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성리학의 인간론
Ⅲ. 반야경의 인간론
Ⅳ. 성경의 인간론
Ⅴ. 펠라기우스의 인간론
Ⅵ. 어거스틴의 인간론
Ⅶ. 소크라테스적 주체의 인간론
Ⅷ. 결론
참고문헌
Ⅱ. 성리학의 인간론
Ⅲ. 반야경의 인간론
Ⅳ. 성경의 인간론
Ⅴ. 펠라기우스의 인간론
Ⅵ. 어거스틴의 인간론
Ⅶ. 소크라테스적 주체의 인간론
Ⅷ.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물의 요구와 구별되는 사람의 요구의 근본특징이 있다. 세계를 자신에게 복무하게 하면서 그 주인으로 살려는 요구는 오직 사람만이 제기할수 있을뿐이다. 사람의 고유한 온갖 요구는 자주적요구이며 사람이 생활과정에서 제기하게되는 고유한 요구는 다 자주적요구의 구체적인 표현들이다. (현원식 1992, 107) 창조적 힘은 자주적 요구를 실현하는 수단이다(현원식 1992, 133). 그것은 활동방법을 개조시키는 능력이다. 창조성이 없는 동물은 똑같은 방법을 반복하기만 한다. 그리고 의식성은 규제적 속성이다. 동물이 개조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본능의 규제를 받기 때문이다. 동물의 활동은 본능에 따른 맹목적인 것이지 목적의식적인 것이 아니다. 목적의식적으로 활동하지 못한다는 것은 의식성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사람의 활동은 목적의식적인 것이다.
주체의 인간론에서 본성으로 정의된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은 이와 같이 소크라테스적 인본주의에서 정의된 본성인 합리적 기능의 사용이 개조활동에서 나타내는 속성이다. 합리적 기능은 개조활동에서 의식의 사용으로 나타나며 창조적 힘을 통한 자주적 요구의 실현은 이러한 사용, 즉 의식작용의 결과이다. 그런데 합리적 기능의 사용은 잘하는 것으로서 좋은 것을 생산하므로 개조활동은 좋은 것으로의 변화, 즉 발전을 가져온다. 주체의 인간론은 이러한 발전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로부터 사회적 존재라는 본성을 또한 도출한다. 인간은 생활력을 육체에만 체현시키는것이 아니라 물질문화적수단에 체현시켜 육체 밖에 객관화된 형태로 축적하고 그것을 다시 자기의 것으로 만들수 … 있다. 사람의 육체는 생활력을 체현하는데서 한계를 가진다. 그러나 인간의 힘을 객관화된 형태로 체현하는 물질문화적수단은 얼마든지 증대 될 수 있다. …
… 물질문화적수단에 객관화 … 되는 생활력은 시공간적제 … 약을 받지 않고 … 자유롭게 작용하면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결합되여 협력할수 있게 하는 매개자 … 의 역할을 하게 한다. (현원식 1992, 96) 그리고 사회적 결합과 협력에 있어 요구의 실현과 이를 위한 힘의 적용을 규제하여 통일시키는 질서의 체계가 사회적 관계이다.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결합되여 협력할수 있게 되려면 사람들의 요구와 힘의 작용을 통일시키는 … 질서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질서의 체계가 사회적관계이다. (현원식 1992, 97)
이러한 사회적 관계도 합리적으로 개변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으로 마련되는 정신물질적힘의 발전수준에 상응하게 사회적관계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변할수 있다. (현원식 1992, 98) 개조발전하는 사회적 집단으로서 인간사회는 사회적으로 축적되는 물질정신적 수단과 합리화되는 사회적 관계로 인하여 단순한 기계적 결합체가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양적 합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생활력이 개조 발전하는 사회적 생활력과 유기적으로 결합된, 질적으로 다른 위력한 전일적 생명체이다. 주체의 인간론이 전자와 본성적 실천의 변증법을 공유하고 있고 개조발전의 측면에서 본성을 정의하고 실천을 구체화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주체의 인간론의 이러한 본성적 정의와 실천의 구체화는 덕적 측면에서의 소크라테스적 그것들과 상충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적 인본주의에서 덕은 잘하는 것이고 합리적 기능의 사용인데 소크라테스적으로 정의된 본성으로서 이 합리적 기능의 사용이 개조발전에서 나타내는 속성이 주체의 인간론에서 본성으로 정의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의 인간론에서 개조발전적으로 사는 것, 즉 본성적 실천의 구체화인 사회정치생명적 실천은 소크라테스적으로 보면 정의적 실천과 같은 것으로서 잘하는 것의 구현, 덕행으로 된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이 본성적 실천의 변증법을 공유하고 있고 본성적 정의와 실천의 구체화에 있어 덕적 측면에 초점을 둔 소크라테스적인 것들이 주체의 인간론에서 개조발전의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주체의 인간론의 선행사상으로서 소크라테스적 인본주의가 차지하는 비중은 북측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인본적 관심에 국한된 단면적인 것이 아닌 전면적인 것으로서 본 논문의 비교분석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양자는 한 사상체계 내에서 내적으로 매개되어지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Ⅷ. 