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물 6 유럽 이외에서의 증류주
2 포도주 7 코코아
3 맥주 8 차
4 시드르 9 커피
5 유럽에서의 증류주의 때늦은 성공 10 자극제 : 담배의 영광
Ⅱ. 본론
1 물 6 유럽 이외에서의 증류주
2 포도주 7 코코아
3 맥주 8 차
4 시드르 9 커피
5 유럽에서의 증류주의 때늦은 성공 10 자극제 : 담배의 영광
본문내용
르메니아 인들이었는데 끈을 두른 광주리에 커피 제조기, 화로, 잔들을 담아가지고 다녔다. 하타리운이라는 아르메니아 인은 파스칼이라는 가명을 쓰면서 1672년에 커피를 파는 가게를 최초로 열었다.
근대적인 카페는 어떤 특정한 구역이나 특정한 거리에서만 볼수있는 특권으로만 머물러 있지 안았다. 어쨌든 파리의 변천에 따라 점차 강의 좌안(강남)보다는 우안(강북)이 활기찼고 그만큼 더 유리해졌는데, 이것은 18세기 파리에 있는 카페들의 위치를 보여주는 한 약도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것에 의하면 이 시기에 파리에는 700-800개의 카페가 있었다. 다음에는 1681년에 팔레-루아얄 광장에 세워진 레장스 카페가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그러다가 팔레-루아얄 광장이 커지면서 이 카페는 현재의 위치인 생-토노레 거리로 이주했다)
조금씩 조금씩 카바레가 카페의 영예 때문에 밀려나게 되었다. 이 유행은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에서도 똑같았다. 리스본에서는 브라질에서 들어온 커피의 값이 매우싸싸고 게다가 여기에 집어넣는 설탕 역시 값이 싸서, 한 영국인에 의하면 커피에 설탕을 얼마나 부어넣는지 잔 속에 있는 티스푼이 서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편 유행을 타고 있던 커피는 단지 우아한 사람들만이 마시는 음료로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가격이 올라가고 있는 중에도 식민지 섬들에서 풍부하게 생산하는 커피는 가격이 거의 고정되었다.
18세기 중반부터 파리만이 아니라 프랑스 전체에서 커피 소비량이 크게 증가한 것은 유럽이 자체적으로 그 생산을 조직했기 때문이다. 세계시장이 다만 아라비아에 있는 모카 부근의 커피 나무에만 의존하는 한 유럽의 수입량은 심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712년부터 자바에 커피 나무를 옮겨심기 시작했다. 1716년에는 부르봉 섬에, 1722년에는 카옌 섬에, 1723-1730년에는 마르티니크 섬에, 1730년에 자메이카 섬에, 그리고 1731년에 산토 도밍고 섬에 커피 나무를 심었다. 이 연대는 커피의 생산 연대는 아니다. 이 섬들에서 생산된 커피가 프랑스에 수입 되어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은 1730년 이후이다. 커피 나무가 자라고 구 수가 늘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비량의 수치를 불려서는 안 될 것이다. 다소라도 정확한 검사를 해보면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1787년에 프랑스가 수입한 양은 약 38,000톤이었는데 이중 36,000톤을 재수출했으며, 파리 혼자서 소비한 양이 1,000톤 가량되었다. 지방 도시들은 아직 이 새로운 음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모주의 부르주아들은 커피를 “약으로서만“마셨다. 다만 일부 사회계층만이 유행을 좇아갔다.
10. 자극제 : 담배의 영광
:사실 모든 문병은 사치스러운 음식과 일련의 “흥분제“를 필요로 한다. 12-13세기에는 향신료와 후추에 대해서 열광했고, 16세기에는 초기의 증류주에 대해서, 그 다음에는 차, 커피, 담배에 대해서 열광했다. 19-20세기에는 새로운 사치품으로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마약이 생겨나게 되었다. 하여튼 한 가지 재미있는 자료가 있는데, 이것은 17세기 초의 베네치아의 재정에 관한 문서로서, 이성적으로 또 그러면서도 재미있게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가 가진 조망이 잘못된 것일까? 대단히 심각한 식량의 위기가 악화되거나 적어도 위기가 지속될 때 사람들은 보상을 요구하게 되며, 이것이 삶의 항상적인 규칙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다.
담배가 바로 이러한 보상의 하나이다. 그러면 이것을 어디에 분류하는 것이 옳을까? “파리 의과대학 담임 의사이며 왕립 과학 아카데미 담임 의사“인 루이 르므리는 그의 음식론에서 주저없이 이렇게 말한다. 이 식물은 “코로, 또는 연기로 섭취하거나, 씹어서 섭취한다.“ 그는 또한 코카 나무 잎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으며, 아편에 대해서는 서구에서보다 터키 인들 사이에서 더 많이 소비되며 “사용하기에 위험한“ 약이라고 암시할 뿐이었다.
