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대중문화의 정의
Ⅲ. 대중문화의 형성
1. 형성과정
2. 생산동기
1) 자본주의의 특징
2) 이데올로기
Ⅳ. 대중문화의 정치성
Ⅴ. 대중문화의 이론
1. 엘리트주의적 부정론과 긍정론
1) 부정론
2) 긍정론
3) 공통점
4) 한계
2.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중문화 비판
1) 문화산업
2) 아도르노, 호크하이머
3) 마르쿠제
4) 하버마스
5) 한계
3. 정치경제학적 대중문화 비판
4. 문화제국주의적 입장의 대중문화 비판
Ⅵ. 대중문화의 비판
Ⅶ. 대중문화와 포스터모더니즘
1. 획일성 통일성을 깨는 탈 형식의 바람
2. 새로운 문화 형식
3. 사회 현상속에서 나타나는 포스트모더니즘
1) 개성과 감각화 되어가는 라이프스타일
2) 개성을 강조하는 평등 지향 사회로의 전이
3) 권위주의 해체 작업의 가시화
4) 탈 형식·탈 동질을 추구하는 소량 다품종 생산 시대
4. 대중문화로 나타나는 포스트모더니즘
Ⅷ. 대중문화의 문제점
Ⅸ. 결론 및 제언
참고문헌
Ⅱ. 대중문화의 정의
Ⅲ. 대중문화의 형성
1. 형성과정
2. 생산동기
1) 자본주의의 특징
2) 이데올로기
Ⅳ. 대중문화의 정치성
Ⅴ. 대중문화의 이론
1. 엘리트주의적 부정론과 긍정론
1) 부정론
2) 긍정론
3) 공통점
4) 한계
2.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중문화 비판
1) 문화산업
2) 아도르노, 호크하이머
3) 마르쿠제
4) 하버마스
5) 한계
3. 정치경제학적 대중문화 비판
4. 문화제국주의적 입장의 대중문화 비판
Ⅵ. 대중문화의 비판
Ⅶ. 대중문화와 포스터모더니즘
1. 획일성 통일성을 깨는 탈 형식의 바람
2. 새로운 문화 형식
3. 사회 현상속에서 나타나는 포스트모더니즘
1) 개성과 감각화 되어가는 라이프스타일
2) 개성을 강조하는 평등 지향 사회로의 전이
3) 권위주의 해체 작업의 가시화
4) 탈 형식·탈 동질을 추구하는 소량 다품종 생산 시대
4. 대중문화로 나타나는 포스트모더니즘
Ⅷ. 대중문화의 문제점
Ⅸ. 결론 및 제언
참고문헌
본문내용
만들어져 태어난 문화가 아니다. 우리가 씨를 뿌리고 우리가 발아시켜 여기까지 키워온 것이다. 물론 지금 우리나라의 대중문화가 그 공유하는 폭이 좁고 한정된 사람들과 한정된 매체에 의해서 자라오긴 했지만 우리나라, 우리 민중이 키워온 문화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지 못하고 무조건 대중문화는 저속하다는 식의 편견이 우리의 대중문화를 저질에서 한 단계 높은 문화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고급문화라 일컫는데 주저함이 없는 셰익스피어의 연극도 공연되고 있을 때에는 그저 대중문화일 뿐이었고 찰스 디킨즈의 작품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유사한 예로 느와르 영화는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이 보이는데 이 또한 처음에는 대중영화로 시작하여 이제는 아카데미와 영화협회에서 보존하고 있는 것이 되었다. 그 반대로 일어나는 최근의 예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이다. 루피아노 파바로티의 ‘아무도 잠들지 않으리라’ 라는 음반은 1990년 영국의 음반순위 1위에 올려놓는데 성공한 작품으로 아무도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대중적 가수라 부르지 않는다. 이는 대중문화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고급문화이며 고급문화자체가 대중들에 의해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대중문화가(그야말로 대중의 문화임을 볼 때 ) 고급문화와의 gap을 줄이고 대중문화로서의 plus적 발전요소가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발전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적 영화들이 미미하기는 하지만 조금이나마 대중적 성공을 보이고 있고, 대중가수들이 그 힘들다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George Winston이 공연했던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우리나라의 대중가수들은 자기들의 concert를 가진 적이 없다.
이는 아마도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라는 것 자체가 서양에서 무분별하게 수입되어 아직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지 못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외국선호사상과 맞물린 “딴따라”라는 관념이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를 크게 발전시키지 못하는 요소가 아닌가 한다.
