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33
-
34
-
35
-
36
-
37
-
38
-
39
-
40
-
41
-
42
-
43
-
44
-
45
-
46
-
47
-
48
-
49
-
50
-
51
-
52
-
53
-
54
-
55


목차
삼국연의 제 29회 소패왕[손책]은 분노하여 우길을 베고 푸른 눈의 아이[孫權]가 강동을 다스리러 앉았다
삼국연의 제 30회 관도전쟁은 본초[원소]가 실패하나 오소에서 조맹덕(조조)가 식량을 불태움을 당하다
삼국연의 제 30회 관도전쟁은 본초[원소]가 실패하나 오소에서 조맹덕(조조)가 식량을 불태움을 당하다
본문내용
). 중심은 난창 시(南昌市)이다.
, 豫章太守華歆 華歆 자어(子魚) 157~231 평원군 고당: 위의 상서령에 올랐다. 오(吳)의 신하였으나 위에 사신으로 간 후 조조(曹操)의 문사가 되었다. 복황후, 헌제 폐위사건 때 등장하며 헌제의 양위에 압력을 가한 인물로 \'정사\'와 \'연의\'에서 평가가 다른 인물이다. 조조의 막하의 문신(文臣). 평원 고당(平原 高唐) 사람. 본시 예장군(豫章郡) 태수였으나, 우번(虞飜)의 권고로 동오(東吳)의 산하에 들었다. 조조에게도 신임이 두터웠던 때문에 동오의 사신으로 갔다가 눌러앉아 벼슬하였다. 젊어서부터 문장으로 이름이 있었으나 조조가 복황후(伏皇后)를 잡아내 죽일 때 손수 황후의 밀실을 습격하여, 머리채를 거머잡고 끌어내는 등 신하로서 못할 짓을 한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았다. 끝내는 미리 조칙(詔勅)을 초하여 가지고 선위(禪位)하기를 황제에게 강요하였다. 벼슬이 태위(太尉)에 이르렀으며 병으로 죽었다.
投降。
건안사년 습취여강 패유훈 사우번치격예장 예장태수화흠투항.
건안 4년(199년)에 여강을 습격하러 가서 유훈을 패배하게 하며 우번을 시켜 예장에 달리게 하여 예장태수 화흠이 투항하였다.
自此聲勢大振, 乃遣張紘 張紘(갓끈, 밧줄 굉; -총10획; hong):출신지 : 광릉군, 직위 : 정의교위 - 시어사 - 장사 상경해 학문에 힘쓰고, 귀향 후에는 후한의 대장군 하진, 태위 주준, 사공 순상 등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으나 모두 병을 이유로 물리치고 전란을 피해 강동으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비로소 손책 밑에서 관직에 들고 정의교위로 임명된다. 199년 손책의 사자로 헌제가 있는 허도로 부임하자 그대로 조조에게 만류당해 시어사에 임명된다. 손책이 갑자기 죽자 조조는 그 틈을 노려 오를 침공하려 하지만, 장굉은 \'타인의 죽음에 편승하는 것은 관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원한을 살 뿐이다. 오히려 은의를 베풀어야 한다\'고 반대. 이 말을 듣고 조조는 손권을 토로장군에 임명하고 장굉을 지방관으로 파견한다. 이것은 조조의 명령으로 손권을 귀순시키는 목적이 있었으나 장굉은 뜻에 반하여 젊은 손권을 보좌해 오의 발전에 진력한다. 그후 장사에 임명되고 손권의 합비 원정에 종군하는데, 손권 스스로 선두에 서서 싸우는 것과 거듭되는 전쟁에 대해 간언하자 손권도 장굉의 의견에 따른다. 마침내 장굉의 진언으로, 오에서 말릉으로 천도가 결정되고 장굉은 말릉으로 가족을 맞이하러 가는 도중에 병사. 향년 60세였다.
往許昌上表獻捷 獻捷: 승첩(勝捷)했다는 보고를 올리는 것을 말함
。
자차성세대진 내견장굉왕허창상표헌첩.
이로부터 손책은 명성과 세력을 크게 떨쳐서 장굉을 시켜 허창에 가서 이긴 표를 바치게 하였다.
