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해방 직후의 대한 민국의 신탁 통치문제와 단정 수립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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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현대사) 해방 직후의 대한 민국의 신탁 통치문제와 단정 수립 과정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모스크바 3상회의
3. 신탁통치와 국내 정치세력들의 반응과 그 논리
4. 미‧소 공동위원회
5. 한국문제의 UN이관과 단정수립
6. 마치며

본문내용

지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신탁통치를 절대 반대한다.이 신탁의 철폐를 위하여는 이 민족통일전선을 좀더 공고하게 결성하여야 할 것을 또다시 제창한다.
그런데 좌익측이 신탁통치에 대한 찬성 입장을 보인것은 1946년 1월 2일이다. 다시 말하면 1945년 10월 20일 빈센트 발언 이래 12월 28일 모스크바 협정 발표후 조선 공산당이 모스크바 협정 지지를 공식으로 표명한 1월 2일 까지는 신탁통치 반대라는 점에서 좌 우양파가 일치되어 있었다는 것이된다. 그러나 1월 2일 인공 중앙인민위원회가 모스크바 3상회의 지지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정국은 또다른 방향으로 진전시켰다.
또한 조선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도 모스크바 3상회의 결의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찬탁입장으로 돌아선 그들은 성명서나 기자회견 혹은 대중집회를 통해서 반탁에서 찬탁으로 태도변화를 보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좌익측이 그러한 태도변화를 가져오게 된 이유를 알아봐야 하겠다.
해방정국의 두 주역이 미국과 소련임이 분명하고 냉전 논리가 국제 정치의 현실 속에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시기인 것을 고려해 본다면 우선은 소련과의 어떤 관계 혹은 영향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점을 들 수있다.
또 해방정국은 각정파의 이합집산 ,주도권 쟁취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느 정치세력이 당시 반탁의 분위기에 반하는 논리의 성명서나 입장을 표명하기가 쉽겠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좌익 세력의 반탁에서 찬탁으로의 태도변화를 보인것과 그이유를 알아봤다.
다음은 우익세력의 반탁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b) 우익세력은 1월 20일 김구 중심의 반탁세력들이 임시 정부의 정통성을 잇고 과도 정부의 모체를 위해 민중지도자, 정당, 사회단체 , 해외교포단체 대표로 비상정치 회의를 개최하여 비상국무회의(나중에 비상국민회의로 개칭됨)를 설치한다.이 집회에 좌익세력과 임정내의 진보 세력(김원봉, 김성수등)은 탈퇴되었지만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합류해 비상국민회의 라는 조직체로 새롭게 탄생되었다. 이 비상국민회의는 미소 공위가 제시하는 과도 임시정부의 모체를 사전에 준비하기 위한 미군정의 의도로 미군정 자문 성격의 기구인 남조선 대한민국 대표의원이 명칭을 달리하여 발족된다. 이 기구는 우선 미소공위에서 논의의 대상이 될 우익 진영의 통합기구로서의 위치 그리고 일종의 입법기관의 역할을 하게된다. 미국은 미소 공위에서 제기한 국내 세력을 대표하게 될 대표선출이 여의치 않을 경우 독자적인 남한만의 자문단체를 설립 이를 통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의도하고 있는 거시다. 이것은 국내 반탁세력들의 결집체인 민주의원이 미군정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정국의 흐름을 미군정이 이끌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
3) 신탁통치와 찬.반탁논리
a) 좌익과 찬탁논리
좌익측은 모스크바 3상회담결과 국내에 큰 파문을 일으킨 신탁통치문제에 쉽사리 찬탁논리를 국민들에게 펴지 못했다. 그러나 1946년 1월 2일 공식적이 찬탁움직임을 보인다. 그렇다면 반탁이 찬탁으로 변한 것은 어떤 논리인가에 대해서 살펴보자
좌익측은 모스크바 3상 결정과 소련에 대한 신뢰감이 즉각적인 조선의 독립보다 앞서는 논리를 깔고 있다.
보다 자세하게 좌익의 논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조선에 민주주의적 임시 정부의 급속 수립을 원조한다 하였다. 정부수립에 있어 민주주의적인 방법이 가장 옳기 때문에 이 방법을 승인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는 조선에서 군정을 철폐하고 우리 민족의 손으로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가장 긴급한 문제고 모스크바 3상회담은 이를 실현케 해주는 회담이다.
2. 신탁을 4개국 공동신탁에 두고 5년이 지나면 언제든지 우리 민족의 역량에 의하여 철폐할 수 있고, 또 조선을 4개국 공동신탁하에 두어 어떤 1국의 식민지화를 방지하는 동시에 5년이 지나면 조선의 독립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할 수 없다는 논리다.
3. 조선의 신탁통치는 일제잔재세력 소탕, 곧 파쇼세력대두 방지에 대한 보장을 얻었기 때문에,
4. 조선의 경제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고 더군다나 남조선의 분리는 조선 전체를 단위로 하여 경제가 건설되었는바 경제 부흥을 불가능케 한다는 논리, 그리고 이 경제 부흥은 앞으로 남북통일과 선진국가원조를 절대 필요로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 신탁은 정치문제(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으로 해결되고) 해결과 동시에 경제건설에 있다는 논리,
5. 경제문제에 있어 경제부흥 태만으로 남조선 인민들은 거의 사경에 접근하고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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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0.15
  • 저작시기2010.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3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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