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구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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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노원구의 문화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개요

2. 노원구의 문화제

3. 답사 계획

4. 세부 관광지도 및 참조사항

본문내용

랐다. 이 문서는 총 7행에 걸쳐 초서체로 세로로 썼으며, 연월 위에는 ‘조선국왕지인’이란 새보(璽寶:임금의 도장)가 찍혀있다.
왕지는 세종 말기부터 교지로 바뀌고 여기에 찍히는 직인도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에서 ‘시명지보(施命之寶)’로 바뀌었다.
종목
사적 201호
명칭
태릉·강릉(泰陵·康陵)
분류

면적
1,632,281㎡
지정일
1970.05.26
소재지
서울 노원구 공능동 313-19
시대
조선 명종
소유자
국유
관리자
문화재청
이 문서는 조선 전기의 문서양식, 새보사용의 변천과정 연구 및 인사행정제도 연구의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6) 태릉·강릉(泰陵·康陵)
태릉은 조선 제11대 중종(재위 1506∼1544)의 두번째 부인인 문정왕후 윤씨(1501∼1565)의 무덤이다. 본관은 파평으로 중종의 원부인인 장경왕후가 1515년 죽자 1517년에 17세의 나이로 왕비가 되었다. 중종이 있는 정릉에 묻히려 하였으나 장마철 침수로 인하여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무덤은 십이지신과 구름무늬가 새겨진 12면으로 된 병풍석이 둘러져 있다. 무덤 앞에는 상석·망주석 등이 『국조오례의』에 따라 제작되었다. 무덤 아래에는 한국 전쟁시 훼손되었다가 1995년 다시 지은 정자각이 있다. 사람모양의 돌조각상(석인)은 4등신으로 입체감이 표현되지 않았는데, 당시 석인의 특징을 보여준다.
강릉은 조선 제13대 명종(재위 1545∼1567)과 그의 부인인 인순왕후 심씨(1532∼1575)의 무덤이다. 왕비가 죽은 후 왕의 옆에 무덤을 쓴 쌍릉의 형태를 하고있다. 태릉과 같은 병풍석이 둘러져 있으며 돌로 만든 등인 장명등은 16세기 복고풍의 특색을 보여준다.
7) 삼군부청헌당(三軍府淸憲堂)
종목
시도유형문화재 16호
명칭
삼군부청헌당(三軍府淸憲堂)
분류
관아건축
수량
1동
지정일
1973.06.07
소재지
서울 노원구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소유자
국유
관리자
육군사관학교
삼군부는 조선초 군령과 군무를 총괄하던 군사 기구로 의흥삼군부의 약칭이다. 그 후 여러 차례 제도의 변화를 겪다가 고종 2년(1865)에 흥선대원군이 다시 조직했으나, 고종 17년(1880) 폐지하고 통리기무아문에 소속되었다.
청헌당은 흥선대원군 집권 당시 삼군부 청사로서 고종 5년(1868)에 지은 것이다. 고종 17년(1880)에 통리기무아문 청사로, 고종 31년(1894) 이후로는 시위대 청사로, 순종 4년(1910)부터 1926년까지는 조선 보병대 사령부로 쓰였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67년 현 정부종합청사를 지을 때 이곳으로 옮겨온 후 1977년 수리한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기 위하여 기둥 윗부분에 만든 공포는 새날개 모양으로 하였다. 이를 익공양식이라 하는데, 조선 후기 서울 관아건물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청헌당(淸憲堂)’이라고 쓴 현판은 조선 후기 무신 신관호(1810∼1884:신헌으로 개명)가 쓴 것이라고 한다.
- 기타 소장중인 문화재 -
8) 초안산조선시대분묘군(楚安山朝鮮時代墳墓群)
종목
사적 440호
명칭
초안산조선시대분묘군(楚安山朝鮮時代墳墓群)
분류

면적
265,978㎡
지정일
2002.03.09
소재지
서울 노원구 월계동 산8-3 외, 도봉구 창동 산202-1 외
시대
조선시대
관리자
노원구, 도봉구
초안산조선시대 분묘군은 양반분묘에서 서민 민묘까지 다양한 계층의 무덤 1,000기 이상과 상석, 문인석, 비석, 동자상 등 수백여 기의 석물들이 있는 곳이다.
15세기 이래 서민, 중인, 내관, 상궁, 사대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각종 문관석과 동자상 등이 시기별로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특히 내관의 분묘가 많은데 그 중에는 17세기 내관이었던 승극철 부부의 묘와 비석이 있어 내관의 생활사 연구에 자료가 된다.
조선시대 여러 계층의 분묘가 집중적으로 섞여 있는 곳은 흔치 않은 예로 초안산조선시대분묘군은 특정계층의 분묘를 비롯해 사대부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동안 무덤을 조영하여 묘제 변천과정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남아 있는 문인석, 동자상 등 석물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여 석물변천사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9) 한글고비(한글古碑)
종목
시도유형문화재 27호
명칭
한글고비(한글古碑)
분류
석비
수량
1기
지정일
1974.01.15
소재지
서울 노원구 하계동 산12-2
소유자
성주이씨종친회
관리자
성주이씨종친회
조선 중종 때 승문원 부정자를 지낸 이윤탁 선생의 묘 앞에 서 있는 비로, 묘의 훼손을 경계하는 내용이 한글로 적혀 있다.
비는 사각의 받침돌 위에 비몸만을 세워둔 간결한 구조로, 비몸의 윗변 양쪽을 비스듬하게 다듬었다. 서쪽면에는 한글 30자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윤탁의 셋째 아들인 이문건이 글을 짓고 글씨를 새긴 것이다.
비 뒷면에 새겨진 기록으로 미루어 중종 31년(1536)에 비를 세운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90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글씨는 한글창제 당시와 똑같은 글씨에 서민적인 문체로 쓰여져 있다. 남아있는 ‘한글비’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아직 한글이 널리 사용되지 못했던 시기에 과감히 ‘한글묘비’를 세웠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더욱 돋보인다.
10) 이명신도비(李蓂神道碑)
종목
시도유형문화재 55호
명칭
이명신도비(李蓂神道碑)
분류
석비
수량
신도비1기외
지정일
1983.11.11
소재지
서울 노원구 월계동 산767-2
소유자
예안이씨이조판서공파
관리자
예안이씨이조판서공파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묘 남동쪽에 세워 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명 선생의 공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명은 조선 명조 때 우 ·좌의정, 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인물로, 성품이 단정하며 직무에 충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주장은 절대 굽히지 않았다 한다. 일생을 청백리로 일관하다 생을 마쳤으며, 죽은 후 ‘정간’이라는 시호가 붙여졌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모습이며, 비몸의 윗쪽 양변을 둥글게 다듬었다. 받침돌은 윗면에 연

키워드

문화재,   노원구,   문화,   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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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0.01.06
  • 저작시기2006.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7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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