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중가요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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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의 대중가요변천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되지 못했던 기층 민중,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의 시작이었고, 이러한 연민은 못사는 사람들에 대한 지식인의 양심의 발로였다. 그들의 삶의 어려움을 설명하려고 들면서도 직설적인 설명을 피하려고 형상화한 흔적이 역력했고, 또 이미 그들의 삶을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은 그들 노동자나 농민 등 기층민중의 삶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부를 것을 전제로 하여 창작을 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도 이들 노래는 대부분은 그 양식이 포크가 주를 이루었으며, 이들 노래는 포크적 질감과 태도를 가짐으로써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그러나 80년대 초반 이후, 실제의 노동자들과 접하게 되면서 실제의 노동자의 모습이 지식인들이 책에서 일고 머리속에서 그려온 민중들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따라서 기층민중에 대한 연민주의적 시선을 탈피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한 결과로 우선 그 양식에서 민요풍의 노래가 등장을 하는데 이는 민요풍의 노래가 민요가 지니고 있는 민중성과 역동성(직설성에서 오는)을 빌어온다는 점에서 자연히 이전의 포크풍의 노래와는 다른 질감을 가질 수 있었다. (<작업장 타령>(안혜경, 85년경), <서울길 2>(김지하 시오용복 작곡, 82년) 등) 그러나 아직 이들 노래 역시 여전히 설명적이었다.
85년 이후, 노동자들의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활보하려는 노력들이 기울여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노력들의 대개는 노동자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노래들로는 <귀례이야기>(이성지 작사작곡), <깜박잠>, <우리 이야기>(김보성 작사작곡), <밥, 자유, 평등, 평화>(김보성 작사김용수 작곡), <대결>(박노해 시김보성 작곡)과 노래로 하는 라이프 스토리라 할 수 있는 <살아온 이야기>(노동자 공동창작김용수 정리)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노래들은 70년대와 80년대 초반의 노래에 비해 구체성이 확보되었고, 투쟁적인 노래가 한 두곡씩 나오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노동자의 일상을 힘들면서도 역동적이고 힘차며, 비참함의 표현에 있어서도 직설적이면서 질기디 질긴 생명력의 느낌을 가지지 못하고, <깜빡잠>처럼 여리고 곱고 연약하며 무력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전히 양식은 포크에 묶여 있고, 그 포크의 연약함과 비생활성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노래의 몇몇 곡들은 노동교회를 통해 노동자들에게로 보급되기도 하였지만, 노동자들보다는 역시 대학으로 더 많이 퍼져 나갔다.
본격적인 노동가요가 만들어지기는 아직은 어려운 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실제 노동자들이 좋아한 노래는 <사노라면>과 <불나비> 등과 같이 대중가요 중에서도 보다 더 대중적인 (그런 의미에서 통속적이라고 할 수 있는) 양식을 차용한 노래들이었다. 특히 <불나비>는 70년대 말, 80년대 초의 대학가요제풍의 속화된 록을 그 양식으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이 실제로 좋아하며 즐겨불렀던 노래들은 그 가사가 설명적이지 않으면서도 노동자의 감수석에 잘 맞았고, 일상적 낙관성과 역동성이 잘 살아 힘들지만 힘차게 살아가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투쟁이 일상화될 수 없었던 80년대의 중반이므로 어차피 일상의 표현이 중요했음) 또한, 표현은 직설적이며 외향적이다. 이러한 일상적이면서도 직설적이며 외향적인 것은 이전의 포크를 중심으로 한 작품이나 단조 스탠다드의 비일상적으로 비장한 서정가요 작품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노동가요의 본격적 출발
87년 6월 시민항쟁과 7,8,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5공화국은 종말을 맞이하고, 87,88년부터 시작하여 90, 91년 경에 마무리되는 이 시기에 민중가요는 두 개의 대중화를 실현한다. 그 하나는 대학생, 지식인을 중심으로 하던 민중가요가 노동자 대중을 비롯한 기층민중으로까지 확산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직된 대중을 중심으로 하던 민중가요가 대중문하 공간의 미조직 중간계층으로까지 확산된 것이다.
또한 음악운동 집단이 수적으로 늘어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성향이 다양화되었다는 점도 이 시기의 성과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성장을 바탕으로 90년 민족음악협의회의 창립도 가능해졌다.
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성립하게 된 노동가요의 의의를 크게 두가지로 살펴 본다면 먼저 근대 음악사, 노래사이래 최초로 이전에 지식인을 중심으로 하던 진보적 노래문화, 노래운동(음악운동)을 기층민중 중심으로 대중화하는데 성공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학생과 지식인들이 즐겨부르던 노래들이 노동현장으로 유입되어 왔던 이전과는 달리 노동현장의 노래가 역으로 대학가의 노래를 주도하게 된 점이 그것의 반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7,8,9월 노동자 대투쟁과 함께 이루어진, 노동운동, 농민운동등 기층민중들의 계급계층운동이 광범위한 대중운동으로의 발전을 이루게 된 것에 크게 힘입은 것이다. 또 한가지의 의의는 노동자 대중의 경험과 인식, 정서 등을 담은 작품적 성과를 남김으로써 민중가요의 자산을 풍성하게 하였다는 점이다.
87년 이전까지는 노동가요라는 독자적인 노래 문화가 만들어질 여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노동자 대중이 대중적으로 노래를 부를 공간이 없었고, 따라서 작품생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87년 7,8,9월의 노동자 대투쟁은 갑자기 시작되었고, 당연히 그 시기 광범위한 투쟁공간에서 불려질 노동가요가 제대로 없었음은 물론이다. 여태까지 학생, 지식인 중심의 민중가요가 주를 이루었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도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소시민적 지식인의 티를 벗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아직 이시기 노동자 대중에게 대중화될 만한 작품이 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 시기 불렸던 노래는 주로 행진곡으로서 <임을 위한 행진곡>, <늙은 군인의 노래>, <노동해방가>, <광주출정가>, <진군가>, <동지> 등이었다. 그 외에도 대중가요들이 재해석되어 불리기도 하고, 개사곡이 만들어져 노래의 공백을 조금이나마 메우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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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09.04.15
  • 저작시기2007.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3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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