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종묘
Ⅱ. 지석묘
Ⅲ. 옹관묘
1. 옹관묘의 입지
2. 옹관묘의 분포
3. 옹관묘의 구조
Ⅳ. 봉토묘
1. 무벽화 봉토묘
2. 벽화 봉토묘
Ⅴ. 묘제
1. 묘사
2. 시향
3. 절사
4. 제사
5. 봉송
Ⅵ. 묘호
참고문헌
Ⅱ. 지석묘
Ⅲ. 옹관묘
1. 옹관묘의 입지
2. 옹관묘의 분포
3. 옹관묘의 구조
Ⅳ. 봉토묘
1. 무벽화 봉토묘
2. 벽화 봉토묘
Ⅴ. 묘제
1. 묘사
2. 시향
3. 절사
4. 제사
5. 봉송
Ⅵ. 묘호
참고문헌
본문내용
붙이고 그 뒤를 이은 왕들에게는 宗統의 계승자라 하여 宗字를 붙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조선왕조의 창업 개국한 이성계는 태조이며 부 환조(이자춘) 조부 도조(춘) 증조부 익조(행리) 고조부 목조(안사)까지가 조이다.
2대 정종은 태조의 적통자(당시 맏형이 없어서 정종이 적장자임)이므로 종이며
3대 태종은 정조의 세제(임금의 동생이 다음 임금으로 지정됨)였으므로 종이 된다.
4대 세종은 셋째였지만 태종의 정식 세자 책봉이 되었으며 직계승계이시다.
5대 문종
6대 단종까지 이어지다가
7대 세조가 임금이 되시는 것은 단종의 숙부였던 수양대군이 조카의 다음 임금자리를 이었으므로 이것은 단종의 직계가 없어서 결국 방계(적통이지만 선왕인 단종계에서는 방계)로 왕위 계승이 넘어 간 것이다.
8대 예종은 세조의 둘째 아들이지만 형인 의경세자(도원군 추존-덕종)가 20세의 나이로 일찍 죽음으로 인해 정식 세자책봉이 되었으며 세조의 적통승계이므로 예종이시다.
9대 성종은 원래 의경세자(도원군)의 아들(자을산군)이신데 예종이 자손 없이 승하하였고 또한 예종의 양자로 입적되어서 세자 책봉을 받았다. 즉 원래는 의경세자의 아들이시지만 족보상으로는 예종의 아들이시다는 것이다.
10대 연산군은 성종의 적통장자이지만 임금으로서의 가치를 평가 받지 못하였으므로 왕자의 신분인 군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조선왕조에는 임금이 군으로 강등된 것은 연산군과 광해군 두 분이시다.
11대 중종은 성종의 정비 공혜왕후가 17세의 나이로 소생 없이 죽게 되고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 후에 세 번째 왕비인 정현왕후 윤씨의 소생(진성대군)이므로 적통이시다.
12대 인종은 중종의 적장이시고 여섯 살에 세자로 책봉되어 무려 25년간이나 세자로 머물러 있다가 약9개월 정도 재위, 자녀 없이 승하 함
13대 명종은 중종의 두 번째 왕비인 문정황후 윤씨의 아들이시다.
14대 선조임금은 명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중종의 후궁 창빈안씨의 소생 덕흥군(추존-덕흥대원군)의 둘째아들인 하성군(선조)이 명종의 양자로 입적되어 임금이 되시니 처음에는 선종이라고 하였으나 이로서 조선왕조는 적통승계의 막을 내리고 진정한 방계승계(서자방계)가 이루어짐으로 선조라 한다.
15대 광해군은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로 임금이 되었으나 군으로 강등되어 임금으로 평가 받지 못했다.
16대 인조(능양군)는 선조와 인빈김씨 사이의 셋째째 아들 정원군(추존-원종)의 장남으로 직접 광해군을 몰아내는 인조 반정으로 임금이 되신다. 인조는 광해군의 이복 조카이므로 광해군의 아들 세자 질에게 돌아갈 임금자리가 방계인 인조(능양군)에게 계승되었으므로 인이시다.
17대 효은 인조의 둘째 아들(봉림대군)이시나 소현세자의 의문사로 적통 승계하신다.
18대 현종은 효종의 맏아들이며 인선왕후 장씨의 소생이시다.
19대 숙종은 현종의 외동아들로 명성왕후 김씨의 소생이시다.
20대 경종은 숙종의 맏아들이시며 희빈 장씨 소생이시다. 정비 인현왕후가 자식이 없어서 2세때 인현왕후의 양자로 입적되어 원자 정호를 받았으며 적통 계승이시다.
21대 영조임금은 후사 없이 승하 하신 경종이 원래 병약하여 숙종이 경종의 후사로 연잉군(영조)을 정할것을 명하였고 또한 경종에 의해 왕세제로 책봉 되었다.
그러나 영조(연잉군)은 숙종과 무수리출신 숙빈최씨 소생으시다. 방계 승통이시다.
