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공리주의(utilitarianism)
1. 공리주의(Utilitarianism) 개념
2. 효용(Utility)이란?
3. 효용의 극대화, 과연 무슨 말인가?
4. 효용의 극대화를 옹호하는 두 가지 주장
5. 공리주의의 결론.
1. 공리주의(Utilitarianism) 개념
2. 효용(Utility)이란?
3. 효용의 극대화, 과연 무슨 말인가?
4. 효용의 극대화를 옹호하는 두 가지 주장
5. 공리주의의 결론.
본문내용
많은 공리주의자들은 위의 두 가지 개념을 뒤섞은 것을 공리주의로 정의하는데, 위의 두 가지 개념은 근본적 인식의 시작자체가 다르다는 점에서 공존할 수 없다.(논리적 모순을 낳는다) 하지만, 확실히 목적론적 공리주의가 우리의 근본적인 도덕성에 관한 직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첫 개념인 평등주의를 바탕으로 한 공리주의를 공리주의 옮음의 기준의 근본으로 삼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등주의의 개념 역시 여러가지 논리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논리적 문제는 무엇일까?
5. 공리주의의 결론
앞장에서 살펴보았듯이, 공리주의가 그나마 설득력 있는 정치도덕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평등한 고려에 관한 이론으로 전개 되어야만한다.
ⓐ 공리주의자 헤어(Hare)의 평등한 고려에 대한 생각
▶ 모든 사람을 하나, 오직 하나로만 계산하고 각자의 선호에 평등한 비중을 두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 그러나, 이는 몇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각자의 선호에 평등한 비중을 두기에는 올바르지 못한 선호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올바르지 못한 선호란 무엇일까?
ⓑ 외재적 선호(External preferences)
▶ 외재적 선호란, 한 사람이 원하는 재화나 기호 중에서 타인에게 이용 가능한 것들에 대한 선호이다. 이러한 외재적 선호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ex) 가령 누군가가 흑인이 덜 존중받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로 흑인이 보다 적은 자원을 갖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 이는 편견이 담긴 외재적 선호이다.
▶ 이런 경우, 위의 예가 도덕적으로 타당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 공리주의에서는 이러한 외재적 선호를 허용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이치에 맞지 않는 결론을 만들어낸다.
▶ 즉, 우리의 옳음의 기준에 의해 모든 사람들의 선호를 평등하게 간주해야 한다고 하는 그 원칙을 따랐을 때, 그 선호 중에, 사람들의 선호가 평등하게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선호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본 전제 원칙을 부정하는 선호마저, 평등한 선호로 인정된다면, 결국 논리적으로 어떠한 타당성을 가질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자기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 이기적 선호(selfish preferences)
▶ 이기적 선호는 자신의 공정한 몫 이상의 것에 대한 욕구와 관련된 선호이다.
▶ 공리주의자들은 모든 합리적인 선호는 공정하지 않아 보이는 선호까지 모두 평등하게 고려하여야 한다고 한다.
(ex) A가 엄청난 양의 자원을 가지고 있고, B가 매우 적은 양의 자원만을 가지고 있을 때, A가 B의 자원을 탐한다면, 이러한 A의 선호 역시 평등한 선호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즉, 우리는 직관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선호를 공리주의는 인정하고 있다.
▶ 헤어(hare)와 맥키의 논쟁
▶ 맥키
- 최초에 나에게 할당된 자원(노동을 통해서)은 나 자신의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도 나의 자원에 대해 정의라는 명목으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 헤어
- 최초 나에게 할당된 자원은 똑같은 의미에서 나의 것이 아니다. 이 자원이 나의 것이 되려면,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더욱 잘 이용할 수 없다는 사실 한에서만 그 자원이 내 것이 될 수 있다.
