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세례 요약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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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 1장 성령 충만

제 2장 새민족

제 3장 부활하신 예수님의 성령 수여

제 4장 아버지의 약속

제 5장 세례받아 한 몸이 됨

제 6장 오순절의 목적

제 7장 오순절의 양식

제 8장 단회적 세례․ 단회적 충만

제 9장 성령의 열매(들)와 성령의 은사들

제 10장 모든 먼데 사람들에게

제 11장 신령한 것에 대하여

제 12장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것

제 13장 열거된 은사의 순서와 가치성의 관계

제 14장 선지자들과 예언

제 15장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제 16장 방언에 대한 바울의 입장

제 17장 고린도 교회의 분쟁은 어디서 비롯되었나?

제 18장 고린도에 미친 영지주의의 영향

제 19장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제22장 생수의 강

본문내용

비롯되었나?
고린고 교회는 분열되어 있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분파 정신을 세속적이며 미성숙한 것으로 징계하였다. 그는 본질적으로 감정적 성숙과 온유한 성품의 소유를 권면하였지 지성적 집착을 호소한 것이 아니었다. 바울이 기록한 고린도서를 보면 정통 기독교와 영지주의적 이단은 교회 내에서 서로 경쟁 상대로서 나란히 존재하였다.
제 18장 고린도에 미친 영지주의의 영향
정통 기독교와 영지주의 이단의 대결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째 서신에서도 그 흔적을 적잖이 발견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2장 6절 이하 --- “우리가 지혜를 말하노니” 이 구절에 나타난 “지혜”에 대한 바울의 변론은 고린도 회중 사이에 편만했던 초기 영지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론이었음이 틀림없다. 고린도전서 5장 1절 이하 ---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두 번째 예증은 극악한 윤리적 범죄와 관련된바, 특히 엄청난 비윤리적 죄를 저지른 죄인에 대해 고린도 교회가 보인 납득하기 힘든 무관심 상태를 고발하는 내용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엄격한 금욕주의를 주장한 영지주의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반대로, 금욕적 덕목을 파기하고 “무절제한 성적 방종의 극단으로 치달은 이들도 있었다.” 그 두 가지 반작용은 모든 사물을 본유적으로 악한 것으로 본 그릇된 관념에서 파생되었다. 영지주의와 같은 사상이 제공한 철학적 종교적 이론의 배경이 없었더라면 계시된 도덕률로 인한 긴장만으로도 고린도 회중은 그러한 범죄를 즉각 단죄 처분했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7장 --- 독신 대 결혼, 또한 이중적 도덕 기준은 독신이냐, 결혼이냐의 문제를 다룬 고린도전서 7장에도 암시되어 있다. 고린도전서 8장 1절 - 10장 33절 --- “우상의 제물에 관하여” 바울은 다시 우상의 제물로 쓰인 고기를 먹는 문제에 관한 논의에서 격렬한 논쟁의 불씨가 되었던 견해들을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다.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 회심자들은 개종의 선결 조건으로서 유대교의 의식법이라는 멍에를 짊어져야 하는가? 고린도 교회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는 영지주의의 자유사상과 유대주의의 엄격성 사이에서 갈 등을 촉발시키기에 충분했다. 영지주의의 영향으로 그 문제로 인한 갈등이 심화된 곳은 고린도만이 아니었다. 골로새에서도 영지주의의 금욕주의적 성향이 우세했었다. 고린도전서 15장 --- 죽은자의 부활, 끝으로, 부활에 관한 논의는 영지주의 교리를 배경으로 할 때 보다 선명해질 것이다. 여기에 언급된 이단이 “승귀하신 그리스도나 영화롭게 된 신자들의 육체 부활을 전형적으로 부인하는” 영지주의 이단이라는 결론은 회피하기 어렵다. 결국 영지주의라는 한 점으로 수렴되는 그러한 세력들은 바울이 고린도전서나 그 밖의 서신들에 언급된 극단적인 방종이나 금욕적 형태를 둘러싼 갖가지 문제들에 대한 해명이 될 것이다.
제 19장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제22장 생수의 강
신령한 것들(the spirituals)에 대한 바울의 논의 결과는 두 개의 간단한 명령문으로 요약된다 :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여기서 반은사적 정신이 고린도 교회 바깥으로 그 정체를 드러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멸시하다”와 “금하다”라는 이 단어들은 “예언”과 “방언”이라는 성령의 사역들에 대한 반대 세력이 강했음을 가리킨다. 이사야 시대의 “이 백성”이나 고린도 교회의 “무식한 자들”, 그리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적어도 외적으로는 언약 공동체와 동일시되었다. 그들은 이 공동체 안에 있었을지는 몰라도 결코 소속돼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중에 임한 하나님의 “은사적” 현상들을 이해하거나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만약 방언이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면, 바울은 초대 교회 예배에 대한 개요에서 방언을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며 굳이 통역과 함께 둘, 혹은 세사람으로 제한하는 규정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그는 방언을 완전하게 금하는 간단한 방법을 택하였을 것이다. 만일 모든 성령의 은사들이 “유익하게 하려 하심”으로 전체 공동체의 덕을 세우기 위한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이러한 성령의 능력 부여가 없다고 하는 것은 상당 부분의 동시대 기독교의 능력을 상실한 예배 경험을 조용히,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득력있게 지적하는 말이다.
오늘날 드디어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강이 넘쳐나기 시작하였고 비로소 우리는 베드로가 한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사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그렇다면 다음의 이 질문은 단순히 학문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순절의 “강”이 지금도 똑같은 초자연적 현상과 결과들을 수반하며 흘러 넘치는가? 예수께서 성령의 부어 주심에 대한 당신의 예언을 선포하신 상황을 재구성해 보면 극적 효과가 더욱 가미된다. 이러한 성령의 “강”이 흘러 넘칠 때 그는 당신의 인격과 임재를 초자연적 은사들을 통해 나타내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약속”, 오순절의 충만함과 능력 안에 있는 “성령의 은사”까지도 정말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교회의 오순절적/은사적 부흥은 성경의 증거와 철저하게 일치된다.
사도 시대는 이적과 기사로 시작되었다. 오순절날 이후로 “방언”에 뒤이어 급속하게 고린도전서 12-14장에 열거된 그 외 다른 모든 다양한 성령의 은사들이 연속적으로 뒤따랐다. 그리고 이들 초자연적인 성령의 현상들이 교회 시대 전체를 통해 계속될 것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가서야 종결될 것임은 성경에 증거된 자명한 사실이다. 사도행전은 오직 그러한 “부흥”의 기사들이 충만한 책이다. 정말 중요하면서도 흔히 간과되어온 사실은 그것이 바로 “오순절적” 부흥이라는 것이다. 복음은 은사적 표적들, 즉 방언과 치유, 기적, 축귀 현상 등의 맥락에서 선포되었다. 성경적 부흥의 패턴은 바로 그런 것이다. “오순절적” 부흥, 오직 그것만이 우리 시대의 도전과 기회에 적합한 부흥의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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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0.14
  • 저작시기19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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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56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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