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삶을 그린 아리랑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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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삶을 그린 아리랑을 읽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에 나가던 김산이 이후부터 믿음이 깨어져버렸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김산은 3.1운동이 가라앉고 얼마 후 일본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그 당시 일본은 자유주의적이고 전후의 왕성한 지식욕으로 충만해 있는, 극동에서의 배움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김산은 인력거를 끌거나 헌책을 구해다 팔고, 마르크시즘을 연구하며 학생‘룸펜’으로서의 고무적이며 낭만적인 고학생활을 즐긴다. 김산에게 있어서의 조금이나마 행복했던 청소년시절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생활도 곧 접고 소련의 모스크바로 떠날 결심을 하게된다. 공산주의나 무정부주의 같은 새로운 사상의 주요원천으로 떠나기 위함이었다.
헌데 그 사이에 김산이 말해준 참혹한 비극이 하나 있는데 관동대지진과 대량학살이 바로 그것이다. 전후 경제위기에 놓여있던 일본의 지배계층이 대지진으로 폭동이 일어날 것이 두려워 조선인들을 대신 희생양으로 삼아서 조선인이 방화를 저지르고 우물에 독을 푼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광분한 일본민중은 보이는 족족 조선인들을 학살하기에 이르고 결국 6천여명 이상의 조선인 사상자가 나오는 끔찍한 참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또한 일본지배층은 이 혼란을 조선인에게 우호적인 좌익세력을 뿌리뽑기 위한 기회로 사용하였다고 하니 이런 정치공작에 무고한 우리 조선인들이 희생이 되었다는 게 무척이나 분통터지는 일이다.
모스크바로 떠나기 결심한 김산은 조선에 들어와 여비를 마련한 뒤 압록강을 건너 조그마한 역에서 하얼빈 행 기차를 탄다. 그런데 시베리아 간섭군이 초래한 전란상태로 인해 더는 기차가 다니지 않게 되는 벽에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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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10.03.02
  • 저작시기2007.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86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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