘기동전사 건담’은 각지에서 재방송되어 ‘우주전함 야마토’와 마찬가지로 팬의 지지가 늘기 시작한다. 1980년 1월에 방영이 끝난 후에 스폰서가 아니었던 반다이 모빌슈츠를 재현한 플라모델을 발매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4-4. 미야자키 하야오
1971년에 다카하타 이사오와 오타베 요이치와 함께 도에이 동화를 퇴사한 마야자키 하야오는 A프로, 즈이요영상 등에서 많은 명작을 만들었다. ‘루팡 3세’의 텔레비전 방영이 시작되어 두중부터 제작에 참여했다. 이 무렵의 작품에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미래소년 코난’이 있다.
1979년 12월, 40세를 바라보던 미야자키는 처음으로 감독한 극장작품 ‘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완성한다.
그러나 개봉 당시에는 인기가 없어서 흥행을 성공하지 못했다. 단지 흥행성적보다는 작품의 질을 평가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1983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영화화 제작을 시작하여 다음해 1984년 3월에 완성시켜서 개봉하였다. 이것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 각본, 그림 콘티를 전부 직접 한 작품이다. 자연과 인간을 테마로 한 복잡한 내용이었으나, 흥행은 대성공으로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에서 오후지 노부로상도 수상했다.
4-5. 오시이 마모루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공개된 1984년에는 오시이 마모루도 기념할 만한 작품을 완성시켰다. ‘우르세이 야츠라 2, 뷰티풀 드리머’이다. 그러나 이 작품도 미야지키의 ‘루팡 3세’처럼 큰 히트는 치지 못하고 그 후의 경과 또한 비슷했다. 어린이들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작품의 수준을 인정하고 오시이 마모루의 팬이 된다.
오시이 마모루는 일본에서 최초로 OVA(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 작품의 감독을 했다. 달개척민과 지구인들과의 갈등을 묘사한 작품으로, 원작자는 ‘과학 닌자대 갓차맨’에서 총감독을 맡았던 도리우미 나가유키이다.
4-6. 신세기 에반게리온
‘신세기 에반게이론’의 주된 시처자 세대는 1980년대에 태어난 젊은이들로, 1970년대에 태어난 단괴 주니어들보다 조금 뒤이다. 이제는 세대명도 없고 집단으로 말하기도 어려운 세대가 되었다. 제작자인 가이낙스의 안노 히데아키는 1960년 출생이고, 야마가 히로유키는 1962년 출생으로 ‘우주전함 야마토’를 보고 자람 세대이며 일반적으로 오타쿠 세대라고 불린다. 이 세대는 평균화된 일본사회가 붕괴되기 시작한 1980년에 사회에서 등장하고 있다. 이 때는 평균화된 사회에서 개성적인 사회로의 전환기로 개성이 시대의 코드로 떠오르면서 자아탬색, 자기발견이 주로 논의되는 시기였다. ‘신세기 에반게이온’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잘 반영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카리 신지뿐만 아니라 많은 등장인물이 자신의 역할이나 삶에 불안을 느끼고 있으며 아울러 극히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람의 내면을 파헤쳐가는 것이 주요 테마이다. 그 때문에 작품은 어쩔 수 없이 난해해
완성된 작품은 ‘원숭이와 게의 전투’로 1917년 5월에 동경 아사쿠사 오페라좌에서 고우치 준이치의 작품보다 1개월 먼저 공개했다. 기타야마는 그 후에도 의욕적으로 착수하여 ‘꽃 피우는 할아버지’, ‘분부쿠 차솥’, ‘가치카치야마’,‘모모타르’ 등 많은 작품을 완성했다.
4. 재패메이션
4-1. 우주전함 야마토
1974년 10월에 요미우리 텔레비전 방송에서 방영이 시작된 ‘우주전함 야마토’는 일본 아니메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어린이 중심의 아니메에서 중고생과 대학생의 젊은이를 매혹시키는 아니메 장르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1970년에 후지텔레비젼에서 방영되었던 ‘내일의 죠’도 청년층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우주전함 야마토’는 아니메의 암흑시대에 서광을 비춘 작품으로서 기록된다.
이 작품이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신인류라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다. ‘내일의 죠’를 짖한 주요 팬은 1945-50년에 태어난 단괴의 세대, 즉 전공투 세대이지만 ‘우주전함 야마토’를 지지한 팬은 1955년 이후에 태어난 신인류들이다. 이 세대의 선두 집단이 야마토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4-2. 은하 철도 999
1979년 8월 아니메 영화를 공개하는 첫 날에 또 다시 철야 행렬이 생겼다. 마쓰모토 레이지가 기획, 원작 구성을 맡고 린타로가 감독한 ‘은하철도 999’였다. 이치카와 곤 감수, 이시모리 시로 각본, 고마쓰하라 가쓰오 작화감독, 도에이 동화의 사장이였던 이마다 도모노리가 제작, 총지휘였다. 1977년 ‘소년킹’에 연재되어 1978년 9월에 후지텔레비젼 방송에서 방영된 작품의 극장판이다.
