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 서문
2 - 줄거리 (할머니 - 부모 - 장융)
3 - 마오에 대한 저자의 시각
4 - 시사점
2 - 줄거리 (할머니 - 부모 - 장융)
3 - 마오에 대한 저자의 시각
4 - 시사점
본문내용
지식의 배고픔에서 해방되어, 정말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실체를 서서히 알게 된다. 천국일 줄만 알았던 자신의 조국이 천국이 아니었음도 알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당원이 아닌 신분으로 공부를 하여 대학에도 입학하고 유학을 가게 된다. 짧은 30여년의 시간동안 중국은 너무나 많은 일을 겪었다. 감히 상상도 못할 일들이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일어났던 것이다.
중국이 현재의 중국이 되기까지 겪었던 역사적인 파란은 우리나라가 일제 침략이후 겪었던 역사적인 파란에 비해 그 강도가 낮다고 볼 수 없을 만큼 격정적이었다. 중국의 현대사에 가슴이 아팠고 무엇보다도 아무 이유없이 희생당해야했던 일반 사람들의 삶이 가장 안타까웠다. 그런 격동적인 중국의 역사의 배후에는 마오쩌둥이 있었다. 단 한 번도 이 책에 직접적으로 나와서 일을 풀어가는 데에 개입한 적은 없지만 마치 뒤에서 조종하는 것처럼 이 모든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했던 것은 마오쩌둥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만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권력을 잡기 위해서 10억의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자신의 장난감으로 만들었다. 백화 운동 이후의 반우익 운동, 삼반운동, 문화혁명까지 모두 자신의 철저한 계획 속에서 진행된 일들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을 서로 불신하게 만들어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로 만들어 자신은 그 사이에서 계속 권력을 얻으려는 것이다.
마오는 또한 중국인들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그것을 이용하였다. 이 책에서 보면 중국인들은 개인으로 행동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무리 지어서 행동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거나 다수의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 사람들은 자신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불리한 처지에 놓이면 입을 다물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단어 중 ‘자아비판’, ‘탄핵대회’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 겪었던 과오를 꼭 복수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에 나오는 팅 부부만 하더라도 과거 저자의 아버지가 팅 여사의 유혹을 뿌리쳤다는 이유로 팅 여사는 계속해서 아버지와 그의 가족들을 괴롭혔다. 또한 문화혁명 기간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은 진짜로 당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 개인적인 원한에 의해 누명을 쓰고 희생된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무리지어 다니면서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면 많은 사람들은 이에 동요할 것이다. 마오는 이것을 알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의 뜻대로 잘 움직여주었다. 또한 마오는 10억의 인구 중에서 소수를 차지하는 지식인의 편이 아닌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의 편이라고 스스로 말하며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였다.
저자는 끝없는 시련을 겪는 자신의 가족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시선을 보내면서 부패하고 폭압적인 권력을 차갑게 비판한다. 혁명의 대의를 성취한 후 최고 권력자가 권력을 사유화하여 자신을 신격화할 때 그 혁명은 바로 무서운 재앙이다. 그리고 어떤 집단주의적 이상과 체제도 개인의 생존과 행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이 소설은 중국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한국전쟁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중국과 관련지어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사상적 논쟁이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상황에 대해 이념과 현실에 대한 갈등을 한층 깊게 해 주었다. 투쟁이라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일까? 타협하자고 하는 얘기는 아니지만 투쟁이라는 단어 속에 담겨있는 희생의 의미가 무섭다. 너무나도 무고하게 희생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희생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버리기가 힘이 든다. 개혁은 어쩌면 반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존 세력을 축출해내는 일은 무엇보다도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정권 다툼 속에서 무참히 짓밟히고, 쓰러져간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 안타깝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중국이 세계의 떠오르는 주역으로 다시 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화혁명기를 거치며 엄청난 화재로 인해 9천여명의 사람들이 죽었을 때 마오의 부인이 “겨우 9천여명이 죽었을 뿐이에요.” 라고 말했다. 언젠가 이승만이 쌀이 없어서 굶어 죽어 가는 국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쌀이 없으면 빵을 먹지.” 라고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언제부터 정치와 현실이 이렇게 먼 길을 각자의 길을 걸어 온 것일까? 그 것은 비단 오래전의 문제도 아니고,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었다는 사실에 정말 놀랄 뿐이다.