또 우리나라에 있어서 대중문화의 문제점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했던 경제적 사회발전으로 말미암에 우리의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다는 데에도 그 문제가 있다고 보겠다. 또한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전통적 우리문화와의 단절현상도 그 이유 중의 하나라고 보겠다. 근대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일제하에서의 우리나라의 문화발전이 그 맥을 끊겼다고 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하겠지만 우리는 말을 한동안 잃었었고 글을 한동안 잃었었으며 우리만의 고유적 문화활동 영역이 없었다기보다는 펼칠 공간이 적었기에 우리문화는 발전될 수 없었다. 이에 해방과 동시에 들이닥친 또 다른 미국에 의한 정치적, 군사적, 정신적 식민지화와 더불어 경제의 고속성장 속에서 우리의 고유문화는 뒷전으로 밀려있기 일쑤였고 우리가 허리띠를 풀고 문화를 접할 때 즈음에는 우리의 눈은 뒤쳐진 우리문화보다는 앞서가는 서구문화에 맛을 들여 버렸고 아무런 비판적 수용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잘못된 문화적 가치관이 만들어졌고, 수정되지 않은 사고 속에서 우리의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 자체가 벌써 우리 대중문화의 첫 단추라 하겠다.
Ⅸ. 결론 및 제언
현재의 대중문화 흐름은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쾌락적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혹자는 우리 사회의 문화담론이 80년대의 정치적 패러다임으로부터 놓여나기 시작하면서 대중문화의 쾌락주의적 경향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단적으로 말해 그것은 포스트 모던 문화이며 육체아 성(性)의 문화였고 문화산업의 경쟁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현재의 대중문화는 문화산업과 초국가적 문화자본, 신세대아 구세대의 갈등, 청소년과 입시문제, 전통적 윤리관과 일탈적 가치관등 여러 대립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이 시대의 문제영역으로 등장한 것이다. 여기에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대중문화의 쾌락주의적 경향이다. 가요계는 염색을 하고 괴상한 옷차림을 한 젊은 댄스가수들이 인기를 끌었고, TV드라마의 주류(主流)는 젊은 세대의 애정 풍속도를 감각적으로 묘사한 트렌디드라마로 바뀌었으며, 비디오 및 영화, 연극의 전반은 ‘가벼운 포르노 그라피’들이 점령해 갔다.
21세기를 몇 년 앞둔 지금 우리 대중문화는 그런 혼돈과 폭발의 지평위에 서 있다. 이미 오래전에 구멍이 뚫려있던 낡은 관행과 뒤틀린 구조는 깨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좀더 건강한 질서로 재편(再編)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대중의 욕구는 터져 나오고 있지만 그 엄청난 에너지가 정당한 자기표현의 출구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21세기 초의 대중문화가 대중의 진정한 자기표현의 장이 될 지 문화자본에 장악된 벌거벗은 상품논리이 각축장이 될 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새롭게 열리는 문화 공간은 자본에 의해 선점되고 있고 대중의 문화적 욕구는 진정한 자기표현의 출구를 찾지 at한 채 쾌락주의의 늪으로만 달려간다. 다매체(多媒體), 다채널 시대가 열리고 있고, 문화시장의 규모가 급성장하고 있으면서도 대중문화 전반의 양상이 결코 다양하거나 풍요롭다고 할 수 없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주소비계인 신세대들의 주도는 면밀하지 못하고 자기 치유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 자칫하면 대중문화의 아노미 현상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문하자본의 왕성한 식욕을 적절히 제어하면서 대중의 정당한 자기표현 능력을 교율할 수 있는 힘을 만드는 일이다. ‘개성’과 ‘즐거움’이 적절히 조화되고 그 주도가 확실할 때 우리 나라의 대중문화는 그때서야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대중문화에 우리 모두의 인식전환의 필요성을 느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강준만, 대중문화의 겉과 속
○ 강명구(1993), 소비대중문화와 포스트모더니즘
○ 국립국어연구원(2002), 우리문화 길라잡이, 학고재
○ 조흥윤(2001), 한국문화론, 동문선현대신서
○ 허버트 J. 갠스, 강현두 역(1998), 대중문화와 고급문화, 나남
○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1993), 청소년문화활동의 활성화방안, 문화정책 심포지엄 자료집,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
지금의 고급문화라 일컫는데 주저함이 없는 셰익스피어의 연극도 공연되고 있을 때에는 그저 대중문화일 뿐이었고 찰스 디킨즈의 작품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유사한 예로 느와르 영화는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이 보이는데 이 또한 처음에는 대중영화로 시작하여 이제는 아카데미와 영화협회에서 보존하고 있는 것이 되었다. 그 반대로 일어나는 최근의 예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이다. 루피아노 파바로티의 ‘아무도 잠들지 않으리라’ 라는 음반은 1990년 영국의 음반순위 1위에 올려놓는데 성공한 작품으로 아무도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대중적 가수라 부르지 않는다. 이는 대중문화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고급문화이며 고급문화자체가 대중들에 의해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대중문화가(그야말로 대중의 문화임을 볼 때 ) 고급문화와의 gap을 줄이고 대중문화로서의 plus적 발전요소가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발전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적 영화들이 미미하기는 하지만 조금이나마 대중적 성공을 보이고 있고, 대중가수들이 그 힘들다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George Winston이 공연했던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우리나라의 대중가수들은 자기들의 concert를 가진 적이 없다.
