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한국 전통 목가구의 아름다움 5. 전통 목가구의 종류와 특징
2. 사랑방 가구 6. 전통 목가구 제작기법
3. 안방 가구 7. 금구장식
4. 주방가구 8, 결론
2. 사랑방 가구 6. 전통 목가구 제작기법
3. 안방 가구 7. 금구장식
4. 주방가구 8, 결론
본문내용
관하기 위해서 만들기도 한다. 궤는 견고하고 물품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어 각 가정마다 여러 구를 비치하였다. 다양한 수요로 지역적 특색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필요에의 주문 제작한 것은 일정한 양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그 예로 책탁 반닫이, 반닫이장 등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양식이 다른 가구와 결합하여 독특한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궤의 기원에 관한 중국 기록으로는 하나라와 주나라의 두 가지 설이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 탈해왕이 길이 20자, 너비 13자의 궤에서 나왔다는 기록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지금까지 삼국시대의 일상 생활용 가구가 발견된 예는 없으나 고분에서 출토된 목관과 부장용 궤의 예로 미루어 왕실 또는 신분이 높은 계층에서는 특수한 용도로 나무 궤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돈궤 >
2). 옷장(欌)
의류를 보관하는 가구로서 중, 상류 이상의 가정 내방 가구를 대표하는 우리 나라의 고유한 용어이다. 머릿장(단층장), 2층장, 3층장, 의걸이장 드물게는 4층장, 5층장도 있으며 크기에 따라서는 소형장을 아기장이라고도 부르며 형태에 따라 원앙장, 경첩의 형태에 따라 나비장, 불로초장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현존하는 유물들은 대개 나전칠기나 화각장과 같이 울긋불긋하고 호사스러운 기법에 백통과 같은 금구장식을 하고 여러 길상문양을 새기고 있는 등 안방가구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한복은 평면 재단으로 만들어져 접어서 보관하여도 그 형태가 변형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와 같은 옷장에는 상당량의 옷을 접어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남성들의 관복은 귀중하게 여겨 별도의 관복함에 넣어 보관하였다. 또는 유상(버들로 엮은 상자)과 소상(대나무로 엮어 채색을 하지 않은 상자류), 궤에 보관하였으며 방 한 쪽에 맨 횃대에 걸어 두기도 하였다. 장은 한자로는 수궤 - 곧 세우는 궤하고 한다. 이 용어에서 알수 있듯이 장은 궤가 발전된 것이다. 조선시대 중기 이전에는 2층 3층장이 없었으나 처음 궤에서 양식이 변화되어 단층장인 머릿장의 형태가 되고 이것이 2층 또는 3층으로 변화된 듯하다. 우리나라 장의 앞면은 쇠목과 동자주에 의해 분할되어 머름칸, 벽손(쥐벽손), 문판, 서랍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이 나타내는 독특한 나뭇결은 세련된 조화와 무궁한 변화미를 보여 준다. 이와 같은 양식의 가구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내실용장의 다리는 층수에 상관없이 낮고 굽은 앙가마제 형태를 하여 안정감을 준다.
단층장인 머릿장은 쇠목과 동자주에 의해 분할되어 머름칸, 벽손, 문칸, 서랍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층 또는 3층장의 하단과 동일한 형태로 되어 있다. 이불장은 그 명칭이 비록 장이지만 낮은 머릿장 양식의 단층장이 설치되거나 장이 설치되지 않고 쇠목과 동자주로 구획된 쥐벽칸과 서랍만 설치되는 것이 통례이다. 이불장은 윗면(개판)에 이불을 개어 얹는 용도로 쓰였으므로 부출(기둥)과 쇠목이 전체 가구의 크기에 비해 두껍다. 이불장은 자녀들의 방에 둔다. 2층 또는 3층장은 옷을 넣는 전형적인 내방 가구로서 안방에 둔다. 의걸이장은 조선시대 말기에 나타난 형태로 하단에는 낮은 장 또 는 반닫이가 부착되고 그 위로 긴 장이 설치된 2층 구조의 장이다. 위쪽의 내부 < 의걸이장 >
에 횃대가 달려 있어 옷을 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금침장은 의걸이장과 형태가 유사하나 내부에 횃대가 없으며 일반장에 비해 옆폭이 약간 넓다. 하단에는 대부분 낮은 장이 부착되어 있다. 모든 장의 내면에는 종이를 발랐는데 고급장에는 당지를, 일반장에는 반물을 들인 청색지를 발랐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황지를 바르는 것이 유행하였으며 일제 때에는 노루지를 발랐다.
