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의 특징과 생애, 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 사역과 죽음, 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와 바울신학, 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와 교황, 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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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의 특징과 생애, 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 사역과 죽음, 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와 바울신학, 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와 교황, 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 한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의 특징
1. 인류의 구세주로서의 예수의 이름이다
2. 천하에 주어진 유일한 구원이 이름이 분명하다
3. 참 인간의 이름으로서의 예수이다

Ⅲ. 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의 생애
1. 사생애 : 준비기
2. 공생애 : 활동기

Ⅳ. 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의 사역

Ⅴ. 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의 죽음

Ⅵ. 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와 바울신학

Ⅶ. 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와 교황

Ⅷ. 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의 한계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리카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의 정황에서 그들의 구원의 의미를 미리 정하고 예수가 구원자이므로 고로 예수가 바로 그런 구원자 즉 추장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날 인도 사람이 일어서 가지고 긴 강연을 한답시고 복잡하고 자기도 모르는 소리로 강연을 해대는데 그 중에 자신이 아는 소리 몇 마디는 이런 것이다. ‘인도 사람들도 죄를 용서하고 초월한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고 의롭게 하고 하는 것으로 무의미하다. 인도의 힌두교 즉 범신론에 세뇌되고 이것 밖에 모르는 이들에게 올바른 기독론과 구원론은 예수가 krishna(인도 힌두교의 범신의 환생의 한 형태를 가리킴)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우주와 합일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의 논지는 인도에서 기독론은 krishnalogy로 밖에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인도의 방갈로에 유명한 에큐메니칼 신학교인 U.T.C라고 있는데 이 학교의 교문 정문에는 십자가에 힌두교의 krishna가 못 박혀 있다. 이게 이른바 토착화신학이다. 이것도 kerygma 신학이다. 예수가 추장이다. 예수가 krishna이다. 이것이 한국에서는 예수가 민중이다. 남미에서는 예수가 해방자이다. 다 이런 식으로 예수를 적용시킨다. 그래서 70년대 한동안 토착화 신학에 이름 하여 유행했던 것이 WCC 써클에서 하는 수련회나 학회 가면 항상 매번 주제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의 질문을 이런 식으로 이용한다.
사람들은 세례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하고 서양 제국주의자들은 그리스도라고도 하고 주라고도 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도 했는데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니까 너희의 삶의 정황 속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예수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당신을 엘리야, 세례요한 이라고 답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경에 있는 식으로 그리고 서양신학(교회의 신학)에서 이 사람들이 당신을 그리스도라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라고 고백해 왔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면 가이사랴 빌립보 사람들이 당신을 엘리야라고 세례요한이라고 하는 수준에 머문다는 것이다. “네 말로 해보아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민중입니다. 추장입니다. 해방자입니다. krishan입니다.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토착화 신앙고백이고 이 세대의 신앙고백이라는 것이다. 그러듯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신앙고백하는 근거가 무엇이냐? 역사적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지 않으면 예수가 뭐, 뭐다는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 아무런 근거 없는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이런 신앙고백은 미신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가 지어낸 이야기를 우리가 믿는 아무런 실제(reality)가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이들이 신학을 이렇게 하면서 그들은 정당성을 어디에서 찾느냐면 신약성경에 특히 바울을 보면 어디 역사적 예수에 근거하냐? 바울 서신에 보아도 하나님 나라는 몇 번 나오느냐? 그리고 예수가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은 한번도 안나온다. 또 예수가 열심히 병자를 치유하고 그러는데 그런 게 어디가 있느냐? 바울도 그리스도는 주라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몰라가지고 지금까지 이런 칭호들도 헬라 세계에서 온 창조들로 보았다. 그러니까 자기의 이방 선교 지역에서 필요에 따라 그 문화에서 얻은 칭호들을 가지고 예수에게 신앙고백하고 죽을 때에 케리그마로 선포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못할 것 뭐있냐? 이런 식으로 논리를 전개해 왔다. 그래서 우리가 이 문제를 중요시 다루어야 한다.
첫째로 예수는 하나님을 선포했다. 그런데 어떻게 사도들은 예수를 선포했는가? 어떻게 선포자가 선포이 대상이 되었느냐? 예수는 하나님을 선포했다. 사도들은 예수를 선포했다. 선포자가 선포의 대상이 되었다.
둘째로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하나님이 아버지 되심). 사도들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했다.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어떤 관계가 있느냐?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어떻게 관계가 있느냐? 이런 것을 규명하는 것이 신약신학 제 1권 초점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예수의 가르침과 예수의 행적을 살펴봄으로써 예수의 자기 이해를 규명하고 그것이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빛 아래 보았을 때 어떻게 사도들의 선포로 다시 표현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는가? 어떻게 선포자가 선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나? 왜 사도들이 예수의 십자가의 부활을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에 집중하게 만드나 하는 것들을 집중적으로 보여 주었다. 이것이 신약신학 제 1이다. 이중에 혹시 강의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89년도판 가을호 신학지남에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에 관한 논문이 있다. 그 책을 읽어보면 여기 다룬 문제의 핵심들을 깨달을 수 있다.
지금 이 문제가 큰 문제이다. 우리 기독교 신앙(신학)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다. 이 문제의 하나의 변형으로 또는 한 조각으로 바로 바울과 역사적 예수와의 관계가 토론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바울에게 있어서 아주 절실하게 토론이 되어야 할 이유는 앞에서 이야기한데로 바울 서신에 역사적 예수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고 그의 가르침이 거의 인용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문제를 먼저 제기했다. 먼저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다. 바울의 복음은 바울전 교회를 중계자로 해서 그들을 통해서 역사적 예수의 선포와 사역과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앞부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메섹 도상에서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계시에 근거해서 초대교회의 기독론적 그리고 구원론적 신앙고백과 케리그마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초대교회의 케리그마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빛 아래 그의 가르침과 행적으로 보았을 때 발생한 것이다.
첫째로 바울의 복음은 초대교회를 매체로 해서 역사적 예수와 연결되어 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하신 예수의 계시로 초대교회의 케리그마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면 초대교회의 케리그마는 어떻게 일어났는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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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5.20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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