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인식론의 한계에 대한 고대 회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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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회의주의

1. 고대 회의주의 - 퓌론주의
1-1. 판단중지
1-2.퓌론주의 - 판단중지의 인식론적/존재론적 의의

2. 근세 회의주의 - 흄
2-1. 흄의 심리학적 인식론
2-2. 흄의 회의주의
2-3. 존재-인식론의 한계에 대한
퓌론주의와 흄의 회의주의의 대응

Ⅲ. 결론

본문내용

상은 이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이성이 인간에게만 있는 고유한 지적 능력임을, 그리고 온갖 과학적 업적들이 이성에 의하여 이룩되었음을 그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이성이 인간의 전부이거나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거의 결정적인 원리인 양 생각함은 착각이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했다. 그의 이러한 지적에는 이성의 능력을 사실 이상으로 과대 포장한다거나 과학의 업적들을 불변의 진리인 양 절대시하는 근대적 인간의 자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흄의 회의주의는 퓌론주의와 연관된다. “이성의 빛”에 의하여 절대적인 지식의 획득이 가능하다는 데카르트적 사유는 인간에게 근거 없는 희망을 심어주었고, 이성에 의한 독단이 탄생하였다는 것이 근대적 사유에 대해 흄이 내린 결단이었다.
흄이 『인성론』에서 하고자 하였던 철학적 작업은 문자 그대로 인간의 본성을 밝히려는 것이었다. 뉴턴이 자연의 본성을 실험적인 방법으로 밝혀 놓았던 업적과 유사한 업적이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서도 나와야 한다고 흄은 생각했고, 자신의 철학적 작업이 바로 그러한 업적을 낼 수 있다고 보았다. 흄 철학의 근원적인 목적은 뉴턴이 수립한 자연학 또는 자연철학에 버금가는 <인간과학>또는 <인간학>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흄은 자신의 회의주의적 또는 부정적 작업이 인간의 본성을 밝혀 줄 인간학을 수립하는데 필수적으로 거쳐 가야 할 준비단계라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부정적 작업이 수행된 곳이 바로 그의 인식론이다. 그래서 그는 『인성론』의 서두인 제1권 전체를 인식론적 고찰에 바쳤던 것이다. 인간 본성에 관한 새로운 과학을 세우자면 그 기초로서 인식론이 공고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흄의 신념이었고, 더 나아가 인간에 관한 단순히 그냥 새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히 혁명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흄의 신념이었다.
2-3. 존재-인식론의 한계에 대한 퓌론주의와 흄의 회의주의의 대응
흄의 철학은 퓌론주의의 긍정적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밝혔다. 흄은 지식의 원초적 토대를 강력하고 생생한 지각으로서 인상만을 인정하는 경험론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지식의 기원은 오직 인상이라는 감각 경험이기 때문에, 흄에게 인과관계와 물리적 대상들의 존재, 자기 동일적인 자아의 존재에 대한 신념은 부정된다. 직접적인 인상은 어떤 원인이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 뿐이고, 인과 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 그리고 “지각을 제외한 어떤 존재도 마음에 현존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외부의 물리적 대상이 존재하더라도 물리적 대상의 존재에 대한 신념의 근거가 없다. 또한 자아의 존재에서도 자아의 존재는 인격의 동일성을 의미하는데, 자아의 존재를 입증하려면 불변하는 인상이 있어야 하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자아의 존재도 부정된다. 흄의 이러한 인식론은 결국 존재하는 상태에 대한 모든 지식의 성립 불가능성을 입증하게 된 것이다. 이는 퓌론주의와 상통하는 부분이다. 흄은 이렇게 퓌론주의에 빠지게 된 자신을 한탄하면서, 퓌론주의의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거로 “자연”을 찾아낸다. 자연은 절대적이고 불가항력적인 필연성으로 우리가 숨쉬고 느끼고 판단하도록 결정하기 때문에, 인간은 판단중지에 이를 수 없다. 여기에서 흄이 극복한 퓌론주의의 한계점을 찾아볼 수 있다. 퓌론주의자들은 회의주의를 통해서 지식의 불가능성을 입증하고, 판단을 유보함으로써 회피한다. 하지만 흄은 자연이라는 강력한 본능을 찾아냄으로서 인간 지식 일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여 고대 회의주의의 Ataraxia와는 다른 마음의 평정에 도달한다. 그래서 흄은 자연주의적 회의주의자라고 불리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흄이 자연이라는 강력한 힘에 순종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의심을 ‘어느 정도’ 보존하면서 자연의 본능적 힘에 따라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진리에 도달할 수 없는 존재-인식론의 한계, 진리를 알 수 없는 존재-인식론의 한계를 퓌론과 흄은 회의주의를 통해 대응하였다. 회의를 통해 그들은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인정하였다. 지식의 불가능성을 인정하고, 모든 진리주장을 근거 없이 수용하는 게 아니라 비판적인 의심과 통찰력을 통해 억지로 진리에 다가가려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퓌론은 판단중지와 등치의 방법으로, 흄은 자연이라는 강력한 본능을 세움으로써 Ataraxia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
Ⅲ. 결론
회의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만을 가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퓌론과 흄의 회의주의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독단주의자들과 이성이라는 것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정으로 시작하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어쩌면 의심으로만 끝날지 모르는 회의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인 모습이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은 판단을 하기 위해 수많은 고민을 한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판단을 하기 위한 고민에 평생 고민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듯이, 모든 진리주장도 마찬가지이다. 진리라는 것을 판단할 절대적인 존재를 설정하지 않는 이상, 인간은 진리에 이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립되는 반대 주장을 가지거나 오류를 가진 주장을 진리라고 내세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명확하게 정의 내리려는 인간의 속성이다. 하지만 이런 속성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한다. 이런 면에서 퓌론주의의 판단중지와 회의주의는 우리에게 마음의 평정을 누리게 할 수 있게 한다. 모든 주장에는 대립되는 주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인간의 마음은 훨씬 편해질 것이다. 확실한 진리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통에 시달리지만 절대적인 지식에는 이를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더 평안한 삶을 줄 것이다.
의심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주어진 현실에 회의를 느끼는 것도 아니다. 허무한 것도 아니고, 염세적이거나 은둔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의심해보고 비판적인 수용을 할 때에 우리는 더 명확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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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9.06
  • 저작시기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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