3). 각게수리, 약장
각게수리는 안방과 사랑방에서 함께 쓰였던 단층장 양식의 가구이다. 여닫이문 앞에 여러 개의 서랍이 설치된 일종의 금고로서 귀중품 문서 등을 보관하는데 사용하였으며 약장으로도 이용하였다. 우리 나라의 현존 각게수리에는 내면 서랍에 약재 이름이 적힌 것이 있는데 이러한 각게수리 약장은 대부분 가정에서 상비용으로 쓰인 것이다. 또 내부에 몇 개의 서랍이 있는 것은 귀중품 보관용이다. 직업 한의사들은 많은 서랍이 달린 약장을 사용하였는데 중국에서는 여닫이문 속에 여러 개의 서랍이 있는 백안주에 약재를 보관하였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극약이 아닌 일반 약재는 노출된 서랍에 보관하였고 극약은 잠금 장치가 달린 장 또는 그 안에 내재해 있는 서랍에 보관함으 < 각게수리 >
로써 좀 더 안전하고 간편하게 약재관리를 하였다.
4). 농(籠)
농은 장과 더불어 내실용 가구를 대표하며 아래 위짝이 분리된다는 것이 장과의 다른점이다. 농은 채롱이나 버들고리와 같이 상자 형태에서 연유하였으나, 두세 짝을 포개놓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각 농짝마다 여닫기 편리하도록 문을 앞쪽에 붙였을 것이다. 또한 옮기기 쉽게 하기 위하여 옆널에 들쇠를 달았으며 바닥의 온기를 막기 위하여 다리를 따로 붙여서 방바닥과 격리시켰다. 농의 판재로는 오동나무, 팽나무, 느릅나무 등이 많이 사용되는 편이다. 형태에 따라서는 수농장, 개판농이라 부르며 재료에 따라 먹감나무농, 자개농, 삿자리농 등으로 분류한다. 수장농은 쇠목과 동자주의 구획이 없으며 서랍도 없 < 농 > 고 판재로만 구성된 목제농의 원형이다. 개판농은 대한제국 시대에 제작되기 시작한 전통 목가구의 막내격인 가구로서 천판이 돌출되어 이름 붙여진 농이다. 삿자리농은 나무 또는 대나무의 골격에 대를 마치 삿자리처럼 엮어 만든 농을 가리킨다. 이밖에 크기가 같은 함을 두 개 포개어 놓은 것을 함농이라고 한다. 농은 원래 대 또는 싸리로 엮어 만든 죽기를 뜻하는 말이었는데 죽기나 유기는 밑짝이 얕은 것을 상, 밑짝이 뚜껑보다 깊은 것을 농이라 구분한다. 뚜껑이 위에 있으며 시렁 위에 올려 두거나 크기가 같은 것을 두세 개 포개어 놓고 사용하기도 하였다.
5). 함(函)
함은 깊은 밑짝에 운두가 얕은 뚜껑을 경첩으로 연결하여 여닫을 수 있도록 한 상자이다. 귀중품을 넣는 용도로 쓰였기 때문에 자물쇠로 채우도록 되어 있다. 자물쇠는 뚜껑에 부착된 긴
2). 옷장(欌)
의류를 보관하는 가구로서 중, 상류 이상의 가정 내방 가구를 대표하는 우리 나라의 고유한 용어이다. 머릿장(단층장), 2층장, 3층장, 의걸이장 드물게는 4층장, 5층장도 있으며 크기에 따라서는 소형장을 아기장이라고도 부르며 형태에 따라 원앙장, 경첩의 형태에 따라 나비장, 불로초장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현존하는 유물들은 대개 나전칠기나 화각장과 같이 울긋불긋하고 호사스러운 기법에 백통과 같은 금구장식을 하고 여러 길상문양을 새기고 있는 등 안방가구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한복은 평면 재단으로 만들어져 접어서 보관하여도 그 형태가 변형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와 같은 옷장에는 상당량의 옷을 접어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남성들의 관복은 귀중하게 여겨 별도의 관복함에 넣어 보관하였다. 또는 유상(버들로 엮은 상자)과 소상(대나무로 엮어 채색을 하지 않은 상자류), 궤에 보관하였으며 방 한 쪽에 맨 횃대에 걸어 두기도 하였다. 장은 한자로는 수궤 - 곧 세우는 궤하고 한다. 이 용어에서 알수 있듯이 장은 궤가 발전된 것이다. 조선시대 중기 이전에는 2층 3층장이 없었으나 처음 궤에서 양식이 변화되어 단층장인 머릿장의 형태가 되고 이것이 2층 또는 3층으로 변화된 듯하다. 우리나라 장의 앞면은 쇠목과 동자주에 의해 분할되어 머름칸, 벽손(쥐벽손), 문판, 서랍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이 나타내는 독특한 나뭇결은 세련된 조화와 무궁한 변화미를 보여 준다. 이와 같은 양식의 가구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내실용장의 다리는 층수에 상관없이 낮고 굽은 앙가마제 형태를 하여 안정감을 준다.
