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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진화론의 정의와 역사
#2 창조론의 정의와 역사
#3 창조론과 진화론의 쟁점들
#4 창조론과 진화론의 교육문제
#5 생각해볼 문제
#6 참고자료
#2 창조론의 정의와 역사
#3 창조론과 진화론의 쟁점들
#4 창조론과 진화론의 교육문제
#5 생각해볼 문제
#6 참고자료
본문내용
지고 인간을 근절시키려 했을 때는 우티나프쉬팀에게 알리어 인류의 멸망을 막았다. 에아는 물고기의 꼬리를 가진 염소로 상징된 남자, 혹은 어깨에서 물의 흐름을 뿜어내는 남자, 또는 손에 병을 든 남자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3) 마르두크
마르두크의 머리가 함께 그려진 신바빌로니아제국의 문헌
마르두크는 원래 물의 풍요로운 힘을 인격화한 것이라고 한다. 식물을 자라게 하고, 곡물을 익게 하는 것도 마르두크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그는 농경의 신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마르두크가 가지고 다니는 물건 중에 매로우라고 불리는 쟁기가 있는데 이것 역시 마르두크가 농사의 신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마르두크를 섬겼던 도시인 바빌론의 세력이 커지면서 마르두크가 바빌로니아의 만신전에서 최고신이 되었다고 한다. 즉 태초의 전쟁이 벌어지기 전 신들의 회의에서 모든 신들이 마르두크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신화의 형식으로 마르두크가 최고신이 된 것이다.
마르두크가 티아마트에 대항한 전쟁에서 승리하자 신들은 약속을 이행하여 마르두크에게 각각의 신의 권한에 대응하는 50개의 칭호를 부여했다. 이리하여 마르두크는 다른 모든 신들의 힘을 흡수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여러 가지 권한을 인계 받았다. 우주를 조직하고 신들의 거처를 정하고 별들의 길을 정한 것도 마르두크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르두크가 자신의 피를 가지고 인간들을 창조하였다는 점이다. 마르두크는 또 질병의 치유자이기도 하며 아버지 에아를 대신해서 마술의 주문도 물려받았다.
4) 이쉬타르
어떤 사람들은 이쉬타르를 아누의 딸이라고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신(Sin)의 딸이라고도 한다. 이쉬타르는 스스로 ‘아침의 여신이면서 저녁의 여신’이라고 칭하고 있으며, 앗시리아-바빌로니아의 수많은 신들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신이다.
이쉬타르는 금성을 신격화한 존재로서 후대 그리스 로마의 비너스, 아프로디테와도 무관하지 않은 여신이다. 이쉬타르는 상당히 복잡한 신이어서, 남녀양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바빌로니아-앗시리아 인들에게는 여신이지만 아랍 인들은 아타르라는 이름으로 남신으로 숭배하기도 한다. 또한 이쉬타르가 신(Sin)의 딸이라고 할 때는 전쟁의 여신이 되지만, 아누의 딸이라고 할 때는 사랑의 여신이 되기도 한다.
이쉬타르는 사랑의 욕망을 퍼트리는 신이기도 하다. 이런 연관성에서 고대의 이쉬타르 제사에는 이른바 \"성스러운 매춘\"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이제, 이쉬타르의 사랑에 관한 신화를 살펴보자. 이쉬타르 여신이 젊었을 때 수확의 신 탐무즈를 사랑했는데, 길가메쉬의 말에 의하면, 그녀의 사랑은 탐무즈의 죽음을 초래했다. 이쉬타르는 그것을 무척 슬퍼하고 애인에게 비탄의 눈물을 뿌렸다고 한다. 이는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의 사랑을 연상시킨다. 이쉬타르는 탐무즈를 찾기 위해, 그를 살려내 끔찍한 저승에서 데리고 나오기 위해, 지옥에 내려가서 ‘돌아오지 않는 땅에 일단 들어간 자는 다시 나올 수 없는 집’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이쉬타르는 지옥의 문을 열게 하고 하나씩 하나씩 몸에 지닌 장신구를 빼앗겨 가며 일곱 개의 성문을 의연히 뚫고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머리 위의 큰 관, 귀걸이, 목걸이, 가슴의 장식, 탄생석을 박은 허리띠, 손목과 발목의 장식, 끝으로 그녀가 입은 정결의 의상, 모든 것을 빼앗겼다. 이쉬타르는 지옥의 여왕 에레쉬키갈 앞에 다다라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에레쉬키갈은 자기 심부름꾼인 남타르에게 도움을 청하여 그로 하여금 이쉬타르를 궁정에 유폐시켜 60가지의 병에 걸리게 했다. 이렇게 해서 이쉬타르는 저승의 포로가 되었으며, 이 사실이 지상에서는 고뇌요, 하늘에서도 무한한 슬픔이 되었다.
