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간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된다. 살아있는 한 인간은 이 둘이 구별되는가? 정답은 구별이 된다. 그러나 영혼과 육체로 분리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내 속에 만져지는 부분인 육체가 있고 만져지지 않는 내 속에 내가 있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이것은 영혼과 몸이 생명적인 결속을 갖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헬라철학이 말하는 이원론적인 긴장이 전혀 없는 것이다. 살아있는 인간은 ‘유기적 통일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죄를 짓는 것은 몸만 따로 영혼만 따로 짓는 것이 아니다. 죄를 짓는 것은 몸과 영혼을 아우르는 하나의 인격적 주체인 ‘자아(自我)’가 짓는 것이다. 따라서 살아있는 동안 인간은 몸과 영혼이라는 두 가지 주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체인 자아가 존재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의 종말이 왔을 때 영혼은 주님과 함께 거하며 몸은 잠시 무덤 속에 흙으로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인간의 죽음은 잠정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 인간의 몸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영과 육의 연합적 존재로 영원히 거하게 됨을 믿어야 한다.
여기까지 말하는 설명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구조적 본성의 가르침<조건적 영육 통일체로서의 인간>임을 믿어야 한다.
역사적인 삼분설과 이분설
1)고대교회/ 3분설<동방교회/ 헬라교회와 알렉산드라아 학파; 영지주의 오리게네스 알렉산드리아 그레고리> - 2분설<서방교회>: 381년을 전후로 2분설이 득세하게 된다. 381년에 Apollinaris는 예수님은 육체가 없는 신성으로서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그는 그로말미암아 이단으로 정죄된다. 이후 그의 3분설은 큰 비판을 받게되어 2분설이 득세하게 된 것이다.
2)중세교회
3)종교개혁
4)18-19c/ 3분설의 득세;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중재파 신학자들이 많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은 3분설이 성경적이지 못하다고 2분설로 기울여 지게 된다.
5)20c/ 성경신학의 발전을 말미암아 3분설과 2분설의 허점이 발견되어 단일론이 등장하게 됨
6)개혁신학적 입장의 인간의 구조적 본성
인간은 영과 육이 분리될 수 없는 유기적 통일체라는 점에서는 단일론과 같은 맥락에 서 있다. 이 말은 인간을 전인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 죽은 이후에 영과 육의 분리는 논리적으로 설명되어지지 않는 부분이다. 단일론 중에서도 극단적인 단일론을 주장하게 된다면 영.육 멸절사상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존.스타트는 존재 멸절설을 주장하는 신학자임을 명심해야 하며 이러한 입장은 개혁 신학적 입장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삼분설과 이분설과 단일론
1)삼분설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원론적인 헬라철학에 프뉴마가 이 두가지면을 중재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해이다. cf히4:12은 결코 삼분설로 설명되어질 수 없는 구절이다.
2)이분설
헬라철학의 배경에 의해 생긴 인간이해. 이데아의 세계는 무한 인간의 세계는 무가치한 세계로서 늘 평행관계 속에서만 이해되어졌다.
3)단일론
제10-11강
성경속에 나타난 프뉴마와 프쉬케의 정의
성경 속에 나타난 ‘프쉬케’의 정의
신약은 헬라말로 기록되었다. 신약에서 구약을 인용할 때 대부분 70인경을 많이 인용했다. 히브리적 배경 속에서 구약의 인용문을 이해해야만 정확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1)생명자체를 프쉬케라고 정의한다.
헬라사람들은 프쉬케라고 해석되는 ‘생명 혹은 목숨’으로 번역되는 것을 그들은 ‘생명’자체 혹은 육체이상의 고상한 영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서신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프쉬케의 정의는 상이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cf.롬11:3; 16:4; 빌2:3; 롬2:9에서는 프쉬케를 ‘각 사람의 영에게’로 번역되었다. RSV성경은 이 구절은 ‘악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라고 번역하여 공시적인 원리로 매우 잘 번역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롬13:1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프쉬케는 각 사람 개개인을 지칭함을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외 살전2:5를 참고하라.