결론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논해지는 것들은 인간 개인이 거대한 인간 사회의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보고서 행해지는 것들이다. 그래서 인간 규정은 우선 인간이 사회적 동물(아리스토텔레스)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그 만큼 많이 있으며 공통성을 가질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가 된다. 인간은 정의되어질 수 없다는 인간학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확실하지도 않은 작업을 계속하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가 궁극적 목적이 아니고 인간을 이해함으로써 인간 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함이다. 결국은 인간의 존재적 물음에 대해서는 영원히 풀 수 없으며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인간의(사회에서의 인간) 제반 사항에 대한 것들이다. 따라서 인간 본성에 대해 논하는 것은 인간의 창조적인 처음의 성질을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규정하려 한다 해도 정설이 아니므로(또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이론이 등장하므로) 독단의 길로밖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인간이 선악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 다는 것은, 소유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규정보다는 인간 활동에 대한 이해를 더 하려는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사회의 인간은 다양하다. 닮은 꼴은 있을 수 있지만 합동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규정은 불가능하다. 다만 인간이해를 돕기 위한 것뿐이다.
참고문헌
◇ 김영도, 펠라기우스주의자들과의 논쟁에 나타난 어거스틴의 성서해석
◇ 강운빈, 인간개조리론,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85
◇ 남기영 외 4명, 인간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8
◇ 배경완, 플라톤의 이상적 인간관과 그 의미, 계명대학교 석사논문, 1999
◇ 성서마당 26호, 서울: 한국성서학연구소, 1997
◇ 이대희, 인간론 강의, 중외출판사, 2000
◇ 조성발, 주체의 인간론, 평양: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8
주체의 인간론에서 본성으로 정의된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은 이와 같이 소크라테스적 인본주의에서 정의된 본성인 합리적 기능의 사용이 개조활동에서 나타내는 속성이다. 합리적 기능은 개조활동에서 의식의 사용으로 나타나며 창조적 힘을 통한 자주적 요구의 실현은 이러한 사용, 즉 의식작용의 결과이다. 그런데 합리적 기능의 사용은 잘하는 것으로서 좋은 것을 생산하므로 개조활동은 좋은 것으로의 변화, 즉 발전을 가져온다. 주체의 인간론은 이러한 발전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로부터 사회적 존재라는 본성을 또한 도출한다. 인간은 생활력을 육체에만 체현시키는것이 아니라 물질문화적수단에 체현시켜 육체 밖에 객관화된 형태로 축적하고 그것을 다시 자기의 것으로 만들수 … 있다. 사람의 육체는 생활력을 체현하는데서 한계를 가진다. 그러나 인간의 힘을 객관화된 형태로 체현하는 물질문화적수단은 얼마든지 증대 될 수 있다. …
… 물질문화적수단에 객관화 … 되는 생활력은 시공간적제 … 약을 받지 않고 … 자유롭게 작용하면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결합되여 협력할수 있게 하는 매개자 … 의 역할을 하게 한다. (현원식 1992, 96) 그리고 사회적 결합과 협력에 있어 요구의 실현과 이를 위한 힘의 적용을 규제하여 통일시키는 질서의 체계가 사회적 관계이다.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결합되여 협력할수 있게 되려면 사람들의 요구와 힘의 작용을 통일시키는 … 질서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질서의 체계가 사회적관계이다. (현원식 1992, 97)
