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65第六十五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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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열국지 65第六十五回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하며 어미가 노대부 숙손교여의 딸이니 즉위시키면 노나라와 우호를 맺을 것입니다.
衆人皆唯唯。
여러 사람이 모두 예예만 했다.
於是迎公子杵臼爲君,是爲景公。
이에 공손저구를 맞이하여 임금으로 삼으니 그가 제나라 경공이다.
時景公年幼,崔自立爲右相,立慶封爲左相。
이 때 경공이 어릴때 최저는 스스로 우상이 되며 경봉을 좌상으로 삼았다.
盟群臣於太公之廟,刑牲血,誓其衆曰:
여러 신하와 강태공의 사당에서 맹세하길 희생소를 죽여서 피를 바르고 여럿이 맹세하여 말했다.
「諸君有不與崔慶同心者,有如日!」
여러 사람들이 최저와 경봉과 마음을 같이 하지 않으면 태양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慶封繼之,高國亦從其誓。
경봉이 계속하며 고지와 국하도 또한 맹세를 따랐다.
輪及晏,仰天嘆曰:
순서가 안영에 이르자 안영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했다.
「諸君能忠於君,利於社稷,而不與同心者,有如上帝!」
제군이 군주에게 충성하며 사직에 이로우면서 나는 그와 마음을 함께하지 않으면 상제께서 용서치 않으리라!
崔慶俱色變。
최저와 경봉이 모두 안색이 변했다.
高國曰:「二相今日之,正忠君利社稷之事也。」
고지와 국하가 말하길 2재상은 금일 의식거행은 바로 군주에게 충성하고 사직을 이롭게 하는 일입니다.
崔慶乃悅。
최저와 경봉은 기뻐하였다.
時黎比公在齊國,崔慶奉景公與黎比公爲盟,黎比公乃歸。
이 때 거나라 여비공이 오히려 제나라에 있어서 최저와 경봉은 경공을 받들어 여비공과도 동맹하니 여비공은 거나라에 돌아갔다.
崔命棠無咎斂州綽賈等之屍,與莊公同葬於北郭,減其禮數,不用兵甲,曰:
최저는 당무구에게 주작과 가거등의 시체를 수습하고 장공과 함께 북곽에 함께 장례하게 하며 예의 수를 감소케 하며 병갑도 사용하지 않고 말했다.
「恐其逞勇於地下也。」
지하에서도 용력으로 마음대로 할까 두렵다.
命太史伯以疾書莊公之死,太史伯不從,書於簡曰:
태사 백을 시켜 학질로 장공이 죽었다고 적게 하니 태사인 백이 따르지 않고 서간에다 다음처럼 썼다.
「夏五月乙亥,崔其君光。」
여름 5월 을해일에 최저가 군주 광[제장공]을 시해했다.
見之大怒,殺太史。
최저가 보고 크게 분노하여 태사를 죽였다.
太史有弟三人,曰仲、叔、季。
태사는 아우 세 사람이 있는데 중, 숙, 계였다.
仲復書如前,又殺之;
중은 전처럼 글을 다시 쓰니 최저가 또한 그를 죽였다.
叔亦如之,復殺之;
숙이 또한 그처럼 쓰니 최저가 다시 그를 죽였다.
季又書,執其簡謂季曰:
계도 또한 글을 쓰니 최저가 글을 잡고 계에게 말했다.
「汝三兄皆死,汝獨不愛性命乎?若更其語,當免汝。」
너희 3형제가 모두 죽었으니 내가 홀로 생명을 아끼지 않느냐? 만약 글을 고쳐쓰면 너를 죽음을 면하게 해주겠다.
季對曰:「據事直書,史氏之職也。失職而生,不如死!昔趙穿晉靈公,太史董狐,以趙盾位爲正卿,不能討賊,書曰:『趙盾其君夷。』盾不爲怪,知史職不可廢也。某不書,天下必有書之者。不書不足以蓋相國之醜,而徒貽識者之笑,某是以不愛其死,惟相國裁之!」
계가 대답하길 일에 근거하여 글을 정직하게 씀이 사관의 직무입니다. 직무를 잃고 살으면 죽음만 못합니다. 예전에 조돌이 진나라 영공을 죽여서 태사인 동호가 조순의 지위가 정경이 되어서 적을 토벌하지 않고 글에 쓰길 조순이 군주 이고[진영공]를 시해하였다. 조순은 괴이하지 않음이 아니고 사관의 직책이 폐지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제가 글을 쓰지 못하면 천하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글로는 상국의 추악함을 덮기 부족하니 아는 사람의 비웃음을 끼칠 것이니 저는 그래서 죽음을 아끼지 않고 상국께서 판단하십시오.