22대 정조임금은 영조와 영빈 이씨 사이의 장헌(사도)세자(추존-장조)의 아들이시다. 영조임금의 적장자 효장세자(추존-진종)가 10세의 나이에 병으로 죽어서 양자로 입적하여 승계 하신다.
원래 효장 세자가 일찍 죽고 사도 세자가 세자대리청정을 했으므로 정조가 사도 세자의 아들로 임금이 되셨다면 효장세자는 진종으로 추존 되지 못할 것이고 사도세자는 장조가 아닌 장종으로 추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조도 정종으로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조가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 되어서 승계 하였으므로 효장세자는 진종으로 추존 되었고 사도 세자는 정조의 생부이므로 장조가 되는 것이며 정조는 장조계와는 또 다른 방계이므로 정조가 되는 것이다.
23대 순조임금은 정조의 둘째아들이며 수빈박씨의 소생이다.
(정조와 의빈박씨 사이에는 문효세자가 있었으며 어린나이에 일찍 죽었다. 순조가 순종이 아닌 순조로 분리 된 것은 알 수가 없음..적통 장자도 아니며 서자 방통승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24대 헌종은 순조의 손자이며 순조의 적장자이신 효명세자(추존-익종)와 신정왕후 조씨의 아들이시다. 효명세자는 대리청정4년을 하였으며 22세의 나이로 일찍 죽었다.
25대 철종은 안동김씨 세도 정치의 절정기에 그 당시 헌종의 6촌 이내의 형제 항렬 왕족이 없었다. 7촌 이내의 조카항렬은 몇 있었으나 항렬을 무시한 안동김씨 세도정치에 의해 헌종의 7촌 아저씨뻘 되는 강화도령 원범을 임금으로 앉힘으로 인해 임금이 되신다. 종조에 대한 견해를 밝힐 수 없음.
추측 하건데 철종은 헌종의 아저씨뻘이므로 조가 되어야 하나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정조의 동생인 은언군의 아들 전계대원군(추존)의 아들이시므로(장조계의 종이 아닐까 싶다.)
26대 고종은 할아버지 남연군이 원래의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의 6대손이었으나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정조의 동생인 은신군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아버지 흥선 대원군(추존)은 촌수로 따지면 영조의 고손자가 되는 것이다.
고종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추존-익종)의 정비 조대비에 의해서 양자로 입적되어 익종을 승계한다.(헌종과 형제 항렬) 27대 순종은 고종의 장남으로 명성황후 민씨의 소생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견해이므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족보와 제사를 이해하면 조종이 분리되는 이유가 쉽게 이해가 될 것이라 본다.
참고문헌
* 김주성, 영산강유역 대형옹관묘 사회의 성장에 대한 시론, 백제연구 제 27집, 충남대학교백제연구소, 1997
* 목포대학교박물관, 나주시의 문화유적, 1999
* 박태호, 세계묘지문화기행, 서울 : 서해문집
* 박진섭, 환경과 전통, 그리고 장묘문화
* 선진국 장묘시설제도 비교연구, 경기도, 2001
* 전남대학교박물관, 화순 만연리 지석묘군, 1993
그렇게 해서 조선왕조의 창업 개국한 이성계는 태조이며 부 환조(이자춘) 조부 도조(춘) 증조부 익조(행리) 고조부 목조(안사)까지가 조이다.
2대 정종은 태조의 적통자(당시 맏형이 없어서 정종이 적장자임)이므로 종이며
3대 태종은 정조의 세제(임금의 동생이 다음 임금으로 지정됨)였으므로 종이 된다.
4대 세종은 셋째였지만 태종의 정식 세자 책봉이 되었으며 직계승계이시다.
5대 문종
6대 단종까지 이어지다가
7대 세조가 임금이 되시는 것은 단종의 숙부였던 수양대군이 조카의 다음 임금자리를 이었으므로 이것은 단종의 직계가 없어서 결국 방계(적통이지만 선왕인 단종계에서는 방계)로 왕위 계승이 넘어 간 것이다.
8대 예종은 세조의 둘째 아들이지만 형인 의경세자(도원군 추존-덕종)가 20세의 나이로 일찍 죽음으로 인해 정식 세자책봉이 되었으며 세조의 적통승계이므로 예종이시다.
9대 성종은 원래 의경세자(도원군)의 아들(자을산군)이신데 예종이 자손 없이 승하하였고 또한 예종의 양자로 입적되어서 세자 책봉을 받았다. 즉 원래는 의경세자의 아들이시지만 족보상으로는 예종의 아들이시다는 것이다.
10대 연산군은 성종의 적통장자이지만 임금으로서의 가치를 평가 받지 못하였으므로 왕자의 신분인 군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조선왕조에는 임금이 군으로 강등된 것은 연산군과 광해군 두 분이시다.
11대 중종은 성종의 정비 공혜왕후가 17세의 나이로 소생 없이 죽게 되고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 후에 세 번째 왕비인 정현왕후 윤씨의 소생(진성대군)이므로 적통이시다.
