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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원시시대 역사
2. 원시시대 교육
3. 원시시대 철학
4. 원시시대 체육
5. 결 론
2. 원시시대 교육
3. 원시시대 철학
4. 원시시대 체육
5. 결 론
본문내용
뛰었다. 중량물의 사용은 넓이뛰기의 거리에 반영되었다.
원반던지기에서 사용하는 원반도 할테레스처럼 잘 다듬어진 돌 또는 금속으로 만든 둥근 형태였다. 그리고 직경은 1피트이고 무게는 4~5파운드이다. 두 번이나 세 번 회전한 뒤에 원반을 던지는 현대의 방법과는 다르게, 그리스인들은 고정된 자세를 취하였다.
예술가들은 원반던지기는 사람의 자세에서 나타나는 완벽한 균형으로부터 우수한 소재를 발견하였다. 미론(Myron)의 작품 『원반 던지는 사람』은 조각가의 실력을 들어낼 뿐만 아니라, 전기 아테네인들의 신체적 균형활력우아 등을 나타내는 조상이다.
5종 경기에 포함된 창던지기는 두 가지 형태도 구분된다. 하나는 전쟁과 사냥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체육을 위한 것이다. 운동선수들은 던진 거리와 던지는 사람의 자세에 관심을 가졌다.
이와 반대로, 병사들은 힘과 정확도를 중시하였다. 운동을 위한 투창용의 창은 가볍고 끝이 무뎠으며, 길이는 8~10피트였다. 이 창은 무게중심에 가죽 끈을 부착시킴으로써 창이 날아갈 때 회전하도록 하였다. 창던지기는 힘의 경기라기보다는 오히려 기량의 대결이었다.
5종 경기에 마지막 종목으로 들어 있는 레슬링은 모든 그리스 스포츠 가운데 가장 인기 있고 보편적인 경기였다. 그리스인들은 레슬링이야 말로 다른 어느 종목보다도 신체의 힘과 기민성과 우아함을 더 잘 드러내준다고 믿었다. 레슬링은 5종경기의 한 종목이면서 올림픽의 독립종목이었다. 레슬링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었는데, 기립(standing)레슬링과 접지레슬링이 그것이다. 그 중 전자가 보다 일반적이었고, 인기도 더 높았다. 경기자들은 얼굴을 마주보고 똑바로 서서 자신은 넘어지지 않은 채 상대방을 넘어뜨리고자 하였다. 세 번 넘어뜨리면 승리하게 된다. 접지레슬링은 상대방을 땅바닥에 내던진 뒤 상대방이 패배를 받아들일 때까지 싸움을 지속하는 경기이다. 시합은 현대의 토너먼트와 동일한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레슬링은 팔래스트라에서도 배웠는데, 이는 교육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여겼다.
독립종목인 권투는 제23회 올림픽경기 때 도입되었다. 권투의 시작은 호메로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신화에서 아폴로(Apollo)가 아레스(Ares)를 이겼던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호메로스시대의 운동선수들과는 다르게 올림픽경기자들은 허리부분에 보호혁띠를 두르지 않았다. 그리스인들은 글로브를 사용하지 않은 대신 10피트 길이의 얇은 가죽끈을 손바닥에 감았다. 그들의 타격과 회피방법은 오늘날의 그것과 비슷하였다. 그러나, 그리스의 권투경기자들은 타격을 거의 전부 머리에 퍼부었다. 신체 타격은 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금지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스 권투에는 링도, 로프도, 라운드도 없고, 진행자도 없었다. 넘어져 있는 상대방을 치지 못하게 금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발로 차기, 껴안기, 맞붙들기 등은 금지되었다.
싸움은 상대방이 넘어져 의식을 잃게 될 때까지, 또는 부상이나 피로로 인하여 패배를 받아들여 싸움이 저지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때로는 상호간의 승낙 아래 휴식을 취하기 위해 경기가 잠시 중지되기도 하였다. 그리스 권투는 느린 속도의 방어적 스포츠였으므로 현대 권투가 지닌 공격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체급구분이 설정되지 않았으므로 그리스 권투는 중량급의 스포츠가 되었다.
훈련할 때 귀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머리에 쓸 것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팔래스트라에서 공부하는 소년들은 이 보호 장치를 활용하였지만, 공식경기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권투연습은 근육운동에 필요한 조정을 완벽하게 하기 위하여 혼자서 하였다. 혼자서 연습할 때에는 맨손으로 공격을 받아내는 훈련도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가벼운 펀칭백이 연습 시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제33회 올림픽경기 때 하나의 종목으로 채택된 ‘판크라티움’은 원시적이고 난폭한 운동으로, 권투와 레슬링이 복합된 형태였다. 판크라티움이 대축제 중에 벌어질 때에는 규제를 통하여 난폭성을 완화시켰는데, 특히 물어뜯기와 도려내기는 금지되었다. 상대방이 패배를 자인할 때 승자가 결정되었다. 오랫동안 이 스포츠는 축제 도중 어른들에게만 국한되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팔래스트라에서 철저한 감독 아래 이 스포츠를 하였다.
