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 론
1. 서문 (박준성)
2. 작가 약력 (꽁메이홍)
Ⅱ. 본 론
1. 작가론적 관점
(1) 삶 - 시인 기형도, 그 미완성의 미학
(2) 죽음 - 그의 죽음과 시의 죽음,. 강렬한 상징!
(3) 시 - 그의 작품, 그의 상처
2. 내재적 관점
(1) 기형도 시를 통해 형상화된 자연의 의미
(2) 기형도 시에서 고체성의 이미지가 의미하는 것
(3) 기형도 시에서의 자아의 대상화
Ⅲ. 결 론
- 편집 후기
1. 서문 (박준성)
2. 작가 약력 (꽁메이홍)
Ⅱ. 본 론
1. 작가론적 관점
(1) 삶 - 시인 기형도, 그 미완성의 미학
(2) 죽음 - 그의 죽음과 시의 죽음,. 강렬한 상징!
(3) 시 - 그의 작품, 그의 상처
2. 내재적 관점
(1) 기형도 시를 통해 형상화된 자연의 의미
(2) 기형도 시에서 고체성의 이미지가 의미하는 것
(3) 기형도 시에서의 자아의 대상화
Ⅲ. 결 론
- 편집 후기
본문내용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어느덧 졸업이 다가왔고, 그는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대학 시절」, 1989) 고 말하며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젊음이 끝나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것은 자신의 삶 앞에 놓여있는 불안과 위기감 때문이었으리라.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 「대학 시절」전문
그렇게 그는 1984년 10월, 중앙일보의 수습기자로 들어간다.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응모한 시 「안개」가 당선된 것은 두 달 남짓 뒤의 일이다. 이후 1985년 2월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한 후 문화부 기자를 거쳐 편집부에서 일한다. 이 무렵에 그는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오래된 서적書籍」,1985) 라고 쓴다. 그러나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 (「장미빛 인생」,1987) 고 섬뜩하게 외치던 그의 황폐한 내면은 사람들 앞에서 “크고 넓은 이파리”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1988) 들로 가려지곤 한다. 이렇듯 이 도저한 절망과 염세주의는 현실 생활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았다. 그는 쾌활한 젊은이였고, 노래를 잘하는 기자였다. 떨리는 음색의 미성으로 재현되는 그의 십팔번인 송창식의 곡과 조용필, 조영남, 양희은, 신대철의 곡들을 그의 노래로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그에게 매혹되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는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이는 그가 쓴 시와 글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작가와 작품이 있었다는 것, 그와 겪은 일화를 주변 지인들이 남긴 글로써 그의 예술적 감성을 유추해볼 수 있는데, 그에 대한 일화로, 죽기 1년 전, 그가 홀연히 여행을 떠난 1988년 8월 2일 화요일 10시 대구에서 그는 장정일을 만났다. (여기에서는 장정일 소년이라고 표현했다.) (산문집 - 짧은 여행의 기록, 1988) 우선 장정일을 만났다는 것이 하나의 키워드가 될 수 있겠지만, 그 때 그들이 긴밀한 공감대를 나누었을 것이라고는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고, 그것보다도 그들이 나눈 대화 중에 영화 「파리, 텍사스」, 그리고 「베티 블루」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는 부분이 있는데, 시인의 한 일면을 보기 위해서 그 영화의 의미를 잠깐 짚고 넘어갈까 한다. 그 중 빔 벤더스의 작품인 「파리, 텍사스」(1984) 에 대한 내용이 말과 기억을 상실한 주인공이 과거를 되찾는 과정을 로드 무비의 형식을 통해 현대인의 존재와 대화의 불능성에 대한 것으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것에 대한 관심이 기형도의 시와 연계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고 느껴졌다.
당시 기형도가 발표한 시인「길 위에서 중얼거리다」(1988) 를 통해 그것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유추해보았는데, 이 때의 기형도는 어쩌면 그런 관계 회복의 의지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이었을 것 같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전작들과는 사뭇 다르게 이후 쓰게 되는 시인 「그 집 앞」,「빈 집」,「질투는 나의 힘」(1989) 과 같이 시에서 느껴지는 시인의 어떠한 개인적인 절망과도 연관될 정서일 듯하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전문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빈 집」전문
그 외에도 그는 그의 글에서 밝혔듯 그의 가방 안에는 T.S 엘리엇, 워즈워드, 릴케와 같은 작가들의 책이 들어 있었고, 또한 까뮈나 도스토예프스키, 칼 맑스의 저서들, 샤르트르, 보들레르, 랭보의 시와 평전을 읽었다고 쓰고 있다. 그 외 그가 쓴 글과 기사에서 장정일, 정현종, 황동규, 오규원, 고은 등과 같은 작가들을 지속적으로 만나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그 나름대로의 흔적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겠다.
