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을_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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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산업혁명을_넘어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 론

본 론
여러 다양한 성장
성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분업과 성장
분업: 선대제의 종말
산업가
영국 사회의 영역별 분할
분업과 영국의 지리
금융과 자본주의
콩종크튀르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물질적 진보와 생활수준

결론: 역사와 현실
장기지속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사회
자본주의는 살아남을 것인가?
마지막 결론: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본문내용

팽창한 것은 무엇보다도 산업생산에 전력을 다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였다. 기업가들은 중간에서 매개하는 상인들을 이용하지 않고 스스로 원재료의 구입과 조달, 그 품질과 규칙적인 확보 등의 문제를 담당한다. 대량 판매를 원하기 때문에 이들은 스스로 시장상황의 변동을 파악하고 거기에 적응하려고 한다. 이런 행동은 새로운 차원의 산업에 조응하는 것이다. 피터 마시어스는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부를 쌓아 1817년경에는 부호로 모습을 드러낸 토마스 큐비트라는 공공 토목 사업 기업가의 예를 이런 관점에서 인용하고 있다. 그의 성공은 기술적인 혁신과는 전혀 무관하며 단지 새로운 방식의 업무관리에 의한 것이다. : 이 분야에서 옛날에는 반드시 있게 마련이었던 하청인들을 없앴으며 상임 노동력을 확보하고 자신의 크레딧도 조직했다.
이런 독립성은 새로운 시대의 표시가 되었다. 마침내 산업과 다른 사업영역 사이의 분업이 완수되었다. 역사가들은 이것에 대해서 산업자본주의의 도래라고 이야기했으며 나 역시 여기에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역사가들은 동시에 이 시기에 가서야 진정한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영국 사회의 영역별 분할
장기적인 성자의 영향 아래에 있는 사회는 전체적으로 분업에 의해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은 어느 곳에서나 분업이 진행되었다. 언제나 최대의 지위를 차지하던 농업영역이 축소되고 2차 영역(공업)과 3차 영역(서비스업)이 증대했다.
산업을 3영역으로 나누는 것이 결코 완전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1차 산업과 2차 산업사이의 구분이 모호한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농업과 공업이 섞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포괄하는 3차 산업에 대해서는 그 구성이 무엇이며 더 나아가서 그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묻게 된다. 일반적으로 여기에는 상업, 수송업, 은행업, 행정과 같은 ‘서비스’ 업종을 넣지만 여기에서 하인층은 배제해야만 하는 것인가? 엄청난 수에 달하는 가내하인들(1850년경에 영국의 하인들의 수는 100만 명 이상으로서 농업종사 인구에 약간 못 미치는 두 번째의 직업집단이었다.)을 원칙적으로 다른 업종에 비해서 높은 생산성을 가지는 3차 산업영역 속에 분류하는 것이 타당한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을 염두에 둔 채, 피셔-클라크의 법칙대로 3차 산업분야가 점차 증대한다는 것은 사회가 발전도상에 잇다는 증거라는 점을 일단 받아들이도록 하자.
하트웰의 판단에 의하면 역사가들과 경제학자들은 18-19세기 영국의 발전에서 3차 산업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서비스 혁명의 진전은 상업혁명의 또 다른 측면으로서 농업혁명에 비견되는 현상이다.
서비스 분야가 팽창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수송업이 발달하고, 상업영역이 세분화되고, 점포가 끊임없이 증가하는 동시에 전문화되어가며, 기업이 규칙적인 리듬으로 수가 늘어나며 또 관료화하고, 대리인, 회계원, 검사원, 보험 계리사, 위탁판매업자 등 새로운 혹은 새로워지는 직능들이 늘어가고 은행의 수가 곧 크게 증가했다. 수많은 행정업무를 책입지고 있는 국가 역시 관료화되어갔다. 그리하여 비대증에 걸렸다.
18세기 영국에서 이러한 3차 산업의 혁명이 일어난 원인은 산업의 발달에 있을까? 그것은 말하기 힘든 문제이다. 특히 콜린 클라크 자신이 말한 것처럼 영역별 분할은 언제나 존재했고 늘 계속되며 장기지속 속에서 존재하는 만큼 더욱 어려운 문제이다. 어쨌든 3차 산업의 확대가 성장을 가져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성장의 표시라는 점이다.
분업과 영국의 지리
남은 문제는 분업이 발달하면서 영국의 경제적 지리를 재편하도록 유도한 충격을 추격해보는 일이다. 영국에서는, 프랑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18세기의 팽창과 함께 지방의 자급자족의 벽이 허물어지는 일 이상의 것이 일어났다. 영국의 각 지방들 상호간의 작용이야말로 영국의 성장과 영국내의 산업혁명에 대해서 가장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최상의 문서이다. 영국의 공간은 세 번 강 하류에 있는 글로스터로부터 보스턴을 뺀 나머지 영국의 국토를 거의 같은 면적을 가지고 서로 대치하는 두 공간으로 나누고 있다. 남동부 지방은 런던 분지와 그 주변지역으로 대변되는 곳으로서 가장 비가 적은 곳이다. 이곳은 동시에 가장 역사적 연구가 많이 이루어진 지역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서 북서부 지방은 비가 많이 오고 언덕이 많아 주로 가축을 사육하는 지역이다. 이웃 지역에 비해서 이곳은 일종의 주변부 지역이고 지체해 있는 곳이다. 수치상으로도 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17세기에 (런던을 제외한) 인구비는 1:4였고 (조세자료로부터 계산한) 부의 비율은 5:14였다.
그런데 산업혁명은 이 불균형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았다. 과거에 특권적인 지위를 누렸던 영국(남부지방)에서는 전통적인 산업이 쇠퇴했다. 이곳은 자본주의적인 부와 상업상의 힘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산업을 받아들이고 정착시키지 못했다. 이와 반대로 구분선 이북의 또 다른 영국은 “몇 세대만에” 놀라울 정도로 근대적인 부유한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금융과 자본주의
힐퍼딩은 오래된 모험인 자본주의가 20세기에는 금융자본주의로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이때는 산업자본주의라는 성부, 훨씬 처지는 위치에 있지만 상업자본주의라는 성자, 그리고 모든 곳을 다 뚫고 들어가는 돈의 자본주의라는 성령의 삼위일체의 시대라고 보았다. 이러한 이미지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힐퍼딩은 순수한 산업자본주의라는 생각에 저항한 것이며, 자본의 세계는 폭이 넓은 세계로서 금융이 나머지 모든 것에 대해서 우위를 가지며 침투하고 지배하는 세계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이런 시각에 동의하지만 자본주의의 복수성이 아주 오랜 현상이라는 점, 금융자본주의는 1900년대 초에 가서야 새로 생긴 것이 아니고 과거에 상업자본주의의 현격한 성장과 정상적인 투자기회를 훨씬 상회하는 자본축적이 이루어진 후에 이 금융자본주의가 일시적으로나마 전사업계를 장악하고 지배할 수 있었다는 점등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한다.
영국은 20세기 초 훨씬 이전에 이미 “돈의 자본주의”의 성장을 비롯해서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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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1.02
  • 저작시기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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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59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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