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학의(北學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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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학의(北學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북학의를 읽고
1. 시작하면서 …………………………………………………………… 3

2. 박제가의 생애 및 업적 ………………………………………… 4

3. 북학의 소개
3.1 시대적 배경 및 탄생 ……………………………………………… 5
3.2 북학의 내용 ………………………………………………………… 7
3.3 북학의 사상 ……………………………………………………… 24

4. 문제의식과 해결책
4.1 문제의식 ……………………………………………………………26
4.2 해결책 ……………………………………………………………… 27

5. 북학의 실학사상의 한계
5.1 소비를 늘리자는 주장의 모순 ………………………………… 30
5.2 기술수용론의 한계 ……………………………………………… 31
5.3 사회제도 개혁의 한계 …………………………………………… 33

6. 맺으면서 …………………………………………………………… 33

Ⅱ. 북학의의 경제사적 내용
1. 경제는 우물과 같다 …………………………………………… 35

2. 수레도 타고 배도 타고 ………………………………………… 42

3. 농민을 위하여 …………………………………………………… 52

4. 박제가의 『북학의』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53

본문내용

안을 쏘다니며 큰소리만 친다.
하지만 그들이 입고 먹는 것이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그러니 부득불 세력가에 빌붙어 권세를 얻으려고 하므로 청탁하는 풍습이 형성되고 요행수나 바라는 길을 걷게 되었다. 이러한 짓거리는 장터의 장사꾼들조차 하려하지 않는 행위이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중국처럼 떳떳하게 장사하는 행위보다 못하다고 말한 것이다.
과거 전통 사회는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의 질서가 분명한 계급 사회였다. 적자와 서자를 구분하는 적서 차별이 분명했고, 양반과 상민을 나누는 반상의 구분도 엄격했다. 특히 사회계층을 보면, 맨 위의 양반이 있고 다음에 중인이 있으며, 그 아래 양민이나 상민이라 불리는 일반 백성이 있고 다시 그 아래에 천민이 있었다. 중인은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지만 크게 본다면 지배 계층에 들어갈 수 있다. 또 중인은 좁은 의미에서는 통역을 담당하는 역관이나 의사에 해당하는 의관처럼 중앙 정부의 기술직 관원이 해당되며, 넓은 의미에서는 지방 관청의 사리까지도 포함된다. 그리고 천민에는 노비, 소 잡는 백정이나 신발 만든는 갖바치, 광대와 기생 등이 있다.
사회 발전 과정에는 이 같은 차별로부터 평등으로의 변화도 포함된다. 그런데 평등을 이루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16~17세기에는 하층민의 신분을 끌어올려서 평등을 이루려고 했다면, 18세기 이후는 상층민의 신분을 끌어내려 평등을 이루려는 것으로 바뀌었다. 앞의 경우는 양반이 거느릴 수 있는 노비의 수를 제한해서 하층민이 늘어나는 것을 막는다거나, 부모의 신분에 따라 자식의 신분이 결정되는데 아버지든 어머니든 좋은 신분 쪽으로 따라가게 하자는 것이 해당된다. 하지만 박제가처럼 양반도 장사를 시키자는 주장은 양반의 신분을 끌어내림으로써 신분제 타파를 꾀하는 좀 더 적극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제가는 정조에게 올린 <병오소회>에서 양반상인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농업을 해치는 것은 상업이 아니라 놀고먹는 양반이며, 이렇게 놀고먹는 양반이야말로 농민들의 일할 의욕을 꺾는 좀 같은 부류라고 했다. 그리고 나라가 나서서 이들에게 자금도 지원하고 가게 여는 것도 도와주어 장사를 하게 하고, 그들 가운데 장사를 잘하는 사람들을 뽑아 벼슬을 주자는 말도 했다. 이 같은 박제가의 주장은 신분제를 타파하자는 것이며 동시에 사람이면 누구나 일해서 먹고살아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러한 생각은 다음 글에 잘 나타나 있다.<재부론(財富論)>
