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 론
1. 중국예술의 전반전 개관.....................................3
본 론
2. 중국의 회화................................................3
3. 중국의 조각................................................4
4. 중국의 공예
1) 중국의 금속공예..........................................5
2) 중국의 도자기............................................6
3) 중국의 칠공예............................................7
4) 중국의 염직..............................................7
5. 중국의 건축................................................8
6. 중국의 서예................................................9
결 론............................................................10
1. 중국예술의 전반전 개관.....................................3
본 론
2. 중국의 회화................................................3
3. 중국의 조각................................................4
4. 중국의 공예
1) 중국의 금속공예..........................................5
2) 중국의 도자기............................................6
3) 중국의 칠공예............................................7
4) 중국의 염직..............................................7
5. 중국의 건축................................................8
6. 중국의 서예................................................9
결 론............................................................10
본문내용
窯)의 청화 ·오채도 호화찬란하고, 작품 역시 변화무쌍하였다. 만력요(萬曆窯)는 명자(明瓷)의 난숙기이며, 형태도 박진감이 넘치고, 색채도 화려하여 외국에 많이 수출되었다.
명말 동란의 시기에 관요의 지도적 지위가 상실되고, 민요(民窯)에서 자유분방한 청화 ·오채가 양산되었다. 또한 룽취안요는 원(元) ·명초(明初)를 통해서 소위 천룡사청자(天龍寺靑瓷)를 양산하나 명의 중기 이후부터 징더전의 번영에 눌려 급격히 쇠미해진다.
강희(康熙) 연간에는 명대보다도 강력한 정치권력 아래에서 어기창(御器廠)이 재건되어 그 활동도 눈부셨다. 또한 갖가지 새로운 기법이 개척되고, 옛 기법의 재현도 시도되어 정교한 자기가 제작되었다. 청화 ·오채 외에 강희의 소삼채(素三彩) ·낭요(郞窯) ·옹정(雍正)의 두채(豆彩) ·분채(粉彩), 건륭(乾隆)의 분채 ·협채(夾彩) 및 갖가지 단색채는 청조를 대표하는 자기들이다.
그러나 건륭 이후는 기술적 발달로, 오히려 기교적 교치(巧緻)를 다투는 경향이 강해졌다. 태평천국의 난 이후에 징더전요는 심히 퇴폐하여 중국의 도예는 쇠미해졌다.
3) 중국의 칠공예
중국의 칠공예는 동양의 독특한 것으로서, 칠나무가 분포하는 중국 ·한국 ·일본 ·타이 ·미얀마 등 여러 나라에서 옛날부터 성행하였다. 문헌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순제(舜帝) 시대부터 칠을 사용했다 한다. 현재 가장 오래 된 것은 서주대(西周代)의 유품이다. 원래 칠에는 견고성이 갖추어져 있어 기물을 보호하는 데 가장 적합한 도장액이다. 이러한 칠의 특질을 알게 된 중국인은 거기에서 지속성 ·영속성을 찾아내었다.
칠공예가 활발히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한대부터이다. 이 시기에는 관영 공장이 쓰촨성[四川省] 지방을 중심으로 설립되었으나, 당대까지의 칠공예의 발자취는 해명되지 않은 상태이다. 당대의 칠공예도 역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한대에 유행한 가식기법(加飾技法)은 거의 칠화(漆畵)에 한정되었고, 당대가 되면서 평탈(平脫) ·나전(螺鈿) 목화(木畵) 등 매우 다양한 장식기법이 채용되었다. 이 시기는 화려한 상감기법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송대가 되면서 칠공예는 조칠(彫漆)과 무문칠기(無文漆器)가 주축을 이루어 발달하게 된다. 조칠은 이미 당대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송대에 이르러 뛰어나게 진보되어 성행한 듯하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전혀 가식하지 않은 흑칠도(黑漆塗) 칠공법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무문칠기에서는 형태를 중요시하고 한결같이 동시대의 청자와 호응하는 점은 흥미롭다. 또 쟁금(金) 기법이 새로 개발되고, 칠공예의 기법은 거의 송대에 갖추어진다. 원대의 칠공예 산지는 저장성[浙江省]이 중심인 듯 싶고, 장성(張成) ·장무(張茂)와 같은 명공이 배출되어 특히 조칠에서 뛰어난 조형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한편, 창금도 성행한다. 원대의 기법은 그대로 명대에 답습되어, 관영인 과원창(果園廠)이란 공장이 설립되어, 훌륭한 작품이 잇따라 제작되었다. 이렇게 융성한 칠공예는 청대에 들어서면서, 섬세 교치한 기술에 고집하게 되었고, 그 결과 종래의 칠공예에서 볼 수 있었던 풍부한 조형감각이 사라져버렸다
4) 중국의 염직
중국의 염직은 이미 한대에 뛰어난 견직물(絹織物)이 만들어진 것이 중앙아시아의 누란지방(樓蘭地方)과 외몽골의 노인울라에서 출토된 유품에서 엿볼 수 있다. 한대 이전은 비내구성 ·소모품이라는 섬유가 가지는 특수성으로 유품을 얻기가 곤란하다. 그러나 한대 유품의 자수(刺繡) ·금(錦) ·능(緩) ·나(羅) 등의 원류(源流)가 상당히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전국시대의 청동제 인물상에 나타나는 착의의 정교한 가식(加飾) 문양과 같은 전국시대의 허난성[河南省] 진
명말 동란의 시기에 관요의 지도적 지위가 상실되고, 민요(民窯)에서 자유분방한 청화 ·오채가 양산되었다. 또한 룽취안요는 원(元) ·명초(明初)를 통해서 소위 천룡사청자(天龍寺靑瓷)를 양산하나 명의 중기 이후부터 징더전의 번영에 눌려 급격히 쇠미해진다.