‘은하철도 999’의 히트로 마쓰모토 레이지의 세계가 크게 주목받았다. 특히 메텔과 같은 요염한 여성 캐릭터는 남성 팬을 매료시켰다. 호시노 데쓰로와 메텔의 묘한 관계는 신선한 설정으로 남성우월 개념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관계를 제시하였다.
‘은하철도 999’는 주인공 데쓰로가 이제까지의 주인공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종래의 이러한 작품에서는 멋있고 선망의 대상이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호시노 데쓰로는 머더콘 같고, 전투 능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한심한 남자라고 할 수 있다.
4-3. 기동전사 건담
극장판 ‘은하철도 999’가 공개된 1979년에 ‘기동전사 건담’이 나고야 텔레비전을 중심 방송국으로 하는 텔레비전 아사히 방송에서 방영되었다. 1972년의 마징가 Z로 시작되는 대형 로봇 붐을 타고 인기를 끌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그러나 시청률은 예상만큼 오르지는 않았다. 스폰서가 발매한 로봇 장난감도 팔리지 않아 도중에 중단되었다. 게다가 로봇 붐은 일단락되어서 매너리즘에 빠졌다. 그러나 좋은 작품은 결국 살아남는다. ‘기동전사 건담’은 각지에서 재방송되어 ‘우주전함 야마토’와 마찬가지로 팬의 지지가 늘기 시작한다. 1980년 1월에 방영이 끝난 후에 스폰서가 아니었던 반다이 모빌슈츠를 재현한 플라모델을 발매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4-4. 미야자키 하야오
1971년에 다카하타 이사오와 오타베 요이치와 함께 도에이 동화를 퇴사한 마야자키 하야오는 A프로, 즈이요영상 등에서 많은 명작을 만들었다. ‘루팡 3세’의 텔레비전 방영이 시작되어 두중부터 제작에 참여했다. 이 무렵의 작품에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미래소년 코난’이 있다.
1979년 12월, 40세를 바라보던 미야자키는 처음으로 감독한 극장작품 ‘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완성한다.
그러나 개봉 당시에는 인기가 없어서 흥행을 성공하지 못했다. 단지 흥행성적보다는 작품의 질을 평가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1983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영화화 제작을 시작하여 다음해 1984년 3월에 완성시켜서 개봉하였다. 이것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 각본, 그림 콘티를 전부 직접 한 작품이다. 자연과 인간을 테마로 한 복잡한 내용이었으나, 흥행은 대성공으로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에서 오후지 노부로상도 수상했다.
4-5. 오시이 마모루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공개된 1984년에는 오시이 마모루도 기념할 만한 작품을 완성시켰다. ‘우르세이 야츠라 2, 뷰티풀 드리머’이다. 그러나 이 작품도 미야지키의 ‘루팡 3세’처럼 큰 히트는 치지 못하고 그 후의 경과 또한 비슷했다. 어린이들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작품의 수준을 인정하고 오시이 마모루의 팬이 된다.
오시이 마모루는 일본에서 최초로 OVA(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 작품의 감독을 했다. 달개척민과 지구인들과의 갈등을 묘사한 작품으로, 원작자는 ‘과학 닌자대 갓차맨’에서 총감독을 맡았던 도리우미 나가유키이다.
4-6. 신세기 에반게리온
‘신세기 에반게이론’의 주된 시처자 세대는 1980년대에 태어난 젊은이들로, 1970년대에 태어난 단괴 주니어들보다 조금 뒤이다. 이제는 세대명도 없고 집단으로 말하기도 어려운 세대가 되었다. 제작자인 가이낙스의 안노 히데아키는 1960년 출생이고, 야마가 히로유키는 1962년 출생으로 ‘우주전함 야마토’를 보고 자람 세대이며 일반적으로 오타쿠 세대라고 불린다. 이 세대는 평균화된 일본사회가 붕괴되기 시작한 1980년에 사회에서 등장하고 있다. 이 때는 평균화된 사회에서 개성적인 사회로의 전환기로 개성이 시대의 코드로 떠오르면서 자아탬색, 자기발견이 주로 논의되는 시기였다. ‘신세기 에반게이온’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잘 반영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카리 신지뿐만 아니라 많은 등장인물이 자신의 역할이나 삶에 불안을 느끼고 있으며 아울러 극히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람의 내면을 파헤쳐가는 것이 주요 테마이다. 그 때문에 작품은 어쩔 수 없이 난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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