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기독교와 역사이해
1. 기독교 역사의식
2. 역사와 계시
3.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
4. 역사와 조국
역사와 종말적 희망
1. 왜 하필 “종말”인가?
2. 역사의 종말 - 종말의 역사
1. 기독교 역사의식
2. 역사와 계시
3.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
4. 역사와 조국
역사와 종말적 희망
1. 왜 하필 “종말”인가?
2. 역사의 종말 - 종말의 역사
본문내용
신다. ‘보복’이 목적인 심판이었다면 하나님께 죄를 범한 인간들은 죽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심판은 회복을 위한 것이었고, 화평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분은 자신의 아들을 대신 죽이셨다. 그래서 죄 곧, 적대관계의 요인을 심판하셨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를 심판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말은 새롭게 시작하는 세계를 위한 심판인 것이다. 옛 것의 척결.
우리는 이 심판으로서의 종말에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은 마태복음 25장 31절~47절의 내용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이 땅에서 배고프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나그네된 사람에게 대한 태도들이 곧 예수님께 대한 태도였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서 종말에 있을 심판은 지금 현재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곧 심판의 결과가 현재의 삶 가운데에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종말의 역사화’라고 할 수 있다.
(4) ‘구원’과 종말
이제 마지막 종말의 한 부분은 곧 ‘구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종말의 의미를 이해하며 세 가지를 살펴 보았다. 죽음, 역사, 그리고 심판...... 이 모든 것은 사실 구원의 영역으로 결국은 귀결되는데 이것이 바로 종말의 온전한 실체이기 때문이다. 종말은 곧 하나님의 나라로의 완성과 관련되는데 곧 구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았던 영역 중, 처음 부분에 말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신 자들이 그 때부터 새롭게 된다는 것을 보며 곧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로의 입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때 이 구원의 의미는 온전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이 되어 있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종말의 때에 완성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시작된 이래로 그 나라는 완성되어 간다.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완성되지 않은 이 땅에 있다. 하지만 재림의 때가 되면 그 나라가 완성된다. 그 때까지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고 있는 것이다. 그 나라를 맛보는 것은 바로 이 세상 나라를 개혁하며 변혁시킨다.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이 시간 가운데에서 내가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해 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경험하는 과정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미래의 삶이 현재의 삶을 침노해 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곧 실천적 용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된 현재가 완성되진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곧 헌신적 겸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역사의 종말-종말의 역사
이제 마지막으로 역사와 종말의 관계를 생각해 보겠다. 역사와 종말은 시간적인 차원과 질적 차원의 면을 생각해 볼 때, 시간적 차원에서 현재-미래의 관계이며, 질적 차원에서 현실세계와 하나님나라의 관계이다.
마가복음 1:15에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을 보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역사는 곧 현재이며, 종말은 곧 미래라는 말에서 종말은 오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크리스챤에게 종말은 지금 이루어진 일이며, 곧 이루실 일이다.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종말이란 옛 사람의 죽음과 새 사람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크리스챤은 종말 속에서 종말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현재론적 종말론으로 보면 ‘이미 여기에(Already/jetzt schon)’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고, 미래적 종말론으로 보면 ‘아직은 미완성(not yet/noch nicht)’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곧 신앙인은 중간기적 존재(Time in-between/Zwischenzeit)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시작된 종말 속에서 종말의 완성을 향해 가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시작된 ‘역사’는 이미 그 속에 ‘종말’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역사(현실)와 종말(미래)의 긴장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종말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종말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 윤회적 사상이 없는 이상...... 그렇다면 이 땅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하며 한 가지 과제가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현실 속에 완성될 미래의 희망이 구현될 것인가?” 두 가지 관점으로 생각하면 futurum적 미래와 adventus적 미래라는 두가지 관점을 살펴 보게 될 것이다. futurum적 미래는 과거의 경험을 참고로 삼아 현재의 입장을 바탕으로 설계하는 미래를 나타낸다. 또한 adventus적 미래는 오고 있는 미래로서의 미래를 나타낸다. 이 두 가지 관점의 미래는 자기 갱신과 변혁의 부분에서는 adventus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adventus적 미래를 선호하는 자들은 현재 억압과 고난 속에 신음하는 민중이다. 그러나 이런 미래에 대해서 현실 기득권을 지닌 채 만족하는 자들은 오히려 futurum적 미래를 더 선호한다. 하나님께서 만들어가시는 미래로서의 관점인 adventus적 미래는 futurum적 미래와 다르다. futurum적 미래는 주체가 인간이다. 그래서 futurum적 미래에 대한 기득권의 사람들은 adventus적 미래를 심판과 저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안정된 자신들의 기반이 흔들리기 때문에......그리고 반대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복음인 것이다. 그래서 처음 복음이 전파되었던 때에는 가난한 자들이 복음을 먼저 믿고 받았다. 그것이 편파적 사랑이라고 보기보다는 편협한 편파성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마무리를 할 것이다. 선취(Anticipation)할 수 있는 기회는 마련이 되어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취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옛 역사에 대한 저항과 변혁을 필연적으로 삼는다. 그래서 용기, 또 선취한 것이 완성체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과 순종의 결단이 필요하다. 예수를 통해 미리 부여한 미래를 겸손과 감사로 미리 받아 경험하는 일은 계속적인 선취의 과정으로서 종말적 역사를 살아가는 모든 자들에게는 바로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현재에 사는 특권으로 생각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 심판으로서의 종말에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은 마태복음 25장 31절~47절의 내용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이 땅에서 배고프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나그네된 사람에게 대한 태도들이 곧 예수님께 대한 태도였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서 종말에 있을 심판은 지금 현재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곧 심판의 결과가 현재의 삶 가운데에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종말의 역사화’라고 할 수 있다.
