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통속연의 第七回 李重進闔家投火窟 宋太祖杯酒釋兵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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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송사통속연의 第七回 李重進闔家投火窟 宋太祖杯酒釋兵權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꼬리는 크게 되려고 근심을 흔들지 않으니 날에 화가 혼란하며 어느 시기에 멎겠는가?
誰知杯酒成良策,盡有兵權一旦收。
수지배주성양책 진유병권일단수.
누가 술잔의 술이 좋은 계책을 이루어 모두 병권을 하루 아침에 거둘지 알겠는가?
宿衛藩鎭,先後裁制,太祖方高枕無憂 高枕無憂:베개를 높이 베고 아무 근심없이 잠을 잠
,誰知國事粗安 粗安 :(웃사람에게 자기(自己)의 안부(安否)를 전할 때)별다른 일이 없이 대체로 편안(便安)함. 조녕(粗寧)
,大喪又屆 屆(이를, 지극하다 계; -총8획; jie)
,究竟何人歸天,俟至下回分解。
숙위번진 선후재제 태조방고침무우 수지국사조안 대상우계 구경하인귀천 사지하회분해. 숙위의 번진인 선후로 재제하며 태조는 바로 베개를 높이하고 근심이 없으니 누가 나라의 일이 조금 안정되어 큰 상이 또 이르며, 마침내 어떤 사람이 하늘로 돌아가는지 아래 회 부분의 해설을 기다려보자.
李重進爲周室懿親 懿親 : 정의(情誼)가 두터운 친척(親戚)
,如果效忠周室,理應於宋祖受禪之日,起義師,北向討逆,雖或不成,安得謂爲非忠?
이중진위주실의친 여과효충주실 이응어송조수선지일 즉기의사 북향토역 수혹불성 안득위위비충?
이중진은 주나라 왕실의 친척으로 만약 주나라 왕실에 충성을 보이려면 이치가 응당 송나라 태조가 선양을 받는 날에 의로운 군사를 일으켜 북쪽을 향하여 역적을 토벌해야지 비록 혹 이루어지지 않아도 어찌 충성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至於李筠起事,始遣翟守珣往潞議約,矣。
지어이균기사 시견적수순왕로의약 만의.
이균이 군사를 일으킬때 비로소 적수순을 보내 노주로 가게 하여 약속을 논의함이 늦었다.
然使與筠同時,南北夾攻,則宋祖且跋前 (꼭지, 미끄러지다, 엎드리다 체; -총14획; hi)발끝 채일 치
跋前後:나아가고 물러서는 것이 자유스럽지 못함. 跋胡尾
後,事之成敗,未可知也.
연사여균동시병거 남북협공 즉송조차발전치후 사지성패 상미가지야.
그러나 이균이 동시에 거병하여 남북으로 협공하면 송나라 태조가 나아가고 물러남이 자유롭지 못하여 일의 성패를 오히려 아직 알수 없었을 것이다.
乃遲回 遲回: 머뭇거리다. 망설이다. 배회하다
不決,直至潞州已平,乃思發難 發難 :①병란을 일으킴 ②따지고 비난(非難)함
,昧時失機,莫此爲甚。
내지회불결 직지노주이평 내사발난 매시실기 막차위심.
머뭇거리며 결단하지 못하여 직접 노주가 이미 평정됨에 이르러서야 어려움을 발병할 생각을 하니 때에 어둡고 기회를 잃어서 이렇게 후회막심하게 되었다.
且令後世目爲宋之叛臣,不得與韓通、李筠相比,謂非死有餘憾乎?
차령후세목위송지반신 부득여한통 이균상비 위비사유여감호?
또 후세의 송나라를 반역신하로 지목당하게 되어 한통, 이균등과 서로 비교되지 못하니 죽음에 남은 유감이 있지 않는가?
