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E.H 카
2. 역사란 무엇인가
3. 내용요약
제1장 역사와 역사가의 관계
제2장 사회와 개인의 관계
제3장 역사와 과학, 도덕과의 관계
제4장 역사의 인과관계
제5장 진보로서의 역사
제6장 넓어지는 지평선
4. 역사의 발전과 역사인식의 변화
5. 실증주의 사관과 상대주의 사관 및 E.H. Carr의 역사관
6. 카의 저서에 드러나는 아쉬운 점
7. 진보적 발전에 대한 믿음과 낙관적 역사관
2. 역사란 무엇인가
3. 내용요약
제1장 역사와 역사가의 관계
제2장 사회와 개인의 관계
제3장 역사와 과학, 도덕과의 관계
제4장 역사의 인과관계
제5장 진보로서의 역사
제6장 넓어지는 지평선
4. 역사의 발전과 역사인식의 변화
5. 실증주의 사관과 상대주의 사관 및 E.H. Carr의 역사관
6. 카의 저서에 드러나는 아쉬운 점
7. 진보적 발전에 대한 믿음과 낙관적 역사관
본문내용
식 또는 지식이나 가치의 상대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그 점에서는 역사학 연구방법의 다양성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역사가에게 자기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게 했다. 역사적 상대주의는 지식과 가치의 역사성을 주장한 역사주의 자체에 그 본래의 기원이 있다. 상대주의는 역사주의가 내세운 개별성을 상대성으로, 객관성을 주관성으로, 사실적 기술을 직관적 해석으로, 정치사 중심의 서술을 문화사적 종합으로 변환시켰다. 역사적 상대주의는 역사에서의 객관적 실재를 부정하고 가치와 역사 해석의 상대성을 주장했다. 역사적 상대주의 사관의 특징을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① 객관성
상대주의자들도 이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역사가들의 합의에서 성립한다고 보는 측은 역사에서의 주체와 객체의 일치로 대상과 인식자와의 일치를 통해 인식과 객관성이 가능하다고 한다. 객관성 역사의식은 전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보는 측은 베커와 비어드가 대표적인데 이들은 역사가는 사건 자체가 아닌 사건의 기록을 다루기 때문에 주관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모든 역사가는 관점을 세워 그에 따라 서술하기 때문에 역사가가 살고 있는 시대 배경에 의해 크게 좌우되고, 각 역사가의 관점은 시대 정신에 합당한 것이 아니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하여 객관성을 부정하였다.
② 현재성
역사는 역사가의 현재적 의식과 결부되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에서 현재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의 해석이 현재속에 살고 있는 역사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역사는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위한 지식이어야 한다. 따라서 역사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또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서 과거를 봄으로써 성립하고 역사가의 주 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다.
③ 복수성
역사의 전 과정은 복잡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는 각 역사가의 나름대로의 관점에 따라 상이하게 파악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어느 하나의 결과를 초래한 원인으로서 부정한 다수 요인들이 가능한 역사적 인과관계를 주장한다.