12대 인종은 중종의 적장이시고 여섯 살에 세자로 책봉되어 무려 25년간이나 세자로 머물러 있다가 약9개월 정도 재위, 자녀 없이 승하 함
13대 명종은 중종의 두 번째 왕비인 문정황후 윤씨의 아들이시다.
14대 선조임금은 명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중종의 후궁 창빈안씨의 소생 덕흥군(추존-덕흥대원군)의 둘째아들인 하성군(선조)이 명종의 양자로 입적되어 임금이 되시니 처음에는 선종이라고 하였으나 이로서 조선왕조는 적통승계의 막을 내리고 진정한 방계승계(서자방계)가 이루어짐으로 선조라 한다.
15대 광해군은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로 임금이 되었으나 군으로 강등되어 임금으로 평가 받지 못했다.
16대 인조(능양군)는 선조와 인빈김씨 사이의 셋째째 아들 정원군(추존-원종)의 장남으로 직접 광해군을 몰아내는 인조 반정으로 임금이 되신다. 인조는 광해군의 이복 조카이므로 광해군의 아들 세자 질에게 돌아갈 임금자리가 방계인 인조(능양군)에게 계승되었으므로 인이시다.
17대 효은 인조의 둘째 아들(봉림대군)이시나 소현세자의 의문사로 적통 승계하신다.
18대 현종은 효종의 맏아들이며 인선왕후 장씨의 소생이시다.
19대 숙종은 현종의 외동아들로 명성왕후 김씨의 소생이시다.
20대 경종은 숙종의 맏아들이시며 희빈 장씨 소생이시다. 정비 인현왕후가 자식이 없어서 2세때 인현왕후의 양자로 입적되어 원자 정호를 받았으며 적통 계승이시다.
21대 영조임금은 후사 없이 승하 하신 경종이 원래 병약하여 숙종이 경종의 후사로 연잉군(영조)을 정할것을 명하였고 또한 경종에 의해 왕세제로 책봉 되었다.
그러나 영조(연잉군)은 숙종과 무수리출신 숙빈최씨 소생으시다. 방계 승통이시다.
22대 정조임금은 영조와 영빈 이씨 사이의 장헌(사도)세자(추존-장조)의 아들이시다. 영조임금의 적장자 효장세자(추존-진종)가 10세의 나이에 병으로 죽어서 양자로 입적하여 승계 하신다.
원래 효장 세자가 일찍 죽고 사도 세자가 세자대리청정을 했으므로 정조가 사도 세자의 아들로 임금이 되셨다면 효장세자는 진종으로 추존 되지 못할 것이고 사도세자는 장조가 아닌 장종으로 추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조도 정종으로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조가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 되어서 승계 하였으므로 효장세자는 진종으로 추존 되었고 사도 세자는 정조의 생부이므로 장조가 되는 것이며 정조는 장조계와는 또 다른 방계이므로 정조가 되는 것이다.
23대 순조임금은 정조의 둘째아들이며 수빈박씨의 소생이다.
(정조와 의빈박씨 사이에는 문효세자가 있었으며 어린나이에 일찍 죽었다. 순조가 순종이 아닌 순조로 분리 된 것은 알 수가 없음..적통 장자도 아니며 서자 방통승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24대 헌종은 순조의 손자이며 순조의 적장자이신 효명세자(추존-익종)와 신정왕후 조씨의 아들이시다. 효명세자는 대리청정4년을 하였으며 22세의 나이로 일찍 죽었다.
25대 철종은 안동김씨 세도 정치의 절정기에 그 당시 헌종의 6촌 이내의 형제 항렬 왕족이 없었다. 7촌 이내의 조카항렬은 몇 있었으나 항렬을 무시한 안동김씨 세도정치에 의해 헌종의 7촌 아저씨뻘 되는 강화도령 원범을 임금으로 앉힘으로 인해 임금이 되신다. 종조에 대한 견해를 밝힐 수 없음.
추측 하건데 철종은 헌종의 아저씨뻘이므로 조가 되어야 하나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정조의 동생인 은언군의 아들 전계대원군(추존)의 아들이시므로(장조계의 종이 아닐까 싶다.)
26대 고종은 할아버지 남연군이 원래의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의 6대손이었으나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정조의 동생인 은신군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아버지 흥선 대원군(추존)은 촌수로 따지면 영조의 고손자가 되는 것이다.
고종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추존-익종)의 정비 조대비에 의해서 양자로 입적되어 익종을 승계한다.(헌종과 형제 항렬) 27대 순종은 고종의 장남으로 명성황후 민씨의 소생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견해이므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족보와 제사를 이해하면 조종이 분리되는 이유가 쉽게 이해가 될 것이라 본다.
참고문헌
* 김주성, 영산강유역 대형옹관묘 사회의 성장에 대한 시론, 백제연구 제 27집, 충남대학교백제연구소, 1997
* 목포대학교박물관, 나주시의 문화유적, 1999
* 박태호, 세계묘지문화기행, 서울 : 서해문집
* 박진섭, 환경과 전통, 그리고 장묘문화
* 선진국 장묘시설제도 비교연구, 경기도, 2001
* 전남대학교박물관, 화순 만연리 지석묘군,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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