중국이 현재의 중국이 되기까지 겪었던 역사적인 파란은 우리나라가 일제 침략이후 겪었던 역사적인 파란에 비해 그 강도가 낮다고 볼 수 없을 만큼 격정적이었다. 중국의 현대사에 가슴이 아팠고 무엇보다도 아무 이유없이 희생당해야했던 일반 사람들의 삶이 가장 안타까웠다. 그런 격동적인 중국의 역사의 배후에는 마오쩌둥이 있었다. 단 한 번도 이 책에 직접적으로 나와서 일을 풀어가는 데에 개입한 적은 없지만 마치 뒤에서 조종하는 것처럼 이 모든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했던 것은 마오쩌둥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만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권력을 잡기 위해서 10억의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자신의 장난감으로 만들었다. 백화 운동 이후의 반우익 운동, 삼반운동, 문화혁명까지 모두 자신의 철저한 계획 속에서 진행된 일들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을 서로 불신하게 만들어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로 만들어 자신은 그 사이에서 계속 권력을 얻으려는 것이다.
마오는 또한 중국인들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그것을 이용하였다. 이 책에서 보면 중국인들은 개인으로 행동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무리 지어서 행동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거나 다수의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 사람들은 자신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불리한 처지에 놓이면 입을 다물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단어 중 ‘자아비판’, ‘탄핵대회’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 겪었던 과오를 꼭 복수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에 나오는 팅 부부만 하더라도 과거 저자의 아버지가 팅 여사의 유혹을 뿌리쳤다는 이유로 팅 여사는 계속해서 아버지와 그의 가족들을 괴롭혔다. 또한 문화혁명 기간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은 진짜로 당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 개인적인 원한에 의해 누명을 쓰고 희생된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무리지어 다니면서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면 많은 사람들은 이에 동요할 것이다. 마오는 이것을 알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의 뜻대로 잘 움직여주었다. 또한 마오는 10억의 인구 중에서 소수를 차지하는 지식인의 편이 아닌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의 편이라고 스스로 말하며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였다.
저자는 끝없는 시련을 겪는 자신의 가족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시선을 보내면서 부패하고 폭압적인 권력을 차갑게 비판한다. 혁명의 대의를 성취한 후 최고 권력자가 권력을 사유화하여 자신을 신격화할 때 그 혁명은 바로 무서운 재앙이다. 그리고 어떤 집단주의적 이상과 체제도 개인의 생존과 행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이 소설은 중국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한국전쟁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중국과 관련지어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사상적 논쟁이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상황에 대해 이념과 현실에 대한 갈등을 한층 깊게 해 주었다. 투쟁이라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일까? 타협하자고 하는 얘기는 아니지만 투쟁이라는 단어 속에 담겨있는 희생의 의미가 무섭다. 너무나도 무고하게 희생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희생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버리기가 힘이 든다. 개혁은 어쩌면 반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존 세력을 축출해내는 일은 무엇보다도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정권 다툼 속에서 무참히 짓밟히고, 쓰러져간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 안타깝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중국이 세계의 떠오르는 주역으로 다시 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화혁명기를 거치며 엄청난 화재로 인해 9천여명의 사람들이 죽었을 때 마오의 부인이 “겨우 9천여명이 죽었을 뿐이에요.” 라고 말했다. 언젠가 이승만이 쌀이 없어서 굶어 죽어 가는 국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쌀이 없으면 빵을 먹지.” 라고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언제부터 정치와 현실이 이렇게 먼 길을 각자의 길을 걸어 온 것일까? 그 것은 비단 오래전의 문제도 아니고,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었다는 사실에 정말 놀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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