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 문화와 문화상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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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개고기 문화와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개고기식용의 기원과 역사

2. 개고기 식용의 환경적 요인

3. 음양오행설로 본 개고기식용의 필요성

4. 개고기 문화에 대한 과거기록

5. 개고기의 보신적 측면

6. 개고기문화와 문화 상대주의

7. 개고기식용에 대한 우리의 대응과 당위성 고찰

본문내용

종족보다 더 우월한 싸움 기술과 무기를 가지게 되고, 그걸로 생존하기에 바빴던 다른 한 종족을 정복했다 해도 그 정복자와 정복당한 자 간에는 아무런 문화적 우월이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풍성한 농작물을 가질 수 있었던 한 종족이 다른 종족보다 좀 더 그럴듯한 식생활을 가졌다 해도 다른 종족의 식생활을 야만스럽다 불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일컬어서 문화인류학에선 문화 상대주의라고도 한다. 어떤 절대적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다른 문화를 재단하고 평가 내릴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만약 한 종족의 문화가 위생적으로 문제가 있다거나 한다면 문제는 좀 다르다. 어떤 종족의 음식이 먹어서 질병에 걸릴만큼 병균이 많다거나 한다면 그 음식은 야만적이라고 비판되어질 수 있다. 주거 환경이 너무나 불결(느낌이 아니라 실제로)하여 거기 사는 사람이 항상 피부병에 시달리거나 한다면 그건 야만적이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보신탕은 먹으면 바로 병에 걸릴 정도로 비위생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은 잘 사먹지도 못하는 고급 음식에 속하고 그만큼 음식의 위생상태도 서양의 음식보다 좋으면 좋았지 못하지는 않다.
결국 지금 해외에서 우리가 개를 먹는 것을 보고 야만스럽다 하는 것은 자기 종족의 입장만을 생각한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자신이 우월한 것인지 자신이 있는 환경이 우월한 것인지도 구별을 못하는 무지함까지 곁들여진 편견이다. 약한 나라가 먹는 음식은 모두 야만적이라는 턱없는 오만이다. 일종의 확장된 의미에서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질적인 식문화를 접할 때 불쾌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도 “느낌”을 떨쳐버리기는 힘들다는 사실을 자주 느낀다. 특히 좋은 느낌보다 안 좋은 느낌일 경우가 더욱. 감정은 때때로 이성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오감에 의해 발생한 감정일 수록 더욱 그렇다. 우리 역시 개미를 먹는다거나 원숭이 골을 먹는다는 종족의 식탁 앞에선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 질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그런 나라의 대통령에게 그런 음식 먹지 말아달라는 편질 보낸 사람이 있었단 소린 못 들어봤다. 그런 편지를 보내기 위해선 불쾌한 느낌만이 아닌, 위에서 말한 우월한 환경과 편견, 무엇보다도 오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들을 좀 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7. 개고기식용에 대한 우리의 대응과 당위성 고찰
이처럼 이 근래 십 몇 년 동안 국내외로 시끄러웠던 문제 중의 하나가 한국인이 보신탕, 즉 개를 잡아 만든 음식을 먹는다는 문제였다. 앞서 밝혔듯이 좁은 국토에 상대적으로 많은 인구와, 소나 닭 등은 소비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생산의 주체, 즉 경작이나 달걀의 생산을 위해 존재했다는 점 등을 감안한다면 개고기가 우리민족에게 고단백질의 섭취원으로써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역사적 상황이 상이하게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은 이에 대해 격렬한 알러지 반응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는 일개 연예인 주제에 일국의 대통령에게 협박성 편지를 보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럼 우리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일이 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그렇게 반발을 사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반응들(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인 강아지를 어떻게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해 나가야 할까?
물론 우리가 보신탕을 포기하는 방법도 있다. 지금은 먹을 것도 풍부해서 보신탕을 포기한다고 해서 굶어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왜 우리가 그래야만 하는가? 왜 우리의 다양한 식생활을 포기하고 서양의 입맛에 우리를 맞춰야 하는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는 것은 먼 훗날에 있을지도 모르는 식량난에 대비하는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고 다양화 다원화의 세계추세에도 어긋난다. 게다가 보신탕은 영양가도 높고 단백질도 풍부하고 소화도 잘되는 좋은 음식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듣고 우리의 식문화를 포기하는 얼치기 짓은 말아야한다. 그럴수록 보아란 듯이 꿋꿋이(?) 보신탕을 먹어줘야 한다. 68년 일본 도쿄올림픽 때 미국에서는 야만스럽게 날 것을 먹는다는 이유로 `생선회(스시)'를 문제삼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도 즐기는 식품이지 않는가? 한 여배우의 말을 너무 성급히 일반화시킨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지만 여태껏 있어온 소수 혹은 열세 민족 문화에 대한 강대국들의 무시에 대한 반발이라 생각하고 읽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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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9.08.12
  • 저작시기2009.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49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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