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도입
1. 추격자
2. 아메리칸 크라임
3.올드보이
1. 추격자
2. 아메리칸 크라임
3.올드보이
본문내용
임신과 자살로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만 보기에는 대수 때문에 수아가 죽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우진과 수아를 심적으로 괴롭힌 본질은 근친상간의 금기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복수를 명목으로 범죄를 저지르면서 죄책감을 대수에게 떠넘김으로써 우진과 수아가 근친상간의 금기를 넘으면서 느꼈던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 쉬운 만큼 자기 잘못을 헤아릴 정직한 자의식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 피해의식을 자신조차 감당하기 어려워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우진의 범죄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복수라는 명목 하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자신이 사적인 형벌의 집행권 즉, 사형(私刑)을 집행할 권리가 있다고 강하게 믿는 것이 이 같은 복수를 빌미로 한 범죄 발생의 원인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특징적인 부분은 우리가 소위 말하는 ‘남의 탓하기’ 라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더욱 빈번하게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런 배경에서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할 만큼 성숙한 자의식이 형성되기 힘들어서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남에게 투사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 영화에서 우진의 대수에 대한 복수 역시 ‘남의 탓하기’라는 맥락에서 행해졌다는 것이다.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행하는 행위는 ‘복수’라고 보기엔 대상과 방법이 불특정 하다고 볼 수 있다. 복수라는 것은 대상과 방법이 정해져 있는, ‘그대로 갚아주는’ 식의 행위이다. 그러나 이우진은 자신에게 가해하지 않은 엉뚱한 대상, 오대수를 대상으로 삼았고 방법 또한 오대수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근친상간을 복수의 방법으로 삼았다. 이것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긴다’ 식으로 ‘분풀이’ 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 생각해 보면 이우진은 분풀이의 대상을 오대수에게만 한정 시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근친상간이라는 것은 오직 그들 남매밖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이우진은 자신과 누나의 괴로움의 핵심이 있던 근친상간 금기의 책임을 소문, 즉 오대수에게 묻고 있지만, 그들의 본원적 괴로움인 근친상간은 상록고등학교의 다른 동창생들은 알지도 못했고, 따라서 이 사건에 외부에 존재할 뿐이다. 소문 이전에 근친상간을 행한 것도 그들 자신이었고, 근친상간의 금기에 죄의식으로 괴로워한 것도 그들 자신이었기 때문에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복수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꼭 오대수만 그런 소문을 퍼뜨린 것이 아니라 상록고등학교 동기들 전체가 그런 소문을 퍼뜨려서 수아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 아니다. 사건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을 원인으로 들어 대수를 괴롭혔다는 것이다. 도리어 이것은 제대로 된 대상을 정해서 행하는 복수가 아니라 단순히 우진이 분풀이를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영화는 누군가가 가진 트라우마가 평범한 사람을 비인간적 행위를 일삼는 부도덕한 사람으로 어떻게 바꾸는지를 잘 보여준다. 도덕성 문제와 관련 깊은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우진(유지태)을 악랄한 복수의 신으로 바꾸게 만든 우진의 트라우마에 있다. 우진의 누나가 임신했다는 소문으로 인해 우진은 창피함과 더불어 책임지지 못할 행동을 한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두려워한다.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의 시선과 조롱, 또는 자신이 느끼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는 우진을 곁에서 본 우진의 누나는 댐 밑으로 자살을 하게 된다. 결국 누나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우진은 그 후의 삶을 대수에 대한 복수, 또는 세상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며 살게 된다. 그 복수의 칼을 가는 우진의 일생 전체를 사람들은 아마도 비도덕적이라고 할 것이다. 세상이 그들을 보는 왜곡된 시선, 근친상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적인 집합 안에서 배척해 내려는 심리가 담긴 조롱들을 견디기 힘들었다는 당사자의 긍정이기도 하면서 그것을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다른 접급으로 Moral 즉 ‘도덕성’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영화에 접근할 수 있다. 영화에서 근친상간이라는 주제는 대다수의 사회성원이 해서는 안될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일종의 마지노선 같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넘어선 사람은 다시 정상적으로 사회에 융화되기 힘들며 또 그런 취급을 당한 것에 대한 복수를 위해 우진처럼 계속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마치 많은 수의 범죄자들이 소위 말하는 ‘빨간 줄’이 그이고 나서는 사회에 정상적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면서 살아가는 것과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범죄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우진이 겪은 트라우마에 대한 후행적인 심리치료에 대한 방안들이 해결방안의 주를 이루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진이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는 것이라 보여진다. 올드보이의 우진은 누나의 죽음과 그에 대한 죄책감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가장 큰 트라우마 였던거 같다. 이는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누나의 죽음을 대수에게 돌리고 대수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인물이라고 자신이 저지른 죄를 합리화 했다. 지나치지 않는다면 합리화라는 방어기제는 무해하지만 비합리적인 방어기제는 자신을 끝없이 정당화한다. 누나의 죽음 이후에 우진에게 정서적 치료가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로저스의 내담자 중심치료는 곤란을 겪는 사람은 자기상과 객관적 사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되는데 자기 자신이 가지는 공포에 대해 직면하여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상담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다면 자기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에 기초한다. 