(4) ‘구원’과 종말
이제 마지막 종말의 한 부분은 곧 ‘구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종말의 의미를 이해하며 세 가지를 살펴 보았다. 죽음, 역사, 그리고 심판...... 이 모든 것은 사실 구원의 영역으로 결국은 귀결되는데 이것이 바로 종말의 온전한 실체이기 때문이다. 종말은 곧 하나님의 나라로의 완성과 관련되는데 곧 구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았던 영역 중, 처음 부분에 말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신 자들이 그 때부터 새롭게 된다는 것을 보며 곧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로의 입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때 이 구원의 의미는 온전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이 되어 있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종말의 때에 완성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시작된 이래로 그 나라는 완성되어 간다.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완성되지 않은 이 땅에 있다. 하지만 재림의 때가 되면 그 나라가 완성된다. 그 때까지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고 있는 것이다. 그 나라를 맛보는 것은 바로 이 세상 나라를 개혁하며 변혁시킨다.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이 시간 가운데에서 내가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해 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경험하는 과정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미래의 삶이 현재의 삶을 침노해 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곧 실천적 용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된 현재가 완성되진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곧 헌신적 겸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역사의 종말-종말의 역사
이제 마지막으로 역사와 종말의 관계를 생각해 보겠다. 역사와 종말은 시간적인 차원과 질적 차원의 면을 생각해 볼 때, 시간적 차원에서 현재-미래의 관계이며, 질적 차원에서 현실세계와 하나님나라의 관계이다.
마가복음 1:15에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을 보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역사는 곧 현재이며, 종말은 곧 미래라는 말에서 종말은 오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크리스챤에게 종말은 지금 이루어진 일이며, 곧 이루실 일이다.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종말이란 옛 사람의 죽음과 새 사람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크리스챤은 종말 속에서 종말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현재론적 종말론으로 보면 ‘이미 여기에(Already/jetzt schon)’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고, 미래적 종말론으로 보면 ‘아직은 미완성(not yet/noch nicht)’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곧 신앙인은 중간기적 존재(Time in-between/Zwischenzeit)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시작된 종말 속에서 종말의 완성을 향해 가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시작된 ‘역사’는 이미 그 속에 ‘종말’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역사(현실)와 종말(미래)의 긴장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종말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종말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 윤회적 사상이 없는 이상...... 그렇다면 이 땅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하며 한 가지 과제가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현실 속에 완성될 미래의 희망이 구현될 것인가?” 두 가지 관점으로 생각하면 futurum적 미래와 adventus적 미래라는 두가지 관점을 살펴 보게 될 것이다. futurum적 미래는 과거의 경험을 참고로 삼아 현재의 입장을 바탕으로 설계하는 미래를 나타낸다. 또한 adventus적 미래는 오고 있는 미래로서의 미래를 나타낸다. 이 두 가지 관점의 미래는 자기 갱신과 변혁의 부분에서는 adventus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adventus적 미래를 선호하는 자들은 현재 억압과 고난 속에 신음하는 민중이다. 그러나 이런 미래에 대해서 현실 기득권을 지닌 채 만족하는 자들은 오히려 futurum적 미래를 더 선호한다. 하나님께서 만들어가시는 미래로서의 관점인 adventus적 미래는 futurum적 미래와 다르다. futurum적 미래는 주체가 인간이다. 그래서 futurum적 미래에 대한 기득권의 사람들은 adventus적 미래를 심판과 저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안정된 자신들의 기반이 흔들리기 때문에......그리고 반대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복음인 것이다. 그래서 처음 복음이 전파되었던 때에는 가난한 자들이 복음을 먼저 믿고 받았다. 그것이 편파적 사랑이라고 보기보다는 편협한 편파성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마무리를 할 것이다. 선취(Anticipation)할 수 있는 기회는 마련이 되어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취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옛 역사에 대한 저항과 변혁을 필연적으로 삼는다. 그래서 용기, 또 선취한 것이 완성체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과 순종의 결단이 필요하다. 예수를 통해 미리 부여한 미래를 겸손과 감사로 미리 받아 경험하는 일은 계속적인 선취의 과정으로서 종말적 역사를 살아가는 모든 자들에게는 바로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현재에 사는 특권으로 생각이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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