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준 친구인데 이렇게 헤어지게 돼서 섭섭한 마음이 컸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연락하고 지내야겠다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내가 갈 곳은 하이델베르크 성인데 어제 방문했던 대학교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 편했고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성에 오르는 길은 마치 등산을 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오르막길이라 조금 힘들었다. 하이델베르크성은 르네상스풍의 성관과 중세풍 성세의 일부가 혼합되어 있어 더욱 매력적이었다.
성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아름다운 건물은 프리드리히관이었다.
성 전체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진 것이라는데 역시 뭔가 반짝반짝 광이 나는 듯했다. 조각상으로 건물이 장식되어 있는데, 시텔스바흐 왕족 사람들의 조각상이었다. 이들 중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세운 루프레히트 1세와 대형 포도주통을 처음 만든 요한 카시미어도 포함되어 있었다. 선제후 프리드리히 4세가 건축가 요하네스쇼흐에게 부탁하여 지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성이 방어적 개념에서 주거적 개념으로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층에 있는 성 내 교회는 전쟁에도 파괴되지 않고 있으며, 그 위에 거실이 있다. 건축주인 프리드리히 4세는 1층 맨 오른편에 조각상으로 남아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프리드리히관의 전면에 조각된 오토하인리히 샹을 보면 그는 오토하인리히관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있다. 속설에 의하면 그 이유가 오토하인리히관을 짓느라 진 빚 때문에 그 건물을 쳐다보지 않는다고 한다.
또 프리드리히관 지하에 있는 1751년에 만들어진 221,726리터 크기의 세계 최대 포도주통이 있었는데 전쟁 시 식수가 부족할 것을 대비해 지은 것이라는데 정말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또 다른 건물인 오토하인리히관이 있는데, 하이델베르크 최초의 르네상스식 건물로 16세기 중반에 세워졌다. 알렉산더 콜린이 조각한 상들이 창문 사이사이에 있는데, 1층은 성경속 인물들, 2~3층은 그리스 신상들이었다. 그리고 이 건물 내에는 독일 약제 박물관이 있다.
건물 조각상은 인물들을 구별할 수 있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시내를 한눈에 내다 볼 수가 있다. 그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우거진 나무들과 강을 가로질러 붉은빛 지붕들이 즐비하고 다리를 사이에 둔 것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하이델베르크성은 드라마 “황태자의 첫사랑”의 무대 배경이 되어 유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든 구경을 마치고 광장으로 내려와 광장 주변에 늘어선 기념품 가게들이 있었고, 맥주와 축구공 모양의 기념품들이 꽤 많았다. 구경을 하다가 축구공모양의 열쇠고리를 10유로를 주고 샀다. 그런데 광장 주변보다는 아래에 있는 하우프트 거리가 조금 더 저렴했다. 내려오는 길에 터키인이 “맛있어요.”를 외치고 있었다. 배고픈 김에 케밥을 사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터키인은 역시 한국말을 잘한다는 생각을 했다.
7시쯤이 돼서 또 다른 도시인 쾰른으로 가기 위해 유람선 표를 끊고 80유로를 지출했다. 이제는 라인강을 따라 쾰른으로 이동이다. 로맨티크 가도와 더불어 독일이 자랑하는 천혜의 관광지. 강 옆에는 고성이 있는 작은 마을들과 로렐라이 언덕으로 유명한 곳. 벌써부터 흥분된다. 선착장에서 내려 쾰른에 도착하니 해가 져서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당장 머무를 민박집부터 구하기로 했다. 하루만 묶을 것이기 때문에 20유로 인곳으로 찾았다. 하루 잠만 자는 것이기 때문에 금방 방을 잡을 수 있었고 오늘도 고단한 하루여서 금방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찾아왔다. 이제 여행을 한지도 6일 째 이다. 오늘은 일찍 방을 나왔다. 8시 쯤에 출발하여 쾰른 대성당으로 향했다.
다행히 민박집에서 쾰른역까지 가까운 거리였다.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쾰른역 바로 저편에서는 엄청나게 거대한 성당이 보였다. 어렸을 적에 쾰른 대 성당 이란 말을 들어 봤다. 아마 세계사 시간에서 들었던지 아님 여행 서적이던지 아니면 어린이 신문에서 보았을 것이다.
