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사 레포트-한국의 건축물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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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과학기술사 레포트-한국의 건축물 조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남산골 한옥촌
-1. 도편수 이승업 가옥
-2.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

2. 낙안읍성 민속마을

3. 송광사

4. 암사동 선사유적지

5. 경복궁 근정전

6. 명동성당

7. 공주산성

8. 강릉선교장

본문내용

한 방에서 거처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 건물은 동별당 건립 때에 헐려진 안문채와 함께 헐렸다고 전한다. 동별당 건립이전엔 안채가 ㅁ자형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을 이루는 집. 경상도 지방의 뜰집과 중부지방의 보편적인 가옥구조이다.
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2) 열화당
순조 15년 (1815)에 오은거사가 건립한 건물로서, 선교장 여러 건물 가운데 대표격인 건물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세상과 더불어 나를 잊자. 다시 벼슬을 어찌 구할 것인가. 친척들의 정다운 이야기를 즐겨 듣고,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우수를 쓸어 버리리라.”
라는 구절에서 연유했다는 이 건물이름에서 "삼형제가 늘 열화당에 모여 정담을 난고 싶다"는 오은거사의 뜻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이러한 열화당은 오은 이후로는 이씨가의 사랑채 역할을 하면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돌계단 7~8개를 딛고 올라가도록 높직하게 위치하고 있고, '작은대청'은 누마루 형식을 지닌 운치 있는 풍모이다. 앞 툇마루는 상당한 넓이를 확보하고 있어, 여름철에 허물없는 손은 여기서 접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곳의 가장 중심부인 대청의 서북쪽으로 난간을 부착한 툇마루가 앞 툇마루를 연결지어 돌게 되어 있어 열화당의 대부분이 마루로 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낳을 정도다. 방은 ㄴ자 형상으로 '작은대청'과 '대청'사이에 위치하였고, 장지문으로 사이를 막으면 셋으로 나눌 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 굴뚝은 대청 뒤로 약 3m가량 물려서 높이 쌓아 올렸으며, 이 건물의 특징으로는 뭐니뭐니해도 대청의 T자형 대들보와 벽이 온통 문짝으로 둘려져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T자형 대들보는 우리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여름철에 문짝을 전부 떼어 걸어 놓으면 전후좌우로 통풍이 되어 자연의 흥취를 만끽 할 수 있다.
3) 동별당
경농이 건립한 건물로서, 안채와 연결된 별당이다. 전체적인 구조를 보아 균형을 잃은 듯이 보이나, 서별당이 복원된다면 그 나름대로 짜임새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생활 용도에 있어서는 안채와 연결되어 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이씨가의 주인으로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 할 수 있는, 안채에 접근된 거처가 이곳이기도 하다. 안채와 같은 높이로 석축을 쌓아 그 위에 세운 이 건물은 큰 방이 있어 장지로 막으면 두개의 방으로 쓸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그것은 최근에 개조 된 거이고, 본래는 도면 6과 같이 방이 다락이 있고 그 다락 밑으로 부엌이 있었다. 역시 대청이 있고 건넌방이 있으며, 건넌방과 대청엔 각각 반침이 달려 있다. 앞 툇마루는 역시 넓고, 뒤로 돌게 되어 있는 좁은 툇마루가 있다.
4) 서별당
현존하지 않는 건물로, 무경의 증손인 익옹 이용구 때에 건립되었으며, 안채와 열화당과의 사이인,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씨가의 서재요 서고였던 이 건물은 석축을 한 돈대 위에 안채와 같은 높이로 연결되어 있다. 서고는 누마루 형식으로 되어 문을 열면 통풍이 잘되고, 마루는 여름철, 방은 겨울철의 독서실로 이용되었다. 서별당 앞의 ㄴ자형 건물은 지금은 방과 마루로 되어 있지만, 최근까지도 열화당으로 통하는 통로와 곳간으로 사용되었다. 그 앞으로는 안채와 사랑채 사이를 구획하는 벽돌담장이 있어 당시의 철저한 남녀유별 풍속을 보는 듯하다. 또 서별당 앞의 마당은 '받재마당'이라고 하여 이 마당에서는 밖에서 정리된 재산을 안으로 받아들일 때 사용되었던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ㄴ자형으로 곳간이 연하여있었다.
5) 행랑
지금 동별당 앞에서 열화당 앞까지 ㅡ자형으로 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일제 때까지만 하더라도, 열화당까지 ㄴ자형으로 연결되어 이씨가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작은사랑 역까지도 맡고 있었다. 행랑채에는 곳간, 마굿간도 있었으며, 하인들의 한 가족이 살림할 수 있도록 부엌도 구비되어 있었다. 이 밖에도 일상용품인 약재, 공구들이 자급자족 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일들이 이곳에서 이루어졌었다.
6) 활래정
주회용의 시 (관서유감)에서 의미를 취하여 이름지은 활래정은 순조 16년(1816)에 오은거사가 건립한 것으로, 현재의 건물은 오은의 증손인 경농이 중건한 것이다. 주자의 "관서유감"을 여기 옮겨본다.
“작은 연못이 거울처럼 펼쳐져 하늘과 구름이 함께 어리네 묻노니 어찌 그같이 맑은가 근원으로부터 끊임없이 내려오는 물이 있음일세”
그러므로 선교장에서는 한밭의 태장봉으로부터 끊임없이 내려오는 맑은 물을 이 연못의 활수로 하고 있다. 서울 비원의 부용정과 흡사한 모습으로 축조된 이 건물은 마루가 연못안으로 들어가 돌기둥으로 받쳐놓은 누 형식으로 되어, 건물의 일부가 물 가운데 떠 있는 듯한 형상을 보여준다. 장지문을 지르면 두개가 될 수 있는 온돌방이 마루와 합쳐서 ㄱ자형으로 놓여져 있고, 이 방과 마루를 연결시키는 복도 옆에는 접객할 때 차 끓이는 다실이 있어 근세 한국 특유의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열화당과 같이 이 건물 역시 벽은 흙을 붙이지 않고, 오로지 문으로만 둘러 있다. 선교장 동구에 위치한 이 건물은 연잎과 연꽃이 한창일 때는 뒷산의 노송과 고목들로 잘 어울려, 뛰어난 풍경 가운데서도 뛰어난 한 폭의 그림이라 할만하다. 전에는 건너다닐 수 있는 보교를 놓아 가운데 있는 노송아래에서 자연의 흥취를 맛 볼 수 있었다.
<참고문헌>
1. 천득염전봉희, 한국의 건축문화재-전남편, 2002, 기문당
2. 충대형, 한국의 건축문화재-서울편, 2002, 기문당
3. 박경립, 한국의 건축문화재-강원편, 2002, 기문당
4. 정인국, 한국건축양식론, 1995, 일지사
<참고사이트>
1. http://youbong.org/html/m21.htm - 삽입그림
2. http://kn.naru.net/ver30/culture/sunkyo/html/index.html - 삽입그림
3. http://user.chollian.net/%7Ebdsfm/mater9-1.html - 고 건축 용어 참고
4. http://phk5508.mytripod.co.kr - 삽입그림
5. http://www.encyber.com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건축 용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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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4.08
  • 저작시기2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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