이쉬타르의 아버지 신(Sin)은 에아에게 애원했다. 에아는 이쉬타르를 구하기 위해 아수슈나미르를 만들어 마술의 주문을 가르쳐 \'돌아오지 않는 땅\'으로 보냈다. 그 주문은 에레쉬키갈의 의지를 구속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옥의 여왕은 이쉬타르를 석방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2. 이슬람교
※ 신(알라)의 창조목적
이슬람의 창조사상은 진화론을 수용할 수 있다. 이슬람에서는 알라가 세상을 창조했을 뿐 아니라 그 후에도 창조행위를 끊임없이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슬람의 신관에 의하면 알라에 의한 창조는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계속적 사건이다. 즉 알라의 창조의 역사는 과거 서력 기원전 몇 년 몇 월 몇 번째 주인 어느 특정한 시점을 끝으로 하여 완결된 것이 아니라 태초 이래 지속되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수의 이슬람 학자들은 알라가 천지만물을 창조했으나 ‘진화론’ (theistic-evolution)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이 진화론과 병존할 수 없음과 대비된다.
코란에서는 알라가 천지를 창조한 목적이 유희(pastime)를 위해서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We created not the heaven and the earth and all that is between them in play. If we had wished to find a pastime, we could have found it in our presence - if we ever did”(“나는 하늘과 땅과 그 사이의 모든 것을 유희를 위하여 창조하지 않았느니라. 만일 내가 소일거리를 찾고자 하였다면 나는 나와 함께 있는 것 속에서 찾았을 것 이니라”-surah21:17,18). 즉 알라가 천지만물을 창조한 것은 그의 특별한 의도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슬람 신학에서는 알라의 천지창조의 목적이, 인간이 지상에서 신의 대리자이며 창조주의 모습을 반영하는 거울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이는 알라가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며, 모든 만물이 그 앞에서 순순히 복종하는가 보기 위함이라는 의미이다.
3. 불교
불교에선 이 세상이 생겨난 이유를 업(業)으로 이야기한다. 이 때의 업은 혼자만의 업이 아닌 중생들이 가지는 업의 집합을 말하며, 중생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업은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게 되어 그 힘으로 세상이 생겨나게
3) 마르두크
마르두크의 머리가 함께 그려진 신바빌로니아제국의 문헌
마르두크는 원래 물의 풍요로운 힘을 인격화한 것이라고 한다. 식물을 자라게 하고, 곡물을 익게 하는 것도 마르두크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그는 농경의 신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마르두크가 가지고 다니는 물건 중에 매로우라고 불리는 쟁기가 있는데 이것 역시 마르두크가 농사의 신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마르두크를 섬겼던 도시인 바빌론의 세력이 커지면서 마르두크가 바빌로니아의 만신전에서 최고신이 되었다고 한다. 즉 태초의 전쟁이 벌어지기 전 신들의 회의에서 모든 신들이 마르두크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신화의 형식으로 마르두크가 최고신이 된 것이다.
마르두크가 티아마트에 대항한 전쟁에서 승리하자 신들은 약속을 이행하여 마르두크에게 각각의 신의 권한에 대응하는 50개의 칭호를 부여했다. 이리하여 마르두크는 다른 모든 신들의 힘을 흡수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여러 가지 권한을 인계 받았다. 우주를 조직하고 신들의 거처를 정하고 별들의 길을 정한 것도 마르두크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르두크가 자신의 피를 가지고 인간들을 창조하였다는 점이다. 마르두크는 또 질병의 치유자이기도 하며 아버지 에아를 대신해서 마술의 주문도 물려받았다.
4) 이쉬타르
어떤 사람들은 이쉬타르를 아누의 딸이라고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신(Sin)의 딸이라고도 한다. 이쉬타르는 스스로 ‘아침의 여신이면서 저녁의 여신’이라고 칭하고 있으며, 앗시리아-바빌로니아의 수많은 신들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신이다.