단층장인 머릿장은 쇠목과 동자주에 의해 분할되어 머름칸, 벽손, 문칸, 서랍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층 또는 3층장의 하단과 동일한 형태로 되어 있다. 이불장은 그 명칭이 비록 장이지만 낮은 머릿장 양식의 단층장이 설치되거나 장이 설치되지 않고 쇠목과 동자주로 구획된 쥐벽칸과 서랍만 설치되는 것이 통례이다. 이불장은 윗면(개판)에 이불을 개어 얹는 용도로 쓰였으므로 부출(기둥)과 쇠목이 전체 가구의 크기에 비해 두껍다. 이불장은 자녀들의 방에 둔다. 2층 또는 3층장은 옷을 넣는 전형적인 내방 가구로서 안방에 둔다. 의걸이장은 조선시대 말기에 나타난 형태로 하단에는 낮은 장 또 는 반닫이가 부착되고 그 위로 긴 장이 설치된 2층 구조의 장이다. 위쪽의 내부 < 의걸이장 >
에 횃대가 달려 있어 옷을 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금침장은 의걸이장과 형태가 유사하나 내부에 횃대가 없으며 일반장에 비해 옆폭이 약간 넓다. 하단에는 대부분 낮은 장이 부착되어 있다. 모든 장의 내면에는 종이를 발랐는데 고급장에는 당지를, 일반장에는 반물을 들인 청색지를 발랐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황지를 바르는 것이 유행하였으며 일제 때에는 노루지를 발랐다.
3). 각게수리, 약장
각게수리는 안방과 사랑방에서 함께 쓰였던 단층장 양식의 가구이다. 여닫이문 앞에 여러 개의 서랍이 설치된 일종의 금고로서 귀중품 문서 등을 보관하는데 사용하였으며 약장으로도 이용하였다. 우리 나라의 현존 각게수리에는 내면 서랍에 약재 이름이 적힌 것이 있는데 이러한 각게수리 약장은 대부분 가정에서 상비용으로 쓰인 것이다. 또 내부에 몇 개의 서랍이 있는 것은 귀중품 보관용이다. 직업 한의사들은 많은 서랍이 달린 약장을 사용하였는데 중국에서는 여닫이문 속에 여러 개의 서랍이 있는 백안주에 약재를 보관하였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극약이 아닌 일반 약재는 노출된 서랍에 보관하였고 극약은 잠금 장치가 달린 장 또는 그 안에 내재해 있는 서랍에 보관함으 < 각게수리 >
로써 좀 더 안전하고 간편하게 약재관리를 하였다.
4). 농(籠)
농은 장과 더불어 내실용 가구를 대표하며 아래 위짝이 분리된다는 것이 장과의 다른점이다. 농은 채롱이나 버들고리와 같이 상자 형태에서 연유하였으나, 두세 짝을 포개놓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각 농짝마다 여닫기 편리하도록 문을 앞쪽에 붙였을 것이다. 또한 옮기기 쉽게 하기 위하여 옆널에 들쇠를 달았으며 바닥의 온기를 막기 위하여 다리를 따로 붙여서 방바닥과 격리시켰다. 농의 판재로는 오동나무, 팽나무, 느릅나무 등이 많이 사용되는 편이다. 형태에 따라서는 수농장, 개판농이라 부르며 재료에 따라 먹감나무농, 자개농, 삿자리농 등으로 분류한다. 수장농은 쇠목과 동자주의 구획이 없으며 서랍도 없 < 농 > 고 판재로만 구성된 목제농의 원형이다. 개판농은 대한제국 시대에 제작되기 시작한 전통 목가구의 막내격인 가구로서 천판이 돌출되어 이름 붙여진 농이다. 삿자리농은 나무 또는 대나무의 골격에 대를 마치 삿자리처럼 엮어 만든 농을 가리킨다. 이밖에 크기가 같은 함을 두 개 포개어 놓은 것을 함농이라고 한다. 농은 원래 대 또는 싸리로 엮어 만든 죽기를 뜻하는 말이었는데 죽기나 유기는 밑짝이 얕은 것을 상, 밑짝이 뚜껑보다 깊은 것을 농이라 구분한다. 뚜껑이 위에 있으며 시렁 위에 올려 두거나 크기가 같은 것을 두세 개 포개어 놓고 사용하기도 하였다.
5). 함(函)
함은 깊은 밑짝에 운두가 얕은 뚜껑을 경첩으로 연결하여 여닫을 수 있도록 한 상자이다. 귀중품을 넣는 용도로 쓰였기 때문에 자물쇠로 채우도록 되어 있다. 자물쇠는 뚜껑에 부착된 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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