曹操知孫策盛, 歎曰:「獅兒難與爭鋒也!」
조조지손책강성 탄왈 사아난여쟁봉야.
조조는 손책이 강성함을 알고 한탄하여 말했다. “사자새끼와 선봉을 다투기 어렵겠구나!”
遂以曹仁之女許配孫策幼弟孫匡 孫匡 계좌(季佐) 186~: 손견(孫堅)의 네째 아들. 손견의 사후에 강남으로 도망해 있다가 조조가 손책과 우호를 맺으려하여 조인의 딸과 짝지어졌다.
, 兩家結婚。
수이조인지녀허배손책유제손광 양가결혼.
조조는 곧 조인의 딸을 시켜 손책의 어린 동생인 손광과 혼인하게 하여 두 집안은 결혼하였다.
留張紘在許昌。
유장굉재허창.
조조는 장굉을 허창에 머무르게 했다.
孫策求爲大司馬 大司馬: (중국의) 주(周)나라 때 군사·운수·교통을 관장한 관직
, 曹操不許。
손책구위대사마 조조불허.
손책은 대사마의 벼슬을 구하니 조조가 허락지 않았다.
策恨之, 常有襲許都之心。
책한지 상유습허도지심.
손책이 한탄하며 항상 허도를 습격할 마음이 있었다.
於是吳郡太守許貢 許貢 155~: 오군태수(吳郡太守)로 조조(曹操)에게 \'손책(孫策)을 조심하라\'는 밀조를 보내려 하다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훗날 그의 식객 세 명이 손책을 습격하여 중상을 입혔다.
, 乃暗遣使赴許都, 上書於曹操。
어시오군태수허공 내암견사부허도 상서어조조.
이에 오군태수인 허공이 몰래 사신을 허도에 보내서 조조에게 글을 올렸다.
其略曰:「孫策驍 驍(날랠 효; -총22획; xiao)
勇, 與項籍항적: 진(秦) 나라 말기 하상(下相) 사람. 자(字)는 우(羽). 진말에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거병(擧兵)하자 숙부 양(梁)과 오중(吳中)에서 병사를 일으켜 진군(秦軍)을 격파하고 스스로 서초(西楚)의 패왕(覇王)이라 일컬음. 한고조(漢高祖)와 천하를 다투다가 해하(垓下)에서 패사(敗死)하였음.
相似。朝廷宜外示榮寵 영총 : ①임금의 은총(恩寵) ②영총(令寵)
, 召還京師; 不可使居外, 以爲後患。」
기략왈 손책효용 여항적상사. 조정의외시영총 소환경사 불가사거외진 이위후환.
대략 다음과 같다. ‘손책이 날래고 용맹하니 항적과 서로 비슷합니다. 조정에는 외부로 영화와 총애를 의당하게 하시며 수도로 소환하십시오. 외부 진영에 살게 해서 후환을 만들 수 없습니다.’
使與書渡江, 被防江將士所獲, 解赴孫策處。
사여서도강 피방강장사소획 해부손책처.
사신과 글이 장강을 강너서 강을 방어하는 장사가 획득함을 당해 손책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策觀書大怒, 斬其使, 遣人假意請許貢議事。
책관서대노 참기사 견인가의청허공의사.
손책이 편지를 보고 크게 분노하여 사신을 베고 사람을 시켜 가짜로 허공에게 청하여 일을 논의케 했다.
貢至, 策出書示之, 叱曰:「汝欲送我於死地耶!」
공지 책출서시지 질왈 여욕송아어사지야?
허공이 이르러서 손책이 글을 꺼내 보여주며 질책하면서 말했다. “너는 나를 사지에 보내려고 하느냐?”
命武士絞殺之。
명무사교살지.
무사에게 명령하여 목을 매서 죽이게 했다.
貢家屬皆逃散。
공가속개도산.
허공의 집안 식구가 모두 도망쳐 흩어졌다.
有家客三人, 欲爲許貢報, 恨無其便。
유가객삼인 욕위허공보수 한무기편.
허공의 집의 손님 세 사람이 허공의 원수를 갚으려고 한탄하나 편하지 않았다.