하여간 분명하게 “쾰른 대성당”이란 말이 내 입에서 쉽게 나오는 것은 꽤 유명한 것이겠거니 하고 발길을 옮겼다.
중앙역 바로 앞에 우뚝 솟아 있는 웅장한 고딕 양식의 건물, 그 크기에 압도당한 우리는 내부로 들어가 스테인드 글래스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제단을 장식하는 훌륭한 그림과 기둥의 정교한 조각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쾰른 대성당이 자랑하는 14∼16세기의 거대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는데, 성서를 주제로 하여 꾸며진 이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빚어내는 신비스런 빛의 조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품이라고 한다. 내부장식으로 14세기의 성모·사도상, 로흐너의 제단화 ‘동방3박사의 참배’ 등이 있었다. 남쪽 정면 출입구는 네오고딕의 지극히 화려한 형태들을 보여 주며 모자이크 장식을 한 구리로 된 문은 세련되면서 아름다웠다. 1248년에 착공하여 1880년에야 완성했다는 성당.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시커먼 두 개의 탑, 너무나 웅장하다. 수 백 년의 때가 묻어있는 그 어마어마한 건물을 수 백 년 전에 어찌 지었을까하는 마음에 독일 사람들이 존경스럽기도 하였고, 그들이 엄청난 교회 건물을 짓게 한 힘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도 생각 했다. 종각에 오르기 위해 30분 정도를 굴뚝같이 좁은 나선형 계단을 오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성당에 오니 고해성사라도 하듯 내 지난 잘못들이 스쳐지나가고 괜히 숙연해 지면서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 같았다.
다음 코스인 프랑크푸르트로 가기 위해 기차표를 사는데 38유로를 지출했고, 2시간 반에 걸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장시간 이동했던 것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여서 지루하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먼저 느끼는 것은 배고픔이었다. 이태리 레스토랑 스파게티가 너무 맛있어 보였다. 나는 허기진 배를 빨리 채우고자 그 스파게티 집을 향했다. 미트스파게티, 양도 충분히 많은 것이 아주 반가웠다. 오늘은 저번에 못했던 노숙을 해보기로 마음먹은 날이다. 다행히 비도 그쳤겠다. 옷을 몇 겹 더 껴입고 공원의 구석진 곳에 침낭을 펼쳤다. 지나가는 사람이 이상하게 쳐다볼까 의식되기도 했지만
성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아름다운 건물은 프리드리히관이었다.
성 전체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진 것이라는데 역시 뭔가 반짝반짝 광이 나는 듯했다. 조각상으로 건물이 장식되어 있는데, 시텔스바흐 왕족 사람들의 조각상이었다. 이들 중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세운 루프레히트 1세와 대형 포도주통을 처음 만든 요한 카시미어도 포함되어 있었다. 선제후 프리드리히 4세가 건축가 요하네스쇼흐에게 부탁하여 지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성이 방어적 개념에서 주거적 개념으로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층에 있는 성 내 교회는 전쟁에도 파괴되지 않고 있으며, 그 위에 거실이 있다. 건축주인 프리드리히 4세는 1층 맨 오른편에 조각상으로 남아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프리드리히관의 전면에 조각된 오토하인리히 샹을 보면 그는 오토하인리히관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있다. 속설에 의하면 그 이유가 오토하인리히관을 짓느라 진 빚 때문에 그 건물을 쳐다보지 않는다고 한다.
또 프리드리히관 지하에 있는 1751년에 만들어진 221,726리터 크기의 세계 최대 포도주통이 있었는데 전쟁 시 식수가 부족할 것을 대비해 지은 것이라는데 정말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또 다른 건물인 오토하인리히관이 있는데, 하이델베르크 최초의 르네상스식 건물로 16세기 중반에 세워졌다. 알렉산더 콜린이 조각한 상들이 창문 사이사이에 있는데, 1층은 성경속 인물들, 2~3층은 그리스 신상들이었다. 그리고 이 건물 내에는 독일 약제 박물관이 있다.
