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2장 심성사의 여러 모습
제3장 역사서술의 문화사적 전환과 신문화사
『오늘의 역사학』(한겨례신문사, 1998) 제 2장, 3장 비평문
제3장 역사서술의 문화사적 전환과 신문화사
『오늘의 역사학』(한겨례신문사, 1998) 제 2장, 3장 비평문
본문내용
라는 기어츠의 정의를 받아들이는 한편 역사적으로 변하는 문화의 의미구조를 밝히기 위해 역사화 문화의 상호연관을 해명하고자 노력했다. 즉, 다시 말해서 살린스는 기어츠의 역사해석을 계승하면서 그의 최대 문제점이었던 문화와 역사 사이의 종합 성취를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이는 2장에서 페브르의 심성사를 보완해주었던 블로크의 심성사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할 수 있겠다.
(4) 역사 인류학적 역사서술 : 단턴과 데이비스를 보며
역사 인류학적 역사서술에는 기어츠의 치밀한 묘사의 방법이 유용하게 쓰인다. 그 이유는 역사가가 역사의 텍스트를 읽는 목적은 새로운 역사서술이다. 그래서 역사가는 한편으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적 상상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러한 상반되는 목표를 동시에 성취해야 하는 역사가에게 유용한 것이 바로 치밀한 묘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은이는 그 사례로 단턴과 데이비스를 제시했는데 지은이는 이 결과로 단턴은 물론 특히 데이비스를 통해 자신이 의도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역사 인류학적 역사서술에서 강조 되는 것은 역사가의 역사적 상상력이다. 그런데 데이비스는 한 차원 높은 단계의 역사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그녀는 역사적 상상력을 뛰어넘어 역사적 가능성을 통한 역사현실의 재구성을 구사하였다.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상상력의 문제를 다시 재고 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둘째, 새로운 방식의 역사서술의 모색하여 그녀는 기존의 역사서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바로 역사적 사실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역사와 이야기 사이의 구분을 해소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비단 역사 인류학적 역사서술 뿐만 아니라 지은이는 역사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이 글에서 인류학적 역사서술을 통해 서술하면서도 독자들에게 재차 강요하는 것만큼 역사적 상상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사실 그동안 수많은 역사가 특히 나만 하더라도 너무 역사적 사실에만 몰두하질 않았던가? 지은이는 이 글을 통해 이런 우리를 또한 내심 꼬집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새삼 이 글을 읽으며 부끄러워졌다.
(5) 미시사적 역사서술 : 진즈부르그를 보며
심성사나 신문화사는 앞서 ‘들어가며’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그 범위가 대단히 다양하다. 그래서 좀 전에 심성사에 미시사가 포함되었듯이 신문화사에도 미시사가 포함되어 이 글에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심성사 속에 미시사에서 주목한 것도 민중문화였는데 신문화사의 미시사에도 주목한 것이 민중문화였다.
그러나 여기서 지은이는 진즈부르그를 소개하여 심성사와 그 차별화를 두었다. 심성사 속의 미시사는 민중문화의 선입견을 깨주는 데에 주력했다면 신문화사의 미시사 즉, 진즈부르그는 민중문화의 독자성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성사와의 차별화에 성공한 지은이는 이를 통해 더불어 많은 역사가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인 기원이라는 망상을 꼬집고 있다. 진즈부르그가 주장한 민중문화의 독자성이 바로 근대 사회로의 이행과의 관련된 하나의 예이기 때문이다.
즉, 다시 말해서 이 글에서 지은이는 자칫 심성사의 미시사와 겹칠 수 있는 소재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예를 들어 차별화에 성공할 뿐만 아니라 민중문화에도 독자성이 있었다는 기존의 선입견을 깨주는 동시에, 기원이라는 망상이라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는 충고를 역사가들에게 하는 이중, 삼중의 자신의 의도를 완벽하게 관철시키고 있는 것이다.
(6) 맺음말을 보며
이 부분에서 지은이는 지금까지 살펴본 것들을 정리하며 신문화사의 목표, 공통점들을 독자들에게 되짚어 준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틀에 신문화사가 역사학의 현 단계의 지배적인 흐름이라며 신문화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글을 마쳤다.
즉, 모든 맺음말의 교과서적인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맺음말에서는 주로 서론에서 제시한 목표, 본론의 정리, 중요성 강조 등이 주테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교과서적으로 완벽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미완적 이더라도 참신한 시도를 하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4. 나오면서
지금까지 오늘의 역사학 중 제2장과 3장을 살펴보았다. 심성사와 신문화사는 공통적으로 기존의 역사학에 반기를 들어 만들어진 역사학의 사조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심성적 도구, 치밀한 묘사 등 공통적으로 새롭게 탄생된 개념이 많았다. 그리고 그 사학사적 범위가 다양하기 때문에 앞서 미시사와 같은 경우 그 사학사적 범위가 심성사와 신문화사가 동일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 같은 공통점 말고 이 두 글은 각각의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우선 2장은 각각의 장을 나누어 최대한 여러 역사가들을 설명 하였고 순차적인 방식에 따라 서술을 하였다,
첫째, 3장은 2장과는 달리 크게 범위를 나누어 설명을 하였고 순차적이기 보다는 같은 맥락의 대표적인 역사가들만 선별하여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둘째, 3장은 대단히 훌륭한 글이었지만 앞서 언급했지만 아주 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바로 용어의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문화사나 치밀한 묘사와 같은 경우가 그러하였다. 용어의 정확한 정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것인데 이것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서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것은 2장에서 심성사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더불어 사학사적 정의까지 내려준 것까지 비교하자면 사뭇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셋째, 3장은 이 글을 통해 역사가들이 범하는 여러 오류들을 깨닫게 하고 이를 시정하길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원이라는 망상 등을 들 수 있다.
