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다빈치&미켈란젤로&김영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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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레오나르도다빈치&미켈란젤로&김영갑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로의 조각가로서의 자존심은 대단한 것이어서, 당시 교황과 왕들이 그에게 작품 의뢰를 요구했던 것을 번번이 물리쳤다는 것이 일화로 남아 있다. 이 작품도 원래는 한 후원자를 위해 만들다가 그가 죽은 후 율리우스를 위해 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의 \"노예\"는 곧 죽음에 이를, 그런 상태에 있다. 차가운 대리석으로 제작되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과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에 부여한 생명성에 기인한다. 즉 덩어리 속에 한 인물이 감추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작업을 한 것, 삶의 투쟁과 긴장에서 해방되는 이 노예의 마지막 순간을 실제 노예를 앞에 두고 묘사한다는 믿음으로 작업한 것이, 이 작품을 살아있게 만든 것이다조상의 윤곽선에는 대리석 덩어리라는 본래의 형태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조상의 포즈가 복잡한 구성을 가진다 하더라도 본래의 단순하고 안정된 통일성을 획득하고 있다. 피로와 육체의 고단함으로 가득 찼던 지상에서의 고단함을 이제 놓을 수 있게 된 노예의 나른한 표정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두려움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준비하기 위한 휴식으로 진입하기 위해 반쯤 벗은 옷을 이제 막 올리려고 하고 있다.
<모세상1513-1516년 로마, 빈콜리, 산 피에트로 성당>
시스티나 천정화가 완성되고 얼마있지 않아서 당시의 교황 율리우스 II가 사망했는데, 그때 유언에, 1505년에 계약한 바 있는 미켈란젤로의 율리우스 II 묘당을 위해 10,000 두카덴(Dukaten)을 남겨 놓았다. 사실 이 묘당을 위해서 계획하고 추진하던 미켈란젤로의 그간의 노력은 그 시스티나 천정 벽화의 고난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식은 적이 없었다. 그곳에 안치될 상의 하나로 예정된 것이 바로 이 모세상이다. 머리 위의 뿔과 십계의 石板(석판)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 예고자로서의 모세는 그 위엄의 모습을 대리석에서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여기서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여러 예언자 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형태감을 넘어서서, 평생 대리석을 유일한 매체로 삼던 미켈란젤로의 조각가로 서의 본격적인 대결이 그의 응집된 量塊(양괴) 속에서 이 <모세>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영묘의 중앙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걸작품으로 불타는 정열로 거대한 기념비를 시작했는데 시기하던 사람들 때문에 백지화되었다가 몇십년이 지난 후 대폭 축소되어 고령에 접어든 미켈란젤로가 혼열을 기울려 제작했지요.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내려온 모세가 우상숭배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분노에 찬 눈으로 지켜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며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서 힘과 정기가 넘치는 모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조각이 완성 되었을 때 로마의 유태인들은 샤바트(유태교 안식일 ) 때마다 찾아와 경배를 드렸다 한다.
<최후의 심판 1534∼41년, 프레스코> 부분도
세상과 인간의 탄생과 그에 관련된 것들을 거대한 화면에 담아낸 혈기왕성한 37세의 대화가 미켈란젤로는 회갑이 넘어 신이 창조한 세상의 종말을 그리기 위해서 다시 이곳을 찾는다. 1534년부터 7년간에 걸쳐 작업한 이 작품은 391명의 군상이 난무하며 장대한 구도와 복잡한 구성, 그리고 전체적인 움직임에 있어서 흐트러짐이 없는 그의 만년의 대작이다. 성경에 예시된 최후의 날의 그리스도 재림과 그 때 행해지는 심판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천국에 대한 인간의 갈망과 지옥의 공포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최후의 날에 부활하는 사람들과 심판에 의해 끌어올려지는 선인과 밀려나는 악인은 당당한 심판간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다. 단테가 \'신곡\'에서 지옥과 연옥, 천국을 묘사하면서 그 곳에서 만난 인물들을 비평하고 평가하여 오랜 역사를 심판하였듯이 미켈란젤로는 그의 벽화에서 그러한 심판을 하였다.
중앙에 있는 예수는 오른손을 들어 심판을 하고 왼손으로는 주위의 착한 자들을 부르고 있다. 곁에는 인자한 성모가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들러싸고 있고, 예수의 발 아래 오른쪽에는 사도 바르톨로메오가 영혼과 육체가 빠져 나간 미켈란젤로의 껍데기를 쥐고 있다. 작가는 덧없는 인생을 살아온 자신의 위치를 그렇게 예언했다. 예수의 오른쪽에 열쇠를 들고 있는 백발의 노인은 성 베드로이고 그 왼쪽은 성 바울이다. 마리아의 왼쪽에는 십자가를 든 성안드레아와 노인 모습의 성 요한이 있다. 글미의 윗부분은 천국에서 만나는 기쁨을 그렸고, 중간 부분에는 하나님의 성도들이 심판관에게 순교자의 심벌을 각자 보이고 있으며, 하단의 좌측에는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묘사되어 있는가하며 우측은 반대로 천당으로 가는 것을 막고 있는 장면이다. 무거운 죄를 지은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천사들의 부측을 받아야 천당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이 작품은 \'천지창조\'를 그리던 때와는 달리 종교개혁으로 전 기독교계가 몸살을 앓고 있던 때라 당시의 비극적인 시대상과 노년에 접어든 미켈란젤로의 비관적인 인생관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 예술가의 사회적 위치 *
당시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을 장인들과 동일시하는 풍조가 만연해오면서 당사자들은 그 고정관념을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자신들의 직업을 학예의 수준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예술가들은 새로 개발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단순한 장인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주장했다. 14c에비해 15c에 예술가들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고 기베르티와 부르넬리스키가 요직을 맡은 후 시간이 흘러 16c에는 예술가들이 대단히 존경받기까지 이른다. 특히 미켈란젤로 등 거의 신적인 예술가들이 등장하면서 회화.조각이 학예에 포함된다는 주장이 힘을 더했다. 이에 반박하는 이론들도 아주 많았지만 그 또한 굉장히 피상적으로 단순히 손으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멸시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예전의 회화예술이 존경을 받았다는 사실을 다시 들추어내는 일, 유력가,왕족들이 예술가에게 호의를 베푼 일등을 언급할 뿐이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모든 지적인 학문과 예술을 연결시키려했다. 단순히 지위
  • 가격3,000
  • 페이지수28페이지
  • 등록일2009.10.19
  • 저작시기2008.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57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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