崔嘆曰:「吾懼社稷之隕,不得已而爲此。雖直書,人必諒我。」
최저가 한탄하여 내가 사직의 없어짐을 두려워서 부득이하게 이를 했다. 비록 글에 정직하게 쓰면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나를 용서할 것이다.
乃擲簡還季。
서간을 던져서 계에게 돌려주었다.
季捧簡而出,將至史館,遇南史氏方來,季問其故。
계는 서간을 받들어 나와서 사관에 이르러서 남사씨가 때마침 오다가 계는 그 이유를 물었다.
南史氏曰:「聞汝兄弟俱死,恐遂沒夏五月乙亥之事,吾是以執簡而來也。」
남사씨가 말하길 당신 형제들이 모두 죽어서 여름 5월 을해의 일을 기록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내가 그래서 죽간을 잡아서 왔소.
季以所書簡示之,南史氏乃辭去。
계가 서간을 보여주니 남사씨가 간다고 말했다.
翁讀史至此,有讚云:
염옹이 역사를 이에 읽다가 찬탄하여 말했다.    
朝綱紐解,亂臣接跡;
조정의 기강이 풀리니 난리 일으킨 신하가 연접하여 생긴다.
斧鉞不加,誅之以筆。
난신을 죽이는 도끼가 더해지지 않으니 붓으로써 벤다.
不畏身死,而畏溺職;
몸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책이 다할까 두려워한다.
南史同心,有遂無格。
남사씨도 같은 마음으로 완수함에 격이 없다.
皎日天,奸雄奪魄;
흰 하늘과 푸른 하늘이 간웅이 혼백을 빼앗다.
彼哉諛語,羞此史冊!
저들 아첨하는 말은 이 역사책을 부끄러워 해야 한다.
崔愧太史之筆,乃委罪賈而殺之。
최저는 태사의 붓이 부끄러워서 가수에게 죄를 맡기고 그를 죽였다.
是月,晉平公以水勢退,復大合諸侯於夷儀,將爲伐齊之。
이 달에 진나라 평공은 물의 기세가 이미 물러나서 다시 크게 제후를 이의에 모아서 제나라를 정벌할 의거를 하려고 했다.
崔使左相慶封以莊公之死,告於晉師,言:
최저는 좌상 경봉을 보내 장공의 죽음을 알리고 진나라 군사에게 보고하여 말했다.
「群臣懼大國之誅,社稷不保,已代大國行討矣。新君杵臼,出自魯姬,願改事上國,勿替舊好。所攘朝歌之地,仍歸上國,更以宗器若干,樂器若干爲獻。」
여러 신하는 대국의 벌줌이 두려워서 사직이 보호하지 못할까 하여 이미 대국이 토벌을 대신했습니다. 새로운 군주 오구는 노나라희 출신이니 원컨대 상국을 고쳐 섬기며 오랜 우호를 대체하지 마십시오. 제장공이 침범한 조가의 땅을 양보하여 상국에 돌려 드리며 다시 종묘그릇 약간과 악기 약간을 바칩니다.
諸侯亦皆有賂。
제후는 또한 모두 뇌물을 받았다.
平公大悅,班師而歸,諸侯皆散。
진나라 평공이 크게 기뻐서 군사를 돌려 돌아가며 제후도 모두 흩어졌다.
自此晉齊復合。
이로부터 진나라와 제나라는 다시 합하였다.
時殖綽在衛,聞州綽邢皆死,復歸齊國。
이 때 순작은 위나라에 있어서 주작과 형괴가 모두 죽음을 듣고 다시 제나라에 돌아갔다.
衛獻公出奔在齊,素聞其勇,使公孫丁以厚幣招之;
손임보와 영식에게 제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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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0페이지
  • 등록일2009.12.23
  • 저작시기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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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69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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