▶ 헤어의 주장에 대한 반박 예
- A는 다른 마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뜰과 정원을 모두 가지고 있다. 모두 공정한 몫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마을 사람들이 유독 A의 뜰을 공유하여 공적놀이시설로 만들려고 한다. 이 경우, A는 싫어하지만, 공적 공간을 만듬으로써 형성되는 총체적인 효용의 증가가 있기 때문에, 헤어는 이런경우 A가 자신의 뜰을 희생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이야기한다.
▶ 직관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다.
결국, 이러한 예를 통해 보았을 때, 나의 자원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이웃이 가지는 선호를 허용해야한다는 헤어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 결국, 진정으로 다른사람과 평등한 존재로 인정되야 한다고 믿는다면, 위의 이기적선호와 같은 것들은 선호의 평등 고려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다.
▶ 다시 말해, 평등한 고려라는 것은 각자 자신의 공정한 몫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해줌으로 가능한 것이지, 내가 나의 몫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다른사람이 평등한 비중으로 내 것의 사용에 대해 관여하는 행위를 보장하는 것으로 평등한 고려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이다.
▶ 공리주의는 우선,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선호들을 결집하는 과정에서 평등한 고려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위의 추론으로 보았듯이, 진정한 평등한 고려는 우리의 그러한 선호가 형성되는 과정에서부터 평등이라는 개념이 관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외재적이거나 이기적인 선호는 그러한 선호가 형성되는 과정 속에서 평등에 비추어 사라져야한다는 뜻이다.)
▶ 결국 공리주의식 평등에 대한 기본적 개념 인식방법이 일반적인 직관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공리주의의 정치
▶ 공리주의는 현재 더 이상 뚜렷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지 못한다.
▶ 이유는 결국 효용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동(비공리주의적 수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공리주의의 정치철학이 결론지어짐에 따라서, 자기 딜레마로 인해 더 이상 논쟁의 수단이 되지 못하게 된 것이다.
▶ 오히려 이제 정치는 권리, 책임, 공공이익과 같은 비공리주의적 언어로 지배되어진다.
▶ 이러한 결론의 이유는 공리주의가 출현할 당시는 소수의 엘리트 계층이 다수의 민중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공리주의는 다수의 효용을 바탕으로 하여, 소수 엘리트들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정치적으로 타당하고, 매우 진보적인 논리로 인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다수가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있고, 오히려 소수의 차별받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전체적인 사회구조가 변동한 것이다. 결국 이제 현대 사회는 소수를 존중하고, 다수가 희생하더라도 소수를 위해야하는 것이 정의라고 인정되는 사회인 것이다.
이렇게 사회가 변화하면서, 다수를 옹호하는 공리주의는 서서히 설자리를 잃고 정치적 힘을 잃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5. 공리주의의 결론
앞장에서 살펴보았듯이, 공리주의가 그나마 설득력 있는 정치도덕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평등한 고려에 관한 이론으로 전개 되어야만한다.
ⓐ 공리주의자 헤어(Hare)의 평등한 고려에 대한 생각
▶ 모든 사람을 하나, 오직 하나로만 계산하고 각자의 선호에 평등한 비중을 두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 그러나, 이는 몇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각자의 선호에 평등한 비중을 두기에는 올바르지 못한 선호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올바르지 못한 선호란 무엇일까?
ⓑ 외재적 선호(External preferences)
▶ 외재적 선호란, 한 사람이 원하는 재화나 기호 중에서 타인에게 이용 가능한 것들에 대한 선호이다. 이러한 외재적 선호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ex) 가령 누군가가 흑인이 덜 존중받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로 흑인이 보다 적은 자원을 갖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 이는 편견이 담긴 외재적 선호이다.
▶ 이런 경우, 위의 예가 도덕적으로 타당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 공리주의에서는 이러한 외재적 선호를 허용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이치에 맞지 않는 결론을 만들어낸다.
▶ 즉, 우리의 옳음의 기준에 의해 모든 사람들의 선호를 평등하게 간주해야 한다고 하는 그 원칙을 따랐을 때, 그 선호 중에, 사람들의 선호가 평등하게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선호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본 전제 원칙을 부정하는 선호마저, 평등한 선호로 인정된다면, 결국 논리적으로 어떠한 타당성을 가질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자기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 이기적 선호(selfish preferences)
▶ 이기적 선호는 자신의 공정한 몫 이상의 것에 대한 욕구와 관련된 선호이다.