어쨋든 일단 앞서 말했겠지만 심성사와 신문화사는 공통적으로 가장 최근의 역사 사조이여서 연구할 시간이나 자료가 제한적이고 사학사적 범위가 너무나도 다양하여 이것들에 대해서 서술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역사가들에게 조차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부단한 노력을 하여 훌륭한 글을 쓴 이 글의 두 지은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4) 역사 인류학적 역사서술 : 단턴과 데이비스를 보며
역사 인류학적 역사서술에는 기어츠의 치밀한 묘사의 방법이 유용하게 쓰인다. 그 이유는 역사가가 역사의 텍스트를 읽는 목적은 새로운 역사서술이다. 그래서 역사가는 한편으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적 상상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러한 상반되는 목표를 동시에 성취해야 하는 역사가에게 유용한 것이 바로 치밀한 묘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은이는 그 사례로 단턴과 데이비스를 제시했는데 지은이는 이 결과로 단턴은 물론 특히 데이비스를 통해 자신이 의도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역사 인류학적 역사서술에서 강조 되는 것은 역사가의 역사적 상상력이다. 그런데 데이비스는 한 차원 높은 단계의 역사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그녀는 역사적 상상력을 뛰어넘어 역사적 가능성을 통한 역사현실의 재구성을 구사하였다.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상상력의 문제를 다시 재고 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둘째, 새로운 방식의 역사서술의 모색하여 그녀는 기존의 역사서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바로 역사적 사실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역사와 이야기 사이의 구분을 해소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비단 역사 인류학적 역사서술 뿐만 아니라 지은이는 역사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이 글에서 인류학적 역사서술을 통해 서술하면서도 독자들에게 재차 강요하는 것만큼 역사적 상상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사실 그동안 수많은 역사가 특히 나만 하더라도 너무 역사적 사실에만 몰두하질 않았던가? 지은이는 이 글을 통해 이런 우리를 또한 내심 꼬집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새삼 이 글을 읽으며 부끄러워졌다.
(5) 미시사적 역사서술 : 진즈부르그를 보며
심성사나 신문화사는 앞서 ‘들어가며’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그 범위가 대단히 다양하다. 그래서 좀 전에 심성사에 미시사가 포함되었듯이 신문화사에도 미시사가 포함되어 이 글에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심성사 속에 미시사에서 주목한 것도 민중문화였는데 신문화사의 미시사에도 주목한 것이 민중문화였다.
그러나 여기서 지은이는 진즈부르그를 소개하여 심성사와 그 차별화를 두었다. 심성사 속의 미시사는 민중문화의 선입견을 깨주는 데에 주력했다면 신문화사의 미시사 즉, 진즈부르그는 민중문화의 독자성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성사와의 차별화에 성공한 지은이는 이를 통해 더불어 많은 역사가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인 기원이라는 망상을 꼬집고 있다. 진즈부르그가 주장한 민중문화의 독자성이 바로 근대 사회로의 이행과의 관련된 하나의 예이기 때문이다.
즉, 다시 말해서 이 글에서 지은이는 자칫 심성사의 미시사와 겹칠 수 있는 소재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예를 들어 차별화에 성공할 뿐만 아니라 민중문화에도 독자성이 있었다는 기존의 선입견을 깨주는 동시에, 기원이라는 망상이라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는 충고를 역사가들에게 하는 이중, 삼중의 자신의 의도를 완벽하게 관철시키고 있는 것이다.
(6) 맺음말을 보며
이 부분에서 지은이는 지금까지 살펴본 것들을 정리하며 신문화사의 목표, 공통점들을 독자들에게 되짚어 준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틀에 신문화사가 역사학의 현 단계의 지배적인 흐름이라며 신문화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글을 마쳤다.
즉, 모든 맺음말의 교과서적인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맺음말에서는 주로 서론에서 제시한 목표, 본론의 정리, 중요성 강조 등이 주테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교과서적으로 완벽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미완적 이더라도 참신한 시도를 하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4. 나오면서
지금까지 오늘의 역사학 중 제2장과 3장을 살펴보았다. 심성사와 신문화사는 공통적으로 기존의 역사학에 반기를 들어 만들어진 역사학의 사조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심성적 도구, 치밀한 묘사 등 공통적으로 새롭게 탄생된 개념이 많았다. 그리고 그 사학사적 범위가 다양하기 때문에 앞서 미시사와 같은 경우 그 사학사적 범위가 심성사와 신문화사가 동일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 같은 공통점 말고 이 두 글은 각각의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우선 2장은 각각의 장을 나누어 최대한 여러 역사가들을 설명 하였고 순차적인 방식에 따라 서술을 하였다,
첫째, 3장은 2장과는 달리 크게 범위를 나누어 설명을 하였고 순차적이기 보다는 같은 맥락의 대표적인 역사가들만 선별하여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둘째, 3장은 대단히 훌륭한 글이었지만 앞서 언급했지만 아주 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바로 용어의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문화사나 치밀한 묘사와 같은 경우가 그러하였다. 용어의 정확한 정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것인데 이것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서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것은 2장에서 심성사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더불어 사학사적 정의까지 내려준 것까지 비교하자면 사뭇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셋째, 3장은 이 글을 통해 역사가들이 범하는 여러 오류들을 깨닫게 하고 이를 시정하길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원이라는 망상 등을 들 수 있다.
어쨋든 일단 앞서 말했겠지만 심성사와 신문화사는 공통적으로 가장 최근의 역사 사조이여서 연구할 시간이나 자료가 제한적이고 사학사적 범위가 너무나도 다양하여 이것들에 대해서 서술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역사가들에게 조차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부단한 노력을 하여 훌륭한 글을 쓴 이 글의 두 지은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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