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데카르트의 생애와 저서
Ⅱ. 데카르트의 기본사상
Ⅲ. 데카르트의 학문방법
Ⅳ.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 방법적 회의
Ⅴ.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 자아의 문제
Ⅵ.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 신 존재 증명
Ⅶ.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 물질세계
Ⅷ.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 이원론
Ⅰ. 파스칼의 생애와 저서
Ⅱ. 파스칼의 철학과 데카르트 철학
Ⅱ. 데카르트의 기본사상
Ⅲ. 데카르트의 학문방법
Ⅳ.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 방법적 회의
Ⅴ.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 자아의 문제
Ⅵ.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 신 존재 증명
Ⅶ.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 물질세계
Ⅷ.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 이원론
Ⅰ. 파스칼의 생애와 저서
Ⅱ. 파스칼의 철학과 데카르트 철학
본문내용
아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확신. 확신. 느낌. 기쁨. 평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와 너의 하나님.
이미 살펴본 것처럼, 데카르트가 관심을 둔 하나님은 우리의 인식과 세계를 근거짓는 궁극적 기반으로서의 하나님이었다. . 완전, 무한, 전능의 속성을 가진 신에게는 결함과 속임이 없고, 따라서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어떤 악한 신에 의해 속임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증해준다. 즉, 데카르트의 신은 형이상학적으로 사유된 절대자의 의미이며, 세계에 대한 합리적이고 기계론적인 구성의 보장자에 불과하다. 따라서 하나의 관념일 뿐 살아있는 인간의 구체적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어떤 감정이나 기쁨을 주지 않는 것이다.
반면, 파스칼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즉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고 구원의 강한 손을 펼치시고 고통받는 현장에 동참하시는 약속의 하나님이다. 우리가 기도하고 의존하는,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인 것이다. 따라서 파스칼은 철학에서 통용되고 있는 개념인 “가정 완전한 자”(ens perfectissimum)나 “존재자체”(ipsum esse) 등과 같은 단순히 추상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에 만족하지 못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가진 파스칼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인간의 정신적 도덕적 생활을 논했던 데카르트의 철학이 탈종교적임을 꿰뚫어보았다. 따라서 파스칼은 이런 말로 데카르트를 비난했다.
“나는 데카르트를 용서할 수 없다. 그는 그의 철학 전체에서 가능하면 하나님 없이 지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세계를 운동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그 다음 그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데카르트와 달리, 파스칼의 하나님은 인간존재의 모순을 풀어주는 확실성을 주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알게 된 하나님 안에서 인간이 원래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이며 존귀한 존재로 지음받았는가, 이 존귀함을 어떻게 상실하게 되었는가, 이 존귀한 상태가 어떻게 회복되었는가 등 하나님 안에서 인간의 가치를 올바로 매길 수 있다고 파스칼은 보았기 때문이다.
3. 파스칼의 인간론
파스칼은 그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팡세」에서 인간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사람은 자연 가운데 가장 연약한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 사람을 없애기 위해 온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하나의 수증기, 한 방울의 물로도 넉넉히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우주가 사람을 없앤다 해도 사람은 자신을 없애는 우주보다 훨씬 고귀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과 우주가 자기보다 훨씬 우세함을 알기 때문이다. 우주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엄성은 온전히 생각하는데 있다. 우리는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과 시간으로서가 아니라, 이것 즉 생각으로써 우리의 가치를 올려야 한다. 그러므로 잘 생각하도록 힘쓰자. 이것이 바로 도덕의 원리다.”
이것은 성서 가운데 ‘상한 갈대’'(마 12:18∼22, 사 42:1∼4)에서 유래한다. 인간의 존재는 우주에 비하면 정말 작은, 거의 무에 가까운 존재이지만, 인간은 무한을 생각하고 자신의 비참함을 사유함으로서 위대해지고 우주를 넘어선다.
“인간은 스스로 비참하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그는 비참하다. 사실 비참하기 때문에, 그러나 인간은 진정 위대하다. 스스로 비참함을 알기 때문이다.”
