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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또 내가 살아가는 지금이,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해체하면 좋을까? 개인적인 물음에서 시작하는 데리다의 해체에 대한 물음은 보다 넓게 생각해보면 2006년에 철학을 하는 우리는, 한국인들은 무엇을 해체하면 좋을까? 라는 질문으로 확장 될 수 있다.
데리다는 분명 2006년의 한국 철학도들에게 외지인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데리다를, 혹은 다른 일가를 이루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철학자들을 통해 우리의 철학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서는 철학을 할 수 없다. 다만 배운 것을 나의 것으로, 우리의 철학함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인 듯하다. 데리다를 통해 우리가 배울 것은 그가 의도하고자 했던 일방향성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사고, 자유로운 글쓰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데리다의 틀에서 다시 한 번 해체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과연 데리다의 해체가 가지는 의미론적, 방법론적 모순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데리다적 해체를 우리의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이 또 다른 해체의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데리다는 분명 2006년의 한국 철학도들에게 외지인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데리다를, 혹은 다른 일가를 이루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철학자들을 통해 우리의 철학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서는 철학을 할 수 없다. 다만 배운 것을 나의 것으로, 우리의 철학함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인 듯하다. 데리다를 통해 우리가 배울 것은 그가 의도하고자 했던 일방향성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사고, 자유로운 글쓰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데리다의 틀에서 다시 한 번 해체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과연 데리다의 해체가 가지는 의미론적, 방법론적 모순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데리다적 해체를 우리의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이 또 다른 해체의 현재진행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