▶ 공리주의자들은 모든 합리적인 선호는 공정하지 않아 보이는 선호까지 모두 평등하게 고려하여야 한다고 한다.
(ex) A가 엄청난 양의 자원을 가지고 있고, B가 매우 적은 양의 자원만을 가지고 있을 때, A가 B의 자원을 탐한다면, 이러한 A의 선호 역시 평등한 선호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즉, 우리는 직관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선호를 공리주의는 인정하고 있다.
▶ 헤어(hare)와 맥키의 논쟁
▶ 맥키
- 최초에 나에게 할당된 자원(노동을 통해서)은 나 자신의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도 나의 자원에 대해 정의라는 명목으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 헤어
- 최초 나에게 할당된 자원은 똑같은 의미에서 나의 것이 아니다. 이 자원이 나의 것이 되려면,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더욱 잘 이용할 수 없다는 사실 한에서만 그 자원이 내 것이 될 수 있다.
▶ 헤어의 주장에 대한 반박 예
- A는 다른 마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뜰과 정원을 모두 가지고 있다. 모두 공정한 몫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마을 사람들이 유독 A의 뜰을 공유하여 공적놀이시설로 만들려고 한다. 이 경우, A는 싫어하지만, 공적 공간을 만듬으로써 형성되는 총체적인 효용의 증가가 있기 때문에, 헤어는 이런경우 A가 자신의 뜰을 희생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이야기한다.
▶ 직관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다.
결국, 이러한 예를 통해 보았을 때, 나의 자원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이웃이 가지는 선호를 허용해야한다는 헤어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 결국, 진정으로 다른사람과 평등한 존재로 인정되야 한다고 믿는다면, 위의 이기적선호와 같은 것들은 선호의 평등 고려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다.
▶ 다시 말해, 평등한 고려라는 것은 각자 자신의 공정한 몫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해줌으로 가능한 것이지, 내가 나의 몫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다른사람이 평등한 비중으로 내 것의 사용에 대해 관여하는 행위를 보장하는 것으로 평등한 고려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이다.
▶ 공리주의는 우선,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선호들을 결집하는 과정에서 평등한 고려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위의 추론으로 보았듯이, 진정한 평등한 고려는 우리의 그러한 선호가 형성되는 과정에서부터 평등이라는 개념이 관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외재적이거나 이기적인 선호는 그러한 선호가 형성되는 과정 속에서 평등에 비추어 사라져야한다는 뜻이다.)
▶ 결국 공리주의식 평등에 대한 기본적 개념 인식방법이 일반적인 직관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공리주의의 정치
▶ 공리주의는 현재 더 이상 뚜렷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지 못한다.
▶ 이유는 결국 효용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동(비공리주의적 수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공리주의의 정치철학이 결론지어짐에 따라서, 자기 딜레마로 인해 더 이상 논쟁의 수단이 되지 못하게 된 것이다.
▶ 오히려 이제 정치는 권리, 책임, 공공이익과 같은 비공리주의적 언어로 지배되어진다.
▶ 이러한 결론의 이유는 공리주의가 출현할 당시는 소수의 엘리트 계층이 다수의 민중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공리주의는 다수의 효용을 바탕으로 하여, 소수 엘리트들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정치적으로 타당하고, 매우 진보적인 논리로 인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다수가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있고, 오히려 소수의 차별받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전체적인 사회구조가 변동한 것이다. 결국 이제 현대 사회는 소수를 존중하고, 다수가 희생하더라도 소수를 위해야하는 것이 정의라고 인정되는 사회인 것이다.
이렇게 사회가 변화하면서, 다수를 옹호하는 공리주의는 서서히 설자리를 잃고 정치적 힘을 잃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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