즉, '생각하는 갈대'란 말은, 위대함과 비참함을 함께 지닌 표현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모순된 양극을 공유하는 인간 존재와 그 밑바닥으로부터 싹트는 불안을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간은 이중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 파스칼 철학의 출발점이며, 인간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난처함과 몸부림 속에 불가사의한 신의 은총이 작용한다. 즉, 기독교 교리는 인간성이 모순에 대한 이유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데카르트는 인간을 신체와 영혼의 합성물로 보고, 신체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동기계라고 본다. 데카르트는 영혼을 사유하는 실재로 보았기 때문에, 지성과 이성, 영혼, 정신, 자아가 같은 개념이다. 그리고 영혼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고 본다. 그러나 파스칼은 영혼이 단지 사유하는 능력이라는 사실에 의심을 품었다. 그가 생각하는 영혼은 생각하는, 그러나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고민하는 실존적이고 종교적인 영혼이라는 점에서 데카르트와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4. 파스칼의 우주론
파스칼의 자연적 우주관은 수학적이며 자연학자의 눈으로 관찰된 것이다. 파스칼은 우주공간 그 자체 안에서 무한성(無限性)의 수수께끼를 느꼈다. 모든 유한한 양은 무한대(無限大)와 무한소(無限小)와의 중간물로 간주된다. 그리고 그 양단의 두개의 무한을 우리는 포착할 수 없다. 우리가 포착할 수 있는 것은 중간의 부동물(不動物)에 불과하다. 이 우주 안의 모든 사물은 우리들에게는 숨겨져 있는 무한대와 무한소와의 중간에 떠돌고 있는 형상이다. 파스칼에게는 우주공간의 무한성이 “숨어있는 신”에 대한 상징이며, 이 우주 안에 있는 유한한 물체는 인간의 유한성을 우리에게 비춰주는 거울같이 보였다.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을 파스칼은 두려워한 것이다.
데카르트의 세계관에 따르면, 자연은 신비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분석과 해체, 가공과 정복의 대상이 된다. 그의 우주론은 생각하는 자아로서의 인간의 정신을 우주의 중심에 놓고 정신과 육체, 자아와 대상을 명백히 분리하는 이원론적 우주론이다. 따라서 그는 우주 안의 물체와 우주 그 자체와의 사이에 본질적인 구별이 없다고 보았다. 반면, 파스칼은 그것들 사이에 구별이 있다고 보았다. 물체는 전경(前景)에 있지만 우주 전체는 배경을 이루고 있으며, 두 개의 무한한 방향 속에서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원리를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우주관 하에서 파스칼은 데카르트가 보지 못한 모순과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발견했으며, 이러한 정신적 상황을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은 나를 두렵게 한다.”라고 표현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확신. 확신. 느낌. 기쁨. 평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와 너의 하나님.
이미 살펴본 것처럼, 데카르트가 관심을 둔 하나님은 우리의 인식과 세계를 근거짓는 궁극적 기반으로서의 하나님이었다. . 완전, 무한, 전능의 속성을 가진 신에게는 결함과 속임이 없고, 따라서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어떤 악한 신에 의해 속임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증해준다. 즉, 데카르트의 신은 형이상학적으로 사유된 절대자의 의미이며, 세계에 대한 합리적이고 기계론적인 구성의 보장자에 불과하다. 따라서 하나의 관념일 뿐 살아있는 인간의 구체적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어떤 감정이나 기쁨을 주지 않는 것이다.
반면, 파스칼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즉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고 구원의 강한 손을 펼치시고 고통받는 현장에 동참하시는 약속의 하나님이다. 우리가 기도하고 의존하는,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인 것이다. 따라서 파스칼은 철학에서 통용되고 있는 개념인 “가정 완전한 자”(ens perfectissimum)나 “존재자체”(ipsum esse) 등과 같은 단순히 추상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에 만족하지 못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가진 파스칼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인간의 정신적 도덕적 생활을 논했던 데카르트의 철학이 탈종교적임을 꿰뚫어보았다. 따라서 파스칼은 이런 말로 데카르트를 비난했다.
“나는 데카르트를 용서할 수 없다. 그는 그의 철학 전체에서 가능하면 하나님 없이 지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세계를 운동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그 다음 그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데카르트와 달리, 파스칼의 하나님은 인간존재의 모순을 풀어주는 확실성을 주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알게 된 하나님 안에서 인간이 원래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이며 존귀한 존재로 지음받았는가, 이 존귀함을 어떻게 상실하게 되었는가, 이 존귀한 상태가 어떻게 회복되었는가 등 하나님 안에서 인간의 가치를 올바로 매길 수 있다고 파스칼은 보았기 때문이다.