이러한 사회적 관계도 합리적으로 개변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으로 마련되는 정신물질적힘의 발전수준에 상응하게 사회적관계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변할수 있다. (현원식 1992, 98) 개조발전하는 사회적 집단으로서 인간사회는 사회적으로 축적되는 물질정신적 수단과 합리화되는 사회적 관계로 인하여 단순한 기계적 결합체가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양적 합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생활력이 개조 발전하는 사회적 생활력과 유기적으로 결합된, 질적으로 다른 위력한 전일적 생명체이다. 주체의 인간론이 전자와 본성적 실천의 변증법을 공유하고 있고 개조발전의 측면에서 본성을 정의하고 실천을 구체화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주체의 인간론의 이러한 본성적 정의와 실천의 구체화는 덕적 측면에서의 소크라테스적 그것들과 상충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적 인본주의에서 덕은 잘하는 것이고 합리적 기능의 사용인데 소크라테스적으로 정의된 본성으로서 이 합리적 기능의 사용이 개조발전에서 나타내는 속성이 주체의 인간론에서 본성으로 정의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의 인간론에서 개조발전적으로 사는 것, 즉 본성적 실천의 구체화인 사회정치생명적 실천은 소크라테스적으로 보면 정의적 실천과 같은 것으로서 잘하는 것의 구현, 덕행으로 된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이 본성적 실천의 변증법을 공유하고 있고 본성적 정의와 실천의 구체화에 있어 덕적 측면에 초점을 둔 소크라테스적인 것들이 주체의 인간론에서 개조발전의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주체의 인간론의 선행사상으로서 소크라테스적 인본주의가 차지하는 비중은 북측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인본적 관심에 국한된 단면적인 것이 아닌 전면적인 것으로서 본 논문의 비교분석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양자는 한 사상체계 내에서 내적으로 매개되어지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Ⅷ. 결론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논해지는 것들은 인간 개인이 거대한 인간 사회의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보고서 행해지는 것들이다. 그래서 인간 규정은 우선 인간이 사회적 동물(아리스토텔레스)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그 만큼 많이 있으며 공통성을 가질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가 된다. 인간은 정의되어질 수 없다는 인간학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확실하지도 않은 작업을 계속하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가 궁극적 목적이 아니고 인간을 이해함으로써 인간 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함이다. 결국은 인간의 존재적 물음에 대해서는 영원히 풀 수 없으며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인간의(사회에서의 인간) 제반 사항에 대한 것들이다. 따라서 인간 본성에 대해 논하는 것은 인간의 창조적인 처음의 성질을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규정하려 한다 해도 정설이 아니므로(또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이론이 등장하므로) 독단의 길로밖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인간이 선악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 다는 것은, 소유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규정보다는 인간 활동에 대한 이해를 더 하려는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사회의 인간은 다양하다. 닮은 꼴은 있을 수 있지만 합동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규정은 불가능하다. 다만 인간이해를 돕기 위한 것뿐이다.
참고문헌
◇ 김영도, 펠라기우스주의자들과의 논쟁에 나타난 어거스틴의 성서해석
◇ 강운빈, 인간개조리론,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85
◇ 남기영 외 4명, 인간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8
◇ 배경완, 플라톤의 이상적 인간관과 그 의미, 계명대학교 석사논문, 1999
◇ 성서마당 26호, 서울: 한국성서학연구소, 1997
◇ 이대희, 인간론 강의, 중외출판사, 2000
◇ 조성발, 주체의 인간론, 평양: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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