전차경주는 호메로스시대의 장례경기(funeral)때부터 인기를 모았다. 축제 경주들은 일리아드(Iliad)에서의 그것과 비슷하였다. 경마는 전차경주만큼이나 인기가 있었다. 이는 BC 5세기에 주조되기 시작한 동경(銅鏡)에 그려진 그림에서도 확인된다. 일반적으로 경주 프로그램에는 성숙한 말, 망아지, 4두전차, 쌍두전차 등의 종목이 들어간다. 쌍두전차경주는 아마도 가장 오래된 종목이었을 것이다. 이 경주는 제25회 올림픽경기때 도입되었다. 기수들이 타는 4두전차경기는 제33회 올림픽경기때 채택되었다. 이들 스포츠는 말을 소유하고 유지할 수 있는 부유층에 국한되었다.
수상스포츠와 무용은 모든 축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종목은 아니었으나, 아테네 체육교육 프로그램의 일부였다. 헤르미오네(Hermione)경기때만 수상경기가 열렸다. 수영은 물가에 사는 소년들에게 널리 유행하였다. 그리고, 해군에 복무하는 병사들에게는 유용한 기술이 되었다. 문학작품에 산재하는 단편적인 암시에 의하면, 수영이 당시의 대중들에게 널리 유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꽃병에 남아 있는 그림을 통하여 우리는 당시에 사용한 수영기법에 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오버핸드 스트로크, 개구리헤엄, 및 옆구리헤엄 등이 사용된 기법이었지만, 별로 많이 사용되지는 않았다. 플라톤(Platon)도 누운 자세로 수영하는 사람에 관하여 언급하였다. 또한, 그리스인들은 물위에 떠서 나아가는 방법을 알았다.
아테네 청소년들은 노젓는 법도 배웠다. 이는 200명의 선원이 승선하는 삼단(三段)노의 군선을 움직여야 할 필요성을 상기해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선박경주는 이스트미아(Isthmia)축제와 그 밖의 수많은 지역축제에서 후원은 받았다.
무용은 아테네인들의 생활 가운데 널리 보급되었다. “그들은 사원에서, 숲속에서, 들판에서 춤을 추었다. 가정과 관련된 사건이 일어날
원반던지기에서 사용하는 원반도 할테레스처럼 잘 다듬어진 돌 또는 금속으로 만든 둥근 형태였다. 그리고 직경은 1피트이고 무게는 4~5파운드이다. 두 번이나 세 번 회전한 뒤에 원반을 던지는 현대의 방법과는 다르게, 그리스인들은 고정된 자세를 취하였다.
예술가들은 원반던지기는 사람의 자세에서 나타나는 완벽한 균형으로부터 우수한 소재를 발견하였다. 미론(Myron)의 작품 『원반 던지는 사람』은 조각가의 실력을 들어낼 뿐만 아니라, 전기 아테네인들의 신체적 균형활력우아 등을 나타내는 조상이다.
5종 경기에 포함된 창던지기는 두 가지 형태도 구분된다. 하나는 전쟁과 사냥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체육을 위한 것이다. 운동선수들은 던진 거리와 던지는 사람의 자세에 관심을 가졌다.
이와 반대로, 병사들은 힘과 정확도를 중시하였다. 운동을 위한 투창용의 창은 가볍고 끝이 무뎠으며, 길이는 8~10피트였다. 이 창은 무게중심에 가죽 끈을 부착시킴으로써 창이 날아갈 때 회전하도록 하였다. 창던지기는 힘의 경기라기보다는 오히려 기량의 대결이었다.
5종 경기에 마지막 종목으로 들어 있는 레슬링은 모든 그리스 스포츠 가운데 가장 인기 있고 보편적인 경기였다. 그리스인들은 레슬링이야 말로 다른 어느 종목보다도 신체의 힘과 기민성과 우아함을 더 잘 드러내준다고 믿었다. 레슬링은 5종경기의 한 종목이면서 올림픽의 독립종목이었다. 레슬링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었는데, 기립(standing)레슬링과 접지레슬링이 그것이다. 그 중 전자가 보다 일반적이었고, 인기도 더 높았다. 경기자들은 얼굴을 마주보고 똑바로 서서 자신은 넘어지지 않은 채 상대방을 넘어뜨리고자 하였다. 세 번 넘어뜨리면 승리하게 된다. 접지레슬링은 상대방을 땅바닥에 내던진 뒤 상대방이 패배를 받아들일 때까지 싸움을 지속하는 경기이다. 시합은 현대의 토너먼트와 동일한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레슬링은 팔래스트라에서도 배웠는데, 이는 교육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여겼다.