삼분설
살전5:23; 히4:12; 고전2~3장; 고전 15장의 성경을 중심으로 삼분설의 주장이 성경적이지 않음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삼분설의 윤리적 방향성은 영, 육 이원론에 근거한다. 성경은 오히려 영, 육 이원론<실체적 이분설을 포함>을 거부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cf고전7:1 벧전1:22; 레온 모리스의 요한복음 주석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레드의 ‘신약신학’의 싸르크스 싸르크스로 번역되는 ‘육’은 살이 아니라 아담 이후 인간속에 부패해진 모든 죄악들을 일컬음을 명심해야 한다.
(헬; 육)의 윤리적 용법을 주의 깊게 연구하라!
생명해석학적 원리로 인간을 불가불리의 유기적 통일체로 보는 것이 단일론이다. 그러나 극단적 단일론으로 생각하면 인간이 죽으면 천국도 지옥도 없다는 결론<영혼소멸설>으로 치우칠 수 있는 것이다. 고전적 이분설이 바로 개혁주의 입장의 성경적 원리이다.
삼분설; 이분설; 단일론은 우리의 신앙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부분임을 명심해야 한다.
1)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헬라어의 주어와 동사는 수가 일치해야 한다. 형용사와 명사 또한 수가 일치해야 한다. 술어인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는 단수이다. ‘온’이라는 형용사는 단수인 ‘영’‘혼’‘몸’을 수식하는 단수로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의 희미한 부분들은 밝은 부분들을 통하여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 개혁주의의 입장이다. 다시 말해 부분과 전체의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해석되어져야 한다는 말인 것이다. 프뉴마와 몸; 프쉬케와 몸등과 같이 두면을 인간을 표현함을 명심해야 한다<개혁주의 입장>. 당시 영, 혼, 몸은 관용구로 해석하는 것이 개혁주의 입장임을 명심해야 한다.
2)히4:12
말씀의 심판적 능력을 본 구절은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말씀이란 인격적인 로고스이신 예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선포하는 전해지는 말씀을 의미한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님과 힘있게 역사하여 함께 일하심을 믿어야 한다.
이것은 영혼과 몸이 생명적인 결속을 갖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헬라철학이 말하는 이원론적인 긴장이 전혀 없는 것이다. 살아있는 인간은 ‘유기적 통일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죄를 짓는 것은 몸만 따로 영혼만 따로 짓는 것이 아니다. 죄를 짓는 것은 몸과 영혼을 아우르는 하나의 인격적 주체인 ‘자아(自我)’가 짓는 것이다. 따라서 살아있는 동안 인간은 몸과 영혼이라는 두 가지 주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체인 자아가 존재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의 종말이 왔을 때 영혼은 주님과 함께 거하며 몸은 잠시 무덤 속에 흙으로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인간의 죽음은 잠정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 인간의 몸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영과 육의 연합적 존재로 영원히 거하게 됨을 믿어야 한다.
여기까지 말하는 설명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구조적 본성의 가르침<조건적 영육 통일체로서의 인간>임을 믿어야 한다.
역사적인 삼분설과 이분설
1)고대교회/ 3분설<동방교회/ 헬라교회와 알렉산드라아 학파; 영지주의 오리게네스 알렉산드리아 그레고리> - 2분설<서방교회>: 381년을 전후로 2분설이 득세하게 된다. 381년에 Apollinaris는 예수님은 육체가 없는 신성으로서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그는 그로말미암아 이단으로 정죄된다. 이후 그의 3분설은 큰 비판을 받게되어 2분설이 득세하게 된 것이다.
2)중세교회
3)종교개혁
4)18-19c/ 3분설의 득세;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중재파 신학자들이 많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은 3분설이 성경적이지 못하다고 2분설로 기울여 지게 된다.
