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서론
2. 농민
1)언어로 본 농민
2)처지
3)세 가지 특징
3. 농민봉기
1)농민봉기의 시작- 플랑드르 봉기
2)자크리 봉기
3)와트 타일러의 봉기
4)그 이후
4. 결 론
2. 농민
1)언어로 본 농민
2)처지
3)세 가지 특징
3. 농민봉기
1)농민봉기의 시작- 플랑드르 봉기
2)자크리 봉기
3)와트 타일러의 봉기
4)그 이후
4. 결 론
본문내용
가 지나는 동안 유럽의 농민들은 한편으로는 신분적으로 농노제의 질곡에서 해방되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경제적으로 계층분화를 겪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이제 부농과 빈농으로 분화되기 시작하였으며 그들 사이의 경제적인 차이가 커져갔다. 또한 동시에 촌락사회의 의사결정 여부가 부농을 중심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농민들 사이에 사회적인 위계질서가 새로이 형성하기 시작하였고, 이들의 지리적 이동과 더불어 사회적 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동부유럽에서 진행된 영주와 농민들 사이의 투쟁은 오히려 농노제가 강화되는 ‘제2의 농노제’를 맞이하는 상이한 결과를 낳았다. 양 지역에서 계급투쟁이 상이한 결과를 낳았던 것은 농민의 단결력과 국가와 영주와의 관계, 도시발달의 상태가 서로 상이했기 때문이었다. 서부유럽의 경우는 영주세력에 비해 농민들의 단결력이 더 강했기 때문이며, 그들의 단결력이 강했던 것은 농촌 공동조직체의 발달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 동부 유럽은 서부 유럽으로부터 식민된 비교적 자유로운 촌락들이 많아 영주와의 갈등이 적었던 관계로 단결력이 미약하여 강한 촌락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농민계급이 패배하고 농노제가 강화되는 정반대의 현상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수없이 많은 반란과 폭등이 14.15세기 그리고 16세기까지 이어졌다. 그 대부분이 표면상으로는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고통에 대한 우발적인 또는 자연발생적인 반란으로서, 지휘체계와 고정된 방향도 갖추지 못하였고, 지속적인 결과도 낳지 못하였으나 그것은 유럽이 겪고 있었던 사회적 상황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간헐적인 것이기는 하나 지속적인 모습을 보여줬는데, 14세기의 경우만 하더라도 1379~1383년 사이에 프랑스의 파리, 루앙, 아미앵, 오를레앙, 헨트(Ghent) 등에서 과세에 반대하는 폭동이 있었고, 독일의 뤼벡 역시 1380년부터 무거운 세금에 항거하는 소요가 잇달았다. 긴 안목으로 살펴본다면 자크리의 ,봉기는 꼬리를 물고 431년 후 바스티유까지 이어져 내려간 것이다.
★참고문헌
아베 긴야, 오정환 옮김, 『중세를 여행하는 사람들』, 한길사, 1978
자크 르고프, 유희수 옮김, 『서양 중세 문명』, 문학과 지성사, 1997
B.타이어니, 박은구 옮김, 『서양 중세사 연구』,탐구당, 1987
로베르 들로르, 김동섭 옮김, 『서양 중세의 삶과 생활』, 새민, 1999
홍성표, 『서양 중세사 강의』, 느티나무, 2003
그러나 동부유럽에서 진행된 영주와 농민들 사이의 투쟁은 오히려 농노제가 강화되는 ‘제2의 농노제’를 맞이하는 상이한 결과를 낳았다. 양 지역에서 계급투쟁이 상이한 결과를 낳았던 것은 농민의 단결력과 국가와 영주와의 관계, 도시발달의 상태가 서로 상이했기 때문이었다. 서부유럽의 경우는 영주세력에 비해 농민들의 단결력이 더 강했기 때문이며, 그들의 단결력이 강했던 것은 농촌 공동조직체의 발달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 동부 유럽은 서부 유럽으로부터 식민된 비교적 자유로운 촌락들이 많아 영주와의 갈등이 적었던 관계로 단결력이 미약하여 강한 촌락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농민계급이 패배하고 농노제가 강화되는 정반대의 현상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수없이 많은 반란과 폭등이 14.15세기 그리고 16세기까지 이어졌다. 그 대부분이 표면상으로는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고통에 대한 우발적인 또는 자연발생적인 반란으로서, 지휘체계와 고정된 방향도 갖추지 못하였고, 지속적인 결과도 낳지 못하였으나 그것은 유럽이 겪고 있었던 사회적 상황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간헐적인 것이기는 하나 지속적인 모습을 보여줬는데, 14세기의 경우만 하더라도 1379~1383년 사이에 프랑스의 파리, 루앙, 아미앵, 오를레앙, 헨트(Ghent) 등에서 과세에 반대하는 폭동이 있었고, 독일의 뤼벡 역시 1380년부터 무거운 세금에 항거하는 소요가 잇달았다. 긴 안목으로 살펴본다면 자크리의 ,봉기는 꼬리를 물고 431년 후 바스티유까지 이어져 내려간 것이다.
★참고문헌
아베 긴야, 오정환 옮김, 『중세를 여행하는 사람들』, 한길사, 1978
자크 르고프, 유희수 옮김, 『서양 중세 문명』, 문학과 지성사, 1997
B.타이어니, 박은구 옮김, 『서양 중세사 연구』,탐구당, 1987
로베르 들로르, 김동섭 옮김, 『서양 중세의 삶과 생활』, 새민, 1999
홍성표, 『서양 중세사 강의』, 느티나무,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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