(3) 카의 역사관
상대주의 사관
카는 ‘역사를 역사가에 의하여 해석된 과거’라고 봄으로써 콜링우드 등의 상대주의 역사관에 동조하면서도, 스스로는 자기의 역사관이 상대주의에 속한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콜링우드의 역사관은 역사 서술에 있어서 역사가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객관적’역사를 배제시켜 ‘완전한 회의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카는 역사란 역사가의 해석을 전제로 하지만 ‘역사가가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면서 ‘객관적’역사인식의 가능성을 논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객관성의 의미를 달리한다는 전제하에서이고, 실제로는 카의 역사관은 상대주의로 귀속되고 있다. 즉, 카는 역사적 사실은 해석을 전제로 한 것인데, 해석은 언제나 가치 판단을 내포하며, 절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으며 가치는 항상 사회적으로 제약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카는 이처럼 어떤 역사가도 초역사적, 절대적 가치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하므로 역사를 초월한 객관적인 역사 인식이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역사란 역사가의 가치관이 개입된 해석에 의한 것이고, 사회적 존재인 역사가에게 절대적 가치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역사에는 어디까지나 상대성이 뒤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진보로서의 역사
카는 문명의 자연적인 순환론이나 신의적 역사해석 모두를 거부하고 있다. 스스로를 안락하고 희망찬 19세기적 시대 분위기 속에서 교육받은 ‘변함없는 낙관주의자’로 인정하는 카는 “아직도 역사에서 진보가 끝났다고 믿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카는 프랑스혁명 이후의 변화는 우려되고 있는 것처럼 쇠퇴의 시기가 아니라 여전히 진보의 시기였다고 주장한다. “역사는 인간이 이성을 사용하여, 환경을 이해하고 환경에 작용해 온 오랜 투쟁과정이다.” 카는 이 과정을 무엇보다도 ‘이성의 세계의 확대’로 파악하고 있다. 선두주자 몇 사람이 탈락하였다고 경주 자체가 종결되지 않듯이 서유럽의 위대한 문명의 시대가 지속되지 않는다 해도 역사 전체의 진보가 끝난 것은 아니다. 카는 서유럽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현재의 위기가 서유럽 문명 자체에 내재한 쇠퇴의 필연적 과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카는 발전의 가능성, 미래에 대한 적극적 신념을 가지라는 것이다. 카의 ‘미래에 대한 합리적 난관주의’는 역사를 ‘부단한 진보과정’으로 봄으로써 근본적으로 19세기의 진보의 신앙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카의 ‘진보’개념은 19세기의 그것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첫째, 카는 인간사에 있어서의 진보와 자연계의 진화를 엄격히 구분한다. 인간의 진보는 여러 세대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자기 가능성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뜻한다. 결국 진보란 과학 지식의 축적을 통한 자연환경에 대한 지배력의 증대와 사회 질서를 형성하고 사회를 조직하는 인간의 힘의 증대를 의미한다.
둘째, 진보에는 일정한 시작이나 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카는 문명의 시작을 진보의 시점으로 파악하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문명이란 결코 발명된 것이 아니고 무한히 느린 발전 과정을 통하여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므로, 문명의 발생은 진보의 가설에 있어서는 하나의 출발점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진보라는 역사과정 자체의 시작이 될 수는 없다.
셋째, 카는 직선적인 진보관을 거부하고 있다. 카는 역사가 일정한 과정을 거친 다음에 더 나은 단계를 향하여 한 방향으로 계속된다고 믿고 있지 않다. 역사에서의 진보란 역전 일탈 중단이 없는 일직선상의 전진이 아니다. “진보는 정체되고....일련의 역행과 참화에 의하여 중단”되어질 수도 있다. 진보의 시기가 있듯이 퇴조의 시기도 있으며 후퇴 뒤의 전진도 같은 지점으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진보라는 것이 모두에게 평등하고 동시적인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6. 카의 저서에 드러나는 아쉬운 점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카의 결론은 말끔한 외양과는 달리 매우 복잡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문제점 역시 없지 않다. 그가 말하는 “대화”의 의미와 관련해서 상호 연관된 다음의
① 객관성
상대주의자들도 이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역사가들의 합의에서 성립한다고 보는 측은 역사에서의 주체와 객체의 일치로 대상과 인식자와의 일치를 통해 인식과 객관성이 가능하다고 한다. 객관성 역사의식은 전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보는 측은 베커와 비어드가 대표적인데 이들은 역사가는 사건 자체가 아닌 사건의 기록을 다루기 때문에 주관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모든 역사가는 관점을 세워 그에 따라 서술하기 때문에 역사가가 살고 있는 시대 배경에 의해 크게 좌우되고, 각 역사가의 관점은 시대 정신에 합당한 것이 아니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하여 객관성을 부정하였다.
② 현재성
역사는 역사가의 현재적 의식과 결부되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에서 현재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의 해석이 현재속에 살고 있는 역사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역사는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위한 지식이어야 한다. 따라서 역사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또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서 과거를 봄으로써 성립하고 역사가의 주 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다.
③ 복수성
역사의 전 과정은 복잡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는 각 역사가의 나름대로의 관점에 따라 상이하게 파악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어느 하나의 결과를 초래한 원인으로서 부정한 다수 요인들이 가능한 역사적 인과관계를 주장한다.
