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원시 및 고대
1)원시사회의 체육
2)고대 오리엔트 및 주변 지역의 체육
3)고대 그리스의 체육
4)고대 로마의 체육
2. 중세 유럽
1)초기 기독교 사회의 체육
2)수도원의 체육
3)귀족 및 기사의 체육
4)시민 및 농민의 체육
5)스콜라 철학과 체육
3. 근대 전기 유럽
1)문예부흥기의 인문주의와 체육
2)종교개혁기의 체육
3)실학주의와 체육
4)단련주의와 체육
5)자연주의와 체육
4. 근대 후기 및 현대의 체육
1)국가주의 체육의 등장과 현대체육의 발전
참고문헌
1)원시사회의 체육
2)고대 오리엔트 및 주변 지역의 체육
3)고대 그리스의 체육
4)고대 로마의 체육
2. 중세 유럽
1)초기 기독교 사회의 체육
2)수도원의 체육
3)귀족 및 기사의 체육
4)시민 및 농민의 체육
5)스콜라 철학과 체육
3. 근대 전기 유럽
1)문예부흥기의 인문주의와 체육
2)종교개혁기의 체육
3)실학주의와 체육
4)단련주의와 체육
5)자연주의와 체육
4. 근대 후기 및 현대의 체육
1)국가주의 체육의 등장과 현대체육의 발전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원시 및 고대
1)원시사회의 체육
원시사회의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체적 조건이 잘 갖추어져야 했다. 원시인들의 생활이 이루어진 조건은 엄격한 생존의 경쟁에서 이루어졌는데 강건한 신체가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개인은 물론 집단의 생존을 위해서도 신체의 발달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원시사회의 체육활동에는 흉내 내기, 달리기, 던지기, 뜀뛰기, 기어오르기, 수영 등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것들이 행해졌다. 특히, 사냥연습은 직접적인 목적을 가지고 행해졌는데 아이들은 작은 화살과 활을 사용하여 집 근처에서 게임의 형식으로 연습하였다. 기술이 나아지면 좀더 활동적인 연습을 하게 되었고. 이는 전쟁연습활동으로 이어졌다.
이 시대의 무용은 다른 어느 활동에 비해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었다. 무용은 신과의 대화 및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확인하기 위한 활동으로서 집단 전체의 생존 및 단결을 위한 필수적인 노력에 해당하엿다. 형형색색의 의상착용과 사랑, 미움, 공포 등 다양한 감정의 표현이 다채롭게 펼쳐진 것은 이러한 점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2)고대 오리엔트 및 주변 지역의 체육
(1)이집트의 체육
이집트의 교육체제에서 체육이 특별한 역할을 맡지는 못하였다. 이는 체육의 필요성이 당시 사회에서 크게 요구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는 다른 지역을 정복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체육에 대한 국가의 강제적 작용도 없었다. 단지 직업적인 역할에 의해 일정한 신체운동이 뒤따랐는데 농민, 직업군인, 장인들은 노동에 따라 일정한 신체활동을 하고 있었다.
실용적인 이집트인들은 군사적 혹은 건강의 목적보다는 직업, 여가생활 그리고 종교적으로서의 신체활동에 더 관심을 두었다. 그리하여 미라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의학에서 뛰어난 업적을 보여 주었지만 건강을 직접적으로 운동과 관련시켜 이해하지는 못하였다.
체육에 관해 자세한 알려진 것은 거의 없지만 서기양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놀이를 배웠다. 특히, 수영이 많이 보급되었는데 심지어 여자들 사이에서도 유행하였다. 벽화에 보면 이미 오버핸드 스트로크 동작이 있었고 인공호흡의 모습도 확인했다.
무사계급은 전쟁에서 유용한 기술을 발달시키기 위해 게임과 스포츠를 통해서 군사적 운동을 익혔다. 군인들의 자식들은 군인학교에 보내졌는데 여기서 무기를 다루는 법과 근력, 유연성, 민첩성 등을 기르기 위한 힘든 훈련을 받았다. 또한 레슬링과 군무도 배웠고, 사냥기술을 군사훈련의 수단과 맹수를 퇴치할 목적으로 습득하였다.