一日, 孫策引軍會獵於丹徒 단도:장쑤성 전장시(鎭江市)
之西山, 起一大鹿, 策縱馬上山逐之。
일일 손책인군회렵어단도지서산 제기일대록 책종마상산축지.
하룻날에 손택이 군사를 인솔하여 단도의 서산에 사냥을 나가서 한 큰 사슴을 추격하니 손책이 말을 달려서
, 豫章太守華歆 華歆 자어(子魚) 157~231 평원군 고당: 위의 상서령에 올랐다. 오(吳)의 신하였으나 위에 사신으로 간 후 조조(曹操)의 문사가 되었다. 복황후, 헌제 폐위사건 때 등장하며 헌제의 양위에 압력을 가한 인물로 \'정사\'와 \'연의\'에서 평가가 다른 인물이다. 조조의 막하의 문신(文臣). 평원 고당(平原 高唐) 사람. 본시 예장군(豫章郡) 태수였으나, 우번(虞飜)의 권고로 동오(東吳)의 산하에 들었다. 조조에게도 신임이 두터웠던 때문에 동오의 사신으로 갔다가 눌러앉아 벼슬하였다. 젊어서부터 문장으로 이름이 있었으나 조조가 복황후(伏皇后)를 잡아내 죽일 때 손수 황후의 밀실을 습격하여, 머리채를 거머잡고 끌어내는 등 신하로서 못할 짓을 한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았다. 끝내는 미리 조칙(詔勅)을 초하여 가지고 선위(禪位)하기를 황제에게 강요하였다. 벼슬이 태위(太尉)에 이르렀으며 병으로 죽었다.
投降。
건안사년 습취여강 패유훈 사우번치격예장 예장태수화흠투항.
건안 4년(199년)에 여강을 습격하러 가서 유훈을 패배하게 하며 우번을 시켜 예장에 달리게 하여 예장태수 화흠이 투항하였다.
自此聲勢大振, 乃遣張紘 張紘(갓끈, 밧줄 굉; -총10획; hong):출신지 : 광릉군, 직위 : 정의교위 - 시어사 - 장사 상경해 학문에 힘쓰고, 귀향 후에는 후한의 대장군 하진, 태위 주준, 사공 순상 등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으나 모두 병을 이유로 물리치고 전란을 피해 강동으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비로소 손책 밑에서 관직에 들고 정의교위로 임명된다. 199년 손책의 사자로 헌제가 있는 허도로 부임하자 그대로 조조에게 만류당해 시어사에 임명된다. 손책이 갑자기 죽자 조조는 그 틈을 노려 오를 침공하려 하지만, 장굉은 \'타인의 죽음에 편승하는 것은 관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원한을 살 뿐이다. 오히려 은의를 베풀어야 한다\'고 반대. 이 말을 듣고 조조는 손권을 토로장군에 임명하고 장굉을 지방관으로 파견한다. 이것은 조조의 명령으로 손권을 귀순시키는 목적이 있었으나 장굉은 뜻에 반하여 젊은 손권을 보좌해 오의 발전에 진력한다. 그후 장사에 임명되고 손권의 합비 원정에 종군하는데, 손권 스스로 선두에 서서 싸우는 것과 거듭되는 전쟁에 대해 간언하자 손권도 장굉의 의견에 따른다. 마침내 장굉의 진언으로, 오에서 말릉으로 천도가 결정되고 장굉은 말릉으로 가족을 맞이하러 가는 도중에 병사. 향년 60세였다.
往許昌上表獻捷 獻捷: 승첩(勝捷)했다는 보고를 올리는 것을 말함
。
자차성세대진 내견장굉왕허창상표헌첩.
이로부터 손책은 명성과 세력을 크게 떨쳐서 장굉을 시켜 허창에 가서 이긴 표를 바치게 하였다.
曹操知孫策盛, 歎曰:「獅兒難與爭鋒也!」
조조지손책강성 탄왈 사아난여쟁봉야.
조조는 손책이 강성함을 알고 한탄하여 말했다. “사자새끼와 선봉을 다투기 어렵겠구나!”
