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목민족의 중국지배 연구,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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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유목민족의 중국지배 연구, 조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는 글

2. 거란

3. 여진

4. 몽고

5. 만주

6. 마치는 글

7. 참고문헌 및 사이트

본문내용

도는 강제 징용된 농민을 앞에 세우고 자신들은 배후에 있었다. 그러므로 농민과 향용은 같은 농민이기 때문에 뒤에서 독려를 하지 않으면 전투를 하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백련교도가 상대하는 군은 관군이 아니라 지방의 신사와 지주 상인에 의해 조직된 민병인 단련과 향용이었다. 한편 신사들은 각 지역에서 성채를 쌓아 백련교도의 진격을 저지하고 보급로를 차단하여 큰 성과를 올리게 되었다. 1799년 건륭제가 사망하고 가경제의 친정이 시작되자 가경제는 관료의 기강을 바로잡아 10년에 걸친 백련교의 대란이 수습되었다.
백련교의 난은 청조에게 많은 타격을 주었는데, 먼저 군사적으로 만주8기병의 무기력을 드러냈고 대신 한인의 민간무장 세력인 향용이나 단련병의 역할이 돋보임에 따라 한인관료의 입지가 점차 강화되었다. 또한 반란을 진입하는데 국가예산의 3년분의 해당하는 군사비를 지출하여 만성적인 재정난에 허덕이며 사회경제적으로 쇠퇴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6. 마치는 글
흔히 세계를 나눌 때 ‘동양’과 ‘서양’이라는 말을 쓴다. 우리가 수강하고 있는 이 강좌의 이름도 ‘동양사개론’이다. 여기서 동양은 주로 중국이 중심이 되고, 서양은 유럽공동체를 중심에 두게 된다. 그런데 유목민은 전통적으로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세계를 동양과 서양이라는 두 개의 다른 개념으로 보았을 때, 유목민은 들어갈 곳이 없게 된다. 동양과 서양이라는 개념은 정착문명을 기준으로 한 서구 중심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유목민족은 유라시아의 내부에 동서로 넓고 길게 펼쳐져 있는 초원에서 살면서 때로는 정주지대를 약탈 혹은 정복하기도 하면서 한 정착문명과 다른 정착문명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어떤 학자들은 ‘세계체제’가 유럽자본주의 확산 및 근대 민족-국가의 팽창과 연계된 최근의 구성물이 아니라고 보는데, 그들은 세계체제의 기원을 1000년부터 1500년 사이에 지역을 넘나드는 거대한 유목 제국이라고 본다. 유목민들은 이미 15세기 이전에도 넓은 유라시아대륙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영효, 2003, 「세계사교육에서의 ‘타자 읽기’ 서구중심주의와 자민족중심주의를 넘어」,『역사교육 제86집』, 역사교육연구회, p.38
그리고 세계의 역사를 이해할 때 동아시아, 서아시아, 남아시아, 유럽의 정주문명들이 근대에 들어오기 전까지 상호간의 접촉과 영향이 긴밀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을 통합적으로 하나의 세계사로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할지라도, 이들은 모두 내륙아시아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따라서 그것을 하나의 전체로서 이해하고 그 역사적 전개과정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할 때 이 공통분모는 매우 유용할 수 있다. 김호동, 「문명과 야만-정주세계와 유목세계의 역사적 일면」. 김종래, 2006, 「유목민이라는 이름의 슬픔」, 『유목민 이야기』, 꿈엔들, p94에서 재인용.
그런데 우리나라의 어떤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는 북방 유목민의 흔적을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동아시아의 역사는 만리장성을 경계로 북방의 유목민족과 남방의 한족 사이의 끊임없는 대결의 연속이었다. 한족이 통일 제국을 이루어 세력이 강력해지면서 북방 민족의 남침은 주춤했으나, 남방이 혼란에 빠지면 북방 민족의 남침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 일반적인 움직임이었다. 북방 민족은 부족 체제 하에 유목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으나,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통일 국가를 수립하면 중원에 진출하여 문화 수준이 높은 한족을 무력으로 지배하였다. 이를 정복 왕조라 하는데, 거란족의 요, 여진족의 금, 몽고족의 원, 그리고 만주족의 청이 그 보기이다.
하지만 우리 교과서는 유목민의 입장에 서기 보다는 한족의 입장에서 내용을 이어나가는 것 같다. 김종래, 2006, 「유목문명사가 남긴 것」, 『유목민 이야기』, 꿈엔들, p323.
몽고는 무력으로 한족을 지배했으나 문화와 경제면에서는 중국 사회를 변혁시킬 수 없었다. 그것은 정복자의 수가 적은 데다 그들의 유목문화로는 수준 높은 중국 문화를 수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업 정책도 강남에서는 송대의 전호제를 인정하고 장원체제하의 양세법을 그대로 실시하였다.
위의 교과서 본문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유목민을 폄하하는 입장으로 내용이 전개되어 간다. 우리가 농경을 기반으로 이어온 정착문명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불가피 한 것일 수도 있다.
농경정착문명만이 문명은 아니다. 유목민이 건설했던 사회와 정착문명의 사회에 차이가 있는 것이지 틀렸다고 보거나 야만적인 사회라고 볼 수는 없다. 각자 살아가는 환경이 달랐고, 그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관심 갖지 않고 그저 우리의 모습과 다르기 때문에, 유목민족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부정적인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조의 발표를 통해 수강생들이 유목민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또 유목민들이 세계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라며 발표문을 마친다.
7. 참고 문헌 및 사이트
- http://www.chinabang.co.kr/ (중국의 어제와 오늘)
- http://100.naver.com/ (두산 백과사전)
- 김은숙 외, 2003, 『고등학교 세계사』, 교학사
- 김종래, 2006, 『유목민 이야기』, 꿈엔들
- 김지환 외, 2007, 『100가지 주제로 본 중국의 역사』, 고려대학교 출판부
- 박한제 외, 2008, 『아틀라스중국사』, 사계절
- 신승하 외, 1998, 『중국사(하)』, 대한교과서
- 신채식, 2008, 『동양사개론』, 삼영사
- 오금성 외, 2007,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 금성출판사
- 우경윤. 2004.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동양편)』, 두리미디어
- 이영효, 2003, 『세계사교육에서의 ‘타자 읽기’ 서구중심주의와 자민족중심주의를 넘어』, 역사교육 제86집, 역사교육연구회
- 잭 웨더포드, 2005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사계절
- 르네 그루쎄, 2001,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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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0페이지
  • 등록일2009.12.28
  • 저작시기2009.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7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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