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설교한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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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나는 이렇게 설교한다 요약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설교의 성격적 근거
2. 설교의 창조성과 권위
3. 설교의 중요성
4. 설교의 원리

제4장
1. 설교의 능력
2. 설교의 어려움과 가치

제14장
1. 구성의 중요성
2. 형식적인 면
3. 예증

본문내용

과 권위
설교는 아무리 같은 주제나 내용일지라도 언제나 새로움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첫째, 설교의 새로움이란 성령의 생동력입니다.
둘째, 설교의 새로움은 사람 마음에 깊이 새겨지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셋째, 설교의 새로움이란 예언의 성취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과 미래의 희망에 대해서 밝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전달하는 설교는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어가는 도상에서 언제나 새롭게 창조되는 것입니다.
3. 설교의 중요성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축복의 말씀을 증거하여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설교가 갖고 있는 중요한 임무입니다. 설교자가 설교하는 곳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입니다. 설교자가 단위에 올라서게 되면 아무리 인간적으로는 부끄러운 사람이고 흠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설교는 그 설교자 자신의 말이 아닙니다. 단지 그 시간에 그 사람의 몸과 입을 빌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는 인간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치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설교자가 권위를 가진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말씀에 권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항상 기도하는 중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하며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이렇게 설교는 목회 사역 중에서 무엇과도 대치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4. 설교의 원리
1) 영의세계
인간의 모든 학문은 이성으로 개발하는 것입니다. 의미로 말하면 혼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바로 학문입니다. 신앙은 학문이 아닙니다. 따라서 혼으로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혼의 대상 이성의 대상 학문의 대상으로 삼아서 생각한 까닭에 신앙의 낭패를 당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현대주의자나 신신학자들은 신앙을 완전히 학문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이 학문을 탐구하는 자세로 신앙을 연구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기 때문에 성경을 신화와 몽상으로 돌려 버리게 됩니다. 이성은 항상 감각을 통하여 지식을 얻습니다.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져보는 감각을 통해서 사물을 이해하고 추구하고 조직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감각의 세계를 초월하여 계시의 세계에 거하시는 분입니다. 이러므로 혼으로써는 도저히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신앙을 얻을 수가 있고 또한 설교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신앙은 혼이 아닌 영으로 믿는 것입니다. 묵시를 통해서 사는 것입니다. 설교도 영적인 세계의 활동이지 혼적인 이성의 세계나 육적인 감각의 세계도 아닙니다. 신앙은 순수하게 영적인 세계입니다. 신앙생활은 영적인 직감고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깨닫고 믿고 구원받은 후 육을 쳐서 정복시키고 혼을 이끌어 나가는 생활을 뜻합니다. 우리는 모두 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 즉 영의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바와같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죄사함을 받고 나면 성령께서 우리 영에 접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 비로소 우리의 영이 빛을 발하며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을 받아들이고 영적인 하늘나라의 세계가 우리 영 속에 내재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에 성경을 읽으면 그 말씀이 믿어지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이해되지 않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성과 감각을 통하여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되지 않던 말씀들이 이제는 눈으로 보듯 귀로 듣는 듯 확실히 믿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영의 세계요 신앙의 세계입니다. 이러므로 신앙이란 순수하게 영이 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법칙은 어느 종교에나 적용됩니다. 그래서 불교도들이 부처를 믿을 때는 불교의 영이 접하게 됩니다. 마호멧교 역시 마호멧의 영이 접하게 됩니다. 믿음이란 영적인 세계의 일이기 때문에 언제나 성령에 접하지 않으면 악령에 접하게 됩니다. 불교적인 악령 마호멧교적인 악령 이단 종파적 악령에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싸움이란 영적인 싸움입니다. 신앙이 혼이나 육의 일이라면 이론을 통하여 개종이 가능하겠지만 영의 세계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들어갈 때 바로 들어가야지 잘못 들어가면 힘들게 됩니다. 악령에 묶인 사람들로부터 그 귀신을 떼어주는 길은 무엇일까요? 오직 금식과 기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이론 전달이 아니고 성령 전달입니다. 믿음은 성령의 흡인력으로 영에 접해서 전해집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이해하여 믿는다는 것은 절대로 거짓입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결코 복음이 전파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여서 성령 충만한 가운데 기도하고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설교자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절대로 필요한 무기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야 한다
복음사업에 종사하고 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일하고난 뒤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긍적적인 마음 자세를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는 말씀을 믿으면 됩니다. 즉 어떤 말씀을 인간적인 가치 기준으로 판단하려 하지 말고 믿음으로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복음사업에 있어서 하나님보다 앞서서 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도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로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보내심을 입은 것이 좋은 일을 하기 위함도 의로운 일을 하기 위함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함입니다. 자기는 하기 싫더라도 하나님께서 시키시면 해야 되고 또한 자기가 하고 싶어도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 보고 주님이 시키지 않으시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이 보기에 좋은 것이라고 해서 하나님께도 꼭 좋은 것은 아니며 인간 보기에 의로운 것이라고 해서 하나님 보시기에도 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설교자들은 무조건 하나님을 따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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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5.05
  • 저작시기20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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