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론,성의 역사1 앎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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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화이론,성의 역사1 앎의 의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성의 역사1 앎의 의지

제1장 우리, 빅토리아 여왕 시대풍의 사람들

제2장 억압의 가설

1. 담론의 선동

2. 성적 도착의 확립

제3장 스키엔티아 섹수알리스

본문내용

이 가장 엄격한 예속 상태에 놓였을 것이라는 주장은 섹스에 관해 진실을 말하고 현실에서 섹스의 구조를 변모시키며 섹스를 지배하는 법칙을 뒤엎을 뿐 아니라 섹스의 미래를 변화시키기 위한 담론의 과장된 말투와 쌍을 이룬다. 압제의 담론과 설교의 형태는 서로 참조가 되고 상호적으로 강화된다. 섹스는 억압받지 않는다고 주장하거나 더 정확히 말해서 권력에 대한 섹스의 관계가 억압과는 무관하다고 단업하는 것은 부질없는 역설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것은 분명히 받아들여진 주장을 거스르는 것으로 보일뿐만 아니라 구조 전체 또는 구조의 기반이 되는 다분히 산발적인 모든 “관심”과 배치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내가 제기하려고 하는 물은은 ‘왜 우리가 억압받는가’ 가 아니라, ‘왜 우리가 우리의 가까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그토록 커다란 열정과 강렬한 원한을 품고서 스스로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는가’이다. 어떤 나선형 경로를 통해 우리는 섹스를 명확한 말로 표명하고 섹스의 가장 적나라한 실체를 드러내려고 애쓰며 섹스의 영향력과 효력을 적극적으로 확언하면서도, 섹스가 부정된다고 단언하고 우리가 섹스를 감춘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며 우리가 섹스를 침묵으로 몰아간다고 말하기에 이르렀을까? 왜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섹스와 죄가 서로 결합되었는가 하고 자문하는 것은 확실히 정당하다. 어떤 노정을 통해 우리는 권력의 남용 때문에 섹스에 대해 오늘날까지 오랫동안 “죄르 저질렀다”고 자인할 정도로 몹시 특이한 문명을 이룩하게 되었을까? 섹스의 죄악적 본질로부터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라고 주장되면서도, 바로 그러한 잘못된 본질을 상상하고 그러한 믿음에서 파멸적 결과를 끌어내는 데 있을 커다란 역사적 과오로 우리를 짓누르는 그러한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오늘날 그토록 많은 사람이 이러한 억압의 실재를 확언하는 것은 억압이 역사적으로 명백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또한 그들이 그토록 오래전부터 그토록 자주 억압에 관해 말하는 것은 억압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을 뿐 아니라 그저 비난만으로는 우리가 억압에서 해방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게 억압이 섹스를 짓누르기 때문이라고 누구나 나에게 말하라 것이고, 그런만큼 우리의 작업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권력, 특히 우리의 사회에서 작용하는 그러한 권력의 속성은 억압적인 것이고 쓸데없는 정력, 격력한 쾌락, 변칙적 행동을 특별히 세심하게 억압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작업은 아마 그만큼 더 길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억압적 권력에 대한 해방의 효과는 느리게 나타난다고 예상할 필요가 있으며, 섹스에 관해 자유롭게 말하고 섹스의 실체를 받아들이려는 기도는 이제 천 년에 가까운 역사 전체의 노선과 너무나 이질적일뿐더러 권력의 내재적 매커니즘에 대해 너무나 적대적이어서, 성공적으로 완수되기 전에 오랫동안 제자리 걸음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억압의 가설”이라고 부르게 될 것과 관련하여 세가지 주목할 만한 의혹
1. 섹스의 억압은 정말로 자명한 역사적 사실일까? <본질적으로 역사와 관계있는 문제>
2. 권력의 역학, 특히 우리의 사회와 같은 사회에서 작용하는 권력의 역학은 요컨대 억압의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 금지, 검열, 부인은 모든 사회에서, 확실히 우리의 사회에서 권력이 아마 일반적으로 행사되는 양상일까? <역사-이론적 문제>
3. 억압을 겨냥하는 비판적 담론은 그때까지 이의없이 가능한 권력 메커니즘의 통로를 차단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억압”이라고 부르면서 비난하는 것과 동일한 역사적 망의 일부분을 이루는 것일까? 억압의 시대와 억압의 비판적 분석 사이에 정말로 역사적 단절이 존재하는 것일까? <역사 정치적 문제>
내가 억압의 가설에 대해 반론으로 내세우려고 하는 세 가지 의혹의 목적은 억압의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17세기 이래 근대 사회의 내부에서 섹스에 관해 행해진 담론의 전반적 구조에 억압의 가설을 재위치시키는 것이다. 왜 성을 말했을까, 성에 관해 무엇을 말했으러까, 성에 관해 말한 것에 의해 유발된 권력효과는 무엇이었을까? 그러한 담론, 그러한 권력효과, 그것들에 의해 둘러싸인 쾌락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 거기로부터 어떤 인식이 형성되었을까? 요컨대 세 가지 의혹의 목적은 우리에게서 인간의 성에 관한 담론을 뒷받침하는 권력-앎-쾌락 체제의 작동과 존재이유를 결정하는 것이다. 섹스에 관한 전반적 “담론현상”과 “담론화”를 고찰하는 것이(적어도 최초의 논의에서는) 요점이라는 사실은 이로부터 연유한다.
또한 어떤 형태로,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담론을 따라 권력이 가장 미묘하고 가장 개인적인 행동에까지 이르는가, 어떤 노정을 통해 권력이 욕망의 회귀하거나 거의 감지할 수 없는 형태에 도달하는가 어떻게 권력이 일상의 쾌락에 침투하여 일상의 쾌락을 통제하는가 -거부, 봉쇄, 자격 박탈뿐만 아니라 선동과 강화일 수도 잇는 결과와 함께 이 모든 것을, 요컨대 “권력의 다형적 기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는 사실도 이로부터 파생한다.
끝으로 그러한 담론 산출과 그러한 권력효과가 섹스의 진실을 명확하게 말하는 쪽으로 우리를 이끌 것인가, 반대로 진실을 은폐하게 마련인 거짓의 표명으로 우리를 이끌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담론 산출에서 매체와 동시에 수단의 구실을 하는 “앎의 의지”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한 점일 것이라는 사실 역시 이로 말미암아 생겨난다.
요컨대 나는 반대로 (물론 침묵도 마련하는) 담론의 산출, (때때로 금지하는 것을 기능으로 갖는) 권력의 산출, (흔히 오류와 체계적 몰이해를 유통시키는) 앎의 산출이 이루어지는 영역을 모색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희소성의 구조와 감소의 원리에 부여되는 특권으로부터 분석을 떼어내고자 하며, 그 영역들과 그 영역들의 변모에 관한 역사를 쓰고자 한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에서 행해진 대략적 검토는 16세기 말부터 섹스의 “담론화”가 제한의 과정을 따르지 않고 반대로 증대하는 선동의 매커니즘에 종속되었다는 것, 섹스에 대해 행사되는 권력의 기법은 엄격한 선별의 원칙이 아니라 반대로 다형적 성의 확산과 확립이라는 원칙을 따랐다는 것, 그리고 앎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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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9.01
  • 저작시기2011.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99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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