3. 파스칼의 인간론
파스칼은 그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팡세」에서 인간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사람은 자연 가운데 가장 연약한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 사람을 없애기 위해 온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하나의 수증기, 한 방울의 물로도 넉넉히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우주가 사람을 없앤다 해도 사람은 자신을 없애는 우주보다 훨씬 고귀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과 우주가 자기보다 훨씬 우세함을 알기 때문이다. 우주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엄성은 온전히 생각하는데 있다. 우리는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과 시간으로서가 아니라, 이것 즉 생각으로써 우리의 가치를 올려야 한다. 그러므로 잘 생각하도록 힘쓰자. 이것이 바로 도덕의 원리다.”
이것은 성서 가운데 ‘상한 갈대’'(마 12:18∼22, 사 42:1∼4)에서 유래한다. 인간의 존재는 우주에 비하면 정말 작은, 거의 무에 가까운 존재이지만, 인간은 무한을 생각하고 자신의 비참함을 사유함으로서 위대해지고 우주를 넘어선다.
“인간은 스스로 비참하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그는 비참하다. 사실 비참하기 때문에, 그러나 인간은 진정 위대하다. 스스로 비참함을 알기 때문이다.”
즉, '생각하는 갈대'란 말은, 위대함과 비참함을 함께 지닌 표현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모순된 양극을 공유하는 인간 존재와 그 밑바닥으로부터 싹트는 불안을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간은 이중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 파스칼 철학의 출발점이며, 인간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난처함과 몸부림 속에 불가사의한 신의 은총이 작용한다. 즉, 기독교 교리는 인간성이 모순에 대한 이유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데카르트는 인간을 신체와 영혼의 합성물로 보고, 신체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동기계라고 본다. 데카르트는 영혼을 사유하는 실재로 보았기 때문에, 지성과 이성, 영혼, 정신, 자아가 같은 개념이다. 그리고 영혼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고 본다. 그러나 파스칼은 영혼이 단지 사유하는 능력이라는 사실에 의심을 품었다. 그가 생각하는 영혼은 생각하는, 그러나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고민하는 실존적이고 종교적인 영혼이라는 점에서 데카르트와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4. 파스칼의 우주론
파스칼의 자연적 우주관은 수학적이며 자연학자의 눈으로 관찰된 것이다. 파스칼은 우주공간 그 자체 안에서 무한성(無限性)의 수수께끼를 느꼈다. 모든 유한한 양은 무한대(無限大)와 무한소(無限小)와의 중간물로 간주된다. 그리고 그 양단의 두개의 무한을 우리는 포착할 수 없다. 우리가 포착할 수 있는 것은 중간의 부동물(不動物)에 불과하다. 이 우주 안의 모든 사물은 우리들에게는 숨겨져 있는 무한대와 무한소와의 중간에 떠돌고 있는 형상이다. 파스칼에게는 우주공간의 무한성이 “숨어있는 신”에 대한 상징이며, 이 우주 안에 있는 유한한 물체는 인간의 유한성을 우리에게 비춰주는 거울같이 보였다.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을 파스칼은 두려워한 것이다.
데카르트의 세계관에 따르면, 자연은 신비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분석과 해체, 가공과 정복의 대상이 된다. 그의 우주론은 생각하는 자아로서의 인간의 정신을 우주의 중심에 놓고 정신과 육체, 자아와 대상을 명백히 분리하는 이원론적 우주론이다. 따라서 그는 우주 안의 물체와 우주 그 자체와의 사이에 본질적인 구별이 없다고 보았다. 반면, 파스칼은 그것들 사이에 구별이 있다고 보았다. 물체는 전경(前景)에 있지만 우주 전체는 배경을 이루고 있으며, 두 개의 무한한 방향 속에서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원리를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우주관 하에서 파스칼은 데카르트가 보지 못한 모순과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발견했으며, 이러한 정신적 상황을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은 나를 두렵게 한다.”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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