또한 심한 정도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항우울제를 사용하여 치료를 병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약물치료는 우울증을 감소시키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우진에게 빠른 상담치료와 약물치료가 병행되었다면 그가 잔인한 범죄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진 본인으로 인해서 누나가 임신되었다는 것을 우진 스스로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진 개인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수 있겠지만 이 점을 깨달아야 진정 심리적인 치료가 완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행하는 행위는 ‘복수’라고 보기엔 대상과 방법이 불특정 하다고 볼 수 있다. 복수라는 것은 대상과 방법이 정해져 있는, ‘그대로 갚아주는’ 식의 행위이다. 그러나 이우진은 자신에게 가해하지 않은 엉뚱한 대상, 오대수를 대상으로 삼았고 방법 또한 오대수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근친상간을 복수의 방법으로 삼았다. 이것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긴다’ 식으로 ‘분풀이’ 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 생각해 보면 이우진은 분풀이의 대상을 오대수에게만 한정 시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근친상간이라는 것은 오직 그들 남매밖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이우진은 자신과 누나의 괴로움의 핵심이 있던 근친상간 금기의 책임을 소문, 즉 오대수에게 묻고 있지만, 그들의 본원적 괴로움인 근친상간은 상록고등학교의 다른 동창생들은 알지도 못했고, 따라서 이 사건에 외부에 존재할 뿐이다. 소문 이전에 근친상간을 행한 것도 그들 자신이었고, 근친상간의 금기에 죄의식으로 괴로워한 것도 그들 자신이었기 때문에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복수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꼭 오대수만 그런 소문을 퍼뜨린 것이 아니라 상록고등학교 동기들 전체가 그런 소문을 퍼뜨려서 수아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 아니다. 사건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을 원인으로 들어 대수를 괴롭혔다는 것이다. 도리어 이것은 제대로 된 대상을 정해서 행하는 복수가 아니라 단순히 우진이 분풀이를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영화는 누군가가 가진 트라우마가 평범한 사람을 비인간적 행위를 일삼는 부도덕한 사람으로 어떻게 바꾸는지를 잘 보여준다. 도덕성 문제와 관련 깊은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우진(유지태)을 악랄한 복수의 신으로 바꾸게 만든 우진의 트라우마에 있다. 우진의 누나가 임신했다는 소문으로 인해 우진은 창피함과 더불어 책임지지 못할 행동을 한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두려워한다.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의 시선과 조롱, 또는 자신이 느끼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는 우진을 곁에서 본 우진의 누나는 댐 밑으로 자살을 하게 된다. 결국 누나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우진은 그 후의 삶을 대수에 대한 복수, 또는 세상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며 살게 된다. 그 복수의 칼을 가는 우진의 일생 전체를 사람들은 아마도 비도덕적이라고 할 것이다. 세상이 그들을 보는 왜곡된 시선, 근친상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적인 집합 안에서 배척해 내려는 심리가 담긴 조롱들을 견디기 힘들었다는 당사자의 긍정이기도 하면서 그것을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다른 접급으로 Moral 즉 ‘도덕성’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영화에 접근할 수 있다. 영화에서 근친상간이라는 주제는 대다수의 사회성원이 해서는 안될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일종의 마지노선 같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넘어선 사람은 다시 정상적으로 사회에 융화되기 힘들며 또 그런 취급을 당한 것에 대한 복수를 위해 우진처럼 계속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마치 많은 수의 범죄자들이 소위 말하는 ‘빨간 줄’이 그이고 나서는 사회에 정상적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면서 살아가는 것과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범죄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우진이 겪은 트라우마에 대한 후행적인 심리치료에 대한 방안들이 해결방안의 주를 이루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진이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는 것이라 보여진다. 올드보이의 우진은 누나의 죽음과 그에 대한 죄책감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가장 큰 트라우마 였던거 같다. 이는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누나의 죽음을 대수에게 돌리고 대수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인물이라고 자신이 저지른 죄를 합리화 했다. 지나치지 않는다면 합리화라는 방어기제는 무해하지만 비합리적인 방어기제는 자신을 끝없이 정당화한다. 누나의 죽음 이후에 우진에게 정서적 치료가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로저스의 내담자 중심치료는 곤란을 겪는 사람은 자기상과 객관적 사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되는데 자기 자신이 가지는 공포에 대해 직면하여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상담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다면 자기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에 기초한다. 또한 심한 정도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항우울제를 사용하여 치료를 병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약물치료는 우울증을 감소시키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우진에게 빠른 상담치료와 약물치료가 병행되었다면 그가 잔인한 범죄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진 본인으로 인해서 누나가 임신되었다는 것을 우진 스스로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진 개인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수 있겠지만 이 점을 깨달아야 진정 심리적인 치료가 완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