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윤선도][고산 윤선도의 작품][고산 윤선도의 문학][고산 윤선도의 시조작품론]고산 윤선도의 생애, 고산 윤선도의 전기, 고산 윤선도 작품의 문학적 특성, 고산 윤선도의 시조작품론 심층 분석
본 자료는 7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해당 자료는 7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7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고산 윤선도][윤선도][고산 윤선도의 작품][고산 윤선도의 문학][고산 윤선도의 시조작품론]고산 윤선도의 생애, 고산 윤선도의 전기, 고산 윤선도 작품의 문학적 특성, 고산 윤선도의 시조작품론 심층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고산 윤선도의 생애

Ⅲ. 고산 윤선도의 전기
1. 해남(海南) 윤씨(尹氏)의 대종(大宗)
2. <병진소(丙辰疏)>와 경원(慶源) 유배(流配)
3. 인조반정(仁祖反正)과 왕자사부(王子師傅)
4. 병자호란(丙子胡亂)과 보길도(甫吉島)
5. 효종(孝宗)의 등극과 환해(宦海)의 격랑
6. 산릉문제(山陵問題) 및 복제문제(服制問題)와 삼수(三水) 유배(流配)

Ⅳ. 고산 윤선도 작품의 문학적 특성

Ⅴ. 고산 윤선도의 시조작품론
1. 의의식의 탐구(자연, 서경적인 작품)
2. 생활, 서정 등을 대상으로 한 작품
3. 이념, 사상 등을 배경으로 한 작품
4. 자연미의 탐구
1) 자연애의 의미
2) 풍류스러운 생활태도
3) 오우가의 윤리
4) 자연물의 상징성