독립종목인 권투는 제23회 올림픽경기 때 도입되었다. 권투의 시작은 호메로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신화에서 아폴로(Apollo)가 아레스(Ares)를 이겼던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호메로스시대의 운동선수들과는 다르게 올림픽경기자들은 허리부분에 보호혁띠를 두르지 않았다. 그리스인들은 글로브를 사용하지 않은 대신 10피트 길이의 얇은 가죽끈을 손바닥에 감았다. 그들의 타격과 회피방법은 오늘날의 그것과 비슷하였다. 그러나, 그리스의 권투경기자들은 타격을 거의 전부 머리에 퍼부었다. 신체 타격은 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금지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스 권투에는 링도, 로프도, 라운드도 없고, 진행자도 없었다. 넘어져 있는 상대방을 치지 못하게 금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발로 차기, 껴안기, 맞붙들기 등은 금지되었다.
싸움은 상대방이 넘어져 의식을 잃게 될 때까지, 또는 부상이나 피로로 인하여 패배를 받아들여 싸움이 저지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때로는 상호간의 승낙 아래 휴식을 취하기 위해 경기가 잠시 중지되기도 하였다. 그리스 권투는 느린 속도의 방어적 스포츠였으므로 현대 권투가 지닌 공격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체급구분이 설정되지 않았으므로 그리스 권투는 중량급의 스포츠가 되었다.
훈련할 때 귀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머리에 쓸 것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팔래스트라에서 공부하는 소년들은 이 보호 장치를 활용하였지만, 공식경기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권투연습은 근육운동에 필요한 조정을 완벽하게 하기 위하여 혼자서 하였다. 혼자서 연습할 때에는 맨손으로 공격을 받아내는 훈련도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가벼운 펀칭백이 연습 시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제33회 올림픽경기 때 하나의 종목으로 채택된 ‘판크라티움’은 원시적이고 난폭한 운동으로, 권투와 레슬링이 복합된 형태였다. 판크라티움이 대축제 중에 벌어질 때에는 규제를 통하여 난폭성을 완화시켰는데, 특히 물어뜯기와 도려내기는 금지되었다. 상대방이 패배를 자인할 때 승자가 결정되었다. 오랫동안 이 스포츠는 축제 도중 어른들에게만 국한되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팔래스트라에서 철저한 감독 아래 이 스포츠를 하였다.
전차경주는 호메로스시대의 장례경기(funeral)때부터 인기를 모았다. 축제 경주들은 일리아드(Iliad)에서의 그것과 비슷하였다. 경마는 전차경주만큼이나 인기가 있었다. 이는 BC 5세기에 주조되기 시작한 동경(銅鏡)에 그려진 그림에서도 확인된다. 일반적으로 경주 프로그램에는 성숙한 말, 망아지, 4두전차, 쌍두전차 등의 종목이 들어간다. 쌍두전차경주는 아마도 가장 오래된 종목이었을 것이다. 이 경주는 제25회 올림픽경기때 도입되었다. 기수들이 타는 4두전차경기는 제33회 올림픽경기때 채택되었다. 이들 스포츠는 말을 소유하고 유지할 수 있는 부유층에 국한되었다.
수상스포츠와 무용은 모든 축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종목은 아니었으나, 아테네 체육교육 프로그램의 일부였다. 헤르미오네(Hermione)경기때만 수상경기가 열렸다. 수영은 물가에 사는 소년들에게 널리 유행하였다. 그리고, 해군에 복무하는 병사들에게는 유용한 기술이 되었다. 문학작품에 산재하는 단편적인 암시에 의하면, 수영이 당시의 대중들에게 널리 유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꽃병에 남아 있는 그림을 통하여 우리는 당시에 사용한 수영기법에 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오버핸드 스트로크, 개구리헤엄, 및 옆구리헤엄 등이 사용된 기법이었지만, 별로 많이 사용되지는 않았다. 플라톤(Platon)도 누운 자세로 수영하는 사람에 관하여 언급하였다. 또한, 그리스인들은 물위에 떠서 나아가는 방법을 알았다.
아테네 청소년들은 노젓는 법도 배웠다. 이는 200명의 선원이 승선하는 삼단(三段)노의 군선을 움직여야 할 필요성을 상기해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선박경주는 이스트미아(Isthmia)축제와 그 밖의 수많은 지역축제에서 후원은 받았다.
무용은 아테네인들의 생활 가운데 널리 보급되었다. “그들은 사원에서, 숲속에서, 들판에서 춤을 추었다. 가정과 관련된 사건이 일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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