이쉬타르는 금성을 신격화한 존재로서 후대 그리스 로마의 비너스, 아프로디테와도 무관하지 않은 여신이다. 이쉬타르는 상당히 복잡한 신이어서, 남녀양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바빌로니아-앗시리아 인들에게는 여신이지만 아랍 인들은 아타르라는 이름으로 남신으로 숭배하기도 한다. 또한 이쉬타르가 신(Sin)의 딸이라고 할 때는 전쟁의 여신이 되지만, 아누의 딸이라고 할 때는 사랑의 여신이 되기도 한다.
이쉬타르는 사랑의 욕망을 퍼트리는 신이기도 하다. 이런 연관성에서 고대의 이쉬타르 제사에는 이른바 \"성스러운 매춘\"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이제, 이쉬타르의 사랑에 관한 신화를 살펴보자. 이쉬타르 여신이 젊었을 때 수확의 신 탐무즈를 사랑했는데, 길가메쉬의 말에 의하면, 그녀의 사랑은 탐무즈의 죽음을 초래했다. 이쉬타르는 그것을 무척 슬퍼하고 애인에게 비탄의 눈물을 뿌렸다고 한다. 이는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의 사랑을 연상시킨다. 이쉬타르는 탐무즈를 찾기 위해, 그를 살려내 끔찍한 저승에서 데리고 나오기 위해, 지옥에 내려가서 ‘돌아오지 않는 땅에 일단 들어간 자는 다시 나올 수 없는 집’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이쉬타르는 지옥의 문을 열게 하고 하나씩 하나씩 몸에 지닌 장신구를 빼앗겨 가며 일곱 개의 성문을 의연히 뚫고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머리 위의 큰 관, 귀걸이, 목걸이, 가슴의 장식, 탄생석을 박은 허리띠, 손목과 발목의 장식, 끝으로 그녀가 입은 정결의 의상, 모든 것을 빼앗겼다. 이쉬타르는 지옥의 여왕 에레쉬키갈 앞에 다다라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에레쉬키갈은 자기 심부름꾼인 남타르에게 도움을 청하여 그로 하여금 이쉬타르를 궁정에 유폐시켜 60가지의 병에 걸리게 했다. 이렇게 해서 이쉬타르는 저승의 포로가 되었으며, 이 사실이 지상에서는 고뇌요, 하늘에서도 무한한 슬픔이 되었다.
이쉬타르의 아버지 신(Sin)은 에아에게 애원했다. 에아는 이쉬타르를 구하기 위해 아수슈나미르를 만들어 마술의 주문을 가르쳐 \'돌아오지 않는 땅\'으로 보냈다. 그 주문은 에레쉬키갈의 의지를 구속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옥의 여왕은 이쉬타르를 석방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2. 이슬람교
※ 신(알라)의 창조목적
이슬람의 창조사상은 진화론을 수용할 수 있다. 이슬람에서는 알라가 세상을 창조했을 뿐 아니라 그 후에도 창조행위를 끊임없이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슬람의 신관에 의하면 알라에 의한 창조는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계속적 사건이다. 즉 알라의 창조의 역사는 과거 서력 기원전 몇 년 몇 월 몇 번째 주인 어느 특정한 시점을 끝으로 하여 완결된 것이 아니라 태초 이래 지속되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수의 이슬람 학자들은 알라가 천지만물을 창조했으나 ‘진화론’ (theistic-evolution)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이 진화론과 병존할 수 없음과 대비된다.
코란에서는 알라가 천지를 창조한 목적이 유희(pastime)를 위해서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We created not the heaven and the earth and all that is between them in play. If we had wished to find a pastime, we could have found it in our presence - if we ever did”(“나는 하늘과 땅과 그 사이의 모든 것을 유희를 위하여 창조하지 않았느니라. 만일 내가 소일거리를 찾고자 하였다면 나는 나와 함께 있는 것 속에서 찾았을 것 이니라”-surah21:17,18). 즉 알라가 천지만물을 창조한 것은 그의 특별한 의도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슬람 신학에서는 알라의 천지창조의 목적이, 인간이 지상에서 신의 대리자이며 창조주의 모습을 반영하는 거울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이는 알라가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며, 모든 만물이 그 앞에서 순순히 복종하는가 보기 위함이라는 의미이다.
3. 불교
불교에선 이 세상이 생겨난 이유를 업(業)으로 이야기한다. 이 때의 업은 혼자만의 업이 아닌 중생들이 가지는 업의 집합을 말하며, 중생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업은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게 되어 그 힘으로 세상이 생겨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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