여기에서는 담배에 한정하여 말하도록 하자. 16-17세기 동안 담배는 세계 전체를 장악하게 될 것이며 그 성공은 커피나 차보다도 더 크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담배는 “신세계“가 원산지인 식물이다. 1492년 11월 2일 콜럼버스가 쿠바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인디오들이 담뱃잎을 말아서 피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식물은 그 이름과 함께 유럽으로 넘어갔으며, 꽤나 오랫동안 식물학 정원에서 단순한 신기함의 대상으로 남아 있거나 혹은 사람들이 거기에 부여한 의학적 효능만으로 알려졌다.
적어도 1588년부터 코담배가 리스본에서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리스본, 세비야, 특히 암스테르담에서 상업화한 담배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은 17세기 초 이후의 일이다. 담배를 사용하는 세가지 방법-코담배, 연기 담배, 씹는 담배-중 앞의 두 가지가 더 중요하다. “가루 담배“는 곧 여러가지 방식을 띠게 된다. 그것은 사향, 호박, 베르가모트, 오렌지 꽃 등 어떤 첨가물을 넣느냐에 따른 것이었다. “스페인 식 담배“, “말타 향기“, 또는 “로마 향기“같은 것들이 나왔는데 “이런 것들은 대영주들만큼이나 저명한 귀부인들이 애용했다“ 그 다음에는 연기 담배가 성공했다. 이것은 우선 오랫동안 파이프를 사용하다가 다음으로 시가 방식이 되었다.
더 후일에는 시가페트 방식으로 된다. 이것은 “신세계“에서 나타난 것 같다. 17087년의 프랑스의 한 비망록을 보면 “잘게 썬 담뱃잎을 작은 말이 모양으로 싸서 피우기 위해서 “ 유럽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종이“를 수입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시가페트는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스페인으로부터 퍼져나갔다. 이제 담배를 파펠리토라고 부르는 작은 크기의 종이에 말아서 피우는 관습이 생겼다. 이 파펠리토는 프랑스로 전해져서 무수히 많은 젊은이들의 인기를 얻었다. 그러는 동안 종이가 가벼워졌다.
어쨌든 아프리카에서도 담배가 유행했다. 이곳에서는 담배의 질은 삼류품이었지만 당밀을 입힌 긴 노끈 모양의 검은 담배가 유행했는데 이것을 위해서 19세기에 바이아와 베냉 만 사이에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졌다. 바로 이곳이 1850년경까지 비밀 노예 무역이 활기있게 유지된 곳이다.
근대적인 카페는 어떤 특정한 구역이나 특정한 거리에서만 볼수있는 특권으로만 머물러 있지 안았다. 어쨌든 파리의 변천에 따라 점차 강의 좌안(강남)보다는 우안(강북)이 활기찼고 그만큼 더 유리해졌는데, 이것은 18세기 파리에 있는 카페들의 위치를 보여주는 한 약도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것에 의하면 이 시기에 파리에는 700-800개의 카페가 있었다. 다음에는 1681년에 팔레-루아얄 광장에 세워진 레장스 카페가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그러다가 팔레-루아얄 광장이 커지면서 이 카페는 현재의 위치인 생-토노레 거리로 이주했다)
조금씩 조금씩 카바레가 카페의 영예 때문에 밀려나게 되었다. 이 유행은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에서도 똑같았다. 리스본에서는 브라질에서 들어온 커피의 값이 매우싸싸고 게다가 여기에 집어넣는 설탕 역시 값이 싸서, 한 영국인에 의하면 커피에 설탕을 얼마나 부어넣는지 잔 속에 있는 티스푼이 서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편 유행을 타고 있던 커피는 단지 우아한 사람들만이 마시는 음료로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가격이 올라가고 있는 중에도 식민지 섬들에서 풍부하게 생산하는 커피는 가격이 거의 고정되었다.