기원전 2000년경 아랍에서 말이 도입된 이후에는 마차싸움과 말을 이용한 사냥이 귀족계급에게 보편화되었다.
게임과 관련해서는 현대에서도 볼 수 있는 여러 장난감들이 아이들에 의해 사용되어 다채롭게 행해졌다. 구르기, 돌기, 던지기, 막대싸움 등이 행해졌고 특히 공놀이는 남녀 구분 없이 제일 인기 있는 놀이였다.
무용은 추기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왔다. 왕족과 귀족들이 종교적 무용에 열중하고 연회를 위해 무용전문가를 고용한 반면에 직업인들과 서민들은 민속 및 곡예무용 등을 주로 하였다. 무용의 반주를 위하여 플루트, 캐스터네츠 등이 사용되었다. 종교적 무용에서의 동작들은 고정적이고 유연성이 약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동작들은 모두 이집트인들의 예술의식이 반영되어 정형화된 것이다.
(2)메소포타미아의 체육
기록을 중심으로 하는 메소포타미아의 교육체제에서는 지적인 활동을 중시함으로써 체육의 발달에 기대하기 어려웠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필기기술 습득에 치중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상류층의 기록관이 되는 데 온 정성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분위기에서 체육은 귀족이나 군인들이 사냥이나 전쟁에 필요한 신체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데 이용되었고 역시 실용적인 측면이 매우 강한 성격을 띠었다.
군사적 훈련에는 궁술, 승마, 수렵 등이 전투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특히, 수영은 전쟁에 필요한 기술로 생각되어 한 손 혹은 두 손을 사용하는 오버핸드 스트로크가 성행하였다.
메소포타미아의 무용은 이집트의 무용처럼 고도로 발달하지는 못하였고 영리적인 목적으로 공연되는 경우도 있었다.
(3)고대 페르시아의 체육
페르시아가 일찍이 오리엔트 전역을 통일하고 오랜 기간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여러 나라에 비해 매우 강력한 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강력한 군대를 육성하기 위해 청소년들에게 체력의 가치를 인정하고 건정하고 강인한 신체를 육성하는 교육, 즉 체육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아이들은 6세까지는 어머니의 품에서 종교의 교리와 가정교육을 주로 받았지만 7세가 되면 국가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즉, 신체훈련과 군사훈련을 위하여 국가가 관리하는 교육을 받은 것이다. 당시에는 오늘날의 학교와 같은 기관은 없었고, 귀족계급의 자식에 대해서는 전문지도자에 의해 궁정이나 귀족들의 저택에서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들은 일찍 일어나 정해진 장소에서 달리기, 투석, 궁술 등의 훈련을 받았다. 특히, 승마는 단순히 말 타는 기술뿐만 아니라 달리는 말을
1)원시사회의 체육
원시사회의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체적 조건이 잘 갖추어져야 했다. 원시인들의 생활이 이루어진 조건은 엄격한 생존의 경쟁에서 이루어졌는데 강건한 신체가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개인은 물론 집단의 생존을 위해서도 신체의 발달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원시사회의 체육활동에는 흉내 내기, 달리기, 던지기, 뜀뛰기, 기어오르기, 수영 등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것들이 행해졌다. 특히, 사냥연습은 직접적인 목적을 가지고 행해졌는데 아이들은 작은 화살과 활을 사용하여 집 근처에서 게임의 형식으로 연습하였다. 기술이 나아지면 좀더 활동적인 연습을 하게 되었고. 이는 전쟁연습활동으로 이어졌다.
이 시대의 무용은 다른 어느 활동에 비해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었다. 무용은 신과의 대화 및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확인하기 위한 활동으로서 집단 전체의 생존 및 단결을 위한 필수적인 노력에 해당하엿다. 형형색색의 의상착용과 사랑, 미움, 공포 등 다양한 감정의 표현이 다채롭게 펼쳐진 것은 이러한 점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2)고대 오리엔트 및 주변 지역의 체육
(1)이집트의 체육
이집트의 교육체제에서 체육이 특별한 역할을 맡지는 못하였다. 이는 체육의 필요성이 당시 사회에서 크게 요구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는 다른 지역을 정복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체육에 대한 국가의 강제적 작용도 없었다. 단지 직업적인 역할에 의해 일정한 신체운동이 뒤따랐는데 농민, 직업군인, 장인들은 노동에 따라 일정한 신체활동을 하고 있었다.
