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황석영의 생애
Ⅱ. 황석영의 약력
Ⅲ. 황석영의 작품 객지 분석
Ⅳ. 황석영의 작품 삼포가는 길 분석
Ⅴ. 황석영의 작품 장길산 분석
Ⅵ. 황석영의 작품 손님 분석
Ⅶ. 황석영의 작품 오래된 정원 분석
참고문헌
Ⅱ. 황석영의 약력
Ⅲ. 황석영의 작품 객지 분석
Ⅳ. 황석영의 작품 삼포가는 길 분석
Ⅴ. 황석영의 작품 장길산 분석
Ⅵ. 황석영의 작품 손님 분석
Ⅶ. 황석영의 작품 오래된 정원 분석
참고문헌
본문내용
정체는 무엇인가? 작중의 주인공인 요한의 동생 요섭(목사)의 방북 길에 동행한 모든 망령들은 결국 모두 가해자이다. 가해자 아닌 것들이 어딨어!라는 요섭의 삼촌이 하는 말은 이들 망령들의 원죄일 것이다. 요섭의 여로를 따라 부정풀이에서 뒤풀이까지 펼쳐지는 12마당의 해원 굿은 황해도 진지오귀굿의 양식을 그대로 빌렸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이 제각기 다르면서 다성(多聲)적인 울림을 자아낸다는 것이다. 역사에서 호출한 망령들로 하여금 당시 계층과 직업 그리고 연령을 살린 계층어를 구사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손님>을 읽는 동안 지난 해 8·15때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장면이 떠올랐다. 50년 만에 만난 저들의 세월 속에 <손님>에서 그려 보이고 있는 세계와 같은 지독한 상처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남과 북 정상들이 만남으로써 그 참혹했던 상처들을 씻어내고 해원(解寃)을 행한 한 판의 대동굿을 펼치는 일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는 있지만, 사람들의 내면에 응어리져 있는 상처와 원망을 치유하고 진정한 마음의 통합으로 가는 길은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존재를 위로하고 어루만져 달래기에 제 몫을 하는 예술일지도 모른다. 황석영이 10년의 각고 끝에 한 땀 한 땀 그려 낸 한 폭의 모자이크화가 주는 감동과 의의는 바로 거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10년의 기나긴 여행 끝에서 귀환해 모국어와 글쓰기의 중심에 우뚝 선 작가 황석영.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앞으로도 리얼리즘의 폭과 깊이를 넓히는 작품을 쓰기 위한 오랫동안의 사유(思惟)를 마치고 열정적 에너지를 분출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Ⅶ. 황석영의 작품 오래된 정원 분석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80년대 세대의 진혼곡\"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의도를 어떻게 해석을 해야하는 것일까? 모든 길은 돌아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어느 누구도 끝까지 가 본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온 이 자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80년대는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시대일까? 끝자락에서 제대로 보지 못한 시대지만, 너무나 많은 것들이 80년대를 이야기한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 말이다. 물론 새로운 세기를 시작할 즈음 정리를 해야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누구하나 속시원하게 정리하는 사람도 없다. 너무 거창하게 나가지 말기로 하자. 내가 궁금해하는 것은 작가가 사용한 \"진혼곡\"이란 단어의 분위기와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냐 하는 문제다.
천도굿과 같은 것이 먼저 떠오른다. 이승에 무슨 미련이 남아서 저승으로 혼령이 올라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귀신들을 위해서 하는 굿. 아쉬움, 한, 설움, 하지만, 이 모든 미련이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는 그런 미련. 떠나보내기 위한 제라고 표현해야 할까?
뒤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소설에서 만일 오현우와 은결이가 만나서 무슨 이야기라도 나누었다면, 이러한 느낌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만난 것처럼 그려졌으나 그건 고속버스 안에서의 \"꿈\"이었다. 물론, 이야기를 나누면서 끝을 내는 것보다는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참고문헌
김종회 - 황석영의 소설과 근대성 그 극복의 서사, 작가세계, 2004
고하영 - 확석영 소설의 탈식민주의적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3
서영인 - 미래를 꿈꾸는 서사의 지난한 역정 황석영론, 문예미학회, 2002
황석영 - 손님, 월인, 2001
황석영 - 삼포 가는 길, 창작과 비평사
황석영 - 객지, 황석영 중단편전집1, 창작과 비평사, 2000
황석영 - 오래된 정원, 창작과비평사, 2000
<손님>을 읽는 동안 지난 해 8·15때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장면이 떠올랐다. 50년 만에 만난 저들의 세월 속에 <손님>에서 그려 보이고 있는 세계와 같은 지독한 상처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남과 북 정상들이 만남으로써 그 참혹했던 상처들을 씻어내고 해원(解寃)을 행한 한 판의 대동굿을 펼치는 일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는 있지만, 사람들의 내면에 응어리져 있는 상처와 원망을 치유하고 진정한 마음의 통합으로 가는 길은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존재를 위로하고 어루만져 달래기에 제 몫을 하는 예술일지도 모른다. 황석영이 10년의 각고 끝에 한 땀 한 땀 그려 낸 한 폭의 모자이크화가 주는 감동과 의의는 바로 거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10년의 기나긴 여행 끝에서 귀환해 모국어와 글쓰기의 중심에 우뚝 선 작가 황석영.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앞으로도 리얼리즘의 폭과 깊이를 넓히는 작품을 쓰기 위한 오랫동안의 사유(思惟)를 마치고 열정적 에너지를 분출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Ⅶ. 황석영의 작품 오래된 정원 분석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80년대 세대의 진혼곡\"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의도를 어떻게 해석을 해야하는 것일까? 모든 길은 돌아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어느 누구도 끝까지 가 본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온 이 자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80년대는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시대일까? 끝자락에서 제대로 보지 못한 시대지만, 너무나 많은 것들이 80년대를 이야기한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 말이다. 물론 새로운 세기를 시작할 즈음 정리를 해야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누구하나 속시원하게 정리하는 사람도 없다. 너무 거창하게 나가지 말기로 하자. 내가 궁금해하는 것은 작가가 사용한 \"진혼곡\"이란 단어의 분위기와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냐 하는 문제다.
천도굿과 같은 것이 먼저 떠오른다. 이승에 무슨 미련이 남아서 저승으로 혼령이 올라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귀신들을 위해서 하는 굿. 아쉬움, 한, 설움, 하지만, 이 모든 미련이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는 그런 미련. 떠나보내기 위한 제라고 표현해야 할까?
뒤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소설에서 만일 오현우와 은결이가 만나서 무슨 이야기라도 나누었다면, 이러한 느낌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만난 것처럼 그려졌으나 그건 고속버스 안에서의 \"꿈\"이었다. 물론, 이야기를 나누면서 끝을 내는 것보다는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참고문헌
김종회 - 황석영의 소설과 근대성 그 극복의 서사, 작가세계, 2004
고하영 - 확석영 소설의 탈식민주의적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3
서영인 - 미래를 꿈꾸는 서사의 지난한 역정 황석영론, 문예미학회, 2002
황석영 - 손님, 월인, 2001
황석영 - 삼포 가는 길, 창작과 비평사
황석영 - 객지, 황석영 중단편전집1, 창작과 비평사, 2000
황석영 - 오래된 정원, 창작과비평사, 2000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