드문드문 좋은 시를 발표하던 그는 어느 날 김현의 월평 원고를 앞에 놓고 고민에 빠진다. 김현의 월평 원고는 다름이 아니라 문학 담당 기자인 자신의 시를 다루고 있었다. 그의 시는 월평에서 다루어지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고 신인으로서 대평론가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월평 원고를 신문에 내보내는 것은 뻔뻔스러운 일이라고 그는 생각하여, 결벽증적으로 기형도는 끝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러나 기형도의 시집은 그가 죽은 뒤에서야 세상으로 나온다. 그가 시집 출간을 염두에 두고 꼼꼼하게 원고를 정리하고 있던 중, 1989년 3월 7일 이른 3시 30분, 서울 종로 3가, 뽕2가 상영되던 파고다극장의 한 좌석에서 그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사인은 뇌졸중. 아무도 그가 왜 혼자 국산 영화가 상영되던 그 심야 재개봉관에 갔는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며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 사후 출간된 「입 속의 검은 잎」이라는 시집 제목은 평론가 김현이 정한 것이다. 그는 아름다우면서도 절망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이 한 권의 시집으로 단번에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 「대학 시절」전문
그렇게 그는 1984년 10월, 중앙일보의 수습기자로 들어간다.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응모한 시 「안개」가 당선된 것은 두 달 남짓 뒤의 일이다. 이후 1985년 2월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한 후 문화부 기자를 거쳐 편집부에서 일한다. 이 무렵에 그는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오래된 서적書籍」,1985) 라고 쓴다. 그러나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 (「장미빛 인생」,1987) 고 섬뜩하게 외치던 그의 황폐한 내면은 사람들 앞에서 “크고 넓은 이파리”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1988) 들로 가려지곤 한다. 이렇듯 이 도저한 절망과 염세주의는 현실 생활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았다. 그는 쾌활한 젊은이였고, 노래를 잘하는 기자였다. 떨리는 음색의 미성으로 재현되는 그의 십팔번인 송창식의 곡과 조용필, 조영남, 양희은, 신대철의 곡들을 그의 노래로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그에게 매혹되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는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이는 그가 쓴 시와 글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작가와 작품이 있었다는 것, 그와 겪은 일화를 주변 지인들이 남긴 글로써 그의 예술적 감성을 유추해볼 수 있는데, 그에 대한 일화로, 죽기 1년 전, 그가 홀연히 여행을 떠난 1988년 8월 2일 화요일 10시 대구에서 그는 장정일을 만났다. (여기에서는 장정일 소년이라고 표현했다.) (산문집 - 짧은 여행의 기록, 1988) 우선 장정일을 만났다는 것이 하나의 키워드가 될 수 있겠지만, 그 때 그들이 긴밀한 공감대를 나누었을 것이라고는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고, 그것보다도 그들이 나눈 대화 중에 영화 「파리, 텍사스」, 그리고 「베티 블루」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는 부분이 있는데, 시인의 한 일면을 보기 위해서 그 영화의 의미를 잠깐 짚고 넘어갈까 한다. 그 중 빔 벤더스의 작품인 「파리, 텍사스」(1984) 에 대한 내용이 말과 기억을 상실한 주인공이 과거를 되찾는 과정을 로드 무비의 형식을 통해 현대인의 존재와 대화의 불능성에 대한 것으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것에 대한 관심이 기형도의 시와 연계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고 느껴졌다.
당시 기형도가 발표한 시인「길 위에서 중얼거리다」(1988) 를 통해 그것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유추해보았는데, 이 때의 기형도는 어쩌면 그런 관계 회복의 의지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이었을 것 같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전작들과는 사뭇 다르게 이후 쓰게 되는 시인 「그 집 앞」,「빈 집」,「질투는 나의 힘」(1989) 과 같이 시에서 느껴지는 시인의 어떠한 개인적인 절망과도 연관될 정서일 듯하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전문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빈 집」전문
그 외에도 그는 그의 글에서 밝혔듯 그의 가방 안에는 T.S 엘리엇, 워즈워드, 릴케와 같은 작가들의 책이 들어 있었고, 또한 까뮈나 도스토예프스키, 칼 맑스의 저서들, 샤르트르, 보들레르, 랭보의 시와 평전을 읽었다고 쓰고 있다. 그 외 그가 쓴 글과 기사에서 장정일, 정현종, 황동규, 오규원, 고은 등과 같은 작가들을 지속적으로 만나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그 나름대로의 흔적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겠다.
드문드문 좋은 시를 발표하던 그는 어느 날 김현의 월평 원고를 앞에 놓고 고민에 빠진다. 김현의 월평 원고는 다름이 아니라 문학 담당 기자인 자신의 시를 다루고 있었다. 그의 시는 월평에서 다루어지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고 신인으로서 대평론가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월평 원고를 신문에 내보내는 것은 뻔뻔스러운 일이라고 그는 생각하여, 결벽증적으로 기형도는 끝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러나 기형도의 시집은 그가 죽은 뒤에서야 세상으로 나온다. 그가 시집 출간을 염두에 두고 꼼꼼하게 원고를 정리하고 있던 중, 1989년 3월 7일 이른 3시 30분, 서울 종로 3가, 뽕2가 상영되던 파고다극장의 한 좌석에서 그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사인은 뇌졸중. 아무도 그가 왜 혼자 국산 영화가 상영되던 그 심야 재개봉관에 갔는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며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 사후 출간된 「입 속의 검은 잎」이라는 시집 제목은 평론가 김현이 정한 것이다. 그는 아름다우면서도 절망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이 한 권의 시집으로 단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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