실용적인 이집트인들은 군사적 혹은 건강의 목적보다는 직업, 여가생활 그리고 종교적으로서의 신체활동에 더 관심을 두었다. 그리하여 미라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의학에서 뛰어난 업적을 보여 주었지만 건강을 직접적으로 운동과 관련시켜 이해하지는 못하였다.
체육에 관해 자세한 알려진 것은 거의 없지만 서기양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놀이를 배웠다. 특히, 수영이 많이 보급되었는데 심지어 여자들 사이에서도 유행하였다. 벽화에 보면 이미 오버핸드 스트로크 동작이 있었고 인공호흡의 모습도 확인했다.
무사계급은 전쟁에서 유용한 기술을 발달시키기 위해 게임과 스포츠를 통해서 군사적 운동을 익혔다. 군인들의 자식들은 군인학교에 보내졌는데 여기서 무기를 다루는 법과 근력, 유연성, 민첩성 등을 기르기 위한 힘든 훈련을 받았다. 또한 레슬링과 군무도 배웠고, 사냥기술을 군사훈련의 수단과 맹수를 퇴치할 목적으로 습득하였다.
기원전 2000년경 아랍에서 말이 도입된 이후에는 마차싸움과 말을 이용한 사냥이 귀족계급에게 보편화되었다.
게임과 관련해서는 현대에서도 볼 수 있는 여러 장난감들이 아이들에 의해 사용되어 다채롭게 행해졌다. 구르기, 돌기, 던지기, 막대싸움 등이 행해졌고 특히 공놀이는 남녀 구분 없이 제일 인기 있는 놀이였다.
무용은 추기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왔다. 왕족과 귀족들이 종교적 무용에 열중하고 연회를 위해 무용전문가를 고용한 반면에 직업인들과 서민들은 민속 및 곡예무용 등을 주로 하였다. 무용의 반주를 위하여 플루트, 캐스터네츠 등이 사용되었다. 종교적 무용에서의 동작들은 고정적이고 유연성이 약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동작들은 모두 이집트인들의 예술의식이 반영되어 정형화된 것이다.
(2)메소포타미아의 체육
기록을 중심으로 하는 메소포타미아의 교육체제에서는 지적인 활동을 중시함으로써 체육의 발달에 기대하기 어려웠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필기기술 습득에 치중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상류층의 기록관이 되는 데 온 정성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분위기에서 체육은 귀족이나 군인들이 사냥이나 전쟁에 필요한 신체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데 이용되었고 역시 실용적인 측면이 매우 강한 성격을 띠었다.
군사적 훈련에는 궁술, 승마, 수렵 등이 전투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특히, 수영은 전쟁에 필요한 기술로 생각되어 한 손 혹은 두 손을 사용하는 오버핸드 스트로크가 성행하였다.
메소포타미아의 무용은 이집트의 무용처럼 고도로 발달하지는 못하였고 영리적인 목적으로 공연되는 경우도 있었다.
(3)고대 페르시아의 체육
페르시아가 일찍이 오리엔트 전역을 통일하고 오랜 기간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여러 나라에 비해 매우 강력한 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강력한 군대를 육성하기 위해 청소년들에게 체력의 가치를 인정하고 건정하고 강인한 신체를 육성하는 교육, 즉 체육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아이들은 6세까지는 어머니의 품에서 종교의 교리와 가정교육을 주로 받았지만 7세가 되면 국가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즉, 신체훈련과 군사훈련을 위하여 국가가 관리하는 교육을 받은 것이다. 당시에는 오늘날의 학교와 같은 기관은 없었고, 귀족계급의 자식에 대해서는 전문지도자에 의해 궁정이나 귀족들의 저택에서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들은 일찍 일어나 정해진 장소에서 달리기, 투석, 궁술 등의 훈련을 받았다. 특히, 승마는 단순히 말 타는 기술뿐만 아니라 달리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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