이는 아마도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라는 것 자체가 서양에서 무분별하게 수입되어 아직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지 못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외국선호사상과 맞물린 “딴따라”라는 관념이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를 크게 발전시키지 못하는 요소가 아닌가 한다.
또 우리나라에 있어서 대중문화의 문제점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했던 경제적 사회발전으로 말미암에 우리의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다는 데에도 그 문제가 있다고 보겠다. 또한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전통적 우리문화와의 단절현상도 그 이유 중의 하나라고 보겠다. 근대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일제하에서의 우리나라의 문화발전이 그 맥을 끊겼다고 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하겠지만 우리는 말을 한동안 잃었었고 글을 한동안 잃었었으며 우리만의 고유적 문화활동 영역이 없었다기보다는 펼칠 공간이 적었기에 우리문화는 발전될 수 없었다. 이에 해방과 동시에 들이닥친 또 다른 미국에 의한 정치적, 군사적, 정신적 식민지화와 더불어 경제의 고속성장 속에서 우리의 고유문화는 뒷전으로 밀려있기 일쑤였고 우리가 허리띠를 풀고 문화를 접할 때 즈음에는 우리의 눈은 뒤쳐진 우리문화보다는 앞서가는 서구문화에 맛을 들여 버렸고 아무런 비판적 수용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잘못된 문화적 가치관이 만들어졌고, 수정되지 않은 사고 속에서 우리의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 자체가 벌써 우리 대중문화의 첫 단추라 하겠다.
Ⅸ. 결론 및 제언
현재의 대중문화 흐름은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쾌락적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혹자는 우리 사회의 문화담론이 80년대의 정치적 패러다임으로부터 놓여나기 시작하면서 대중문화의 쾌락주의적 경향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단적으로 말해 그것은 포스트 모던 문화이며 육체아 성(性)의 문화였고 문화산업의 경쟁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현재의 대중문화는 문화산업과 초국가적 문화자본, 신세대아 구세대의 갈등, 청소년과 입시문제, 전통적 윤리관과 일탈적 가치관등 여러 대립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이 시대의 문제영역으로 등장한 것이다. 여기에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대중문화의 쾌락주의적 경향이다. 가요계는 염색을 하고 괴상한 옷차림을 한 젊은 댄스가수들이 인기를 끌었고, TV드라마의 주류(主流)는 젊은 세대의 애정 풍속도를 감각적으로 묘사한 트렌디드라마로 바뀌었으며, 비디오 및 영화, 연극의 전반은 ‘가벼운 포르노 그라피’들이 점령해 갔다.
21세기를 몇 년 앞둔 지금 우리 대중문화는 그런 혼돈과 폭발의 지평위에 서 있다. 이미 오래전에 구멍이 뚫려있던 낡은 관행과 뒤틀린 구조는 깨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좀더 건강한 질서로 재편(再編)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대중의 욕구는 터져 나오고 있지만 그 엄청난 에너지가 정당한 자기표현의 출구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21세기 초의 대중문화가 대중의 진정한 자기표현의 장이 될 지 문화자본에 장악된 벌거벗은 상품논리이 각축장이 될 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새롭게 열리는 문화 공간은 자본에 의해 선점되고 있고 대중의 문화적 욕구는 진정한 자기표현의 출구를 찾지 at한 채 쾌락주의의 늪으로만 달려간다. 다매체(多媒體), 다채널 시대가 열리고 있고, 문화시장의 규모가 급성장하고 있으면서도 대중문화 전반의 양상이 결코 다양하거나 풍요롭다고 할 수 없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주소비계인 신세대들의 주도는 면밀하지 못하고 자기 치유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 자칫하면 대중문화의 아노미 현상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문하자본의 왕성한 식욕을 적절히 제어하면서 대중의 정당한 자기표현 능력을 교율할 수 있는 힘을 만드는 일이다. ‘개성’과 ‘즐거움’이 적절히 조화되고 그 주도가 확실할 때 우리 나라의 대중문화는 그때서야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대중문화에 우리 모두의 인식전환의 필요성을 느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강준만, 대중문화의 겉과 속
○ 강명구(1993), 소비대중문화와 포스트모더니즘
○ 국립국어연구원(2002), 우리문화 길라잡이, 학고재
○ 조흥윤(2001), 한국문화론, 동문선현대신서
○ 허버트 J. 갠스, 강현두 역(1998), 대중문화와 고급문화, 나남
○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1993), 청소년문화활동의 활성화방안, 문화정책 심포지엄 자료집,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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