건물 조각상은 인물들을 구별할 수 있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시내를 한눈에 내다 볼 수가 있다. 그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우거진 나무들과 강을 가로질러 붉은빛 지붕들이 즐비하고 다리를 사이에 둔 것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하이델베르크성은 드라마 “황태자의 첫사랑”의 무대 배경이 되어 유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든 구경을 마치고 광장으로 내려와 광장 주변에 늘어선 기념품 가게들이 있었고, 맥주와 축구공 모양의 기념품들이 꽤 많았다. 구경을 하다가 축구공모양의 열쇠고리를 10유로를 주고 샀다. 그런데 광장 주변보다는 아래에 있는 하우프트 거리가 조금 더 저렴했다. 내려오는 길에 터키인이 “맛있어요.”를 외치고 있었다. 배고픈 김에 케밥을 사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터키인은 역시 한국말을 잘한다는 생각을 했다.
7시쯤이 돼서 또 다른 도시인 쾰른으로 가기 위해 유람선 표를 끊고 80유로를 지출했다. 이제는 라인강을 따라 쾰른으로 이동이다. 로맨티크 가도와 더불어 독일이 자랑하는 천혜의 관광지. 강 옆에는 고성이 있는 작은 마을들과 로렐라이 언덕으로 유명한 곳. 벌써부터 흥분된다. 선착장에서 내려 쾰른에 도착하니 해가 져서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당장 머무를 민박집부터 구하기로 했다. 하루만 묶을 것이기 때문에 20유로 인곳으로 찾았다. 하루 잠만 자는 것이기 때문에 금방 방을 잡을 수 있었고 오늘도 고단한 하루여서 금방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찾아왔다. 이제 여행을 한지도 6일 째 이다. 오늘은 일찍 방을 나왔다. 8시 쯤에 출발하여 쾰른 대성당으로 향했다.
다행히 민박집에서 쾰른역까지 가까운 거리였다.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쾰른역 바로 저편에서는 엄청나게 거대한 성당이 보였다. 어렸을 적에 쾰른 대 성당 이란 말을 들어 봤다. 아마 세계사 시간에서 들었던지 아님 여행 서적이던지 아니면 어린이 신문에서 보았을 것이다.
하여간 분명하게 “쾰른 대성당”이란 말이 내 입에서 쉽게 나오는 것은 꽤 유명한 것이겠거니 하고 발길을 옮겼다.
중앙역 바로 앞에 우뚝 솟아 있는 웅장한 고딕 양식의 건물, 그 크기에 압도당한 우리는 내부로 들어가 스테인드 글래스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제단을 장식하는 훌륭한 그림과 기둥의 정교한 조각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쾰른 대성당이 자랑하는 14∼16세기의 거대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는데, 성서를 주제로 하여 꾸며진 이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빚어내는 신비스런 빛의 조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품이라고 한다. 내부장식으로 14세기의 성모·사도상, 로흐너의 제단화 ‘동방3박사의 참배’ 등이 있었다. 남쪽 정면 출입구는 네오고딕의 지극히 화려한 형태들을 보여 주며 모자이크 장식을 한 구리로 된 문은 세련되면서 아름다웠다. 1248년에 착공하여 1880년에야 완성했다는 성당.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시커먼 두 개의 탑, 너무나 웅장하다. 수 백 년의 때가 묻어있는 그 어마어마한 건물을 수 백 년 전에 어찌 지었을까하는 마음에 독일 사람들이 존경스럽기도 하였고, 그들이 엄청난 교회 건물을 짓게 한 힘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도 생각 했다. 종각에 오르기 위해 30분 정도를 굴뚝같이 좁은 나선형 계단을 오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성당에 오니 고해성사라도 하듯 내 지난 잘못들이 스쳐지나가고 괜히 숙연해 지면서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 같았다.
다음 코스인 프랑크푸르트로 가기 위해 기차표를 사는데 38유로를 지출했고, 2시간 반에 걸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장시간 이동했던 것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여서 지루하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먼저 느끼는 것은 배고픔이었다. 이태리 레스토랑 스파게티가 너무 맛있어 보였다. 나는 허기진 배를 빨리 채우고자 그 스파게티 집을 향했다. 미트스파게티, 양도 충분히 많은 것이 아주 반가웠다. 오늘은 저번에 못했던 노숙을 해보기로 마음먹은 날이다. 다행히 비도 그쳤겠다. 옷을 몇 겹 더 껴입고 공원의 구석진 곳에 침낭을 펼쳤다. 지나가는 사람이 이상하게 쳐다볼까 의식되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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