참고문헌

본문내용

국문시가는 직접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그리워하는 작품들은 물론이고 귀거래(歸去來) 내지 자연(自然)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들조차도 대부분 연군지정(戀君之情)의 바탕 위에서 창작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윤선도는 임금과의 애정관계가 작품 창작의 근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임금과의 애정관계는 조선조 사대부들이라면 누구나 중시하는 것이므로, 임금과의 애정관계를 근저로 하고 있다는 것 자체는 윤선도 문학의 특성으로 지적될 수 없다. 임금과의 애정관계가 여러 가지 소재들을 통하여 독특하게 굴절되고 새롭게 이해되는 양상이 있을 때 윤선도 문학의 특성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임금과의 애정관계가 문학적으로 굴절되고 새롭게 이해되는 양상은 작가의 심리적 특성과 관련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윤선도의 심리적 특성을 주목하면서 윤선도의 한시 및 국문시가에서 여러 가지 소재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취급되고 이해되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문학적 소재들을 취급하고 이해하는 방식은 곧 임금과의 애정관계, 더 나아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관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윤선도는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자아가 매우 발달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측면을 살펴 볼 수 있는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形似仙桃落九天 모양은 선도(仙桃)가 구천(九天)에서 떨어진 듯
口如鵬擧波邊 입은 붕새 부리를 물결 너머로 쳐들은 듯
胸中雲夢惟泓識 가슴 속 운몽택(雲夢澤)이 오직 깊음을 알겠으니
麗澤多年意獨堅 함께 공부한 여러 해에 뜻이 홀로 굳도다
(<詠硯滴呼韻>)
윤선도가 17세(1603, 선조36, 癸卯) 때 지은 것으로 이 당시 윤선도가 지향하고 있는 바가 무엇이었던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한시이다. 연적(硯滴)의 겉모습을 선도(仙桃)와 붕새에 비유하고 그 속에 담긴 물을 운몽택(雲夢澤)에 견주면서 이를 모두 공부의 굳은 의지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연적의 모습이나 속성을 굳이 선도, 붕새, 운몽택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은 윤선도의 자아가 통제하여 가공한 욕망을 연적에게 투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으로 윤선도는 사사로운 정분(情分)보다는 공평무사한 이치(理致)를 더 중시하게 되었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측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吾事固非時 내 일이 진실로 때에 맞지 아니한 줄을
汝知吾不知 너는 아는데 나는 몰랐구나
讀書不及汝 글을 읽고도 너만 못하니
可謂天生癡 천치라고 이를 만도 하겠도다
(<戱贈路傍人>)
윤선도가 권신(權臣)인 이이첨(李爾瞻)을 탄핵하는 소(疏)를 올렸다가 경원(慶源)에 유배되었을 때(31세, 1617, 광해 9, 丁巳) 지은 작품이다. 여기서 너로 지칭되고 있는 인물은 홍원(洪原)의 기생인 조생(趙生)이다. 그러니까 홍원의 기생인 조생으로부터 의리만을 생각하고 때에 적절치 못한 상소를 올려서 이 지경이 된 것 아니냐는 나무람을 받고 보니 스스로 생각해도 천치인 것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의리를 위해서 결연한 자신의 의지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기생과 주고받는 한시는 애정과 관련된 사연을 노래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작품에서 애정에 관련된 언급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애정이 표현될 자리에서도 의리를 말하는 데 그칠 만큼 윤선도의 자아는 긴장되어 있는 것이다. 윤선도의 작품에서 애정에 관한 작품을 찾기 힘든 것도 이와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니까 윤선도와 여인과의 관계는 맹목적인 정열이 철저히 배제된 관계로서만 문학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윤선도는 남에게 자신을 굽히지 않는 강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측면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슬프나 즐거오나 올타 나 외다 나
내 몸의 올 일만 닫고 닫글 뿐이언뎡
그 받긔 녀나믄 일이야 분별 줄 이시랴
(<遣懷謠> 5수 중 제1수)
庭溫淸誠宜念 어버이의 안부도 진실로 염려해야 마땅하지만
宗社安危豈忍看 종사(宗社)의 안위(安危)를 어찌 차마 보고만 있으리오
以孝爲忠忠便孝 효로써 충을 하면 충이 곧 효이련만
孰云忠孝兩全難 누가 충과 효는 아우르기 어렵다 이르는가
(<睡覺思親二首>의 제2수)
둘 다 경원(慶源)에 유배되었을 적에 지은 작품들이다. <견회요(遣懷謠)>에서는 남들이 옳다고 하거나 그르다고 하거나 마음 흔들리지 않고 내 할 일만 한다 하였고, <수각사친이수(睡覺思親二首)>에서는 남들이 충과 효를 아우르기 어렵다고 하지만 효로써 충을 하면 충이 곧 효가 된다는 확신을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확신에는 망설임이나 갈등이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다. 여기서 타인은 윤선도 자신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결심이나 추론을 확인시키는 데 필요한 존재일 뿐이다. 다음으로 윤선도의 임금에 대한 감정은 복종과 지배가 상호 관련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측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내 일 망녕된 줄을 내라 야 모 손가
이 어리기도 님 위 타시로쇠
아 아리 닐러도 님이 혜여 보쇼셔
(<遣懷謠> 5수 중 제2수)
只歎妾命薄 다만 소첩의 운명 기박함을 한탄할 뿐
不怨君恩疎 임금님 은혜 소루하다 원망하진 않습니다
誰識老宮女 누가 알겠습니까 이 늙은 궁녀도
嘗辭共玉輿 일찍이 옥여(玉輿) 함께 타길 사양했던 일을
(<次班二首韻四首>, 제1수)
<견회요(遣懷謠)>는 경원(慶源)에 유배되었을 적에 지은 것이고, <차반첩여이수운사수(次班二首韻四首)>는 64세(1650, 효종 1, 庚寅) 때 해남(海南)에 은거하면서 지은 것이다. <견회요>에서는 망녕되다고 할 만큼 무모한 일을 한 것도 다 임금을 위한 일이었음을 노래하고 있고, <차반첩여이수운사수>에서는 임금에게 버림받은 늙은 궁녀 반첩여의 입을 빌어 자신도 무턱대고 임금의 사랑을 구걸한 것은 아님을 노래하고 있다. 임금이 자신을 탓하거나 멀리할 적에 이를 수용하여 복종함과 동시에 자신의 정당함과 떳떳함을 간곡하고도 단호하게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윤선도는 자아에 의하여 억제된 욕망의 충족을 위하여 음악에 의지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측면을 확인시켜 주는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렷던 가얏고 줄 연저 노라보니
淸雅
  • 가격7,500
  • 페이지수21페이지
  • 등록일2009.10.10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5582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