(3) 카의 역사관
상대주의 사관
카는 ‘역사를 역사가에 의하여 해석된 과거’라고 봄으로써 콜링우드 등의 상대주의 역사관에 동조하면서도, 스스로는 자기의 역사관이 상대주의에 속한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콜링우드의 역사관은 역사 서술에 있어서 역사가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객관적’역사를 배제시켜 ‘완전한 회의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카는 역사란 역사가의 해석을 전제로 하지만 ‘역사가가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면서 ‘객관적’역사인식의 가능성을 논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객관성의 의미를 달리한다는 전제하에서이고, 실제로는 카의 역사관은 상대주의로 귀속되고 있다. 즉, 카는 역사적 사실은 해석을 전제로 한 것인데, 해석은 언제나 가치 판단을 내포하며, 절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으며 가치는 항상 사회적으로 제약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카는 이처럼 어떤 역사가도 초역사적, 절대적 가치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하므로 역사를 초월한 객관적인 역사 인식이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역사란 역사가의 가치관이 개입된 해석에 의한 것이고, 사회적 존재인 역사가에게 절대적 가치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역사에는 어디까지나 상대성이 뒤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진보로서의 역사
카는 문명의 자연적인 순환론이나 신의적 역사해석 모두를 거부하고 있다. 스스로를 안락하고 희망찬 19세기적 시대 분위기 속에서 교육받은 ‘변함없는 낙관주의자’로 인정하는 카는 “아직도 역사에서 진보가 끝났다고 믿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카는 프랑스혁명 이후의 변화는 우려되고 있는 것처럼 쇠퇴의 시기가 아니라 여전히 진보의 시기였다고 주장한다. “역사는 인간이 이성을 사용하여, 환경을 이해하고 환경에 작용해 온 오랜 투쟁과정이다.” 카는 이 과정을 무엇보다도 ‘이성의 세계의 확대’로 파악하고 있다. 선두주자 몇 사람이 탈락하였다고 경주 자체가 종결되지 않듯이 서유럽의 위대한 문명의 시대가 지속되지 않는다 해도 역사 전체의 진보가 끝난 것은 아니다. 카는 서유럽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현재의 위기가 서유럽 문명 자체에 내재한 쇠퇴의 필연적 과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카는 발전의 가능성, 미래에 대한 적극적 신념을 가지라는 것이다. 카의 ‘미래에 대한 합리적 난관주의’는 역사를 ‘부단한 진보과정’으로 봄으로써 근본적으로 19세기의 진보의 신앙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카의 ‘진보’개념은 19세기의 그것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첫째, 카는 인간사에 있어서의 진보와 자연계의 진화를 엄격히 구분한다. 인간의 진보는 여러 세대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자기 가능성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뜻한다. 결국 진보란 과학 지식의 축적을 통한 자연환경에 대한 지배력의 증대와 사회 질서를 형성하고 사회를 조직하는 인간의 힘의 증대를 의미한다.
둘째, 진보에는 일정한 시작이나 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카는 문명의 시작을 진보의 시점으로 파악하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문명이란 결코 발명된 것이 아니고 무한히 느린 발전 과정을 통하여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므로, 문명의 발생은 진보의 가설에 있어서는 하나의 출발점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진보라는 역사과정 자체의 시작이 될 수는 없다.
셋째, 카는 직선적인 진보관을 거부하고 있다. 카는 역사가 일정한 과정을 거친 다음에 더 나은 단계를 향하여 한 방향으로 계속된다고 믿고 있지 않다. 역사에서의 진보란 역전 일탈 중단이 없는 일직선상의 전진이 아니다. “진보는 정체되고....일련의 역행과 참화에 의하여 중단”되어질 수도 있다. 진보의 시기가 있듯이 퇴조의 시기도 있으며 후퇴 뒤의 전진도 같은 지점으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진보라는 것이 모두에게 평등하고 동시적인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6. 카의 저서에 드러나는 아쉬운 점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카의 결론은 말끔한 외양과는 달리 매우 복잡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문제점 역시 없지 않다. 그가 말하는 “대화”의 의미와 관련해서 상호 연관된 다음의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