趙普懲前毖後懲(혼날 징; -총19획; cheng)前毖(삼갈 비; -총9획; bi)後: 《시경》의 〈주송(周頌)〉편에 실려 있는 〈소비(小毖)〉라는 시는 "내 지난 일을 징계하여 후환을 삼가리라(予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이는 주(周)나라 성왕(成王)의 고사(故事)에서 비롯된 말이다. 성왕은 주나라 무왕(武王)의 아들로, 무왕을 이어 즉위하였을 때 아직 나이가 어렸으므로 숙부인 주공(周公)이 섭정하였다. 주공의 형제인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은 주왕(紂王)의 아들인 무경(武庚)과 결탁하여 주공이 왕위를 찬탈하려 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어린 성왕이 차츰 그 말을 믿어 주공을 의심하게 되었으므로, 주공은 의심을 피하기 위하여 성왕의 곁을 떠났다. 주공이 사라지자 관숙과 채숙 등은 물을 만난 고기처럼 반란을 꾀하였다. 성왕은 그때서야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고 급히 주공을 다시 불러들였다. 주공이 돌아와 반란을 진압하고 관숙과 채숙 등을 징벌하였으며, 다시 섭정을 하다가 성왕이 장성하자 물러났다. 나중에 성왕은 이 일에 대하여 깊이 반성하면서 여러 신하들 앞에서 "내 지난 일을 징계하여 후환을 삼가리라"라고 말하였다. 징전비후는 지난 날의 과오를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조선시대에 류성룡(柳成龍)은 임진왜란을 겪고 나서 후세에 그와 같은 전화(戰禍)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기 위하여 이 성어에서 따온《징비록(懲毖錄)》을 지었다.
,力勸宋祖裁抑武夫,百年積弊,一旦革除 革除[gechu] :1.뿌리뽑다. 깨끗이 제거하다. 없애다. 2.면직시키다. 해고하다. 제명하다.
,讀史者多稱(고울 염; -총28획; yan)=艶(고울 염; -총19획; yan) 稱 :부러워하고 칭찬(稱讚)함. 매우 칭찬(稱讚)함
之。
조보징전비후 력권송조재억무부 백년적폐 일단혁제 독사자다염칭지.
조보가 앞일을 징계하여 힘주어 송나라 태조가 무부[군인]을 억제하라고 권하니 백년의 폐단이 쌓인 것이 하루 아침에 뿌리뽑으니 역사를 읽는 사람은 많이 그를 부러워하고 칭찬한다.
顧亦由宋祖智勇,素出諸將右,石守信輩憚其雄威 雄威[xiongwi]: 강대한 위력. 웅장하고 위엄 있다. 힘있고 위풍당당하다
,不敢立異 立異:배반, 다른 편에 섬. 다른 주장을 폄
,乃能由彼操縱耳。
고역유송조지용 소출제장우 석수신배탄기웅위 불감립이 내능유피조종이.
돌아보면 또한 송나라 태조의 지혜와 용기에서 유래하니 평소 여러 장수의 첫번째이며 석수신의 무리는 그의 영웅의 위세를 꺼려서 감히 배반하지 못하고 그에게 조종당할 뿐이었다.
不然,區區杯酒,寥寥 寥寥 [liaoliao] : 매우 적다〔드물다〕.
數言,寧能使若輩帖服 帖(표제, 주련 첩; -총8획; tie,tie,tie)服[tifu] :순종하다. 복종하다.
耶?
불연 구구배주 료료수언 녕능사약배첩복야?
그렇지 않다면 사소한 술잔으로 몇 마디 말을 적게 하는데 어찌 그들 무리를 복종하게 하였겠는가?
然後世子孫,庸弱不振,卒受制於夷狄,未始非由此成之。
연후세자손 용약부진 졸수제어이적 미시비유차성지.
연후에 대대로 송태조의 자손들이 보통으로 약하여 떨치지 못하며 마침내 오랑캐의 제압을 받으니 아직 이 완성에 시작함이 아니다.
內寧有外憂,此方正學之所以作深慮論也。
내녕즉유외우 차방정학지소이작심려론야.
안이 편안하면 밖에 근심이 있으니 이는 바로 바른 학문은 깊이 생각하는 논리를 짓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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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1.16
  • 저작시기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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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14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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