遂以曹仁之女許配孫策幼弟孫匡 孫匡 계좌(季佐) 186~: 손견(孫堅)의 네째 아들. 손견의 사후에 강남으로 도망해 있다가 조조가 손책과 우호를 맺으려하여 조인의 딸과 짝지어졌다.
, 兩家結婚。
수이조인지녀허배손책유제손광 양가결혼.
조조는 곧 조인의 딸을 시켜 손책의 어린 동생인 손광과 혼인하게 하여 두 집안은 결혼하였다.
留張紘在許昌。
유장굉재허창.
조조는 장굉을 허창에 머무르게 했다.
孫策求爲大司馬 大司馬: (중국의) 주(周)나라 때 군사·운수·교통을 관장한 관직
, 曹操不許。
손책구위대사마 조조불허.
손책은 대사마의 벼슬을 구하니 조조가 허락지 않았다.
策恨之, 常有襲許都之心。
책한지 상유습허도지심.
손책이 한탄하며 항상 허도를 습격할 마음이 있었다.
於是吳郡太守許貢 許貢 155~: 오군태수(吳郡太守)로 조조(曹操)에게 \'손책(孫策)을 조심하라\'는 밀조를 보내려 하다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훗날 그의 식객 세 명이 손책을 습격하여 중상을 입혔다.
, 乃暗遣使赴許都, 上書於曹操。
어시오군태수허공 내암견사부허도 상서어조조.
이에 오군태수인 허공이 몰래 사신을 허도에 보내서 조조에게 글을 올렸다.
其略曰:「孫策驍 驍(날랠 효; -총22획; xiao)
勇, 與項籍항적: 진(秦) 나라 말기 하상(下相) 사람. 자(字)는 우(羽). 진말에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거병(擧兵)하자 숙부 양(梁)과 오중(吳中)에서 병사를 일으켜 진군(秦軍)을 격파하고 스스로 서초(西楚)의 패왕(覇王)이라 일컬음. 한고조(漢高祖)와 천하를 다투다가 해하(垓下)에서 패사(敗死)하였음.
相似。朝廷宜外示榮寵 영총 : ①임금의 은총(恩寵) ②영총(令寵)
, 召還京師; 不可使居外, 以爲後患。」
기략왈 손책효용 여항적상사. 조정의외시영총 소환경사 불가사거외진 이위후환.
대략 다음과 같다. ‘손책이 날래고 용맹하니 항적과 서로 비슷합니다. 조정에는 외부로 영화와 총애를 의당하게 하시며 수도로 소환하십시오. 외부 진영에 살게 해서 후환을 만들 수 없습니다.’
使與書渡江, 被防江將士所獲, 解赴孫策處。
사여서도강 피방강장사소획 해부손책처.
사신과 글이 장강을 강너서 강을 방어하는 장사가 획득함을 당해 손책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策觀書大怒, 斬其使, 遣人假意請許貢議事。
책관서대노 참기사 견인가의청허공의사.
손책이 편지를 보고 크게 분노하여 사신을 베고 사람을 시켜 가짜로 허공에게 청하여 일을 논의케 했다.
貢至, 策出書示之, 叱曰:「汝欲送我於死地耶!」
공지 책출서시지 질왈 여욕송아어사지야?
허공이 이르러서 손책이 글을 꺼내 보여주며 질책하면서 말했다. “너는 나를 사지에 보내려고 하느냐?”
命武士絞殺之。
명무사교살지.
무사에게 명령하여 목을 매서 죽이게 했다.
貢家屬皆逃散。
공가속개도산.
허공의 집안 식구가 모두 도망쳐 흩어졌다.
有家客三人, 欲爲許貢報, 恨無其便。
유가객삼인 욕위허공보수 한무기편.
허공의 집의 손님 세 사람이 허공의 원수를 갚으려고 한탄하나 편하지 않았다.
一日, 孫策引軍會獵於丹徒 단도:장쑤성 전장시(鎭江市)
之西山, 起一大鹿, 策縱馬上山逐之。
일일 손책인군회렵어단도지서산 제기일대록 책종마상산축지.
하룻날에 손택이 군사를 인솔하여 단도의 서산에 사냥을 나가서 한 큰 사슴을 추격하니 손책이 말을 달려서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