강희(康熙) 연간에는 명대보다도 강력한 정치권력 아래에서 어기창(御器廠)이 재건되어 그 활동도 눈부셨다. 또한 갖가지 새로운 기법이 개척되고, 옛 기법의 재현도 시도되어 정교한 자기가 제작되었다. 청화 ·오채 외에 강희의 소삼채(素三彩) ·낭요(郞窯) ·옹정(雍正)의 두채(豆彩) ·분채(粉彩), 건륭(乾隆)의 분채 ·협채(夾彩) 및 갖가지 단색채는 청조를 대표하는 자기들이다.
그러나 건륭 이후는 기술적 발달로, 오히려 기교적 교치(巧緻)를 다투는 경향이 강해졌다. 태평천국의 난 이후에 징더전요는 심히 퇴폐하여 중국의 도예는 쇠미해졌다.
3) 중국의 칠공예
중국의 칠공예는 동양의 독특한 것으로서, 칠나무가 분포하는 중국 ·한국 ·일본 ·타이 ·미얀마 등 여러 나라에서 옛날부터 성행하였다. 문헌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순제(舜帝) 시대부터 칠을 사용했다 한다. 현재 가장 오래 된 것은 서주대(西周代)의 유품이다. 원래 칠에는 견고성이 갖추어져 있어 기물을 보호하는 데 가장 적합한 도장액이다. 이러한 칠의 특질을 알게 된 중국인은 거기에서 지속성 ·영속성을 찾아내었다.
칠공예가 활발히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한대부터이다. 이 시기에는 관영 공장이 쓰촨성[四川省] 지방을 중심으로 설립되었으나, 당대까지의 칠공예의 발자취는 해명되지 않은 상태이다. 당대의 칠공예도 역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한대에 유행한 가식기법(加飾技法)은 거의 칠화(漆畵)에 한정되었고, 당대가 되면서 평탈(平脫) ·나전(螺鈿) 목화(木畵) 등 매우 다양한 장식기법이 채용되었다. 이 시기는 화려한 상감기법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송대가 되면서 칠공예는 조칠(彫漆)과 무문칠기(無文漆器)가 주축을 이루어 발달하게 된다. 조칠은 이미 당대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송대에 이르러 뛰어나게 진보되어 성행한 듯하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전혀 가식하지 않은 흑칠도(黑漆塗) 칠공법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무문칠기에서는 형태를 중요시하고 한결같이 동시대의 청자와 호응하는 점은 흥미롭다. 또 쟁금(金) 기법이 새로 개발되고, 칠공예의 기법은 거의 송대에 갖추어진다. 원대의 칠공예 산지는 저장성[浙江省]이 중심인 듯 싶고, 장성(張成) ·장무(張茂)와 같은 명공이 배출되어 특히 조칠에서 뛰어난 조형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한편, 창금도 성행한다. 원대의 기법은 그대로 명대에 답습되어, 관영인 과원창(果園廠)이란 공장이 설립되어, 훌륭한 작품이 잇따라 제작되었다. 이렇게 융성한 칠공예는 청대에 들어서면서, 섬세 교치한 기술에 고집하게 되었고, 그 결과 종래의 칠공예에서 볼 수 있었던 풍부한 조형감각이 사라져버렸다
4) 중국의 염직
중국의 염직은 이미 한대에 뛰어난 견직물(絹織物)이 만들어진 것이 중앙아시아의 누란지방(樓蘭地方)과 외몽골의 노인울라에서 출토된 유품에서 엿볼 수 있다. 한대 이전은 비내구성 ·소모품이라는 섬유가 가지는 특수성으로 유품을 얻기가 곤란하다. 그러나 한대 유품의 자수(刺繡) ·금(錦) ·능(緩) ·나(羅) 등의 원류(源流)가 상당히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전국시대의 청동제 인물상에 나타나는 착의의 정교한 가식(加飾) 문양과 같은 전국시대의 허난성[河南省]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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