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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추고 얼우면서 아주 분명하게 아이를 완전한 성 대상의 대체물로 다루는 것이다.” Ibid p126
하지만 나는 이 마지막 입장에 대해서는 앞에서의 두 입장과는 달리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싶다. 이러한 나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는 \'근친상간은 본능이다.\' 라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된다.
“ 근친상간은 왜 본능인가?” 내가 던진 이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이 근친상간의 욕망은 성인 되어서도 지속적으로 무의식 속에 남아 있지만, 이러한 욕망의 시발점이자, 욕망이 가장 높은 시기는 어린 시절, 다시 말해 유아기 때 이다.
이런 유아기 때에도 성욕에 관한 욕구는 있으며, 앞으로의 성인의 성생활의 바탕이 된다.
이때의 성욕 대상자는 자기자신(자기성애적)을 포함해서 가장 큰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부모일 것이다. 그들의 부모는 그들의 부모인 동시에 그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이성이다. 이것들을 통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근친상간이 본능인 이유는 유아기 때 리비도(성욕)을 충족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부모이기 때문이다. 이 의견에 ‘남자들(고대의 경우에는 노예들)에 의한 소년들의 교육은 동생애를 조장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도 지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미 부모가 된 성인들의 근친상간 욕구는 유아기의 근칭상간 욕구라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아의 성 대상은 그들의 부모 밖에 없는 것과 대조적으로 부모들은 그들의 부부생활로 성욕을 충족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전적 쾌락을 지나 결정적 쾌락을 경험하면 만족감과 함께 리비도도 일시적으로 소멸된다.
그러므로 부모들의 아이들을 통해서 굳이 성욕을 충족시킬 필요가 없다.
또한 잠복기에 생겨나는 정신적인 댐이 단지 교육(의식)을 통해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유전에 의해서도 생성된다는 점을 통해서 억압하는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이 생각은 ‘근친상간이 본능이다.’ 라는 의견과 충돌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무의식 속에 성욕도 있고 이를 억제하는 욕망도 있으나 그 강도 면에 있어서 성욕이 우위를 점한다고 생각되어진다.)
그 무의식 때문에 부모는 그리 쉽게 근친상간의 욕구를 빠져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다시 한번 생물학적의 의견을 받아 들인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 특히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모성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성애는 유전자의 지배를 받으며, ‘보다 많은 나의 유전자를 퍼트리기 위해 새끼를 더 건강하고 안정하게 키워야 된다는 근원’에서 모성애가 시작된다. 또한 호르몬에 의해서 부모(특히 임산부)와 아기사이의 결속이 더욱 강하게 유지된다. 그 호르몬에는 프로게스테론, 에스트로겐, 프로락틴, 옥시토신 등이 있으며 모두 모성애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알을 품고 있는 암탉에게 이런 호르몬을 제거하는 남성호로몬을 주입한다면, 놀랍게도 암탉은 알을 품고 있던 자리에서 박차고 나온다고 실험결과가 있었다. 이런 결과들로 볼
하지만 나는 이 마지막 입장에 대해서는 앞에서의 두 입장과는 달리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싶다. 이러한 나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는 \'근친상간은 본능이다.\' 라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된다.
“ 근친상간은 왜 본능인가?” 내가 던진 이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이 근친상간의 욕망은 성인 되어서도 지속적으로 무의식 속에 남아 있지만, 이러한 욕망의 시발점이자, 욕망이 가장 높은 시기는 어린 시절, 다시 말해 유아기 때 이다.
이런 유아기 때에도 성욕에 관한 욕구는 있으며, 앞으로의 성인의 성생활의 바탕이 된다.
이때의 성욕 대상자는 자기자신(자기성애적)을 포함해서 가장 큰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부모일 것이다. 그들의 부모는 그들의 부모인 동시에 그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이성이다. 이것들을 통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근친상간이 본능인 이유는 유아기 때 리비도(성욕)을 충족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부모이기 때문이다. 이 의견에 ‘남자들(고대의 경우에는 노예들)에 의한 소년들의 교육은 동생애를 조장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도 지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미 부모가 된 성인들의 근친상간 욕구는 유아기의 근칭상간 욕구라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아의 성 대상은 그들의 부모 밖에 없는 것과 대조적으로 부모들은 그들의 부부생활로 성욕을 충족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전적 쾌락을 지나 결정적 쾌락을 경험하면 만족감과 함께 리비도도 일시적으로 소멸된다.
그러므로 부모들의 아이들을 통해서 굳이 성욕을 충족시킬 필요가 없다.
또한 잠복기에 생겨나는 정신적인 댐이 단지 교육(의식)을 통해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유전에 의해서도 생성된다는 점을 통해서 억압하는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이 생각은 ‘근친상간이 본능이다.’ 라는 의견과 충돌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무의식 속에 성욕도 있고 이를 억제하는 욕망도 있으나 그 강도 면에 있어서 성욕이 우위를 점한다고 생각되어진다.)
그 무의식 때문에 부모는 그리 쉽게 근친상간의 욕구를 빠져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다시 한번 생물학적의 의견을 받아 들인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 특히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모성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성애는 유전자의 지배를 받으며, ‘보다 많은 나의 유전자를 퍼트리기 위해 새끼를 더 건강하고 안정하게 키워야 된다는 근원’에서 모성애가 시작된다. 또한 호르몬에 의해서 부모(특히 임산부)와 아기사이의 결속이 더욱 강하게 유지된다. 그 호르몬에는 프로게스테론, 에스트로겐, 프로락틴, 옥시토신 등이 있으며 모두 모성애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알을 품고 있는 암탉에게 이런 호르몬을 제거하는 남성호로몬을 주입한다면, 놀랍게도 암탉은 알을 품고 있던 자리에서 박차고 나온다고 실험결과가 있었다. 이런 결과들로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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