18세기 중반부터 파리만이 아니라 프랑스 전체에서 커피 소비량이 크게 증가한 것은 유럽이 자체적으로 그 생산을 조직했기 때문이다. 세계시장이 다만 아라비아에 있는 모카 부근의 커피 나무에만 의존하는 한 유럽의 수입량은 심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712년부터 자바에 커피 나무를 옮겨심기 시작했다. 1716년에는 부르봉 섬에, 1722년에는 카옌 섬에, 1723-1730년에는 마르티니크 섬에, 1730년에 자메이카 섬에, 그리고 1731년에 산토 도밍고 섬에 커피 나무를 심었다. 이 연대는 커피의 생산 연대는 아니다. 이 섬들에서 생산된 커피가 프랑스에 수입 되어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은 1730년 이후이다. 커피 나무가 자라고 구 수가 늘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비량의 수치를 불려서는 안 될 것이다. 다소라도 정확한 검사를 해보면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1787년에 프랑스가 수입한 양은 약 38,000톤이었는데 이중 36,000톤을 재수출했으며, 파리 혼자서 소비한 양이 1,000톤 가량되었다. 지방 도시들은 아직 이 새로운 음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모주의 부르주아들은 커피를 “약으로서만“마셨다. 다만 일부 사회계층만이 유행을 좇아갔다.
10. 자극제 : 담배의 영광
:사실 모든 문병은 사치스러운 음식과 일련의 “흥분제“를 필요로 한다. 12-13세기에는 향신료와 후추에 대해서 열광했고, 16세기에는 초기의 증류주에 대해서, 그 다음에는 차, 커피, 담배에 대해서 열광했다. 19-20세기에는 새로운 사치품으로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마약이 생겨나게 되었다. 하여튼 한 가지 재미있는 자료가 있는데, 이것은 17세기 초의 베네치아의 재정에 관한 문서로서, 이성적으로 또 그러면서도 재미있게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가 가진 조망이 잘못된 것일까? 대단히 심각한 식량의 위기가 악화되거나 적어도 위기가 지속될 때 사람들은 보상을 요구하게 되며, 이것이 삶의 항상적인 규칙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다.
담배가 바로 이러한 보상의 하나이다. 그러면 이것을 어디에 분류하는 것이 옳을까? “파리 의과대학 담임 의사이며 왕립 과학 아카데미 담임 의사“인 루이 르므리는 그의 음식론에서 주저없이 이렇게 말한다. 이 식물은 “코로, 또는 연기로 섭취하거나, 씹어서 섭취한다.“ 그는 또한 코카 나무 잎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으며, 아편에 대해서는 서구에서보다 터키 인들 사이에서 더 많이 소비되며 “사용하기에 위험한“ 약이라고 암시할 뿐이었다.
여기에서는 담배에 한정하여 말하도록 하자. 16-17세기 동안 담배는 세계 전체를 장악하게 될 것이며 그 성공은 커피나 차보다도 더 크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담배는 “신세계“가 원산지인 식물이다. 1492년 11월 2일 콜럼버스가 쿠바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인디오들이 담뱃잎을 말아서 피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식물은 그 이름과 함께 유럽으로 넘어갔으며, 꽤나 오랫동안 식물학 정원에서 단순한 신기함의 대상으로 남아 있거나 혹은 사람들이 거기에 부여한 의학적 효능만으로 알려졌다.
적어도 1588년부터 코담배가 리스본에서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리스본, 세비야, 특히 암스테르담에서 상업화한 담배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은 17세기 초 이후의 일이다. 담배를 사용하는 세가지 방법-코담배, 연기 담배, 씹는 담배-중 앞의 두 가지가 더 중요하다. “가루 담배“는 곧 여러가지 방식을 띠게 된다. 그것은 사향, 호박, 베르가모트, 오렌지 꽃 등 어떤 첨가물을 넣느냐에 따른 것이었다. “스페인 식 담배“, “말타 향기“, 또는 “로마 향기“같은 것들이 나왔는데 “이런 것들은 대영주들만큼이나 저명한 귀부인들이 애용했다“ 그 다음에는 연기 담배가 성공했다. 이것은 우선 오랫동안 파이프를 사용하다가 다음으로 시가 방식이 되었다.
더 후일에는 시가페트 방식으로 된다. 이것은 “신세계“에서 나타난 것 같다. 17087년의 프랑스의 한 비망록을 보면 “잘게 썬 담뱃잎을 작은 말이 모양으로 싸서 피우기 위해서 “ 유럽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종이“를 수입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시가페트는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스페인으로부터 퍼져나갔다. 이제 담배를 파펠리토라고 부르는 작은 크기의 종이에 말아서 피우는 관습이 생겼다. 이 파펠리토는 프랑스로 전해져서 무수히 많은 젊은이들의 인기를 얻었다. 그러는 동안 종이가 가벼워졌다.
어쨌든 아프리카에서도 담배가 유행했다. 이곳에서는 담배의 질은 삼류품이었지만 당밀을 입힌 긴 노끈 모양의 검은 담배가 유행했는데 이것을 위해서 19세기에 바이아와 베냉 만 사이에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졌다. 바로 이곳이 1850년경까지 비밀 노예 무역이 활기있게 유지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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