이재(理財:재물을 유리하게 다룸)를 잘하는 사람은 위로는 천시(天時)를 잃지 않고, 아래로는 지리적 이점을 놓치지 않으며, 가운데로는 사람이 할 일을 잃지 않는다.
가물을 편리하게 사용하지 못하여 남들이 하루에 할 일을 나는 한 달 두 달 걸려 한다면 이것을 천시를 잃는 것이다. 밭 갈고 씨 뿌리는 방법이 잘못되어 비용은 많이 들었는데 수확은 적다면 이것은 지리적 이점을 놓치는 것이다. 상인들이 교역을 하지 않고 놀고먹는 자들이 날로 많아진다면 이것은 사람이 할 일을 잃는 것이다. 우리가 이상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잃은 것은 중국을 배우지 않은 결과이다.
옛날 신라는 경상도라는 한 도를 기반으로 해서 북쪽으로는 고구려에 대항하였고, 서쪽으로는 백제를 정벌하였다. 당나라가 10만 군사를 거느리고 국경 안에 들어와 주둔한 지가 한 해에 몇 달이었다. 이런 처지에서 만약 저들에게 군량미를 제공하고 접대할 적에 예법의 실수를 한다거나 말을 먹이는 식량이 고갈되는 일이라도 한 번 발생했다면 신라라는 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신라는 결국 이런 방법 저런 방법으로 버티고 유지하여 넉넉하게 성공을 거둘 수가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상도 크기의 도가 여덟 개나 된다. 그러나 평상시에도 관리 한 사람당 한 섬의 녹봉밖에 주지 못한다. 칙사(勅使)라도 왔다가 가는 날이면 경비가 완전히 바닥난다.
우리나라는 태평시대를 누린 지가 1백여 년으로, 위로는 외국을 정벌하거나 임금닐의 지방을 순시한 일도 볼 수가 없고, 아래로는 백성들이 화려함을 즐기고 사치함을 좋아하는 풍속이 있음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도 나라의 빈곤이 갈수록 심해지니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다.
남들은 곡식을 세 줄로 심을 때에 우리는 두 줄로 심는다. 그렇게 하면 1천 리의 지방을 가져다 6백 리의 지방으로 줄여서 사용하는 셈이다. 남들은 농사를 지어 하루에 50~60섬을 거둔다면 우리는 20섬을 거두니 그럴 경우 6백여 리의 지방을 가져다 2백
여 리의 지방을 만든 셈이다. 남들은 곡식을 5푼 파종한다면 우리는 10푼 파종하는데 그럴 경우 또 1년 동안의 종자를 잃는 셈이다. 사정이 이런 데다가 또 배나 수레, 목축, 가옥, 기물을 쓸모 있게 사용하는 방법을 폐하고 강구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을 전국적으로 계산하면 백 배의 이익을 잃는 셈이다.
현재의 토지만을 가지고 계산할 때 이런 정도이니 만약 위아래 1백 년 동안을 따진다면 잃는 것이 얼마나 될지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다. 천시를 잃고, 지리적 이점을 잃고, 사람이 할 일을 잃은 상황이므로 비록 1천 리가되는 지방이라도 실상은 1백 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신라가 우리보다 백 배나 나았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
지금이라도 다급하게, 경륜이 있고 재능과 기술을 가진 선비를 선발하여 한 해에 열 명씩 중국으로 가는 사신 행렬의 비장(飛將:조선시대에 감사나 사신들을 따라다니며 일을 돕는 벼슬아치)이나 역관들 틈에 섞어 보낸다. 한 사람이 그들을 인솔하여 마치 옛날에 있었던 질정관의 관례를 따라서 중국에 들어간다. 중국에 들어가서 중국의 문화를 배우되, 어떤 경우에는 저들의 기물을 사들이기도 하고, 저들의 기예를 전수 받기도 하여 그 법을 우리나라에 전파시킨다. 그리고 특별한 기관을 설치하여 국민을 교육시키고, 물자를 장만하여 그 기예를 시험해본다. 저들이 전수 받은 법의 중요성과 성취한 공적의 허실을 관찰하여 그것을 근거로 상을 주거나 벌을 내린다.
한 사람에게 세 번 중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되 세 번이나 들어가서도 아무 효과를 보이지 않은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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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8.19
  • 저작시기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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