5)20c/ 성경신학의 발전을 말미암아 3분설과 2분설의 허점이 발견되어 단일론이 등장하게 됨
6)개혁신학적 입장의 인간의 구조적 본성
인간은 영과 육이 분리될 수 없는 유기적 통일체라는 점에서는 단일론과 같은 맥락에 서 있다. 이 말은 인간을 전인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 죽은 이후에 영과 육의 분리는 논리적으로 설명되어지지 않는 부분이다. 단일론 중에서도 극단적인 단일론을 주장하게 된다면 영.육 멸절사상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존.스타트는 존재 멸절설을 주장하는 신학자임을 명심해야 하며 이러한 입장은 개혁 신학적 입장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삼분설과 이분설과 단일론
1)삼분설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원론적인 헬라철학에 프뉴마가 이 두가지면을 중재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해이다. cf히4:12은 결코 삼분설로 설명되어질 수 없는 구절이다.
2)이분설
헬라철학의 배경에 의해 생긴 인간이해. 이데아의 세계는 무한 인간의 세계는 무가치한 세계로서 늘 평행관계 속에서만 이해되어졌다.
3)단일론
제10-11강
성경속에 나타난 프뉴마와 프쉬케의 정의
성경 속에 나타난 ‘프쉬케’의 정의
신약은 헬라말로 기록되었다. 신약에서 구약을 인용할 때 대부분 70인경을 많이 인용했다. 히브리적 배경 속에서 구약의 인용문을 이해해야만 정확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1)생명자체를 프쉬케라고 정의한다.
헬라사람들은 프쉬케라고 해석되는 ‘생명 혹은 목숨’으로 번역되는 것을 그들은 ‘생명’자체 혹은 육체이상의 고상한 영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서신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프쉬케의 정의는 상이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cf.롬11:3; 16:4; 빌2:3; 롬2:9에서는 프쉬케를 ‘각 사람의 영에게’로 번역되었다. RSV성경은 이 구절은 ‘악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라고 번역하여 공시적인 원리로 매우 잘 번역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롬13:1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프쉬케는 각 사람 개개인을 지칭함을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외 살전2:5를 참고하라.
삼분설
살전5:23; 히4:12; 고전2~3장; 고전 15장의 성경을 중심으로 삼분설의 주장이 성경적이지 않음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삼분설의 윤리적 방향성은 영, 육 이원론에 근거한다. 성경은 오히려 영, 육 이원론<실체적 이분설을 포함>을 거부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cf고전7:1 벧전1:22; 레온 모리스의 요한복음 주석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레드의 ‘신약신학’의 싸르크스 싸르크스로 번역되는 ‘육’은 살이 아니라 아담 이후 인간속에 부패해진 모든 죄악들을 일컬음을 명심해야 한다.
(헬; 육)의 윤리적 용법을 주의 깊게 연구하라!
생명해석학적 원리로 인간을 불가불리의 유기적 통일체로 보는 것이 단일론이다. 그러나 극단적 단일론으로 생각하면 인간이 죽으면 천국도 지옥도 없다는 결론<영혼소멸설>으로 치우칠 수 있는 것이다. 고전적 이분설이 바로 개혁주의 입장의 성경적 원리이다.
삼분설; 이분설; 단일론은 우리의 신앙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부분임을 명심해야 한다.
1)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헬라어의 주어와 동사는 수가 일치해야 한다. 형용사와 명사 또한 수가 일치해야 한다. 술어인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는 단수이다. ‘온’이라는 형용사는 단수인 ‘영’‘혼’‘몸’을 수식하는 단수로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의 희미한 부분들은 밝은 부분들을 통하여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 개혁주의의 입장이다. 다시 말해 부분과 전체의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해석되어져야 한다는 말인 것이다. 프뉴마와 몸; 프쉬케와 몸등과 같이 두면을 인간을 표현함을 명심해야 한다<개혁주의 입장>. 당시 영, 혼, 몸은 관용구로 해석하는 것이 개혁주의 입장임을 명심해야 한다.
2)히4:12
말씀의 심판적 능력을 본 구절은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말씀이란 인격적인 로고스이신 예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선포하는 전해지는 말씀을 의미한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님과 힘있게 역사하여 함께 일하심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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